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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49화 (249/265)
  • 4번째 열쇠(1)

    * * *

    4번째 열쇠를 손에 넣은 유피테르 일행은 곧바로 호수 밑 거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미 목표는 이뤘다. 적이 득실득실한 리언스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오흐트의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강제로 계약을 위반했고, 그 후폭풍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크게 나타났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스터. 혼자서만 안다는 얼굴 하지 말고, 좀 설명해주라! 어, 어라? 왜 세상이 빙그르르….”

    한껏 신이 난 오흐트는 말을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철푸덕!

    드문드문 돌멩이가 박혀있는 산길에 그대로 자빠졌다.

    바닥에 뒹구는 것으로 모자랐는지 입에서는 피가 정신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돌과는 부딪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테세라는 어쩔 줄 모른 체 발만 동동 굴렀다.

    “오흐트? 왜, 왜 그래. 괜찮은 거야? 마스터. 빨리 이리로 와서 어떻게 좀 해봐. 이대로면 큰일 나겠어.”

    마족이라는 편견과 다르게 테세라는 정이 많았다. 그래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반인반마라는 태생 때문이었다.

    오흐트에게 섣불리 다가가는 게 오히려 더 위험했다. 신성 마나와 마족의 마나가 충돌하면 어떤 악영향을 불 보듯 뻔했다.

    심지어, 현재의 오흐트는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몸을 지키고 있는 신성 마나가 옅어진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신음하는 여동생을 바라만 보는 게 최선이었다.

    반면에, 트리아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전조도 없이 쓰러지는 오흐트를 받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트리아는 오흐트를 안아 들고서 유피테르에게 소리쳤다.

    “마스터!”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유피테르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 마치, 트리아가 그 말을 할 거라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 * *

    호수 밑 비밀 거점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트리아 많이 아파 보였지.”

    “증상으로 볼 때 마나 회로에 문제가 생긴 거 같던데.”

    “그러고 보니 마스터가 중간에 오흐트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했잖아. 그냥 패스로 이야기하고 허가만 받으면 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던 거겠지.”

    “하긴 마족들의 땅에서 신성 마나를 쓰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네.”

    테세라와 트리아는 유피테르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유피테르가 오흐트가 잠든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다.

    테세라는 마스터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물었다. 단 몇 초도 참을 수가 없었기에.

    “마스터. 오흐트의 상태는 어때?”

    “….”

    유피테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본 테세라는 머릿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마스터도 손을 데지 못하는 상태라고?’

    유피테르에게 치유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건 신성 마나를 허락받은 자들의 특권이었으니.

    다만 마나 감지로 그녀의 상태만 확인해주기를 원했을 뿐이었다.

    ‘칼리스토는 쉽게 죽지 않아. 그건 잘 알고 있다고.’

    신의 딸의 제안은 지나칠 정도로 조건이 좋았다.

    그중에는 불로불사도 있었다.

    물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건 신에게만 허락된 축복이었으니.

    칼리스토들은 바실리가 가진 마나의 일부를 몸속으로 받아들였다. 즉, 계약을 통해 본래의 종족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계약 위반의 리스크는 분명 마나 회로에 문제가 생기는 것뿐이었을 터. 그건 치유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트리아도 의견을 내었다.

    오흐트처럼 강제로 제약을 푼 적은 없었다. 그래도 제약을 풀어본 경험은 꽤 많았다.

    애초에 칼리스토 원년 멤버 중 한 명이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새 자매가 위치한 거실로 나온 유피테르는 쇼파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선 대답했다.

    “오흐트의 문제는 계약을 정화로 풀어냈다는 점이야.”

    “그런가. 정화로 구속의 사슬을 없애버렸다면 문제가 될 만도 하지.”

    “그게 무슨…. 둘만 아는척하지 말고 나한테도 이야기해달라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트리아와 달리 테세라는 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 최대한 조절해 설명을 요구했다.

    유피테르는 테세라를 위해 가벼운 예시를 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칼리스토에게 걸려있는 제약은 일종의 자물쇠라고 하고, 그 열쇠를 마스터가 가지고 있다고 보자.”

    “응.”

    “마스터는 원하는 때에 자물쇠를 열어줄 수 있겠지?”

    “그러엄. 열쇠가 있으니까.”

    테세라가 차근차근 따라오자 유피테르는 말을 이었다.

    “근데 갑자기 그 자물쇠를 마법을 사용해서 잘라 내버린 거야.”

    “어?!”

    “필요할 때만 열었다가 다시 잠그는 게 계약이었어. 그런데 이제는 그걸 유지할 방법이 영영 없어진 거야.”

    “그렇구나. 큰일이네….”

    유피테르의 말대로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칼리스토 계약을 유지할 수단이 없어졌다는 데 있었다.

    세아니아 대륙은, 아니 이 세계는 신의 숨결로 가득했다. 신이 만든 섭리를 거부한 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리 없었다.

    구속구는 칼리스토들을 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던 거였다.

    유피테르의 비유를 통해 상황을 알게 된 건 테세라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벌어진 상황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트리아는 유피테르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트리아를 낫게 할 방법은?”

    “지금으로는 없을 거 같은데. 마도 공학의 힘을 빌릴 수 있어도 애매해.”

    “자매들이 배신한 게 여기서도 문제가 되네. 타르타로스의 마나까지 있어서 더 문제가 되는 건가.”

    유피테르는 머리에서 손을 내리며 그 말을 반박했다.

    “아니. 타르타로스라서 그나마 나은 거야.”

    “그게 무슨 소리지? 제대로 설명해봐라. 후대야.”

    트리아의 물음을 유피테르는 가볍게 해결해주었다.

    “타르타로스는 신이 만든 감옥이잖아. 놀랍게도 신의 섭리에서 가장 떨어진 곳이야.”

    “…섭리를 어겼을 때의 억지력이 그나마 약하다는 건가.”

    “정확해. 열쇠를 가져온 건 기쁘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내 탓이지.”

    * * *

    한편.

    고대하던 4번째 열쇠를 눈뜨고 빼앗긴 카르멘은 에키드나의 성에 와있었다.

    넓디넓은 마왕성과는 다른 정갈한 느낌을 주는 연회장.

    별다른 특색은 없었으나, 에키드나의 존재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서. 마지막 열쇠가 유피테르에게 있다고오오?”

    “그래.”

    카르멘은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앉아 에키드나와 마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부하들마저 꺼리는 구도였으나 당황하거나 하진 않았다. 상하관계는 이미 정해졌지만, 아직 협력자였으니까.

    에키드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머리카락을 빙빙 꼬았다.

    “신의 아티팩트를 마족의 마나로 흔들어서 던전 자체를 파괴하는 거였잖아아?”

    “이런 말 하긴 싫지만, 내가 틀렸었다.”

    “틀렸었다고?”

    “그래. 마지막 열쇠를 얻는 법은 신성 마나를 불어넣는 거였다.”

    카르멘은 던전에서 발견한 석판을 떠올렸다.

    리언스에 갑자기 들어선 던전은 평범함과는 동떨어진 묘한 곳이었다.

    첩보를 받고 직접 공략한 결과 이 던전은 신이 미리 만들어둔 거라는 걸 깨달았다.

    3개의 열쇠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구조였다.

    ‘신은 원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지.’

    신의 딸을 구할 마지막 열쇠가 굳이 타르타로스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카르멘은 머리가 좋았다.

    신의 뜻을 이해하려고 들기보다는 어떡하면 열쇠를 빼낼지에 집중했다.

    또, 생각해보니 유피테르는 타르타로스에 침입할 수 있을 듯했다.

    마족들도 찾아낸 방법을 신의 딸의 반려자가 모를 리 없었다. 더구나 그 자식은 신의 선택을 받은 아이였으니까.

    회상을 끝낸 카르멘은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열쇠 하나를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아 그거 말이지이.”

    점점 흥미를 잃어가던 에키드나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녀는 발밑의 그림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서는 무언가를 꺼냈다.

    “쨔안!”

    “…?”

    에키드나가 꺼낸 건 열쇠였다.

    카르멘은 말없이 에키드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족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의 이면에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걸 카르멘은 알았다.

    사실, 그처럼 계산 따위는 하지 않아도 좋았다.

    흐름이 에키드나의 눈에 들기 위해 안달복달했으니.

    에키드나는 카르멘의 뜨거운 시선을 궁금증으로 받아들이고는 말했다.

    “이건 그림자 마법으로 복사한 신의 열쇠야.”

    명석한 두뇌를 보유한 카르멘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그럼 네가 유피테르 앞에서 사용한 건….”

    “이 복사 열쇠지!”

    행복해 보이는 에키드나의 미소에 카르멘은 열불이 났다.

    ‘제정신이 아닌 건 분명하군.’

    에키드나는 분명 열쇠 하나를 써버렸다고 말했었다. 워낙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지금도 또렷했다.

    저 말을 들었기에 카르멘은 4번째 열쇠에 심혈을 기울였다. 필요도 없는 제물 의식이라는 쇼까지 별이면서.

    ‘한결같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멋대로 상황을 휘젓는 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카르멘은 앞에 있던 와인을 마시며 속을 달랬다.

    적당히 달콤한 와인이 혈관을 타고 온몸에 전해지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열쇠가 남아있다니 다행이군. 그럼 마지막 열쇠를 탈환하는 일만 남은 건가.”

    “그러네에에. 좋은 방법은 없어어? 그걸 생각해내는 게 당신의 일이잖아아.”

    “깜짝 선물은 너만 준비한 게 아니라고.”

    카르멘의 당당한 태도에 에키드나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물들었다.

    ‘당신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게 해줘.’

    에키드나의 세계에는 원래 티폰만 있었다.

    하지만, 유피테르가 등장하고 티폰이 죽으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마족이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신의 주사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의 계획을 박살 내기 위해 그녀는 차근차근 준비했다.

    필요한 건 모두 자신의 손안에 있었다. 태초의 세 마족 중 한 명이었으니까. 또, 티폰이 했던 이야기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인간 쪽 협력자가 필요했다.

    창조신 레아가 인간을 편애한다는 건 이제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신의 선택을 받을 인물은 인간 중 한 명일 게 뻔했다.

    인간 세상에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마족과의 계약을 원하는 인물.

    카르멘은 여기에 딱 들어맞았다.

    기대를 받은 인물, 카르멘은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아바라치아가 지니고 있는 부가 효과 중 하나였다.

    능숙하게 아공간 속을 뒤진 그는 무언가 하나를 끄집어냈다. 에키드나가 했던 것과는 달리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뭘 준비한 거야아아…?”

    “바로 이거다.”

    카르멘은 아공간에서 꺼낸 물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후, 마나를 이용해 에키드나 쪽으로 보냈다.

    “이게 뭐야아?”

    “영상 구슬이다.”

    “그 정도는 보면 알아. 바보가 아니라구우우.”

    “자세한 내용은 보고 나서 이어서 말하도록 하지. 일단, 마나를 불어넣어봐라.”

    에키드나는 카르멘의 말을 따라 구슬을 작동시켰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에키드나의 붉은 눈동자에 살의가 깃들 정도로.

    “칼리스토들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이곳으로 오라고.”

    “분부대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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