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45화 (245/265)

열쇠가 어디에 있다고?(4)

* * *

유피테르는 자연스럽게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흐트는 쫄랑쫄랑 그의 뒤를 따랐다.

딸랑!

마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맑은 종소리가 울리자, 주점의 시선이 유피테르 일행에게 몰렸다.

“어이, 저기 좀 보라고.”

“왜, 뭔데. 헛소리하면 죽여버릴 거다?

“연인… 이라고 보기에는 힘의 차이가 너무 극명하잖아.”

“의외의 취향일 수도 있지. 존중해주자고. 하하하하!”

중천부터 주점에서 죽치고 있던 마족들은 하나같이 오흐트를 놀렸다.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과 같은 사이라는 건 문제 되지 않았다.

마족들의 세계에서 예의란 힘보다 훨씬 아래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이 익숙했는지 주점 주인은 다른 마족들을 가볍게 타박했다.

“니들이 그런 식이니까. 새로운 손님이 오지 않는 거 아니냐.”

“아니, 우리가 없으면 여기도 망한다고! 단골을 잘 챙겨줘야 할 거 아냐.”

“그런 의미로 더 독한 술 없어? 이따위 맹물을 술이라고 팔다니. 아아, 영주님한테 일러버릴까 보다.”

주점에 죽치고 있던 마족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있다니. 이게 현세대의 마족들인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잖아.’

티폰을 사냥하기 위해 이곳에 와본 적 있었다. 그때도 술은 유행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일련의 행동을 지켜본 유피테르는 휘파람을 부는 마족들을 뒤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오흐트 역시 시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유피테르의 맞은편을 차지했다.

새로운 손님이 자리를 정하길 기다리던 주점 주인이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어서 오쇼. 이 동네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잠깐 여행차 왔는데, 이 가게 간판이 마음에 들어서.”

“옆에는 애인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동생이다.”

유피테르의 말에 주점 주인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런 동생은 데리고 다니기 힘들진 않나?”

그가 돌려서 말하지 않자, 유피테르도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그건 실력에 자신 없는 이들이나 하는 말이지. 덤벼보라고 해. 다 한 주먹에 보내줄 테니까.”

자신감 넘치는 유피테르의 말에 주점 안의 분위기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리언스에서 힘을 자랑하는 바보 녀석이 또 있는데?”

“난 저런 멍청이가 너무 좋더라. 주인장 저 테이블에 맥주 하나 줘. 계산은 이 친구가 할 거야.”

“야…!”

강하다.

그건 마족에게 있어 최고의 영예이자 훈장이었다.

대륙 전쟁 시기와 다르게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더라도 본능은 여전했다.

“주는 선물을 거절할 수야 없지. 잘 마실게.”

유피테르는 웃으며 간단히 손을 들어주었다.

“오우, 뭘 좀 아는 놈인가?”

“그래그래. 데이트 잘하라고! 여기 맥주는 얼큰하니까, 아주 잘 골랐으.”

주점의 크기는 생각보다는 작았기에 유피테르의 말이 똑똑히 전해졌다.

그런데도 마족들은 꿋꿋이 데이트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잠시 후, 주인장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메뉴를 빠르게 확인한 유피테르는 능숙하게 주문한 뒤, 음식을 즐겼다.

물론, 맥주도 함께였다.

“생각보다 맛있는데?”

아까까지 화가 났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오흐트는 신나게 고기를 뜯었다.

“이곳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다.”

“아, 그렇구나!”

리언스는 마왕성 근처의 도시였다.

인간들의 이야기로 하자면 황성이 위치한 수도 외곽에 비교할 수 있었다.

외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마족들이었기에 이 정도에 그친 거였다.

오흐트가 맛있게 먹는 동안 유피테르는 마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말 들었어? 이 근처에 거대한 던전이 나타났다던데.”

“내일 같이 도전할까. 어떻게 할래? 쉬는 날이라서 널널한데.”

“아서라. 찬물도 위아래가 있어. 난 에키드나 님께 죽고 싶지 않다고.”

마족들의 땅에도 영주가 있었다.

대부분 인접한 공작의 부하들이 그 역할을 맡아왔다.

서류보다 싸우는 걸 더 선호했기에, 인간만큼 업무 강도가 높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묘한 소문이 돌더라고. 마족이 사라진다나 뭐라나. 솔직히 말도 안 되잖아.”

“그냥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힌 거겠지. 늘 있었던 일이잖아.”

“넌 진짜 어디 가서 친구 많다고 이야기하지 마라.”

마족끼리의 대화에 갑자기 주점 주인이 끼어들었다.

“마족이 사라진다는 그 소문 말인가. 이번 건 좀 다르다고 하더군.”

“주인장은 정보통이구만. 믿고 있었다고.”

“오, 그 소문 아시는구나! 정말. 위험합니다.”

주인장이 끼어들자 마족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사라지기 전에 몸이 점점 희미해진다고 하더군.”

“저렇게?”

마족 중 한 명이 오흐트를 가리켰다.

주점 주인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족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마왕님께서 안계서도 리언스는 에키드나 님께서 보호해주고 계시…. 어?”

주점 주인은 두 눈을 의심했다.

새로 온 손님 중 여동생 쪽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기에.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가?’

주점 주인은 황급히 유피테르의 테이블로 움직였다. 한 치의 시간도 낭비할 순 없었다.

* * *

‘이게 대체….’

유피테르는 유피테르대로 당황했다.

잘 먹고 있던 오흐트의 몸이 희미해졌기에. 별다른 전조도 없었기에 더욱 놀랐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그는 주점의 주인이 정보통이라고 불리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주인, 이 현상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 게 있나?”

“이럴 수가. 그 소문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그럼 정말 마왕님이 부활하신다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지?”

유피테르의 말에 대답해준 건 몰려온 마족 중 한 명이었다.

“이 현상은 제물의 의식이라고 불려. 비교적 약한 마족부터 마왕님을 부활시킬 기반이 된다고 해서 말이지.”

“….”

샤아아악!

대화를 나누는 찰나의 시간.

고작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 오흐트는 주점에서 사라져버렸다.

‘젠장!’

눈앞에서 오흐트가 사라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피테르는 곧바로 마나 감지를 펼쳤다. 인간이라는 걸 들켜도 상관없었다.

공작급의 마족도 아니라면 기억을 조작하는 건 쉬웠으니.

‘찾았다.’

의외로 오흐트의 마나는 금방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오흐트의 마나를 그의 마나가 감싸고 있었기에 틀릴 리 없었다.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으나, 눈에 띌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다. 마차 같은 걸로 움직이는 듯했다.

유피테르는 패스를 이용해 오흐트와 대화를 시도했다.

“오흐트. 내 말이 들리나?”

-잘 들려. 이거 진짜 새로운 경험인데? 공간 이동과 비슷한 것 같은데 또 달라. 이런 함정에 걸린 거 진짜 오랜만이라 얼얼해.

목소리는 조금 작았지만, 오흐트는 무사했다.

유피테르는 안도하며 패스의 영역을 확장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걸, 오흐트도 볼 수 있도록.

여동생이 사라져 화가 난 이를 연기하며 유피테르는 주점 주인에게 물었다.

“제물의 의식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빼앗긴 이를 되찾는 방법도 같이 전해지겠지?”

“없다고 알고 있다.”

“그냥 포기하는 게 빨라.”

“네가 강해도 이 의식을 쫓는 건 무리다.”

그러나 주점 주인도, 마족들도 전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일말의 안타까움조차 없었다.

그 대신 마족 중 한 명이 유피테르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깨를 펴게.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잖아.”

“….”

유피테르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마족들에게 있어 강자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았기에.

이게 마족과 인간의 거리감이었다.

유피테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주점 주인이 입을 열었다.

“여동생을 잃어서 상심이 클 테니. 돈은 받지 않겠네. 술이 더 필요하면 말하게나.”

그때, 유피테르에게 맥주를 선물했던 마족이 묘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소문대로라면 윗분들이 개입되어 있다고! 네가 강해도 공작님들만큼은 아닐 거 아느냐.”

“어, 어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마족 역시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뜬소문인 줄만 알았던 제물의 의식이 연속해서 일어나자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그래, 원래 그런 법이지.’

유피테르는 차갑게 웃었다.

남의 일이 자신의 일로 변하는 순간 태도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족이든, 인간이든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았다.

안색이 나빠질 때로 나빠진 주점 주인은 축객령을 내렸다.

“오늘 돈은 받지 않겠네. 그냥 돌아가 주게.”

* * *

이야기를 전부 들은 테세라는 화를 훌훌 날려버렸다.

유피테르가 잘못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신성 마법사라고 해도 칼리스토의 일원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야만 했다.

“리언스를 담당하는 영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 잘은 모르지만, 에키드나 님의 의중이 반영된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마족 공작 중 한 명인 테세라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기색조차도 없었고.

“선조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유피테르는 트리아에게 화살을 돌렸다.

퍼즐 조각은 전부 모였다. 하지만, 이를 맞춰보기 전에 다른 이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었다.

“약한 마족만 사라진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데.”

“역시 그 부분입니까.”

생각이 겹치자, 유피테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왕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고 해보자. 그럼 강한 마나를 지닌 마족을 데려가는 게 이득 아니야? 어차피, 강자의 손에 죽는 걸 좋아하는 미친놈들이잖아.”

“거기다. 사라진 곳이 리언스라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언뜻 보면 마왕 추종자들의 짓으로 보이지만.”

“이 일대는 에키드나의 부하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니까. 그건 확실하지 테세라?”

갑자기 지목당한 테세라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키드나 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공작이라구요.”

“공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하니까 못 믿겠다고. 서열 전쟁에서 날 한 번도 이기지 못했잖아.”

“그, 그건 언니가 너무 강하니까 그렇죠!”

자매들의 대화가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유피테르는 그걸 끊었다.

“이다음은 오흐트에게 달려있다고. 계획은 이미 전달해뒀으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자고.”

* * *

한편, 오흐트는 예상치도 못한 관에 갇혀 강제로 이동 중이었다.

‘마족이 아니라 몬스터네?’

주변에서 느껴지는 건 마족의 기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마나 감지를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기척 정도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답지 않게 생각을 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관이 멈추고 땅에 떨어졌다.

쿠우웅!

“아이씨. 아프잖아. 다 온 건가?”

안에 타고 있는 일을 하나도 배려하지 않은 착지 법에 오흐트는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고독한 외침이었다.

“좋아. 이제 누가 나오는지 보자고.”

마스터가 전해준 계획대로라면 이건 에키드나의 짓이 분명했다.

신성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인데도 오흐트는 겁을 먹지 않았다. 성녀이기 전에, 유피테르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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