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44화 (244/265)
  • 열쇠가 어디에 있다고?(3)

    * * *

    “아무래도?”

    유피테르는 테세라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재촉한다고 해서 빨라질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냥 조용히 기다리는 게 더 나을 듯했다.

    “트리아 언니가 했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말이라면?”

    유피테르는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트리아가 했던 말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참모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에.

    어떤 말을 지칭하는 건지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트리아는 테세라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아는 듯 대화에 힘을 보탰다.

    “4번째 열쇠가 에키드나의 함정 같다는 말인 거 같네. 그런데 이게 왜? 우연에 우연이 겹친 거라고 결론 내렸었잖아.”

    “생각해보니 이곳 던전에 은발의 괴물이 산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테세라는 자신 없는 듯 말했으나 그 단어를 들은 유피테르의 입가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카르멘인가. 최악의 타이밍에 나타나 주시는군.”

    타르타로스에 사는 마족들은 대부분 검은 머리에 피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은색의 머리칼은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100%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요.”

    “확실히…. 카르멘은 인간치고는 잔혹하고 탁월한 전술가야. 에키드나라고 해도 그를 가만히 놀려두지는 않겠지.”

    트리아는 테세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르멘 비제. 절대로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야.’

    초창기의 아르테미스 가문에도 카르멘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자가 존재했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마법사는 아니었으나, 귀신같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보다 냉혹한 성격이었다.

    그의 힘이 있었기에 초대 가주 나이아드가 두려움보다는 존경을 받는 인물로 기억되었다.

    모두가 고민에 빠져 있자 오흐트가 입을 열었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정보가 없으면 모으면 그만이잖아!”

    “뭐?”

    테세라는 어이가 없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정보라는 걸 쉽게 얻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그녀를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모두 인간이었다.

    연고도 없는 타르타로스에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오흐트는 꺾이지 않았다.

    겁이 없고 막 나가는 성격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여기 모인 이들이 평범한 자들이야? 아니잖아. 자 우선, 트리아 언니.”

    “나 말이야?”

    “맞아. 원래 정보를 담당했었으니까.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면 되겠지.”

    “그리 어렵지 않네, 좋아.”

    자매들이 각지에서 전해주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그걸 전부 다뤘던 트리아였기에 고작 이 정도에 포기를 선언하지 않았다.

    오흐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 타겟을 찾아 나섰다.

    “다음, 테세라 언니!”

    “나?”

    “언니 마족 공작이라고 했지? 그럼 이 주변을 담당하는 자한테서 새로운 정보를 얻어다 줘.”

    “어?”

    “어는 뭘 어야! 마족이라고 해도 뭔가 체계나 직위는 있을 거 아냐! 부탁했다?”

    “아, 알았어.”

    강하게 나오는 오흐트의 태도에 테세라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매 두 명을 휘몰아친 오흐트의 시선에 은발의 마스터가 들어왔다.

    “마스터는….”

    “네 생각이야 뻔해. 마법을 이용해서 정체를 숨겨달라고 말하려고 했겠지.”

    유피테르는 오흐트가 할 말을 먼저 파악하고 가로챘다. 들소처럼 직진하고 있었기에 읽기 편했다.

    “잘 알고 있잖아! 이렇게 재밌는 일은 언니들에게만 맡길 순 없다고.”

    “놀러 온 게 아니라고 오흐트.”

    “알고 있어. 그래도 마스터가 있는데 미리 걱정하면 나만 손해지!”

    유피테르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오흐트는 늘 이런 식이었다.

    모두가 침울해져 있을 때, 제일 먼저 나섰다. 그녀 역시 힘든데도 말이다.

    “좋아. 그러면 오흐트의 말대로 흩어져서 정보를 모은 후. 이 숲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시간은…. 그래, 2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 * *

    2시간 후.

    숲으로 제일 먼저 되돌아온 건 놀랍게도 유피테르였다.

    떠날 때와는 다르게 그의 곁에 오흐트는 없었다. 그럼에도 유피테르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일이 흥미롭게 되었는걸.”

    유피테르는 보랏빛 색을 띤 타르타로스의 하늘을 쳐다보며 읊조렸다.

    ―마스터의 처지에서나 재밌겠지. 지금 나는 죽을 맛이라고!

    오흐트는 바로 옆에서 들은 사람처럼 곧바로 대답했다.

    “패스를 사용하는 걸 보니 별일은 없었나 보군. 위치는 보이나?”

    ―전혀. 어디론가 가고 있는 거 같긴 한데. 거기가 거기 같아서 말이지.

    “이번 일에선 네 역할이 엄청 중요하다고.”

    ―알고 있어. 아, 도착한 거 같아.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대화는 끊겼지만, 패스는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오흐트가 무사하다는 증거를 확인한 유피테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왜 한숨을 쉬고 있니, 후대야. 오흐트는 어디에다가 버리고 오기라도 한 거니?”

    때마침, 트리아가 숲으로 돌아왔다. 유피테르는 표정을 바로 하고 테세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의 기묘한 풍습에 오흐트가 끌려갔다고?”

    트리아는 자신이 들은 게 맞나 싶어 되물었다.

    “정확해. 이보다 확실히 정보를 얻을 방법은 보이지 않았어.”

    “너 미쳤…. 아니, 솔직히 나라도 그 방법을 썼을 거 같긴 한데.”

    같은 상황에 높여있었다면 트리아 역시 유피테르가 고른 선택지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좀 묘했다.

    ‘유피테르의 마법은 분명히 먹혀들었는데 말이지. 아니, 오히려 그래서 그렇게 된 건가?’

    트리아와 오흐트는 유피테르의 환상 마법을 통해 마족처럼 보이게 되었다.

    마나의 속성을 바꾸는 건 신에게만 허락된 기적이었다.

    그러나 신의 대행자인 유피테르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마족들의 마을에 가도 그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다른 곳에서 찾아온 방문객 정도로 여겼을 뿐.

    “오흐트는 무사해?”

    “방금 패스로 연락했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어.”

    “네가 벌인 일이니, 실수는 없었겠지.”

    “솔직히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나도 몰랐어. 선조님도 그 풍습을 들었겠지?”

    “연약한 마족을 마왕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이야기인가.”

    “역시 들었구나.”

    그때, 테세라도 숲에 도착했다.

    “마스터. 나 방금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잠시만.”

    유피테르는 마나 감지를 이용해 미행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리고서는 결계를 펼쳤다.

    “이제 말해도 돼.”

    유피테르의 허가가 떨어지자 테세라가 말을 쏟아냈다.

    “마족 아이를 제물로 확보했다는데 설마 그거 오흐트야?”

    “그 이야기 누구에게서 들었지.”

    “리언스를 담당하는 자에게서 들었다고. 빨리, 거짓말이라고 말해줘. 아니지?”

    “….”

    무언의 긍정.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확인한 테세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 마스터의 힘이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고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잖아. 오흐트를 굳이 미끼로 쓴 거야?”

    “그건, 마스터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트리아가 중재했다.

    원래 마스터에게 언성을 높인다는 건 있을 수도 없었고, 있어서도 안 되었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그들의 진정한 마스터가 아니었다.

    다른 자매들이 배신한 이후로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가족이라고! 가족은 늘 같이 있어야 해.’

    테세라는 바실리와 유피테르 그리고 칼리스토 자매들을 소중히 여겼다.

    배신한 자매들조차 그녀에게는 여전히 가족의 일원이었다.

    물론, 그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만나게 된다면 생각을 고쳐먹을 때까지 혼내줄 거였으니.

    ‘바실리 님만 계셨어도.’

    목숨을 걸고 에키드나의 추적한 것도, 배신한 것처럼 유피테르에게 접근한 것도.

    모두 바실레이아 님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유피테르가 대단하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저택에 자주 돌아가지 못해도 들려왔으니.

    그러나 계약을 만든 자와 그걸 이어받은 자의 간극은 꽤 컸다. 하루라도 빨리 원주인을 데려와야만 했다.

    “그래. 이야기는 들어볼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테세라는 솟구쳐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아내고서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 * *

    리언스의 중심가로 들어선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간단히 지리를 파악한 뒤, 주점을 돌았다.

    마족들의 마을이라고 해서 인간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타르타로스에 갇힌 이후 그들은 삶은 큰 변화를 맞이했기에.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신세가 된 마족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타르타로스가 넓어졌다고 해도 세아니아 대륙과 똑같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마족들은 술을 택했다.

    원체 강한 육체를 지녔기에 취하기는커녕 얼큰한 기운이 시름을 잊게 해주었다.

    유피테르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주점의 정보를 노린 거였다.

    그러나 가는 곳곳마다 오흐트의 힘이 연약해서 무시를 받았다. 신성 마법을 강제로 억누른 거라 어쩔 수가 없었다. 들켜서 일이 복잡해지는 것보다 나았으니까.

    “아니. 나처럼 귀여운 아이가 또 어디 있다는 건데. 한 놈도 대답을 안 해주는 게 말이 되냐구?”

    주점 밖으로 나온 오흐트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옆에 있던 유피테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게에서 쫓겨날 수도 있지. 마족은 원래 힘의 원리를 따르는 종족이잖아. 설마 몰랐어? 성녀 오를레앙 님?”

    “쉬, 쉬잇! 미쳤어?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오흐트는 황급히 유피테르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재미를 느낀 그를 막아서기엔 한참 부족했다.

    “약한 자는 조용히 있어야지. 안 그래?”

    “아니, 진짜 그만해. 그만하라구!”

    오흐트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유피테르는 모른척하며 다른 식당 하나를 가리켰다.

    “저 집은 우리 약한 마족 꼬맹이를 받아줄지도 모르겠네.”

    “….”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이건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초대 성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흐트는 약자였던 적이 거의 없었다.

    치유를 담당하는 이였기에 가끔 시비가 걸리긴 해도, 그때마다 힘으로 압살해버렸기에.

    그렇기에 자신이 무시당하자 무엇보다 화가 났다. 심지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마족들의 짓이었다.

    “더는 못 참아!”

    오흐트는 분노를 발산하려는 듯 공중에 주먹 한 방을 날렸다.

    휘이익!

    신성 마나를 불어넣은 주먹은 굉음과 함께 나무 하나를 날려버…리지 않았다.

    유피테르가 주변의 마나를 완벽하고 지배하고 있었기에.

    “네가 화난 건 알지만, 자중해. 여긴 적의 땅이야. 우리가 왔다는 걸 굳이 알릴 필요는 없어.”

    장난기를 싹 지운 유피테르의 말에 오흐트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에….”

    장난이 심했다고 생각한 유피테르는 오흐트를 달랬다.

    “내가 미안하다. 사과의 선물로 데메테르 가문 산 신상 차를 선물로 줄게.”

    “정말이지? 약속하는 거다.”

    “그래. 내 잘못이니까. 그러니 기운 차리고 다음 목표로 향하자고.”

    그렇게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다음 주점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