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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43화 (243/265)

열쇠가 어디에 있다고?(2)

* * *

유피테르 일행이 리언스로 떠났을 무렵.

신의 대행자에게 한 방을 먹여준 에키드나 역시 그 근처에 와있었다. 정확히는 마지막 열쇠가 보관된 던전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공략이 끝난 던전이었으니까. 다만, 열쇠를 꺼내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었다.

“왔나? 그놈의 상태는?”

던전 안에서 에키드나를 기다렸던 건 다름 아닌 카르멘이었다.

“네가 말한 대로 열쇠 3개를 전부 보여줬어. 이제 만족해에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에키드나는 상냥하게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카르멘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을 재촉했다.

“그놈의 반응은?”

“눈이 뒤집혀서 이쪽으로 오겠지이. 가까이 오면 얘네들이 반응할 거야아아.”

에키드나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어둠의 구체들이 그녀의 옆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구체들이 힘을 뿜어내자, 던전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림자 마법의 본능이었다.

깜빡! 깜빡!

파괴적인 마나에 휩쓸린 마법 등이 서서히 힘을 잃으며 점멸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간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그제야 카르멘은 고개를 돌려 에키드나를 쳐다보았다.

“그림자의 사역마인가. 퍽이나 믿음직하군.”

“지금 그런 말이 나와!”

“….”

카르멘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에키드나가 저러는 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이제 슬슬 익숙해져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도 답이 나왔다.

“뭐가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왜 아직도 열쇠를 꺼내지 못하고 있어어. 시간을 조금만 끌어주면 되는 거라며어어?”

“거의 다 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돼.”

“계속 그 소리잖아아아!”

에키드나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고지가 코앞이 되니 기대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더는 기다려 줄 수 없었다.

에키드나가 카르멘을 쏘아보았다.

늘 보던 사람을 홀리는 시선이 아닌,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었다.

“카르멘 비제. 네가 필요하다는 건 전부 준비해줬어. 그런데도 이렇게 나오면 재미가 없어지려 한다고.”

카르멘과 손을 잡은 뒤, 에키드나는 그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들어주었다.

공작급 무기를 증표로 주었고, 유피테르의 몸에 장난을 치는 것까지 도와줬다. 심지어는 아티팩트도 팍팍 지원했다.

‘당신은 꽤 좋은 협력자이긴 해.’

카르멘 비제.

그는 뛰어난 마법사이자 괜찮은 계약자였다.

강해지기 위해서 모든 걸 버린다는 각오도 마음에 들었다. 인간 같지 않은 결단력을 가졌기에, 그를 선택한 거기도 했다.

하지만, 계약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당신과 손잡은 걸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구?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에키드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유피테르를 떠올렸다.

그는 여전히 멋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멋있어진 거 같았다.

아직도 신의 딸을 잊지 못하는 듯했지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결국, 유피테르의 마음을 차지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그녀였으니까.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된 듯싶어지자, 카르멘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 에키드나? 이 열쇠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놈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놈이라면….”

“유피테르. 어리석은 내 아들을 말하는 거다.”

열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카르멘은 지금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열쇠를 사용해 봉인을 깨트릴 사람은 오로지 유피테르뿐이라고.

다른 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신의 딸은 절대로 응답을 해주지 않을 거라고 덧붙였다.

“정말로 다른 방법은 없어어?”

“그런 게 있었으면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겠지.”

“그래에에. 당신이 저지른 죄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거니까아아.”

에키드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멘 비제는 생각 이상으로 광기에 차 있었다. 감히 에키드나와 같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그때 했던 약속 잊지 않았겠지?”

“당연하지이이. 새로운 신이 되면 당신의 소원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거라는 거 알고 있잖아아아?”

“하! 말은 잘하는군.”

카르멘은 코웃음을 치고서는 뒤를 돌아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말과는 다르게 그의 입가에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었다.

* * *

상상치도 못한 말을 들은 유피테르는 테세라에게 물었다.

“그런 방식으로 결계의 눈을 속일 줄이야. 누가 떠올린 거지.”

“아마…. 라플라스였을걸?”

지금껏 가지고 있던 의문 하나가 속 시원하게 풀렸다.

자리를 이어받은 마족들은 몰라도 태초의 세 마족은 고대 마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티폰을 제외한 시트시거와 에키드나는 각각 유성 마법과 그림자 마법을 사용했다.

고대 마법이 아니라 현대 마법 체계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이건 써먹을 수 있겠군.’

마족들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지만, 실시간 정보에는 취약했다.

별 거 아닌 정보라서 이야기하지 않은 듯했으나, 더할 나위 없이 유용했다.

고대 마법이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것처럼, 현대 마법도 갈 길이 멀었다.

굳이 별빛 마나에 의존하지 않아도 3차 대륙 전쟁이 나는 건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오흐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테세라와만 이야기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마스터. 이제 어떻게 움직일 거야?”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걸 보면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지, 테세라?”

“아니. 내가 아는 건 이게 단데….”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졌으나, 유피테르는 괘념치 않았다.

애초에 테세라는 책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렇게 단서를 가져온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에에? 그럼 어떡해?”

테세라의 말에 오흐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축 처졌다. 그런 그녀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올려놓았다.

“상황이 어떻든. 할 일은 변하지 않아.”

바로, 칼리스토의 두뇌를 담당하던 트리아였다.

“그치만! 단서가 너무 부족해. 주위를 둘러봐봐. 지도로 봤던 것보다 훨씬 크잖아. 여기서 어떻게 열쇠를 찾아?”

“후대의 마나 감지를 사용하면 금방이겠지.”

“그게 가능했으면 이런 고생도 안 했겠지!”

오흐트는 막무가내로 화를 냈다. 놀랍게도 그녀의 말은 핵심만을 꼭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트리아는 오흐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술의 대가였다. 한참 위에 서서 더 큰 그림을 그렸다.

“열쇠를 찾는 게 아니야. 에키드나를 쫓는 거지.”

“에키드나를…?”

“정보가 진짜라면 에키드나 역시 이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아.”

트리아는 여기까지 말한 뒤, 잠깐 말을 멈췄다.

긴장감을 최대로 올리는 화법에 오흐트는 침도 삼키지 않고 트리아의 말에 집중했다.

“후대의 마나 감지라면 에키드나 정도야 가볍게 찾아내겠지?”

“말이 나온 김에 해보도록 하지.”

유피테르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나 감지를 펼쳤다.

우우우웅!

평범한 마법사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얇은 마나가 주변을 장악했다.

마나 감지가 거기서 거기지, 뭐 그리 크게 다를까?

그걸 본 테세라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그녀는 조용히 트리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언니.”

“어떻게 저런 마나 감지를 사용할 수 있냐고 후대에게 물어보고 싶어?”

“…어떻게 안 거야.”

“네 생각이야 뻔하지.”

마나 감지는 마법사에게 있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기본기였다.

소위, 생활 마법이라고 불리는 제로 서클 마법을 배우려면 마나를 느끼는 것부터 필요했다.

‘저, 저건 반칙이잖아.’

테세라 역시 유피테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상식 그 자체를 부숴버리는 힘이었다.

어안이 벙벙한지, 말을 잇지 못하는 테세라에게 오흐트가 말했다.

“성국의 결계를 보고 만든 마법이라고 들었어.”

“마법을, 만들었다고?”

“바실리 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 마스터는 신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여긴 타르타로스 안이라고.”

높은 서클의 마나는 낮은 서클의 마나를 간단하게 제압했다. 절대적인 우위에 서있다고 해도 빈말이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마족에게 이기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떤 마법을 써도 마족들의 마법을 뚫어내질 못했으니까. 마족이 가진 강력한 신체는 두 번째 문제였다.

‘혼혈 마족인 나도 가끔은 타르타로스의 마나가 거부하는 게 느껴진다고!’

테세라는 부조리함에 짜증을 내고 싶었으나, 트리아가 한발 먼저 그걸 막아섰다.

“쉬잇.”

“알고 있어. 마나 감지를 방해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고.”

마나 감지는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로 했다. 마법사의 적은 마나로 세계를 읽어내는 작업이었으니까.

마나의 흐름이 조금만 변해도 오류가 가득 담긴 정보가 되어버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백번 아니, 천 번을 싸워도 이길 수 없었다.

바실레이아의 선택을 받은 칼리스토라면 당연히 아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이걸 모르고 날뛸만한 사람은….

“왜, 나를 쳐다봐?”

트리아와 테세라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다 오흐트가 입술을 삐죽였다.

항상 아이처럼 행동한다고 해도 귀는 열려 있었다. 눈빛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트리아는 오흐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네가 있어서 든든하다고. 마족의 땅이니까 초대 성녀인 오를레앙님께서 실력을 발휘해줘야 하지 않겠어?”

“성녀나 교황의 마나는 지고지순해서 눈엣가시 같긴 해.”

트리아의 말을 테세라가 거들었다.

두 사람이 칭찬을 계속하자 오흐트는 사르르 녹아버렸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고 해도 그녀의 언니들은 그 이상으로 살아온 존재들이었다.

오흐트의 마음을 풀어주는 건 간단했다.

칼리스토 자매들이 이런 장난을 치는 동안 유피테르는 마나 감지를 끝냈다.

마나가 거두어지는 걸 본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질문을 했다.

“후대야. 결과는 괜찮게 나왔니.”

“에키드나 님이 정말로 이곳에 계셔? 아무리 그래도 그분과 싸우는 건 좀 그런데….”

“마스터! 빨리 열쇠를 구하러 가자. 신성 마법을 사용하면 마족 따위 한 방이라구!”

서열 순으로 쏟아지는 말에 유피테르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선조님의 말대로 에키드나는 이곳에 있더군요. 다만, 뭔가 좀 이상합니다.”

“마족 공작들이 전부 이곳을 지키고 있기라도 해?”

“그건 아닙니다만…. 에키드나의 마나가 너무나 잘 느껴집니다.”

서클이 높아질수록 마나를 갈무리하는 게 상식이었다.

검사와 다르게 마법사들의 싸움은 체스와도 같았으니까. 압도적인 실력 차가 있지 않은 이상 굳이 티를 내지 않았다.

“에키드나의?”

유피테르의 말에 트링아가 생각에 잠겼다.

마족, 그것도 공작급을 넘어 마왕비였던 에키드나가 마나를 숨기는 법을 모를 리 없었다. 실제로 공작의 성에 나타났을 때는 기척을 죽였기도 했고.

그때, 테세라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내가 기억하기로 에키드나가 이럴 때는 늘 꿍꿍이가 있었는데.”

테세라는 에키드나와 가장 최근까지 이야기를 했었다. 혹시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지 몰랐다.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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