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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42화 (242/265)
  • 열쇠가 어디에 있다고?(1)

    * * *

    어두운 방 안을 환하게 수놓은 마나 지도.

    장인이 만든 것처럼 곳곳이 다른 색으로 칠해져 알아보기 쉬운 구조였다.

    테세라는 그중에서 가장 가운데에 있는 빛나는 별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가 바로 타르타로스의 중심인 마왕성이야.”

    테세라의 말에 유피테르와 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테르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트리아는 지도만을 보고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버렸다.

    아르테미스의 피는 특별했다.

    점과 점을 이어 선과 면을 만드는 데 누구보다 더 익숙했다.

    ‘마스터는 그렇다 쳐도 언니는 진짜 대단한데. 벌써 뭘 말할지 전부 다 아는 눈치잖아.’

    새삼스러웠다.

    마스터는 인간을 뛰어넘은 천재(天災)였다. 트리아 언니 역시 첫째 자리를 앉아 자매들을 이끈 적이 있었다.

    문제는 오흐트였다.

    “테세라 언니?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봐? 나도 다 알고 있었다고. 여기가 마왕성이라는 것쯤은!”

    “그것참 대단하네!”

    “뭐야. 왜 그런 말툰데.”

    “대단한 걸 대단하다고 한 것뿐이야.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냐?”

    자신만만한 태도와는 달리 오흐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테세라와 함께 다른 이들이 묘한 표정을 짓자 오흐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항변했다.

    “저 지도를 봐! 중앙에는 마왕성이 있고, 칠 공작의 성을 중심으로 지역색이 달라지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잖아!”

    오흐트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별다른 정보가 없이 이 정도까지 읽어낸 건 분명 대단했다.

    하지만, 그건 핵심을 정확하게 찌른 게 아니었다.

    “지도를 만든 건 대략적인 지리를 알아두라는 뜻이었을 거야. 혹시 전이 마법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 내 말이 맞지 마스터?”

    테세라의 질문에 유피테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오흐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마왕성은 아닐 거야. 에키드나도 열쇠 하나를 못 찾았다 그랬구. 그러면… 어딜까. 역시, 마족 공작 성 중 한 곳이 아닐까?’

    평소 잘 쓰지 않던 머리를 무리하게 움직이니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그녀의 생각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방법은 궁금하지 않았다. 어쨌든 마지막 선택은 운에 달린 거였으니.

    오흐트는 공작 성 중의 한 곳을 짚었다.

    “마지막 열쇠는 여기에 있을 거야!”

    “아쉽네.”

    테세라는 오흐트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고는 목표를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마왕성의 근처였다.

    오흐트는 테세라의 손에서 벗어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 여긴 마왕성이잖아!”

    “그래. 여기가 바실리 님을 구할 마지막 열쇠가 숨겨져 있는 곳이야.”

    “….”

    예측이 화려하게 빗나간 오흐트는 구석에 틀어박혀 버렸다.

    자폭해버린 오흐트를 신경을 써줄 정도로 유피테르는 여유롭지 않았다.

    오아시스가 눈앞으로 다가오면 더욱 목이 말라지는 법이었으니.

    ‘디저트랑 차로 적당히 달래주면 되겠지.’

    유피테르는 오흐트를 뒤로하고 테세라에게 물었다.

    “에키드나가 이미 열쇠를 확보했을 확률은 얼마나 되나.”

    “없을걸? 그랬다면 마스터를 찾아올 이유가 없잖아. 아니지, 그분은 원래 종잡을 수 없긴 한데….”

    “일부러 함정을 판 게 아니라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군.”

    라플라스의 말에 따르면 에키드나의 목적은 신의 자리를 찬탈하는 거였다.

    만약 열쇠를 전부 모았다면 바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난리를 쳤을 게 뻔했다.

    3개의 열쇠를 찾았다고 자랑하는 것보다는 신의 자리를 뺏은 후 나타나는 게 더 멋지지 않은가?

    “4번째 열쇠의 정보를 알고 있는데 왜 내버려 둔 거지? 뭔가 이상한데.”

    “글쎄? 난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에키드나의 생각을 읽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지.”

    테세라는 유피테르의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으나,

    같은 마족 공작이라고 해도 엄연히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몰래몰래 정보를 모아 이렇게 가져온 것만으로도 위험한 일이었다.

    유피테르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때, 트리아가 대화에 참여했다.

    “후대야.”

    “무언가 할 말이 있으십니까. 선조님.”

    “테세라가 우리 편인 건 좋아. 내부 정보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 모든 게 함정일 것만 같다는 기분이 사라지지를 않는다.”

    누구보다 마족의 생리에 밝은 테세라가 바로 그 말을 부정했다.

    “에키드나 님이 그렇게 합리적인 이유로 움직일 리가 없다니까.”

    “그 마족에 대해서는 네가 더 잘 알겠지. 그러면 이 말에 대답을 해봐.”

    “그래!”

    “에키드나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였는데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거라면?”

    “그, 그건….”

    테세라라고 해도 이번 질문은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극히 낮은 확률이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아니라고, 그 말이 틀렸다고도 할 수 없었다.

    에키드나는 불가해(不可解)한 존재였으니까.

    “역시 그런 반응이네. 너희들이 모르는 정보 하나를 알려줄게. 비밀이긴 한데 어차피 한배를 탔으니.”

    그 말에 오흐트까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쇼파에 앉은 후, 입을 열었다.

    “뭘 더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이제 서로 감추는 사실이 없는 줄 알았는데.”

    “비밀도 비밀 나름이지 않겠어.”

    “뭔데?”

    “모두 나이아드란 이름은 들어봤겠지?”

    트리아의 말에 유피테르가 반응했다.

    자기 가문의 초대 가주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대륙 전쟁을 끝내고 리투아 제국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 사람 아닌가.”

    어느 정도 화가 풀린 오흐트도 말을 덧붙였다.

    “아, 트리아 언니와 자매라고 했었어!”

    “정확해.”

    자연스레 트리아의 시선은 테세라에게로 향했다.

    늘 타르타로스에 있던 그녀가 이 사실을 아는지 궁금했기에.

    “어…. 처음 듣는 이야긴데. 뭐 그러려니 할게.”

    트리아의 정체로 놀라기에는 어깨에 짊어진 게 너무 무거웠다.

    테세라는 다시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으니까.

    “나이아드 아르테미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바실리 님이야.”

    “뭐…?”

    유피테르는 문자 그대로 얼어버렸다.

    나이아드가 누구인가?

    그녀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았고, 얼음성과 아르테미스 가문의 기틀을 잡은 이였으니.

    카르멘이 인류를 배신한 것도 어떻게 보면 나이아드 때문이었다.

    그녀의 힘에 지나치게 빠져들었고, 끝끝내 비밀 정원까지 찾아내 버렸으니까. 이곳에서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에키드나와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유피테르가 바실리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나이아드 덕분이었다.

    초대 가주가 남긴 책이 그에게 반응했고, 반려자를 찾던 바실리는 그 기운을 놓치지 않았다.

    ‘왜 이걸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지? 바실리의 이명이 바로 디아나였잖아.’

    나이아드(NAIAD), 그리고 디아나(DIANA)

    아주 간단한 말장난이었다.

    디아나는 고대 대륙어로 달이라는 의미였다.

    유피테르는 책이란 책은 다 섭렵하고 공작 가문의 교육을 받았다. 또, 바실리에게 일대일 교육까지 받았다.

    이런 이유로 고대인만큼이나 고대어를 잘 알았다.

    “저번에 보니까 디오가 디아나 님이라고 하던데. 바실레이아말고도 다른 이름이 있었던 거야?”

    “응?”

    “그렇게 어물쩍거리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줘.”

    “이 세계와 같이 살았었으니까. 이름이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었어. 다양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건 유피 너도 알잖아?”

    유피테르의 물음을 바실리는 적당히 받아넘겼다.

    당시의 그는 저 말에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바실리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고, 신의 딸은 눈, 코 뜰 때 없이 바빴으므로.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감상밖에 없었다.

    ‘바실리가 나이아드라면 의문이… 풀리는군.’

    이제야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트리아는 분명 하이 엘프 출신이라고 유알라냐가 말했었다. 그런 이가 인간 가문의 출신이라는 건 말이 되지를 않았다.

    그러나 배후에 있는 게 바실리라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었다. 신의 딸의 ‘권능’을 별빛 마나 만큼이나 불합리한 힘이었으니까.

    유피테르의 표정을 읽은 트리아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놀랐어?”

    “그래. 왜 선조 님의 신분이 두 개였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바실리의 힘이라면 신분을 위조하는 건 식은 포션 먹기지.”

    오흐트가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주먹을 말아 다른 손을 탁―쳤다.

    “그, 그러고 보니 언니는 하이엘프 출신이라고 했잖아.”

    “반응이 너무 느린걸. 어쨌든 이야기를 계속할게.”

    트리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에키드나가 신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것까지 바실리 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마족과 부딪칠 거라는 걸 미리 알았다는 이야기야? 그럼 미리 경고해줄 수도….”

    트리아는 검지로 유피테르의 말을 멈추고서 말했다.

    “그게 바실리 님이 원했던 거 아닐까?”

    “내가 마족의 씨를 말려버리는 걸 원하기라도 했던 거야?”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어.”

    “그럼 뭔데!”

    유피테르의 감정이 점점 격해졌다.

    바실리에게 속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목숨은 그녀의 것이었으니.

    “내가 그분의 생각을 어떻게 다 알겠어. 중요한 건 마지막 열쇠를 얻게 되면 그 답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지.”

    유피테르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말을 더 해봤자 미궁 속으로 빠질 뿐이었다. 범재는 결코 천재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

    유피테르와 트리아, 테세라와 오흐트는 인간들의 눈에 초월자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날고뛰어도 신의 딸을 앞서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알아보러 가자고.”

    그렇게 네 사람은 마지막 열쇠가 숨겨진 마왕성 인근 리언스로 향했다.

    * * *

    유피테르조차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마나가 짙었으나, 테세라가 합류한 이상 그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쨘! 도착했어. 여기가 내가 기억한 좌표야.”

    “네가 있어서 다행이군. 내 마나는 들킬 확률이 너무 높았으니까.”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서로 다른 두 세력이었으니 충돌하는 건 당연했다.

    확실하게 밀리고 있어 최대한 눈치채지 않게 이동하는 게 중요했다. 아직 마지막 열쇠를 눈으로 보지 못했기에.

    “하긴, 마스터의 마나였으면 이미 난리가 났을걸.”

    오흐트는 유피테르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티폰을 죽인 마나여서일까?

    타르타로스라는 작은 세계는 유피테르의 마나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유피테르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에키드나는 찾아낼 게 분명했다. 실제로, 멀리 떨어진 공작 성으로까지 찾아왔지 않은가.

    그때, 유피테르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넌 고대 마법을 사용하는군. 에키드나나 시트시거는 현재 마법 체계를 따르는 것 같던데.”

    “아 그거? 결계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들었어. 결계의 눈을 속인다 뭐 그런 거였는데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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