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정원(4)
* * *
기생형 몬스터는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떤 방어막을 치더라도 기생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전한 결계 안쪽이라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공격과는 다른 묘한 움직임을 막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마왕의 씨앗도 마찬가지였다.
두근!
유피테르의 손이 마왕의 씨앗에 닿은 순간, 거대한 파장이 정원에 울려 퍼졌다.
그걸 본 두 사람은 더욱 다급해져서 소리쳤다.
“이제 그만 해 마스터!”
“교수님!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가?’
옆에서 두 사람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도 유피테르는 평온했다.
잔잔한 호수처럼 숨을 죽이고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왕의 씨앗이여, 네가 가진 힘이란 걸 한번 보여봐라.’
마왕의 씨앗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면 오히려 좋았다. 유피테르라는 마법사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어쭙잖게 공격을 시도하다 뼈도 못 추린 적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저 씨앗도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릴 운명에 불과했다.
이런 유피테르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걸까?
우우우웅!
유피테르의 손에 쥐어진 마왕의 씨앗이 검은 마나를 뿜어냈다.
눈으로 보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었다.
“진짜 제정신이 아닌 거 아냐?”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교수님.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오흐트와 클리오나.
두 사람은 진심으로 유피테르를 걱정했다.
그가 눈 깜짝할 새 마나에 집어삼켜졌기에 나서지조차 못했다.
아무리 초대 성녀라고 해도 무의식의 허점을 찔러오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녀는 신을 모시는 자였지, 신 그 자체이지는 않았으니.
“이대로라면…. 위험할지도 몰라. 오흐트도 느끼고 있잖아? 저 기운이 위험하다는 걸.”
성국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클리오나. 그런 그녀였기에 마족의 기운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만약, 유피테르가 씨앗에 세뇌당하기라도 한다면 막을 자신이 없었다.
“저게 위험하다는 건 알겠는데. 내 생각은 좀 달라.”
오흐트는 방어막을 친 다음 말을 이었다.
신성 마나를 지닌 그녀들에게 마족의 기운은 독이었으니까.
“마스터는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할 행동을 많이 해왔어. 그래도 그중에 나쁜 결과로 이어진 건 극히 드물었다고.”
“드물다는 건 0%는 아니라는 거잖아!”
“뭐, 그렇지.”
오흐트는 유피테르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파직! 파지직!
흉흉한 검은 색 마나와 영롱한 푸른 마나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양보 따윈 없는 순수한 힘의 격돌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유피테르가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맞설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으니까.
‘마스터. 지지 마. 믿고 있으니까.’
* * *
유피테르는 오흐트와 클리오나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군.’
걱정과는 달리 유피테르는 제정신이었다. 다만,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
마왕의 씨앗이 만든 단절된 공간에 갇힌 탓이었다.
그 순간, 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제물은 생각보다 잘 견디는걸?
카랑카랑한 쇳소리 같기도 했고, 뱀이 쉭쉭 거리는 소리를 닮은 것도 같았다.
―호오? 내 존재를 보고도 겁을 먹지 않는다니. 이거 흥미롭군.
“마왕의 씨앗인가.”
대답하지 않아도 유피테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눈치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말을 걸어올 존재는 딱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연구 일지를 미리 읽었기에 에고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파악한 지 오래였다.
“리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리나?
“네가 나 이전에 숙주로 삼았던 마법사를 말하는 거다.”
―아하, 어쩐지 풍기는 기운이 비슷하다더니. 남매였나?
“헛소리 말고 질문에 대답해!”
유피테르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출력을 높였다.
초월자는 의지만으로도 마나의 강세를 조절하는 게 가능했다. 마나 제어조차 완벽하니 팽팽하던 흐름이 깨져버렸다.
―호오?
이대로 주욱 밀리면 존재까지 소멸될 수 있는 상황.
마왕의 씨앗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한 생명체를 바라보듯 유피테르를 관찰했다.
―남매인데 다르군. 네게서 느껴지는 마나는 그 빌어먹을 신과 닮았다. 그렇다고 신관인 것 같지는 않고….
씨앗은 생각에 잠긴 듯 몇 초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나를 사용해 거세게 몰아쳤다. 유피테르가 잡은 주도권을 빼앗으려고 사방에서 덮쳐왔다.
‘고작 이 정도인가. 이런 수준에 리나가 당했을 리는 없는데.’
유피테르는 여유롭게 공격에 대응했다.
마왕을 생각나게 하는 마나를 사용한다는 걸 제외하면 특별한 점이 보이지를 않았다.
세컨드 서클의 마도사가 아니더라도, 카테리나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런가…. 네놈이 말로만 듣던 신의 대행자로군.
무언가 확실해졌는지 씨앗이 다시 말을 걸었다.
“나를 아나 보군?”
―모를 리가. 에키드나가 네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에키드나.
키워드가 될 것 같은 인물의 이름이 나오자 유피테르는 씨앗을 도발했다.
“아티팩트 주제에 아는 것도 많군. 그래서 이 재미없는 기 싸움은 언제까지 할 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 마시게. 네 여동생은 아직 완전히 나은 게 아니니까.
“뭐?”
완벽한 반격에 허를 찔린 유피테르.
당황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씨앗이 한 번 더 잽을 날렸다.
―날 빼내서 여동생이 이제 무사하다고 생각했다는 표정인걸. 신의 대행자가 이렇게 도발에 쉽게 넘어오면 쓰나.
까드득!
유피테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유피테르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나 감지를 사용했다.
여동생의 마나 회로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완벽하게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기운이 좁쌀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리나의 몸에서는 더는 마족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아. 블러핑인가?’
속단은 금물이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도 한다면 여동생을 원래대로 되돌릴 마지막 기회를 날리는 거니까.
유피테르는 그런 짓을 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원하는 게 뭐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씨앗은 능청스럽게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유피테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협상 카드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는 건 네게도 뭔가 필요한 게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하! 이제야 제대로 말이 통하는구만.
“그게 뭐지?”
씨앗의 은근한 목소리에 유피테르는 천천히 대답을 기다렸다.
이 정도 출력이라면 잠자면서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그는 태생부터 남들과 달랐으니까.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초주검을 만들어버리면 되겠지.’
만일의 경우 반마법을 사용해서 씨앗을 제압하면 그만이었다.
바실리와의 약속은 소중했으나 상황이 상황이었다.
가족의 목숨이 위험하고, 칼리스토들마저 배반했으니 이 정도는 눈감아주리라 믿었다.
―너는 늘 그렇게 행동해왔겠지?
“무슨 말이냐.”
―반 마법 말이야. 아니지, 정확하게는 공(空)의 마나를 사용하는 거로군.
씨앗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용만큼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칼리스토조차 정확하게 모르는 비밀을 단번에 맞춰버렸기에.
“그걸 어디서 그걸 들은 거지. 역시, 에키드나인가?”
―에키드나 꼬맹이는 대체 왜 찾는 거야?
“뭐…?”
의외였다.
에키드나는 태초부터 존재한 마족이었다.
그녀를 꼬맹이라고 부를만한 존재는 몇 남아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세아니아 대륙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에키드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다니. 넌 신이라도 되는 건가.”
―하, 신이라니. 난 그런 존재와는 상관없어. 단지 마왕을 만들 뿐이다.
유피테르는 실언이었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
이 세계에서 신은 오로지 창조신 레아뿐이었다. 바실리의 반려이기에 잘 알았다.
이건 신성 모독 그 이상이었다.
‘오흐트가 듣지 않은 게 다행이군.’
유피테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씨앗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마음이 꽤 급한가 봐?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고 말이야. 이래서야 리나의 소중한 오라버니로 있을 수 있겠어?
씨앗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킬킬댔다. 그러나 유피테르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분노보다 허점이 먼저 보였다.
‘기억을 읽는 거군. 티폰은 내가 가진 힘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니까.’
마왕의 씨앗은 숙주의 기억을 읽어 지식으로 삼는 듯했다.
티폰과 카테리나의 기억이라면 자신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마왕은 공의 마나로 목숨을 잃었으니 알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유피테르는 마나를 더욱 끌어올렸다. 방금 전 씨앗이 했던 말을 거짓말이라고 판단했기에.
―으음?
갑작스러운 변화에 씨앗은 의아해하며 출력을 올렸다. 하지만, 그 판단은 명백한 실수였다.
―일개 인간이 이런 힘을 지녔을 줄이야. 신의 대행자가 될만하군.
―아직 공의 마나를 보여주지는 않는 건가? 이런 건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인데.
―호오? 드디어 뭔갈 보여주려는 건가.
―자, 잠깐!
웃으며 마나를 뿜어내던 마왕의 씨앗은 이내 겁에 질렸다. 유피테르의 기운이 생각과는 완전히 달라졌기에.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공의 마나를 보여주는 건데 뭐가 문제지?”
―우, 웃기지 마라! 이게 공의 마나라고? 이런 걸 마나라고 하다니 제정신인가?
“마나를 마나라고 하는 게 뭐가 이상하지?”
유피테르는 씨익 웃었다.
마치, 카르멘을 연상시키는 사악한 미소였다. 원체, 아버지를 닮은 외모였기에 언뜻 보면 착각할 정도였다.
―네 놈 대체 정체가 뭐냐? 정말로 신의 대행자가 맞느냐.
“네 기억에 물어봐. 내가 누군지.”
유피테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의 마나가 어둠을 전부 먹어 치웠다.
마치,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말도 안 돼! 너, 너는….
마왕의 씨앗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으나,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 * *
마왕의 씨앗이 만들었던 공간이 사라졌다.
클리오나와 오흐트는 한걸음에 유피테르에게로 다가갔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건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곳은….”
“당연히 없지. 설마, 내 말을 믿지 못한 건 아니지 리오나?”
클리오나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였으나, 오흐트는 태평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반 마법을 사용했는데 질 리가 없잖아?’
오흐트는 유피테르가 최후의 수단을 쓴 걸 확인했다.
어떤 상황인지는 몰라도 반 마법을 펼쳤다면 지는 게 불가능했다. 그건 신이 마스터에게만 선물한 사기적인 힘이었으니까.
신의 창조물이라면 반 마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가끔은 내 걱정을 해보는 게 어때 오흐트?”
“난 늘 마스터 걱정을 하느라 잠도 못 잔다구. 언니들에게 물어봐.”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긴데?”
유피테르는 미소를 지으며 마왕의 씨앗을 얼렸다.
에고가 사라져 기운이 약해진 씨앗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그 후, 아공간 구석에 넣어놓았다.
“교수님. 이제 카리나는 괜찮아진 건가요?”
“일단은. 그래도 오흐트가 한 번 진료해보도록 하는 게 좋겠지.”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거야? 바로 확인해줄 테니까 기다려!”
유피테르와 클리오나가 비켜주자, 오흐트는 바로 카테리나에게 다가가 진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