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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28화 (228/265)
  • 비밀 정원(1)

    * * *

    문 안쪽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거대한 자연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광경에 오흐트는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다.

    “마스터 이건 뭐야?”

    “얼음성을 만들었을 때 썼던 재료인가 보군. 저 느낌의 마나는 이 세상에 하나뿐이지.”

    “그렇구나. 그러면 이거는?”

    “음? 연구 일지겠지. 이곳이 정말로 비밀 연구소 같은 곳이었다면 말이야.”

    “역시 척척박사라니까.”

    뭘 물어도 진지하게 생각한 후 대답해주는 마스터를 보며 오흐트는 미소 지었다.

    무시하거나 지나칠 수도 있는 의문까지 최대한 풀어주려고 하는 모습.

    이런 성격 덕에 오흐트는 유피테르의 편으로 남는 걸 선택했다.

    물론, 바실리의 부탁도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던 오흐트. 그녀의 눈에 묘한 구슬 하나가 들어왔다.

    언뜻 봐도 중요한 물품인 듯했다.

    혹시라도 이게 정답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오흐트는 유피테르를 불렀다.

    “마스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오흐트의 목소리는 공간을 울리며 유피테르에게 전해졌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거대한 소리에 유피테르는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도 잠시였다.

    유피테르는 금세 오흐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귀청 떨어지겠다. 무슨 일인데. 뭐라도 찾은 거야?”

    “이거 봐봐. 이거 혹시 마스터가 찾던 그거 아니야?”

    유피테르의 시선이 오흐트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다중 결계로 보호받고 있는 구슬이 하나 보였다.

    “영상 크리스탈인가? 결계에 있어서 파악하기가 힘들군.”

    “마스터의 마나 감지로도 못 뚫는 결계야? 그런 마법이 세상에 존재해?”

    “난 신이 아니다?”

    “아무렴. 마스터가 아무리 대단해도 레아 님과 비교할 리 없지. 내가 바로 초대 성녀라고.”

    오흐트가 유피테르와 친한 건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신 레아와 유피테르를 같은 선상에 두지는 않았다.

    그건 신성모독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바실리 님을 좋아하는 것도 레아 님을 오래 모셔서 그런 걸지도?’

    창조신 하나뿐인 딸인 바실리의 말을 들어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여전히 레아를 받들고 있었으니까.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거였다.

    유피테르는 구슬을 자세히 보기 위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파짓! 파짓!

    낯선 이를 환영하지 않는 듯, 결계가 격하게 반항했다.

    ‘마나의 충돌만으로 이 정도의 출력을 낼 수 있다고? 정말 신이 만든 공간이라도 하는 건가.’

    결계는 보통 함정과 함께 만들어졌다.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무식한 방법으로 결계를 깨트릴 수 있었기에.

    냉혹해져야 소중한 것을 품 안에서 놓치지 않았다.

    유피테르가 가만히 멈추어 서 있자 오흐트가 주먹을 날렸다. 결계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영상 보주를 꺼내는 데 성공해서 유피테르의 칭찬을 받고 싶었다.

    화르르륵!

    강력한 불의 마나가 솟구쳐 오르며 오흐트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뭐야 이게, 뜨겁잖아!”

    용암에 손가락을 담근 듯한 뜨거움에 오흐트는 뒤로 물러났다.

    “어라? 멀쩡하잖아?”

    치료하기 위해 손을 살펴본 오흐트는 깜짝 놀랐다.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여전히 느껴지는데, 손가락은 멀쩡했다. 다섯 개 중 어디 하나 이상한 곳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오흐트의 손을 유피테르가 잡아주었다.

    고작 그것뿐인데도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고마워 마스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보통 결계는 아닌 거 같은데. 마법식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마스터가 모르는 마법식이 있다고? 그게 말이 돼?”

    마법과 마법식에 대해서는 유피테르는 최강이었다.

    무려 신의 딸인 바실리 님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기에 당연했다.

    그 수업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날 정도로 혹독했다. 늘 성실히 훈련하는 트리아 언니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흐트는 한참을 고민하다 의견 하나를 내놓았다.

    “그냥 반마법으로 밀어버리면 안 돼?”

    “뭐?”

    “방금 내 상처를 치료한 거 반마법이지? 그럼 저 결계도 비슷한 방법으로 부수면 되는 거 아니야?”

    유피테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반마법을 사용하면 결계는 부술 수 있겠지. 그러다가 안에 있는 구슬마저 부수면 어떡할 건데?”

    “에이, 바실리 님의 교육을 받은 마스터가 그런 실수를 하겠어?”

    오흐트는 진심이었다.

    유피테르의 마나 제어력은 칼리스토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만약, 구속구를 풀기라도 하면 바실리 님만이 막을 수 있었다.

    “하아…. 오흐트.”

    “응. 무슨 일을 하면 되는데?”

    “반마법으로 결계를 없앨 테니까, 구슬 쪽에 방어막을 쳐줘.”

    “알았어!”

    유피테르는 바로 준비했다.

    그는 손가락에 있는 반지 하나를 슬쩍 빼고서는 마법을 완성했다.

    우우우웅!

    주문이나 그 흔한 시동어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마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현상이었으니까.

    달빛을 닮은 그의 마나는 은은히 퍼져나가며 결계를 지웠다.

    “마스터의 실력은 확실하다니까!”

    오흐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신성 마나를 이용해 구 형태의 방어막을 펼쳤다.

    그녀 역시 신관이었기에 남부럽지 않은 마나 제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치료하다가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성국의 신관들은 강한 힘보다는 가지고 있는 힘을 완벽히 제어하는 법을 익히는 데 주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결계는 깔끔하게 사라졌고, 구슬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성공할 줄 알았다니까?”

    “그럼, 이게 뭔지 보자고.”

    유피테르는 거침없이 다가가 구슬에 손을 데었다.

    “무슨 일… 없지? 나 조금 떨린다고 마스터.”

    “아마도. 만일의 사태 때는 반마법으로 대응하면 되잖아.”

    “아!”

    유피테르는 피식 웃으며 구슬을 들어 올렸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꽤나 묵직했지만, 단련된 근육 덕에 문제는 없었다.

    ‘영상 크리스탈이로군?’

    새겨져 있는 마법식이 현재와 조금 달랐다.

    그래도 무슨 역할을 하는 아티팩트인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바실리에게 배운 적 있는 형태였으니.

    “마스터마스터마스터마스터!”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틀어 볼 거야.”

    오흐트 역시 이 사실을 눈치챈 듯, 빨리 내용물을 보자고 졸랐다.

    유피테르는 그녀를 가볍게 타박하고서는 마나를 불어넣었다.

    지이이잉!

    영상 크리스탈로부터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나오며 숨겨둔 비밀이 재생되었다.

    * * *

    내 이름은 카르멘 아르테미스.

    올해 스무 살이 된, 언젠가 공작 가문을 이을 대공자다. 하지만 이런 불필요한 수식어들이 너무 싫다.

    내가 원하는 건 초대 가주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마법을 되찾는 것뿐.

    여느 때와 같이 연구를 기록하기 위해 영상 크리스탈을 작동시켰다.

    “나는 카르멘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려니까 웃기는군.”

    우연히 헤매다 발견한 이곳은 아마, 초대 가주가 만들어놓은 비밀 정원인 듯 보였다.

    무언가 선별하려는 듯 동상이 서 있었지만, 얼음 속성 마나를 보여주자 문을 열어주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 아티팩트들이 널려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초대 가주가 직접 남긴 듯한 일기까지 놓여있었다.

    그녀의 힘을 동경하는 내게 이곳은 문자 그대로 지상 낙원이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었나.

    “이곳을 들어온 걸 보면 아르테미스 가문의 후예일 테지. 결계를 뚫었다는 걸 보면 나 못지않은 마법사라는 거고.”

    영상 크리스탈로 자료를 남기는 건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광대와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으니.

    “오늘 할 실험 대상은 초대 가주가 사용했다는 달빛의 마나다. 이걸 통해서 얼음 마법이 더 위를 향할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다,”

    초대 가주 나이아드는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녔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아르테미스 가문은 썩어도 너무 썩어 남은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얼음 마법의 힘에 취해 더 나아갈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인 건 맞지만, 초대 가주에 비한다면 먼지조차 될 수 없었다.

    “제일 먼저 해볼 건…. 아티팩트 실험이다.”

    나는 이곳에서 찾아낸 지팡이를 쥐었다.

    정확하게 알려진 건 없으나, 나이아드 님께서 사용한 것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아티팩트에서 비롯된 힘이었다면, 나도 달빛의 마나를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지지직!

    그 순간 갑작스럽게 화면에 노이즈가 생겼다.

    “뭐야?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는데? 이유를 좀 알겠어, 마스터?”

    “아니?”

    그러나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젊었을 적의 카르멘을 보여주었던 구슬이 다시 역할로 돌아갔으니까.

    다만, 조금 더 뒤의 기록인 인 것처럼 보였다.

    “뭐가 문제인 거지? 시험 조건은 완벽하게 같지 않나! 왜! 어째서 안 되는 거냐!”

    몇 번이고 지팡이를 사용해도 초대처럼 기적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저, 얼음 마법을 구성하는 푸른 마나만 나왔을 뿐이었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이대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천년에 한 번 나올 천재라니, 역겨운 자식들,”

    가문의 원로들은 나를 볼 때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허상에 불과했다.

    엘프도 아니고 천년을 살지도 않았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세아니아 대륙이 지금의 형태로 고착된 건 아직 300년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과거의 역사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두 차례의 대륙 전쟁이 인류의 역사를 파괴해버렸으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서적에 적혀 있던 초대 가주의 힘은 이 정도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거였으니. 그 힘에 매료되자 다른 마법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팡이를 들고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곳은 왠지 모르게 마나의 밀도가 짙었다. 제로 서클의 마법사들이 오면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우웅!

    지팡이가 가르쳐주는 길을 따라 걸으며 푸른 마나의 성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공한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성공하지 못해도 좋았다. 처음부터 쉬운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조금이라도 달리진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전과는 다른 느낌에 나는 눈을 천천히 떴다.

    “성공했나…?”

    내 주변을 둘러싼 푸른 색의 마나는 한층 더 깊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달빛을 닮은 색이었다.

    “정말로 성공할 줄이야. 이제 초대 가주 나이아드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알 수 있겠군.”

    마음이 들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순간이었으니까.

    마법 체계를 뛰어넘고 역사에 발자취를 남길 대마도사가 된다는 꿈. 이 꿈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 마나, 달빛 마나만 있으면 나도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겠지. 아하하하!”

    그러나 이때의 즐거움은 앞으로 벌어질 끝 모를 절망의 서막에 불과했다.

    진실이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쓰라린 것이었으니까.

    실험을 계속해나갈수록 나는 피폐해졌고, 점점 더 삭막한 사람이 되어 갔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고 싶었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독한 싸움이었으니까.

    그 여자가 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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