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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23화 (223/265)
  • 라플라스의 깜짝 상자(6)

    * * *

    동료들.

    그 말을 들은 유피테르는 머리를 굴렸다.

    ‘마족 공작들이라도 데려오려는 건가? 잘만 하면 한 번에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겠군.’

    라플라스가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 걸 보니 평범한 이들은 아닐 듯했다.

    그렇다면 마족 공작들 중 일부를 이곳으로 부를지도 몰랐다.

    오히려 좋았다.

    그들을 따로 추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나와주세요, 나의 친구들이여!”

    라플라스는 두 손을 위로 올리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쿠우우웅!

    마지막 명령만을 기다리던 마법진은 굉음을 내뱉으며 작동했다. 마나를 있는 대로 잡아먹은 마법진은 원형의 게이트를 만들었다.

    ‘공간 이동 마법? 아니, 저건 소환에 가까운가….’

    유피테르는 라플라스 옆에 위치한 마법진을 주시했다.

    처음에는 공간 이동 술이라고 생각했다. ‘동료’라는 말 때문이었다. 어딘가에서 대기하는 이들을 데려오는 게 합리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저건 무엇인가 달랐다.

    공간을 잇는 게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를 이곳으로 부르는 장치에 불과했다.

    라플라스가 만든 게이트에서 한 명씩 걸어 나왔다.

    아이, 청년, 노인

    언뜻 보아도 특별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심지어, 인간이라고 보기에도 힘든 모습도 더러 존재했다.

    대륙 전쟁 이후 모습을 감춘 엘프들이나, 절멸했다는 늑대인간까지 있었다.

    “이게 전부인가?”

    마족 공작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유피테르가 물었다.

    라플라스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하지 않았다.

    불러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니플헤임만 가지고도 전멸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지 않나, 유피테르. 진정한 주인공은 제일 마지막에 나타난다는 것을.”

    “뭐…?”

    라플라스는 유피테르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마지막 손님을 불러왔다.

    유쾌한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으나, 손님은 무언가 달랐다.

    또각또각―.

    귀를 집중하게 하는 구두 소리.

    굽과 땅이 마주치는 시간을 극도로 줄여, 듣기 싫지 않았다. 그건 유피테르가 어린 시절 배웠었던 사교계의 예법과 유사했다.

    황녀와 만나기 전 꽤 많은 사교 파티에 참석했었기에 확실했다.

    하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왜 익숙한 소리가 나는 거지.’

    유피테르는 분명 마족과 지냈었다. 바실리가 그렇게 하기를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창조신 레아와 다르게 바실리는 마족을 싫어하지 않았다.

    실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겼으니까. 늘 마족들에게도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해왔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유피테르는 고개를 돌려 구두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던전 5층에 모인 모든 이들이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기에 어렵지 않았다.

    “…바실리?”

    구두 주인의 얼굴을 본 유피테르가 휘청거렸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에 균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마스터!”

    유피테르가 갑작스레 쓰러지려고 하자 오흐트가 나섰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잖아.”

    오흐트는 곧바로 치유 마법을 전개했다.

    마스터의 상태는 확실히 이상했다. 그가 가진 힘은 알았으나, 세계는 넓었다. 알려지지 않은 저주에 당한 걸지도 몰랐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피테르는 잠긴 목소리로 오흐트를 불렀다.

    “오흐트―.”

    무언가 힌트라도 줄까 싶어 오흐트는 귀를 기울였다.

    “저쪽을 봐. 저기 바실리가 와있어.”

    “뭐?”

    유피테르는 손가락으로 손님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믿을 수 없는 말에 오흐트는 재빨리 고개가 돌아갔다.

    휘이익!

    그럴 리가 없었다.

    바실리 님께서는 마족의 계략에 당해 신의 감옥에 갇혀 벌을 받고 계셨다.

    그러므로 이곳에 올 확률은 0%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바실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었다.

    “저게 바실리 님이시라고?”

    오흐트의 눈에 들어온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태였다.

    표현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바뀌는 중이었다.

    “마스터. 정신 차려. 저 역겨운 것에 어디가 바실리 님이라는 거야!”

    오흐트는 아까 전보다 더 강한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오흐트 식 특제마법 ― 원상복구

    신성한 마나가 유피테르의 몸에 닿았다. 하지만, 그녀가 기대했던 현상은 없었다.

    ‘저주에 당한 게 아니란 말이야?’

    만약 유피테르가 정신 공격에 당해 헛것을 보고 있는 거라면 반응이 와야만 했다.

    독극물에 당한 후 해독 시약을 먹으면 매캐한 연기가 나는 것처럼.

    바로 그때, 라플라스가 손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하하하. 대단한 신의 대리자라고 해도 이런 공격에는 면역이 없나 봐? 좋은 경험을 하는 중이겠네.”

    “아, 안 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바실리에게 다가가는 라플라스를 본 유피테르는 발작하듯 마법을 날렸다.

    파바박!

    수십 발의 얼음 화살이 라플라스를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신속하다 못해 보이지 않는 화살이었다. 그럼에도 라플라스는 방어막을 펼쳐 막아냈다.

    마족 공작의 칭호를 포커로 딴 것 같지는 않았다.

    “왜 그러지?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라고. 공격을 날리다니 자네답지 않은걸?”

    “….”

    눈에 뻔히 보이는 도발에도 유피테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을 흘렸다.

    ‘왜 이러는 거야 마스터!’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오흐트는 유피테르의 여러 모습을 봐왔었다. 그래봤자 5년 정도였지만, 결코 적은 시간은 아니었다.

    유피테르는 생각보다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눈 뜨고 당할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았다.

    오흐트는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을 라플라스에게 쏟아냈다.

    “마스터에게 무슨 공격을 한 거야!”

    “내가? 설마. 난 나태의 공작이야. 뭘 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고. 왜 이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영웅은 일 따위 안 한다네―.”

    “웃기지 마.”

    라플라스가 뭘 한 건 분명했다.

    손님의 어디를 보아도 바실리 님과 닮은 곳이 없었다. 보면 볼수록 기분만 나빠졌을 뿐.

    오흐트는 유피테르의 증상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했다.

    “마스터. 저길 봐. 저 역겨운 것 어디가 바실리 님이라는거야?”

    유피테르는 바실리 쪽을 쳐다보고 싶지 않은 듯 말을 무시했다. 어쩔 수 없이 오흐트는 강제로 유피테르의 얼굴을 돌렸다.

    유피테르는 조용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몇 분이나 손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 벌써 극복한 건가. 역시 신의 대리자는 급이 다르구만.”

    “무슨 소리야?”

    방금의 발언으로 라플라스가 무언갈 한 게 확실했다.

    오흐트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이런 심리전은 익숙하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으나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내 최고의 걸작이지. 인간을 공포에 질린 도플갱어는 내가 만든 거야. 뭐, 그때는 공작이 아니었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쉬잇! 이야기를 들으려면 그에 맞는 태도를 보여야지.”

    입가에 손을 갖다 대는 라플라스의 모습을 보자 소름이 돋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마족 특유의 광기가 일렁였다.

    라플라스는 아카데미의 교수처럼 설명을 계속했다.

    “도플갱어란 뭘까? 공작이 된 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자아가 있었지만, 마족으로는 변하지 못했으니까. 몇백 년을 고민한 후, 나는 그 해답을 찾아버렸다.”

    저 내용이 하나도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들어야만 했다.

    자아도취하고 있는 라플라스의 말에 분명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였으니까.

    ―적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마. 심리전이라는 건 결국 입을 열게 만드는 거니까.

    오흐트는 지금 유피테르의 말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 해답이라는 게 뭐야?”

    “위대한 칼리스토께서 내 마법을 궁금해할 줄이야. 이거 영광이네.”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고. 빨리 결론만 말해!”

    “워워. 성급한 아가씨로군. 아니, 칼리스토니까 할머니일지도 모르겠지만.”

    라플라스는 가볍게 농담을 한 후, 이야기를 이었다.

    “도플갱어의 한계는 마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서 온 거였지.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은 곧 존재의 무게감과 같으니까.”

    라플라스의 말은 정확했다.

    창조신 레아는 종족별로 한계점을 명확하게 정해놓았다. 그 한계점을 초월한 존재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인간은 세컨드 서클까지.

    마족은 서드 서클까지.

    물론, 이건 고대 시대의 이야기였다.

    현재 마법 체계는 고대와는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창조신은 새로운 신탁을 내리지도 않았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은 간단했다! 도플갱어를 할 수 있을 만큼 합쳐 놓으면 되는 거다!”

    경악스러운 말에 오흐트가 반박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창조신께서 키메라를 금지한 이유를 알기나 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건 오직….”

    “신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걸 침범하는 자에게는 신의 벌이 내릴 것이다. 흔한 이야기지. 소돔과 고모라처럼.”

    소돔과 고모라.

    이 두 마법 도시들이 소멸했던 이유는 선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살던 마법사들은 키메라에 미쳐 있었다. 신이라도 된 듯한 태도로 다양한 존재들을 마구잡이로 섞었다.

    몬스터와 인간 심지어는 반마족까지 구해와 실험에 사용했다. 지금과는 달리 금기가 불분명했던 고대 시기였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창조신 레아는 광기 서린 현장을 보다 못해 직접 나섰다.

    신의 격을 보여주는 확실한 힘으로 두 도시를 단숨에 파멸로 이끌었다. 이 일 이후, 키메라에 도전하는 마법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지.”

    라플라스는 묘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왜 그걸 지켜야 할까. 신은 우리를 그 지옥에 가둔 장본인인데.”

    “레아 님은 너희들을 낳아주신….”

    “낳았으면 무조건 따라야 할까? 초대 성녀. 너희 성국만 하더라도 레아를 져버리고 낙원교를 따랐지 않나.”

    라플라스가 아픈 구석을 찔러오자 오흐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앙심이 가장 돈독하다는 성국의 교인들도 쉽게 신을 버렸다. 하물며, 다른 인간들은 어떻지? 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지 않나. 그런데도 나에게 뭐라할 권리가 네게 있는 건가?”

    주도권을 움켜쥔 라플라스는 쉴새 없이 몰아쳤다.

    그건 분명히 궤변이었다.

    초대 성녀인 오흐트는 신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따른 레아교도였으니까. 너무 정직하게 따른 탓에 마녀로 주변인들이 피곤함을 느끼고 마녀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이, 이제!”

    오흐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마나를 뿜어냈다.

    마법을 완성하지 않아도 신성 마나는 그 자체로 마족에게 치명적인 독이었다. 쐬기만 해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라플라스의 입을 닫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흐트의 마음과는 달리 그녀를 막아선 자가 있었다.

    바로, 유피테르였다.

    “마스터. 왜 날 방해하는 거야! 마족은 우리의 적이야. 바실리님을 가두게 만든 나쁜 놈들이라고!”

    “오흐트. 지금 마스터의 명령에 거스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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