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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19화 (219/265)

라플라스의 깜짝 상자(2)

* * *

마족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유피테르.

칼리스토들은 그가 날카로운 칼처럼 행동하리라 생각했다. 라플라스와 함께 ‘에키드나’의 이야기가 나왔기에.

유피테르는 칼리스토만큼이나 바실리에게 진심이었다. 아니, 칼리스토들도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지금 보여주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었다. 바실리를 잃고 나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그야말로 상처 입은 늑대와 같았으니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는 그는 재해 그 자체였다.

“마스터? 도플이 잡으러 안 가?”

“그러게. 이렇게 말과 행동이 다른 건 마스터답지 않아. 안 그래 오흐트 언니?”

“응응! 아, 그 케이크 내가 먹으려고 둔 건데!”

유피테르는 침착했다. 언뜻 보면 막내 라인의 말처럼 말만 번지르르 한 것 같기도 했다.

자매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피테르는 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단지,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트리아. 라플라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어?”

“해보겠습니다, 신이시여.”

두 사람이 협력하자 라플라스의 위치가 쉽게 판명되었다.

애초에, 나태의 공작은 숨을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검사들만 가득한 시에라 제국에서 검은 마나가 넘실거렸다.

지도 아티팩트를 바라보며 유피테르는 결심했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어.’

신출귀물한 에키드나를 쫓는 건 정말 힘들었다.

동선을 그리기 위해서는 정보와 대상의 사고방식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에키드나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마족이었다.

기분대로 행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그림을 완성했으니까.

* * *

유피테르는 오흐트와 에냐와 함께 시에라 제국으로 향했다.

오크와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라, 제국의 최남단이었다. 그곳에는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성국 크레이타와는 달리 시에라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덥네. 너무 더워. 너무 덥다니까?”

“이리 와. 언니.”

신성 마법을 사용해도 더운 것만큼은 해결할 수 없었다. 그걸 안타깝게 생각한 에냐는 오흐트에게 바람 마법을 걸어주었다.

“한결 살 것 같네. 고마워.”

“에이 뭘. 언니 덕에 큰 부상에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는걸.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지. 아, 그러고 보니 마스터는 괜찮아?”

에냐는 문득 든 생각에 유피테르를 바라보았다.

‘마스터는 아마 추운 지방 출신이었지?’

에냐 역시 리투아 제국 출신이었다. 물론, 칼리스토가 되기 전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아르테미스 가문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환경에 처해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가본 적은 없었지만, 건너건너 들었었다.

그래서 오흐트와 같은 마법을 사용해 도와주려고 했다.

“사냥하기 딱 좋은 날씨군. 무슨 일이지? 오흐트는 해결된 게 아니었나.”

역시, 칼리스토의 주인은 평범하지 않았다.

피를 말리는 뙤약볕에도 끄떡없었다. 오히려 일행의 앞에서 진두지휘했다.

그렇게 몇십 분을 걸은 후.

“멈춰 봐.”

오흐트는 진지한 목소리로 일행을 멈췄다.

“찾은 건가?”

“확실해. 마스터의 말대로 자신이 있나 본데? 악취가 여기까지 흘러나와서 기분 나빠.”

오흐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족의 마나는 언제 어느 때라도 기분이 나빴다. 당장이라도 전부 없애버리고만 싶어졌다.

“어떻게 봐도 던전이로군.”

유피테르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환상 결계를 펼쳐놓긴 했으나, 이곳에 모인 세 사람은 인간을 초월한 자들이었다. 속이는 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마족들은 던전을 무슨 아지트로 생각하나 봐. 사실 던전 만큼 위험한 곳도 없는데 말야.”

“파르니소스 산에서도 던전이었지 아마?”

“기억하고 있었구나 에냐!”

막내 라인도 감상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파르니소스 산에서 마족들의 던전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딱히 긴장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음흉한 마족이라고 하더라도.

“겉에서 보기에는 5층인가. 아주 정석적이군. 일부러 들어오라고 하는 것만 같을 정도야.”

“바로 들어갈 거야, 마스터?”

“지금의 난 진심이다. 더 말이 필요한가?”

유피테르에게서 느껴지는 박력에 오흐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나에 놀란 거였다.

“마스터. 적의 본거지 앞에서 그런 식으로 신호를 보내면….”

에냐는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유피테르 일행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하더라도 도착했다고 알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적이 알아차리는 건 어쩔 수 없었으나, 해서는 안 될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다.

마족들은 한참을 기다려도 반응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오흐트는 김이 판 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들어가지.”

“괜찮겠어요, 마스터?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오흐트에게도 말했지만, 지금 난 진심이다.”

에냐는 더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유피테르가 바실리 님을 잃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말도 닿지 않을 테니, 이 이상의 말은 사치였다.

“그럼. 가자고 마스터.”

오흐트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마족을 흠씬 두들겨 팰 수 있다는 사실에 이미 신성 마나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언제봐도 기운이 넘치는군. 그럼 우리도 가지.”

“네. 마스터.”

그 뒤를 유피테르와 에냐가 따랐다.

피라미드의 입구는 여느 던전과 다름없었다.

딱히, 자격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입장하고 싶으면 안으로 전송되는 구조였다.

유피테르 일행은 망설임 없이 던전 안으로 향했다. 어떤 함정이 있더라도 부숴버리겠다는 각오를 한 채로.

“이번엔 언데드 던전이 아니었네. 재미없어.”

언데드 계열의 던전이 아닌 걸 확인한 오흐트가 짜증을 냈다.

초대 성녀였기에 전투력 자체가 대단했다. 그래도 기왕이면 언데드나 마족을 상대하고 싶었다.

더욱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는 마법사는 없었으니.

“첫 손님이 다가오는군.”

유피테르의 마나 감지에 마족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는 게 잡혔다.

그가 경고하기도 전에 칼리스토 두 사람은 움직였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었으니까.

선공은 오흐트의 몫이었다.

오흐트 식 신성 마법 – 신성한 축복

그녀는 성기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축복 마법을 자신에게 걸었다. 신성한 마나의 기운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했다.

오흐트는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가며 그대로 정권을 내질렀다.

펑!

침입자를 확인하러 온 마족 중 한 명이 글자 그대로 터져버렸다.

마족과 상극인 신성 마나였기에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네, 네놈들 평범한 인간이 아니구나!”

갑자기 동료를 잃은 마족이 소리쳤다.

마족들은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다. 같은 종족이라도 만나기만 하면 피를 튀기며 싸웠다.

딱 하나의 예외가 같은 파벌 속에 들어있을 때였다.

바로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도 마족은 정신을 놓지 않았다. 검은색 마나를 모으며 반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에냐 식 바람 마법 - 소용돌이

에냐는 바람을 일으켰다.

산들바람은 곧 무시할 수 없는 크기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녀의 마법은 일직선으로 나아가며 마족을 짓이겼다.

뻔한 진로였지만, 속도와 위력에 겁에 질린 마족은 피하지 못했다.

오흐트는 마법을 풀고 다시 유피테르의 곁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진짜 정답인 거 같은데 마스터?”

마족의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한 에냐도 어느새 근처로 와있었다.

“맞아요. 이번에야말로 바실리 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싱긋ㅡ

유피테르의 입꼬리가 초승달을 그렸다.

그걸 본 자매들은 유난을 떨었다.

“저거 봐. 마스터 웃는 거 진짜 사악해 보이지 않아? 마왕이라도 해도 믿겠어.”

“쉿. 쉿. 언니. 그 이야기 마스터가 싫어하잖아. 조용히 하라니까!”

워낙 출중한 얼굴을 지닌 유피테르였기에 그것마저도 어울렸다. 정작 본인은 증오하는 카르멘과 닮아있었기에 싫어했다.

그 이후로도 세 사람은 빠르게 던전을 공략해나갔다.

떨어져서 각자 구역을 수색하는 게 효과적이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마나 감지 덕에 던전 안이 훤히 보였으니까. 위로 올라가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걸어가면 그만이었다. 굳이, 다른 방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했다.

“여기도 비었네?”

최상층인 5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오흐트가 말했다.

“언니. 그 말은 적합하지 않아. 그냥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강한 거야. 인간 마법사였으면 이미 1층에서 죽었어.”

칼리스토의 상식인이라는 칭호에 맞게 에냐가 그 말을 정정했다.

실제로 사막을 지키는 이 던전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1층에서 만났던 마족 두 마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잊을만하면 돌연변이들이 나타났다. 마족의 마나가 서린 무기를 들고서.

오크, 오우거, 트롤, 하피 그리고 미노타우르스.

몬스터일 때도 까다로웠는데 돌연변이가 되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나하나가 던전의 수호자 급의 힘을 지니고 있었는데 수마저 많았다.

유피테르 일행이 초월자가 아니었다면 옛날 옛적이 사신의 품으로 돌아갔을 게 분명했다.

“드디어 5층인가.”

유피테르의 목소리에서 높낮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스터도 느껴지지? 이 위에 분명히 라플라스가 있어.”

“그래.”

오흐트가 애써 말을 걸어도 유피테르는 그대로였다.

우우웅!

숨이 막힐 것만 같은 푸른 마나는 오롯이 라플라스를 향해 적의를 내비쳤다.

‘마스터가 우리 편이라서 진짜 다행이다.’

오흐트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덜덜 떨었다.

마스터가 주로 사용하는 마법은 물론 약점까지 알았다. 하지만, 저 마나를 앞에 두면 몸이 굳었다.

오흐트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유피테르의 마나를 통째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신을 제외하면 모든 생명체는 유피테르보다 약했다.

“올라가지.”

유피테르는 그 말 만을 남기고 5층으로 올라갔다.

오흐트가 마스터를 따라 올라가려고 하자, 에냐가 말을 걸었다.

“오흐트 언니.”

“무슨 일이야 에냐? 그런 진지한 얼굴을 하고.”

“우리 일은 여기까지야.”

오흐트는 어이가 없어 에냐에게 따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라니. 당장 이 위에 바실리님의 원수가 있단 말이야. 넌 분하지도 않아?”

오흐트가 성녀인 것과는 별개로 칼리스토에게 있어 마족은 골칫덩이였다.

세계의 균형을 무너트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바실리가 봉인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든 것도 마족들이었다.

“알지, 왜 모르겠어. 하지만….”

“하지만 뭐!”

“마스터는 한 번 혼이나 봐야 해. 우리가 바실리님을 잃은 건 그 인간의 잘못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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