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깜짝 상자(1)
* * *
“도플갱어라고? 그건 대륙 전쟁 시기에나 있던 몬스터잖아? 눈을 피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유피테르는 카르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도플갱어는 이미 소멸한 존재였으니까. 살기 위한 발버둥일 거라 생각했다.
공포가 몸을 지배해도 늘 진실을 내뱉지는 않았으니.
―믿어다오. 난 지금 진지하다.
유령이 된 카르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훤칠한 외모는 이것마저 소화해냈다.
이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었기에 몇 배나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유피테르는 고민에 빠졌다.
‘도플갱어가 비슷한 마법을 쓸 수 있던가?’
대륙 전쟁 시기 도플갱어는 공포의 주인이었다.
키메라의 한 형태에서 진화한 도플갱어들은 존재를 복사할 수 있었다. 종(種)에 상관없이 기억과 외형을 전부 베껴냈다.
그들은 마족의 명에 따라 다양한 계략을 수행했다.
인간·엘프·드워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료를 의심하게 되어 버렸다. 마족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쉽게 해치웠다.
신관이 없었다면, 대륙은 정말로 마족들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도플갱어가 맞다고 가정하면 의문이 풀리기는 하는데….’
저자를 카르멘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단순한 마법만 사용했다.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혼돈 마법은 강력했지만, 카르멘과는 결이 달랐다.
“그렇군.”
마음을 정한 유피테르는 다리에 달라붙은 카르멘을 떼어냈다.
가볍게 힘을 줘 발차기하는 것만으로도 카르멘은 저 멀리 날아갔다.
―젠장! 어떻게 내 몸에 손을 대는 거야?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도 없나?
멀찍이 나가떨어진 카르멘. 영혼 상태였기에 딱히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유피테르가 어떻게 간섭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유피테르는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플갱어는 만나지 않은 사람도 복사할 수 있나?”
―이제 보니 웃기는 재주도 있군? 그게 가능했다면 마족의 지배에서 벗어났겠지.
그 말대로였다.
도플갱어에게도 분명한 한계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마족을 복사하지는 못했다. 마족을 늘리면 무적의 군세가 될 게 뻔했는데도 그러지 않았으니까.
도플갱어의 능력도 만능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러면 카르멘을 만났나? 언제 만났지? 어디에서 만났나. 그는 누구랑 같이 있었지?”
카르멘의 이야기로 이어지자 유피테르는 자연스레 말이 많아졌다.
그의 아버지는 에키드나와 협력하고 있었다.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기만 하면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에키드나는 바실리의 봉인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어. 왜 그랬는지 알아내야만 해.’
그게 진짜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래도 동선이 묘하게 겹쳤다. 가능성이 0이 아니라면 뭐가 진실인지 찾아내야만 했다.
왜 바실리의 봉인구를 찾는 건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건 자신의 손에 있어야 하는 물건이었으니.
―카르멘? 만났지. 암. 만났고말고.
카르멘을 연기하려는 생각은 이미 없는지 도플갱어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유피테르는 마나를 뿜어내며 도플갱어를 강하게 압박했다. 별다른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닌데도, 엄청났다.
―자, 잘못했어.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해. 정말로 죽는다고!
도플갱어는 겁에 질려 앓는 소리를 냈다.
유피테르의 마나가 닿자마자 그의 몸이 녹아내렸다. 마치, 독극물에 닿은 것처럼.
상실감은 온전히 고통이 되었다.
도플갱어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에 온몸을 뒤틀다 항복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테니. 이제 그만해. 진짜, 진짜로 죽는다고.
* * *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도플갱어의 영혼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꽤 오랜 시간 마법을 유지했던 디오는 실험실 구석에서 쉬는 중이었다.
언니를 위해 푹신한 방석을 가져다준 펜데는 슬그머니 유피테르의 곁으로 왔다.
“마스터, 괜찮아?”
“뭐가 말이지?”
유피테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자그마한 떨림이 추가되어 있었다.
인간관계에 서툰 펜데도 알 정도로.
“라플라스라는 마족이 상상 이상으로 교활한 거 같아서.”
도플갱어가 아는 건 많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는 쪽이 아닌 행동 대장에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조종당하는 인형에 불과했다.
“도플갱어를 만드는 라플라스의 능력은 대단하긴 해, 하지만….”
“하지만?”
“고작 그게 다다. 너나 우리들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알고 있지 않아?”
“그렇지….”
펜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실리가 직접 고른 칼리스토 자매는 최강의 군단이었다 한 명 한 명이 마족 공작을 능가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피테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그였다. 여신의 축복을 거절할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잠깐 동안 펜데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피테르는 눈을 감고 패스에 집중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마나의 실들이 느껴졌다. 이것이야말로 칼리스토 계약의 증표였다.
모두 식당으로 모여라.
그는 마나에 염원을 담아 퍼트렸다. 마스터의 명령에는 이 이상도 이하도 필요 없었다.
유피테르는 눈을 떠서 펜데와 디오를 차례대로 보았다.
메시지가 확실히 전해졌는지 표정이 바뀌었다.
“그럼 갈까?”
유피테르는 디오와 펜데를 데리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 * *
식당에 도달하자마자 오흐트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머리 위로 손을 흔들었다.
“마스터. 명령대로 왔다고. 이번에는 홍차나 케이크 같은 거 없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에 옆에 있던 트리아가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선을 넘은 자에 대한 경고였다.
“오흐트. 신께서는 지금 패스를 통해 직접 명령하셨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트리아 언니.”
칼리스토의 마스터가 패스를 사용한다는 건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과 같았다.
이 신호를 받은 자매들은 되도록 명령에 복종해야만 했다.
유피테르는 식당의 가장 상석에 다가가 의자를 빼고 앉았다.
의자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자 칼리스토의 얼굴들이 시야에 잡혔다.
‘저택에 있던 이들은 전부 왔군.’
유피테르는 패스를 사용하는 걸 꺼렸다.
바실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했고, 카르멘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마족에게 선공을 당했으니 칼리스토 차원에서 보복을 해줘야만 했다. 이 자리에 바실리가 있었어도 같은 판단을 내릴 것 같았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군.”
유피테르의 말에 자매들은 침묵을 지켰다. 늘 편안히 있던 오흐트도 이번만큼은 조용히 있었다.
“마스터.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이곳에 모인 자매들 중 서열이 가장 높은 디오가 나섰다.
“디오와 펜데는 알겠지만, 마족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날렸다.”
“그게 무슨 이야기이십니까, 신이시여. 혹여, 타르타로스의 결계를 돌파한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다.”
유피테르는 무거운 짐을 든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족의 공작 중 하나인 라플라스가 3차 대륙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
폭탄, 그것도 세상을 파멸시킬만한 폭탄이 식당에 떨어졌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자매들은 하나같이 생각에 잠겼다. 도플갱어의 이야기를 같이 들은 디오조차.
“3차 대륙 전쟁이라는 거, 확실해 마스터?”
침묵을 깬 건 오흐트였다.
“그만해!”
“지금 신의 말씀에 토를 다는 겁니까?”
“그, 그러니까 상황을 파악해야지 오흐트.”
서열이 높은 디오, 트리아, 펜데가 오흐트의 일탈을 만류했다.
칼리스토 회의에서는 서열이 곧 법이었다.
심지어 오흐트는 막내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에냐가 막내였다. 어른스러운 이미지 덕에 늘 오흐트가 막내 취급을 받았지만 말이다.
“그만.”
그러나 유피테르는 오흐트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이어서 하라고 턱짓했다.
“대륙 전쟁은 가볍게 입에 담아서 되는 건 아니야―.”
2차 대륙 전쟁이 끝난 후, 크레이타를 세운 이의 말이었기에 무게감이 엄청났다.
“―피와 살의 절규로 가득 찼었어.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 뭐가 좋다고 대륙 전쟁을 일으키는 건데!”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오흐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눈가에는 눈물마저 맺혀있었다.
“라플라스가 꿈꾸고 있는 게 확실하다. 디오의 마법으로 교차 검증까지 끝냈어.”
“디오 언니의 마법까지 나왔다니….”
오흐트는 하아―하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유피테르의 눈빛을 받은 자매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신이시여. 그럼 저희 자매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트리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원래 신의 말씀은 그런 거였다. 일단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신은 인간과는 다른 사고방식과 시야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러나 다른 자매들은 그렇지 않았다.
유피테르를 따르긴 했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이 남아 있었다. 바실리와는 다르게 그는 인간이었으니까.
인간은 신과 다르게 불완전한 존재였다.
“먼저 디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마스터.”
“네가 맡은 임무가 제일 중요하다. 이걸 받아.”
유피테르는 디오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자그마한 구체는 포물선을 그리며 그대로 손에 안착했다.
“이건…?”
처음 보는 물건에 디오는 의문을 표했다.
“바실리를 옭아매는 봉인구의 열쇠 중 하나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자매들이 모두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열쇠는 늘 유피테르가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이걸?”
“네 마법을 이용해서 이걸 노리고 있는 에키드나를 쫓아.”
“에키드나라면 마족 공작 중 하나지 않습니까. 마족 놈이 어째서 이걸 노리고 있는 것입니까? 설마 복수?”
마족이 창조신 레아를 배신한 건 유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열쇠를 노리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물론, 이해가 가긴 했다.
최초의 마족 중 한 명이자 마왕인 티폰을 죽인 게 바로 유피테르였으니. 복수심에 불타올라 그에게 가장 소중한 걸 뺏는 건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의외의 답변을 꺼냈다.
“나도 모른다. 하지만 에키드나가 그걸 쫓고 있는 건 확실하다. 아니, 열쇠 중 하나를 그녀가 갖고 있다.”
“정말, 인겁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바실리를 구할 수 있는 임무가 되자 디오는 곧바로 움직였다. 유피테르는 디오가 사라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리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트리아는 늘 하던 업무를 부탁한다.”
“예 신이시여.”
명령 하달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펜데는 늘 하던 대로 아티팩트를 지원해줘.”
“오흐트 그리고 에냐는 나와 함께 직접 시에라 제국으로 가서 라플라스를 사냥한다. 이의 있나?”
그렇게 칼리스토 측의 반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