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17화 (217/265)

마족의 그림자(9)

* * *

유피테르 일행은 펜데의 안내를 받아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오는 건 처음이었지?’

마도 공학 연구소

통칭, 실험실은 칼리스토 마스터인 유피테르조차 들어가 보지 않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발을 들인다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펜데, 이 방은 뭐지?”

유피테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연구소의 크기가 밖에서 보던 것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와는 다른 작은 상자 같은 공간이 그들을 반겼다.

‘방어 설비라고 하기에는 애매한데. 대체 뭐지?’

유피테르는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물론, 마나 감지도 함께였다.

곳곳에 숨겨진 마법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도 공학으로 점철되어있다고 해도 유피테르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침입자 배제용이라고 하기에는 위력이 약했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는 듯했다.

“이건 말이지….”

펜데는 천천히 벽으로 향했다.

“이 방은 대체 용도가 뭐지?”

“방어용이라고 보기에는 약한 마법밖에 걸려있지 않은걸. 전혀 모르겠어.”

느긋느긋한 발걸음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조급해졌다. 유피테르와 디오는 끝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바로 이런 용도야!”

펜데는 두 사람의 표정을 즐기며 벽을 손으로 짚었다.

그게 신호였다.

우우웅!

잠들어 있던 엄청난 수의 마법진이 동시다발적으로 깨어났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다채로운 색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손을 잡았다. 현재 마법사들이 한 가지 색의 마나만 사용하는 것과는 달랐다.

마도 공학은 확실히 새로운 길이었다.

“…?”

유피테르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증기에 몸을 맡겼다. 옆에 있던 디오는 그를 흘끗 보더니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마스터가 가만히 있는다는 건 문제가 없다는 증거였으니.

잠시 후.

눈앞을 뿌옇게 하던 증기가 깨끗이 사라졌다.

펜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본관으로 초대했다. 유피테르와 디오는 군말 없이 실험실 주인의 말에 따랐다.

본관에 발을 들이자, 더욱 본격적인 마도 공학 기술들이 유피테르 일행을 반겼다.

마도 엔진부터 아티팩트까지 현재 기술력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했다.

그것만으로도 펜데가 가진 천재성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방금 그건 뭐였던 거지?”

펜데의 안내를 받아 걷는 도중 유피테르가 말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찜찜했기에.

그녀가 배신자일 가능성도 열어두어야만 했다.

“아, 그거…. 깜짝 놀랐지? 그치? 최근에 개발한 최신 시스템이야.”

“확실히 기술력이 뛰어나긴 하더군. 마도 공학의 일면을 본 기분이다.”

기대와는 다르게 유피테르는 기술력을 칭찬했다. 애초에 이 저택에 있는 자들에게 서프라이즈 파티는 불가능했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마나 감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펜데는 김이 팍 샌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건 말이지, 소독이야.”

“소독?”

“마스터는 오흐트랑 자주 같이 다니니까 그 정도는 알지 않아?”

“소독의 개념은 알고 있다. 그래도 여긴 사람을 치료하는 곳은 아니지 않나.”

바실리가 가르쳐준 지식에는 ‘소독’과 ‘감염’도 들어 있었다.

그건 원래 성녀 중 한 명이 우연히 발견한 거였다. 그래도 바실리가 모르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그런 존재였다.

이 두 개념은 현재 성국의 가장 중요한 치료법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게 왜 여기서 나오는지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키메라를 만드는 건 바실리가 금지했을 텐데?”

“펜데, 생체 실험을 한 거니?”

유피테르가 말문을 열자, 디오가 힘을 실어주었다.

명령을 어기는 건 계약 위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처벌을 받아도 변명이 불가능했다.

펜데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마도 공학을 사랑해도 바실리 님과의 약속을 어기겠어? 이건 소독이긴 한데 조금 달라. 상처가 아니라 마나를 소독하는 거라고!”

“마나를?”

“정확하게 핵심을 파악했네, 마스터.”

유피테르가 이야기를 들어줄 기색을 보이자 펜데가 재빠르게 설명을 계속했다.

“마도 공학은 사소한 차이로 실패해. 실패는 곧 폭발이나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져. 애초부터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마나를 소독한 거라구.”

필사적인 펜데의 모습과 다르게 유피테르는 여유로웠다.

‘일리가 있는 변명이네.’

마도 공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자신과 디오의 마나가 꽤 치명적이었으니까.

“그러면… 일종의 코팅인 거구나?”

“역시! 언니가 최고야.”

“영혼이 가지고 있는 생자(生者)에 대한 증오를 막기 위해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거든. 마스터도 봐서 알지?”

가엾은 여동생이 불쌍했는지 디오가 한쪽 팔을 거들어 주었다. 유피테르는 늘어지지 않게 이야기를 정리했다.

“좋아. 그럼 이제 이 자가 누군지 한번 살펴보자고.”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영혼 부르기를 준비하는 디오. 그 옆에서 자잘한 일을 해주는 펜데. 그리고 카르멘의 시체를 올려놓는 유피테르까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제각기 할 일을 알고 있으니 막힘이 없었다.

* * *

“그럼 사용한다?”

디오 식 특제 마법 – 사자소생(死者甦生)

유피테르의 표정을 본 디오가 마법을 펼쳤다.

마나가 불처럼 용솟음치며 휘몰아치더니 점점 중앙으로 모였다. 그 후, 거대한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의 안에는 카르멘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디오 언니 이 마법. 사자가 거부하면 좀 늦어질 수도 있….”

펜데의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르멘은 곧바로 나타났다.

―누가 나를 부르는가?

은색의 머리카락에 반흑 반은의 눈동자.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카르멘은 문자 그대로 희미했다.

존재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가 유령과 비슷한 상태로 소환되었기 때문이었다.

카르멘 너머의 광경이 그대로 보였다. 마치, 옅은 커튼 같았다.

유피테르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빌어먹을 아버지. 오랜만이지?”

―호오….

유피테르를 확인한 카르멘의 표정에 이채가 서렸다.

디오의 마법으로 잠시 생명을 얻은 자들은 생전의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가졌다.

누구보다 심문에 특화된 능력이었으나, 자주 사용하지는 못했다.

칼리스토 상위권인 만큼 너무나 바빴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직도 내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나?

카르멘은 영리했다.

금세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으으으으!”

오호트 만큼이나 인간관계에 서툰 펜데는 도발에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건 가족이었던 유피테르를 속일 정도의 연기는 아니었다.

“아직도 카르멘인 척하는 건가? 그만두시지. 진짜 안 어울리니까.”

―호오?

유피테르는 카르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은은한 푸른 마나를 내뿜으면서.

“넌 누구지?”

“칼리스토 서열 2위 디오.”

“칼리스토 서열 5위 펜데.”

칼리스토 자매들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머릿속으로는 아군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으나, 몸은 그렇지 않았다.

팔에 무수한 닭살이 돋아나 있었다.

―신의 대리자라고 해도 만능이지는 않구나. 내 정체를 아직도 모르다니.

카르멘은 만만치 않았다.

주변을 완전히 장악한 유피테르의 마나를 이겨냈다. 아니, 처음부터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펜데는 경악했다.

‘마스터의 저 기운은 분명….’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마스터는 봉인을 일부 해제한 상태였다. 몇 번 본 적 있으니 틀림없었다.

저 상태에선 칼리스토 전부가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했다.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기술들을 선보였으니까.

봉인을 푼 그는 그야말로 ‘마법사의 적’이었다.

펜데는 조심스레 디오의 옆에 붙은 후, 귓가에 속삭였다.

“언니. 지금 마스터 봉인을 푼 상태인 거 맞지?”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저걸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우리보다 위인 거 같지는 않은데.”

“혹시, 유령은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거야?”

신의 저주.

세아니아 대륙에는 선천적으로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유피테르처럼.

혹시나 했던 펜데의 말을 디오는 부정했다.

“마법으로 돌아온 자들이라고 해서 그럴 리가 있니? 그러면 무적이게?”

“하긴 그렇지….”

자매가 그러던 말든 유피테르와 카르멘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네 존재를 영영 없애버리기 전에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 유피테르여. 난 영혼이다. 어떻게든 불러냈지만, 산 자와 죽은 자는 평행선을 달리는 게 신의 의지라고.

“과연 그럴까?”

유피테르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마나를 끌어모았다.

우우우우우웅!

디오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마나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모인 마나들은 강하게 회전하며 점점 더 속도를 높여갔다.

“마스터가 또 시작하려나 봐. 펜데 이리 와.”

“응!”

디오는 펜데를 안고서 빠르게 구석으로 피신했다. 그 후, 마나를 퍼부어 방어막을 만들었다.

펜데는 그걸로는 안심되지 않았는지 아공간에서 포션 병 하나를 꺼내 던졌다.

날아간 병은 산산이 조각나며 몇 겹으로 쌓인 방어막을 강화했다. 병마저 마도 공학의 산물인지, 파편은 어느새인가 사라졌다.

“언니도 알잖아. 이 정도여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거.”

무슨 짓이냐고 묻는듯한 표정에 펜데가 조용히 설명했다. 디오는 단번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봉인을 해제한 유피테르의 마나는 살짝 닿기만 해도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칼리스토라고 하더라도.

―하하하하하하.

카르멘은 미친 듯이 웃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저건 헛수고였다.

나름 위협한다고 했던 마나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공격할 수단이 없다면 무서워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음?

카르멘은 유피테르를 훑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무언가 달라졌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바라만 보아도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이 무슨?

그는 이미 죽은 몸이었다.

강제로 이 세상에 연결해놓았을 뿐, 정말로 부활시킨 건 아니었다. 당연히 살아 있는 사람의 마법이 맞을 리 없었다.

그게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그 자신감이 얼마나 가는지 보자.’

카르멘이 디오의 마법으로 실험실에 온 순간부터 유피테르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칼리스토의 저택에 온 건 분명히 악수였다. 바실리의 기운이 남아있는 이곳에서 유피테르는 무적이었으니까.

승패는 그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그, 그만 두라고!

유피테르의 생각대로였다.

마나가 끝을 모르고 늘어나자 카르멘은 애걸복걸 매달렸다. 카르멘의 모습이 무색하게 유피테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부탁했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미동도 없었다. 그 태도가 카르멘의 공포심을 더욱 자극했다.

―마, 말한다니까! 말하겠다고. 난 카르멘이자 카르멘이 아니다! 자, 말했으니까 그 마법을 그만둬 줘!

“그게 무슨 소리지?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해.”

―이 모든 일은 라플라스가 꾸민 거다. 나태의 공작은 존재의 도플갱어를 만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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