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16화 (216/265)

마족의 그림자(8)

* * *

“디오의 마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거든.”

유피테르는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을 열었다.

펜데와 디오의 시선이 쏟아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카르멘의 시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잘못 봤던 게 아니네! 역시, 마스터의 아빠잖아. 저기, 저기 마스터 나 소원이 하나 있는데.”

“굳이 시체를 들고 왔다는 건 빼낼 정보가 있다는 이야기겠네. 마스터의 명령이니 어쩌겠어,”

칼리스토 자매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특히, 마도 공학에 인생을 바친 펜데는 눈에 불을 켜고 졸랐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실험 좀 해보면 안 돼? 전에 세워두었던 가설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조디악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볼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고위 마법사들의 유체는 생전보다 더 엄중하게 관리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자를 소생하는 기술은 이미 실전되어버렸긴 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조차 주고 싶지는 않았다.

네크로멘서는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였기에.

“기다려. 펜데. 마스터는 인체 실험까지 허락하지는 않았지? 선을 넘는 건 안 돼.”

탐구 정신에 넋을 놓아버린 펜데를 말린 건 디오였다.

싱긋 웃으며 가볍게 말했지만, 칼리스토의 둘째다운 위엄이 서려 있었다.

“아, 알았다고. 내가 잘못했어.”

강한 존재감에 펜데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칼리스토 자매들에게 있어 서열은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특히, 펜데의 경우는 더했다.

마도 공학을 사용할 뿐 실질적인 전투력은 최하위였으니까. 그녀가 에냐를 이길 수 있었던 건 그저 우연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설마 내 방에 시체를 들여놓을 생각은 아니지? 아무리 마스터라도 그건 싫다고.”

디오는 펜데를 자중하게 만든 후,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설마, 단지 물어보기에 보여준 것뿐이야.”

유피테르는 내려놓았던 시체를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 동작은 흠잡을 곳 없이 자연스러웠다.

“좋아. 그러면 어디로 갈 거야?”

“딱히 상관은 없어. 지금 비어있는 곳이 있나?”

“글쎄…?”

저택에 오랜만에 돌아온 유피테르가 물었지만, 디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저택에 익숙하지 않았다. 애초에 트리아나 오흐트를 제외하면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막중하고 한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면 실험실로 가자! 거기라면 괜찮겠지?”

펜데는 소심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디오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트리아가 지나치게 진중한 성격이라면 디오는 유들유들한 성격에 가까웠다.

선만 넘지 않는다면.

“실험실이라면 지하에 마련된 네 전용 실험실을 말하는 거야?”

“알고 있었어?”

“저택에 있는 시간이 적어도 자매들이 대충 뭘 하고 사는지는 알아.”

“언니….”

생각지도 못한 관심에 펜데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역시, 바실리 님을 따라온 게 정답이었어.’

원래, 뛰어난 장인 출신인 그녀가 칼리스토에 들어온 건 딱 하나였다.

인간에 대한 배신감

잠을 줄여서 개발한 신기술을 다른 이가 훔쳐 가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늘 곁에 있었던 동료들조차 그녀를 외면했다.

쓰라린 상처에 고통받고 있을 때, 손을 건네준 게 바로 바실리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매들을 돕는데 사용해도 불평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마스터 유피테르.”

“갈 거야? 갈 거지? 난 갈 거라고 믿고 있을게.”

두 사람은 이야기하다 말고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최종 결정권자는 그였으니까.

“좋다. 네 실험실이라면 안전할지도 모르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의외의 말에 펜데가 물었다.

저택만큼 안전한 곳이 없었다. 바실리가 만들고 마도 공학으로 강화한 결계는 천하무적이었다.

마족도 감히 이 저택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차.’

칼리스토 중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밝히는 건 아직 일렀다.

어중간한 불씨는 모두를 태울 수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바실리가 아니었다. 계약을 만든 당사자가 아니기에 권한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또, 바실리를 구출할 열쇠를 전부 찾지 못한 상황에서 내분이 일어나는 건 사양이었다.

“아니, 거기선 무슨 짓을 해도 밖에서 안 들키잖아? 이 정보를 새어 나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유피테르는 모른 척 둘러댔다.

“헤에…. 마스터는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야? 피곤하겠네.”

마도 공학 이외에는 딱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펜데는 쉽게 넘어갔다.

하지만, 수많은 전장을 헤쳐온 디오는 그렇지 않았다.

“실험실이면 괜찮다라. 그러면 저택을 믿지 못한다는 이야기야? 마스터 유피테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펜데는 몰라도 나까지 속일 수는 없어.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유피테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몇 번을 곱씹어 보아도 어이없는 변명이었다.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었는데, 디오가 수긍하는 게 더 이상했다.

쿵!

유피테르가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 놓으려고 한 순간, 저택이 흔들렸다.

“…?”

“여길 찾아냈다고?”

유피테르와 디오는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냈다.

이곳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칼리스토들은 적도 많았다.

정말로 적이 침입 가볍게 넘겨서야 안 되었다.

“허, 허윽….”

숨이 막힐 정도의 마나에 펜데가 몸부림쳤다.

마도 공학자인 그녀가 견디기에 두 사람의 마나는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펜데의 상태를 눈치챈 유피테르가 마나를 거두자, 디오도 힘을 해제했다.

“미안하다. 펜데.”

“아, 아냐.”

새파래진 얼굴을 보니 당장이라도 오흐트를 데려와야 할 것만 같았다.

“이 진동은 지하에서 발생한 것처럼 느껴져. 어떻게 생각해 마스터 유피테르?”

“내 생각도 같아. 다른 마나도 감지되지 않는군. 침입자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인 것 같다.”

두 사람이 의견을 나누고 있자, 펜데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

“무슨 일이지?”

“이거 내 잘못인 거 같은데.”

무언가 알고 있는듯한 펜데의 모습에 유피테르는 조금 더 캐물었다.

“자세하게 말해봐.”

“지하에서 벌어진 충격이라면 실험에 썼던 마법진 중 하나가 폭발한 것일지도?”

펜데는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미묘한 뉘앙스였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채지 못할 유피테르가 아니었다.

“그럼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나?”

“아냐아냐.”

펜데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이건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여기서 잘 대처해야 마스터와 언니의 눈 밖에 나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 충격으로는 끄떡도 없을 거고. 자동 청소 마법진까지 있어서 문제없어!’

하지만, 그 말을 또 다른 기폭제가 되어버렸다.

“펜데. 이런 일이 익숙한 거라면 언니로서 한 마디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디오는 펜데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마도 공학이 가끔 선을 넘는다고 해도 펜데의 업무는 막중했다.

다양한 아티팩트를 만들고 수리했으며, 임무 중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담당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선을 접어 줄넘기하는 수준이었다.

“이 저택은 바실리님이 모두가 쉬라고 만들어준 곳이야. 여길 위험하게 만드는 건 심하지 않을까?”

마나도 없었고, 얼굴도 환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펜데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한 디오의 또 다른 모습을 알고 있었다. 털털한 그녀였지만, 선을 넘은 사람에게는 가차 없었다.

그렇기에 덜덜 떨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마스터가 맡겨 준 일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잠시 머리를 식히려다가 실수해 버린 거야. 그치. 내 말이 맞지 마스터?”

횡설수설하는 펜데의 말에 유피테르가 나섰다.

“그 말이 맞아. 이번 일은 내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거다.”

유피테르는 펜데의 구조 신호를 무시하지 못했다. 상의가 되지 않은 거라고 하더라도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궁지에 몰린 햄스터 같은 모습에 가슴이 저렸으니까.

“흐음….”

스위치가 켜진 디오는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풀지 않았다. 여전히 유피테르와 펜데를 번갈아 가며 진실인지 확인하려고 했다.

‘시간이 너무 끌리는데 어쩔 수 없나.’

디오가 의심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유피테르는 떳떳했으니까. 적의 침입을 허용한 게 아니라면, 펜데의 일은 용서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마족들은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을 거니까. 정보에도 부족한데 더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디오. 이번 건 급한 문제야. 잘만 하면 바실리를 구할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고.”

바실리라는 말에 디오의 표정이 변했다.

칼리스토 최상위 네 사람은 바실리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었기에.

그래서인지 단 한 번도 순위 변동이 없었다.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 말에 펜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처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펜데를 보며 유피테르는 빙그레 웃었다.

“정해졌으면 빨리 가자!”

펜데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디오의 마음이 다시 바뀌기 전에 움직이여만 했다.

“좋아. 안내해 줘.”

“지하라면 그걸 이용해야겠군.”

디오와 유피테르의 말에 펜데는 성큼성큼 실험실로 향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유난스러울 정도로.

* * *

칼리스토 저택의 지하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열 명 남짓의 인원들이 살기에는 거대했다. 지상이 3층으로 구성된 것처럼, 지하 역시 3층까지 있었다.

지상에서 지하로 가는 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계단이었고 두 번째는 마도 공학의 힘을 빌린 엘리베이터였다. 이 기술을 맨 처음 고안한 사람이 바로 펜데였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가 내 실험실이야!”

펜데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실험실을 소개했다.

“폭발이 있었다기에는 너무 멀쩡한데?”

디오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펜데의 실험실은 지하 2층에 위치했다 저택 1층까지 진동이 전해지려면 꽤 큰 폭발이 일어났어야만 했다.

그러나 정작 실험실은 멀쩡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마도 공학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바실리가 그랬었지.”

“맞아! 마법의 새로운 단계로 이끌거라고 바실리 님이 말했어!”

유피테르는 일부러 바실리의 이름을 꺼내며 칭찬했다. 칼리스토 자매는 하나같이 바실리를 좋아했기에. 치사한 방법이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면 돼?”

유피테르의 물음에 펜데가 기겁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지금 이 모습으로 이곳에 들어가면 큰일이 난다고.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줬으면 좋겠어.”

살짝 기가 죽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펜데의 말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마도 공학에 집중할 때의 광기마저 엿보엿다.

“알았어.”

유피테르와 디오의 말이 처음으로 겹쳤다. 그만큼 펜데의 기세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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