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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211화 (211/265)
  • 마족의 그림자(3)

    * * *

    그랬다.

    카르멘 비제는 마족 무기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건 마족과 조우해 쓰러트렸다는 증거품이었다. 또, 조디악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으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말이지. 공작의 무기라면 뭔가 다른 기능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성국의 오를레앙도 비슷하잖아.”

    “일리가 있군.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는 건가.”

    “응. 내가 직접 만져본 적이 없어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초대 성녀인 오흐트조차 마족에 대한 정보를 전부 알지는 못했다.

    마족은 대륙의 시작을 함께한 존재들이었다. 인간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창조신의 선물을 받은 자들이었다.

    물론, 마족들이 반기를 들기 전까지의 이야기였지만.

    “신이시여. 어떻게 하실 겁니까?”

    트리아가 생각에 잠겨있는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시에라 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유피테르의 심기가 꽤 불편해 보였다.

    아무래도 라플라스를 쫓는 게 원하는대로 되지 않은 듯했다.

    마스터와 칼리스토 간의 패스는 양방향이면서도 차별적이었다.

    마스터의 권한이 훨씬 컸다. 칼리스토들은 굳이 할 수 있는 게 적었다.

    “시에라 제국으로 돌아가야겠지.”

    “그곳은 생각보다 넓고 험준합니다. 신이시여, 괜찮으시겠습니까?”

    트리아의 걱정은 합리적이었다.

    시에라 제국은 도시들은 산에 둘러싸여 있었고, 개척되지 않은 곳마저 있었다.

    작정하고 숨는다면 도저히 찾아낼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털썩―

    유피테르는 주변에 있던 쇼파에 앉았다.

    솔직히 막막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누가 진짜 적인지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정보가 부족한 건 처음이었다.

    바실리의 빈자리를 잘 메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그녀를 대신하는 건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피테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오흐트가 말했다.

    “정말 시에라 제국에 돌아갈 거야? 난 반대야. 그런 이들은 도와줄 가치가 없어 마스터.”

    “마족이 상대라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야!”

    필요 이상으로 언성을 높이는 오흐트를 트리아가 막아섰다.

    유피테르가 편하게 대해준다고 하더라도 ‘선’을 넘어서는 안 되었다.

    그건 마스터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었으니까.

    “오흐트. 신의 앞에서 무례하다.”

    “언니는, 언니는 아무것도 몰라! 마스터가 거기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

    트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오흐트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긴 해도 그건 그녀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 어느때라도 마스터의 명령과 칼리스토의 사명을 잊지는 않았다.

    그런 그녀가 저렇게 한이 서린 모습을 한다는 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오흐트와 트리아 사이를 중재한 건 유피테르였다.

    “오흐트, 우린 세이라 공주를 구해주러 가는 게 아니라….”

    “알아. 나도 안다고!”

    “오흐트!”

    트리아가 강하게 오흐트를 질책했다.

    직접 때리지는 않았다. 그건 칼리스토 세계에서는 효과가 미미했으니까.

    그 대신 눈이 아플 정도의 마나를 내뿜었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수준이었다.

    “그만 둬. 트리아.”

    “하지만, 신이시여!”

    “오흐트에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건 내가 아니라 바실리야. 그녀의 말을 무시할 생각이야?”

    “아닙니다.”

    트리아는 한 발 물러섰다.

    바실리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대단했다. 그 어떠한 명령보다 우선시 되었다.

    유피테르는 오흐트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성국을 어지럽힌 마족을 처단하러 갈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 알잖아?”

    “거짓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사로잡았던 베타 기억하지? 그 베타가 돌연변이를 만든 자가 카르멘이라고 자백했어. 그리고 카르멘인 시에라 제국의 어딘가에 있다고 하던데.”

    “돌연변이 말이지….”

    베타의 이야기에 오흐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기회라고 여긴 유피테르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말 카르멘이라면 에키드나의 목적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에키드나는 바실리의 봉인구 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고.”

    “그게 정말이야?”

    “그래. 시트시거와 맞붙었을 때, 에키드나가 자랑하듯 보여줬어.”

    짝!

    오흐트는 양손을 들어 뺨을 강하게 때렸다.

    소리만큼이나 강하게 힘을 줬는지 뺨이 붉게 물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마스터는 너무 착해 빠져서 문제야. 어떻게 성녀보다 더 착하냐고. 이게 말이 돼?’

    오흐트는 유피테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감히 바실리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외향적인 게 아니었다.

    ‘만약, 거기서 세이라 공주가 위험에 처하면 도와줄 거잖아. 입으로는 아니라고 말해도 다 안다구.’

    유피테르는 스스로 차갑고 냉철한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실제로,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 적도 많았다.

    역시, 아르테미스 가문의 인간이라고 할 정도로.

    하지만, 그는 상냥했다.

    그냥 눈을 감고 넘어가도 되는 일들을 무시하지 않고 행동했다.

    바로 그게 칼리스토의 마음을 움직이긴 했지만, 위태위태한 건 사실이었다.

    “그럼 조건이 있어 마스터!”

    “조건?”

    유피테르는 트리아가 나서려는 걸 막았다.

    말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도 중요했다.

    얼음성에서 카르멘이 폭군처럼 구는 걸 몇 번이나 본 후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으니까.

    유피테르가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자 오흐트는 설명을 시작했다.

    첫 번째 제안이라는 걸 알리려는 듯 오른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세이라 공주의 일에 개입하지 말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아니, 마땅한 대가를 제시하면 그건 괜찮아. 애초에 바깥에선 특별 교수의 신분이잖아. 홍보는 중요하니까.”

    나름 합리적인 제안에 유피테르는 수긍했다. 그리고서는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조금 신이 난 오흐트는 오른 손가락을 하나 더 접었다.

    “언니들 중 다른 한 명도 데리고 갈 것. 내 요구 사항은 이걸로 끝이야.”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두 번째 제안을 들은 유피테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델포이에서 마족을 상대했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신분을 숨겨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검사들의 땅이었기에 결계를 치면 알아볼 사람도 전무했다.

    대체 왜 칼리스토 한 명을 더 데려가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터무니없는 낭비였다.

    “칼리스토라면 내가 신과 함께 가면 되는 건가?”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트리아가 나섰다.

    그녀 역시 유피테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작 인간 하나 잡는 데 두 명의 칼리스토가 가다니. 그건 걱정이 지나친 거다 오흐트.’

    마족 공작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상대하는 데 이렇게 몰려다니는 건 창피한 일이었다.

    칼리스토 자매들 한 명 한 명이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도 싸울 수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전력을 내지 못하도록 유피테르가 봉인하고 있어도 여전히 강했다.

    “아니! 트리아 언니는 안 돼! 절대로 안 된다구.”

    “어째서지? 내가 정보를 담당하고 있어도 너보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 않나.”

    “문제는 강하니 뭐니가 아니라고!”

    오흐트의 외침에 트리아의 표정이 멍해졌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마스터의 약한 마음이야.”

    “하! 지금 바실리 님께서 인정하신 마스터를 의심하는 건가? 그건 배신이다!”

    트리아는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 누구보다 화를 내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마나가 그 마음을 대변했다.

    “배신? 이게 배신이라고? 말 다했어?”

    배신이라는 말에 오흐트도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건 칼리스토의 자긍심을 건드는 거였으니까.

    자긍심이 있기에 힘든 일들도 묵묵히 해내며 세계를 지켜내는 거였다.

    “지금까지 네 행동을 봐준 마스터에게 감사하지 못할망정 제어하려 들다니. 그게 배신이자 월권이다.”

    “하. 그래? 그러면 내 말에 대답해봐.”

    “말해봐라.”

    “마스터가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바실리 님께서 말한 행복이라고 생각해?”

    “….”

    허를 찌르는 오흐트의 말에 트리아의 말문이 막혔다. 얼마나 놀랐으면 날뛰던 마나 마저 잠잠해졌다.

    행복.

    전대 마스터 바실리는 사라지기 바로 전 모든 칼리스토를 불러들였다.

    물론, 유피테르는 멀리 보내놓은 상태였다.

    저택에 모인 칼리스토들은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헤어지기를 슬퍼하는 자들도 있었고, 다음 마스터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웃어 보이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사라지면 유피테르는 분명 목숨을 다해서 날 구하려고 할 거야. 그것만큼은 막아 주렴.

    칼리스토들은 바실리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그녀가 없어지는 건 상상 이상으로 큰일이었다.

    더구나 유피테르는 칼리스토의 2대 마스터이자 연인이었다.

    소중한 가족을 찾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칼리스토들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자, 바실리가 말했다.

    ―나는 그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너무 힘겹게만 살아왔으니까 말야. 이렇게 또 짐을 지워주는 것도 사실은 싫어.

    바실리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계속하며 확답을 받아냈다.

    “바실리가 내 행복을 바랬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시여 그저….”

    유피테르는 몰라야만 하는 이야기이기에 트리아가 재빨리 수습했다.

    하지만, 오흐트의 생각은 달랐다.

    “맞아. 바실리 님께서는 마스터가 행복하기를 원했어.”

    “자세히 말해봐.”

    “마스터가 지금처럼 모든 걸 버리고 맹목적으로 바실리님을 구하는 걸 제일 걱정했단 말이야!”

    “오흐트!”

    오흐트가 비밀을 터트리자 트리아는 참지 못했다.

    마나를 몸에 두르고서 그대로 오흐트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그걸 그대로 당할 오흐트가 아니었다.

    초대 성녀의 이름에 맞게 신성 마나로 보호막을 쳐서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서는 재빨리 점프해서 트리아의 뒤로 넘어갔다.

    “이제 본래 성격이 좀 나오나 본데 트리아 언니?”

    “….”

    트리아는 대답 대신 마법을 선사했다.

    우우우우웅!

    중력을 다스리는 그녀의 힘이 저택 곳곳에 퍼져나갔다. 그걸 본 오흐트 역시 참지 않고 마나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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