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07화 (207/265)

오크의 침공(12)

* * *

검사들이 마법사를 증오할지언정, 마법사들은 검사들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마법사들은 저 높이 있는 마도사들을 바라볼 뿐, 아래를 내려다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유피테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너희들을 공격할 생각은 없다고. 오크 따위와 같은 선상에서 보면 곤란해.’

유피테르는 검사들의 불안감을 뒤로하고 미리 설치해놓은 마나 지뢰를 발동했다.

콰앙!

매캐한 연기를 만들며 오크 한 부대가 그대로 폭사했다.

지뢰가 터진 자리는 매캐한 연기와 그을음만이 남아 있었다. 간단한 마법이었으나 성능 하나는 확실했다.

“고작 마나 지뢰로 오크를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취익―!”

지라르와 오크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비웃었다.

동료가 없어진 건 슬픈 일이긴 했다. 그래도 인간들이 믿고 있는 게 고작 저것뿐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건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하나씩 폭발하던 마나 지뢰가 어느 순간부터 연달아 터졌다.

연쇄 폭발의 화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법을 증오하던 검사들의 생각을 바꿀 정도로.

“어떠냐, 이 오크 놈들아 이건 좀 무섭냐?”

“휘유, 대단한데. 간단한 마법만으로 오크 절반을 날려버렸잖아.”

“우리는 역사적인 현장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야야, 그건 너무 나갔다.”

승기가 보이자 검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죽고 싶지는 않은 게 사람의 본성이었으므로.

동시에 오크들의 표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

승리를 점쳤던 지라르는 말을 잃었다.

남문을 치러온 군대는 1만에 가까웠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단 한 번의 격돌로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속이 쓰렸다.

어찌저찌 살아남은 오크들 역시 인간들에게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어떻게, 취익―. 하실, 취익―.” 겁니까, 취익―.”

한 오크 나이트가 지라르에게 물었다.

오크 나이트쯤 되면 평범한 오크보다 지능이 높았다. 전장이 분위기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나?”

지라르는 차분한 모습으로 백마에서 내렸다.

여지껏 지휘에만 열중하던 그가 다른 행동을 보이자 모두가 긴장했다.

오크 나이트나 메이지는 지라르가 얼마나 악독한 성격의 소유자인지 알았기에.

차라리 평소처럼 화를 내는 게 덜 두려울 듯했다.

“돌연변이 부대?”

“부르셨습니까. 지라르 님.”

지라르의 부름에 돌연변이 3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연변이 오크들은 몬스터라기 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취익―! 빠져라, 취익―.”

“여긴, 취익―. 우리의, 취익―. 전장이다, 취익―.”

돌연변이들이 나타나자 나이트들과 메이지들이 반발했다.

지라르에게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돌연변이들을 인정하기는 싫었다.

오크의 자존심이 그걸 거부했으니까.

“하아?”

돌연변이 중 유일한 여성체가 앞으로 나섰다. 키가 제일 작았는데도 거대한 해머를 등 뒤에 매고 있었다.

그녀는 귀를 후비며 오크 나이트에게 다가갔다.

“뭐, 취익―. 뭐냐, 취익―.”

“그 돼지 멱따는 소리 진짜 듣기 싫네. 그냥 죽어.”

돌연변이는 문답무용으로 해머를 휘둘렀다. 살기를 감지한 오크 나이트도 방패를 들어 막으려 했다.

쿵!

해머는 방패를 분쇄하고 그대로 갑옷까지 고철로 만들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몸을 관통했다.

“취, 취익―.”

그게 오크 나이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럴듯한 반항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동료의 몸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걸 보고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알파, 베타, 감마. 가서 인간들을 청소하고 와라.”

“네.”

“알았어~.”

“기대가 되는군!”

지라르의 말에 세 돌연변이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내며 인간 진영으로 이동했다.

* * *

“마스터 평범한 마나 지뢰라고 하지 않았어? 제로 서클 마법이 이런 파괴력을 지니다니….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오흐트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원리를 물었다.

오크의 숫자는 반이나 줄어든 상태였다. 눈을 비비며 몇 번을 확인해보아도 결과는 똑같았다.

“너도 들어본 적은 있겠지. 이건 아폴론 식 마나 지뢰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래. 얼음성의 도서관에 있었어?”

“아니, 동생의 친구에게서 배웠다.”

담담한 말투와는 달리 유피테르 역시 꽤 놀란 상태였다.

실전에서 이 마법을 사용한 건 처음이었다. 얼음성에서 대련하며 원래를 깨닫긴 했으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얼음성으로 돌아간 게 정말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다니. 나답지 않잖아.’

그러나 유피테르에게 추억에 잠길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저, 저게 뭐야!”

“으아악!”

“살려줘, 살려달라고!”

최전선에서 갑자기 비명이 난무했다.

“무슨 일이냐!”

세이라 공주는 옆에 있던 한 검사에게 물었다.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잠잠했다.

유피테르에게 의뢰한 함정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냈기에 그건 확실했다.

오크들이 움직이는 기색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그게 지휘관의 의무였다.

“그, 그게….”

“답답하게 하지 말고 그냥 말해! 공주 취급 안 해줘도 되니까.”

“이상한 놈들이 나타나서 검사들을 도륙하고 있습니다. 고작, 세 명뿐인데 이러다 할 반항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세이라 공주는 곧바로 유피테르를 호출했다. 짐작대로라면 검사들은 새로운 적을 상대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유피테르는 세이라 공주의 곁으로 왔다. 물론, 오흐트와 함께였다.

“유피테르! 내 말좀 들어봐, 예의 그….”

“잠시만 기다려줘.”

유피테르는 공주에게 양해를 구한 뒤, 오흐트에게 할 일을 주었다.

“상처 입은 검사들을 치유해주고, 적당한 지원 마법도 걸어줘.”

“맡겨만 둬!”

활동 제한이 풀린 오흐트는 싱글벙글한 상태로 치유 마법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오흐트 식 치유 마법 – 원상 복귀, 성스러운 발걸음

초대 성녀의 이름값은 어마어마했다.

입었던 상처에서 금세 새살이 돋아났고, 철철 흐르던 피도 바로 멈췄다. 이런 와중에 몸까지 가벼워지니 검사들은 각오를 다졌다.

“상대는 고작 3명이야. 맞서 싸워!”

“신관의 앞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신관님께 가지 못하게 에워싸버려! 수의 폭력이 뭔질 보여주라고.”

신관이 가세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마법사와 달리 신관은 시에라 제국의 큰 은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연변이가 나타난 거 같군.”

“확실해?”

“그래. 오크와는 명백하게 다른 기운이다. 이런 더러운 기운은….”

“설마, 마족이 나타난 거야?”

유피테르의 말에 세이라 공주의 심장이 덜컥 가라앉았다. 그래도 전처럼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최강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유피테르가 곁에 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돌연변이들은 내가….”

유피테르가 세이라 공주를 안심시키려고 할 때.

“그쪽을 막아!”

“막으라니까. 뭐 하고 있어!”

“아, 안 돼!”

검사들 쪽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지원 마법까지 받았지만, 돌연변이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돌연변이 중 한 명은 결국 포위망을 뚫어냈다.

“꺄하하하하하하! 걱정을 좀 해야 할걸?”

해머를 든 돌연변이는 검사들을 떨쳐내고는 세이라 공주의 목을 노렸다.

부우우우웅!

육중한 소리를 내는 거대한 해머가 세이라 공주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순간.

“예의가 없군.”

유피테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재빠르게 방어벽을 만들어서 공격을 무산시켰다. 얼음 방벽은 단단하게 공주를 지켰다.

“오? 인간 마법사치고는 대단한데. 꺄하하하하. 칭찬 스티커 하나 줄게.”

공격이 실패했는데도 돌연변이는 미친 듯이 웃었다.

“넌 누구지?”

“난 베타야. 내 이름, 기억해줄 거지?”

돌연변이는 시원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나 그 모습이 더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건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베타는 인사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해머를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그 일격에는 이번에야말로 묵사발을 내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너무 급한 거 아냐? 난 아직 자기소개도 못했다고.”

“꺄하하하하. 너 재밌네?”

“그거 영광이군.”

유피테르는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푸른 마나를 사방에 흩뿌리며 마법을 완성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ㅡ 얼음 화살

베타의 사각에 생겨난 수십 발의 화살은 살을 에는 냉기를 뿜어냈다. 그 덕에 견제를 넘어 위협으로까지 느껴졌다.

“칫.”

베타는 혀를 차며 망치를 거꾸로 잡고 땅에 꽂았다.

그러자 망치에서 어둑어둑한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마나는 곧바로 구체 모양의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완벽해 보였다.

‘마법을 쓰는 건 그렇다 치자.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유피테르의 눈이 신중해졌다.

오크 메이지처럼 마법을 쓰는 몬스터는 꽤 많은 편이었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건 인간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아티팩트를 든 몬스터는 지극히 적었다.

대륙 전쟁 이후, 손에 꼽을 정도로 아티팩트를 찾기 어려웠다. 유피테르의 경우 바실리 컬렉션 덕에 풍족하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슈우우우웅!

유피테르가 고민 하는 와중에도 얼음 화살은 날아갔다. 그리고 어두운 방어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얼음 속성은 이번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화살은 베타가 만든 방어막을 통째로 얼려버렸다.

숨 쉴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방어막째로 상대를 제압했다고 생각한, 세이라 공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유피테르 해, 해치운 거야?”

“아니. 아직 아니야. 돌연변이의 기운이 여전히 느껴지니까.”

그말대로였다.

베타는 얼어붙은 방어막을 그대로 깨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기대와는 다르게 멀쩡한 상태였다.

“그러엄, 이번에는 내 차례 인거지?”

베타는 땅에 꽂은 해머를 가볍게 뽑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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