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201화 (201/265)
  • 오크의 침공(6)

    * * *

    “말도, 취익―. 안 돼, 취익―”

    “취익―.”

    눈 깜짝할 새 동료들을 잃은 오크들은 얼어붙어 움직일 생각조차 못 했다.

    유피테르가 풍기는 기운은 두 다리를 옭아매기에 충분했다.

    뎅! 뎅! 뎅!

    몬스터의 본능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다.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왜? 무서워? 그래서 공격을 멈춘 거야? 오크면 오크답게 생각하지 말고 덤벼야지.”

    유피테르는 유쾌하게 웃으며 오크들을 도발했다.

    수백에 가까운 오크들에 비해 유피테르는 혼자였다. 그럼에도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그였다.

    “그쪽에서 공격할 생각이 없으면, 내가 먼저 간다? 화살도 맞아봤으니, 다음은 창을 막아보라고.”

    유피테르의 푸른 마나가 여기저기 자유롭게 흩날렸다.

    고작 그것뿐인데도 오크들은 긴장했다. 이곳에 올라온 건 인간에 눈이 먼 평범한 오크뿐이었으니까.

    저 괴물 같은 인간을 막아서려면 오크 나이트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창

    푸른 마나는 곧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창으로 변했다.

    간단한 마법이었음에도, 얼음 화살이 보여줬던 참상 때문에 오크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꿀꺽―하며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취익―.”

    오크들은 머리 위에서 은은한 냉기를 뿜어내는 창을 바라보았다.

    화살을 맞은 자들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즉사했다. 그러나 저 창은 아니었다. 곱게 보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맞서, 취익―. 싸우자! 취익―.”

    한 오크가 그렇게 기합을 지르며 유피테르에게 달려갔다. 비교적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꽤 속도가 붙었다.

    “잘 가.”

    오크의 도전은 무의미했다.

    유피테르는 달려오는 오크를 확인하지도 않고서 얼음 창을 날렸다.

    공중에 둥둥 떠 명령을 기다리던 창은 쏜살같이 오크를 향해서 날아갔다.

    “취이이익―!”

    용기를 낸 오크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앞만 보며 달려왔기에 뒤쪽이 텅 비었다. 얼음 창은 약점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파고들었다.

    “취, 취익―.”

    “마, 말도 취익―. 안 돼, 취익―.”

    뒤에서 노렸는데도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창.

    그걸 본 오크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칠 쳤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이 이기는 상상이 되지 않았기에.

    “이대로 도망가려는 거야? 난 혼자라고. 연약한 마법사를 두고 돌아가다니 오크들도 많이 죽었네.”

    유피테르의 도발에도 오크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시간만 허무하게 흘러갔다.

    평소라면 이런 식의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달랐다.

    이 상황만 유지해도 의뢰를 달성하는 거였으니.

    ‘어차피 너희들을 상대하는 건 내가 아니라 시에라 제국이라고.’

    유피테르가 이곳에 온 건 세이라 공주의 부탁 때문이었다.

    “국경 수비대 병사들을 좀 구해다 줄 수 있어? 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건 호위의 일에서 많이 벗어난 거 같은데?”

    “내가 네 정체를 어떻게 알았는지 힌트 하나를 주면 충분할까?”

    “그런 거라면야. 받아들이지.”

    꽤나 만족할만한 조건이기에 유피테르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세이라 공주는 꽤 결정적일 수 있는 힌트를 건넸다. 그 후, 유피테르는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였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변수가 존재했다.

    콰앙!

    오크들이 들어왔던 것보다 더 큰 소리가 나며 구멍이 뚫렸다.

    마법을 쓴 건 아닌지, 마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롯이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놈들아. 좀 살살해! 무너지는 성에서 그런 식으로 힘을 쓰면 되겠어?”

    “죄송, 취익―. 합니다, 취익―.”

    오크, 아니 오우거도 지나갈 법한 구멍 속에서 지라르 일행이 나타났다.

    정중앙에 신경질적인 표정의 지라르가 있었고 그 주위를 오크 나이트들이 호위했다.

    그야말로 왕자를 지키는 기사들 같은 느낌이었다.

    “바보들아! 취익―.”

    오크 나이트는 나타나자마자 큰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고작 인간 하나를 해치우지 못해 자신들을 이곳까지 오게 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오크들의 위계질서도 인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급자가 잘못해도 상급자에게 혼나는 건 늘 중간 관리자뿐이었다.

    “인간, 취익―. 무섭다, 취익―….”

    “저, 취익―. 인간, 취익―. 강력한, 취익―. 마법사, 취익―.”

    “시끄럽다! 취익―.”

    오크들이 억울함에 상황을 설명해도 나이트는 단칼에 잘라버렸다.

    그리고서는 고개를 돌려 지라르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부하의 이야기를 듣던 지라르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졌다.

    “고작 인간 한 명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걸린 거냐! 우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단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취익―.”

    “듣기 싫다!”

    지라르의 말에 오크 나이트는 아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면 불리한 건 언제나 나이트 쪽이었으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유피테르는 지라르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네가 이 오크 군대의 지도자인가 보네?”

    “무엄하군. 내가 누군지를 알고 그런 식으로 부르는 거냐. 뭣들 하냐 저 싹퉁 바가지의 목을 가지고 와라.”

    유피테르는 단지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지라르는 화를 내며 오크 나이트에게 명령을 내렸다.

    “취익―.”

    오크 나이트는 내키지 않았으나 그대로 돌격했다. 태산 같은 검과 거석 같은 방패를 들고서.

    그러나 오크 나이트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파바박!

    여전히 얼음 창들은 공중을 지배하는 중이었다.

    대기하던 창들은 유피테르의 눈짓만으로도 오크 나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명색이 상위 종이기에 아까보다 더 많은 수의 창이었다.

    달려나가던 오크 나이트는 이상함을 감지하고서 바로 멈춘 뒤, 방패를 들어 얼음 창을 막아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들은 갑옷을 믿고서 피하지도 않았다.

    ‘얼어붙지 않았다니?’

    멀쩡한 오크 나이트를 본 유피테르는 놀랐다.

    얼음 창 자체는 대단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건 아르테미스 가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얼음 화살이나 창을 사용할 땐 최대한 많은 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얼음 속성 자체의 효과를 받지 않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마왕인 티폰은 물론 공작인 시트시거나 에키드나도 얼음 속성을 완전히 무효화 하지는 못했으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유피테르는 절대로 티폰을 사냥할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갑옷과 방패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겠어.’

    마법을 난사하고 이곳에서 도망치려던 유피테르는 생각을 바꿨다.

    이미 수적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데 저런 장비까지 가졌다면 시에라 제국이 위험했다.

    조디악인 하토르가 있어도 그건 마지막 수단이었다. 아직, 오크들이 숨긴 패를 전부 파악하지 못했기에 먼저 꺼낼 수는 없었다.

    “성능이나 한번 볼까. 그 갑옷 어떤 놈이 준 거지?”

    “무슨 헛소리냐! 취익―.”

    오크 나이트는 유피테르의 말을 무시하고서는 단숨에 한 발 앞까지 다가왔다. 그후, 거대한 검을 높이 들어 그대로 내려찍었다.

    “이긴, 취익―. 건가, 취익―.”

    “취익―.”

    오크 나이트의 강력한 일격에 오크들이 환호했다.

    그들의 세계에서 저 공격을 맞고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없었으니까. 몇 번이고 보았기에 누구보다 나이트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다.

    “꽤 묵직한데?”

    “어떻게! 취익―.”

    유피테르가 방어막을 만들어 막아내자 오크 나이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고 검을 휘둘렀다.

    쿵! 쿵! 쿵! 쿵!

    무너지는 성의 소리를 지울 정도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공격이 이어질수록 모두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해갔다.

    “어째서, 어째서 죽지 않는 것이냐 인간! 취익―.”

    “오크는 날고 기어도 오크에 불과하니까. 뻔해 보이는 공격은 이제 식상해.”

    유피테르 식 육체 강화법 - 메르카르트

    마나로 육체를 강화한 유피테르는 오른손을 꽉 쥐었다.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마나가 순식간에 모이자 기세를 그대로 살려 오크 나이트의 갑옷을 후려쳤다.

    “취익―.”

    오크 나이트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

    오크 나이트가 한순간에 당하자 오크들은 합죽이가 되었다. 내심 나이트를 믿고 있던 지라르조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이.”

    유피테르가 불러도 지라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놀란 걸 보고 유피테르는 오크 대장의 평가를 낮췄다.

    그러나 아직 들어야 할 말이 남이 있었다.

    “이 정도로 정신을 못 차리다니. 몇 명을 더 죽이면 입을 열거냐?”

    유피테르는 그렇게 말하며 얼음 창을 더 만들어냈다. 그제서야 제정신이 든 지라르는 유피테르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넌 대체 누구냐! 나이트들을 이렇게 쉽게 제압하다니. 게다가 이곳은….”

    “검사들의 땅 시에라라고?”

    “치잇. 뭣들 하느냐 가서 저자를 죽여라!”

    그러나 어느 오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유피테르가 보여준 힘이 뇌 속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마법사가 분명한데 오크 나이트를 주먹으로 제압했다는 사실은 더욱 공포심을 자극했다.

    “에잇. 이 답답한 놈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이 자랑스러운 지라르 님의 부하가 맞냐!”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지라르가 화를 쏟아냈다. 그걸 본 유피테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나만 조언을 해주도록 할까?”

    “무슨 헛소리냐! 고작 인간 따위에게 들을 말은 없다! 우린 인간보다 우월한 힘을 가진 오크다!”

    “그래도 듣는 게 앞으로 꽤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미 열이 끝까지 오른 지라르에게 그 말이 들릴 리 없었다.

    우려하는 호위들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는 지라를 보며 유피테르는 씨익 웃었다.

    “앞으로 나서서 모범을 보이지 않는 리더는 부하들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유피테르는 그렇게 말하며 마법을 발동했다.

    유피테르식 특제 마법 – 얼음의 성

    “뭐라…!”

    지라르가 유피테르에게 따지려고 하는 순간, 파괴적인 냉기가 모든 걸 집어삼켰다.

    악몽이 되살아나자 오크들은 그대로 성밖으로 뛰어내렸다. 여기서 얼어죽으나 뛰어서 죽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이쪽으로, 취익―.”

    “날 놔라! 저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단 말이다. 이걸 놓아라!”

    호위들 역시 지라르를 호위하며 성 밖으로 뛰어내렸다. 엄청난 높이였으나 이미 쌓인 오크들의 시체를 재주 좋게 밟으며 최대한 충격을 줄였다. 애초에 그들은 오우거에 비견될 만큼 몸집이 거대했기에 오크들의 전철을 따르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지라르는 주변을 살폈으나 은발 마법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대륙 끝까지 쫓아서 네 놈을 꼭 죽여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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