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의 침공(2)
* * *
사자자리의 마도사, 하토르 헤라클레스가 세이라 공주와 만났을 무렵.
유피테르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시에라 국경 지역으로 향했다.
아군의 실력은 대충 알았으니, 이제는 적을 직접 눈으로 살펴볼 차례였다.
마족이 얼마나 제국을 망가트렸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귀족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황성에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예정이 바뀌었다. 오흐트만으로도 충분한데 조디악까지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꽤 상성이 좋으니 안심할 수 있어.’
하토르와 오흐트.
두 초월자의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강제로 한계를 돌파하는 육체 강화마법은 몸에 엄청난 부하를 주었다. 헤라클레스 가문도 늘 이 부분을 걱정했다.
유피테르가 변형된 마법식을 이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의 몸으로 오리지날을 사용하다간 몸 곳곳이 터져나갈 수도 있었다.
다른 방법도 많은데 굳이 몸을 좀먹는 방법을 택하고 싶지야 않았다.
그러나 오흐트라면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사기에 가까운 치유마법이 더해지는 순간, 그들은 아픔을 모르는 버서커로 거듭날 테니까.
이 이상 공주에 대해 걱정하는 건 사치였다.
그렇게 정한 유피테르는 망설이지 않고 결계를 펼쳤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푸른 나비의 결계는 여전히 유용했다.
밖에서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안에서는 밖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적의 정보를 몰래 알아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유피테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마나의 향을 최대한 억제했다. 설령 마족이 오더라도 그가 여기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렇게 몇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쿵! 쿵! 쿵! 쿵!
오크 대군의 모습보다 먼저 거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얼굴도 분간이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정돈된 발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저게 몬스터들이라고? 이건 훈련된 병사 수준 이상이잖아.’
딱딱한 제식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오크들을 보며 유피테르는 혀를 내둘렀다.
하이 오크가 지휘관으로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어느 정도 규율이 잡혀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직접 본 오크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앞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라! 취익.”
“취익―.”
“게걸스럽게 모든 걸 먹어치워라! 취익.”
“취익―.”
거대한 행렬의 맨 앞은 검을 든 오크들이 이끌었다.
평범한 오크보다도 몸집이 컸고, 좋은 품질의 갑옷을 제대로 착용했다. 초록색의 피부색만 아니라면 인간 기사라고 해도 무방해 보였다.
그 뒤를 몽둥이를 든 평범한 오크들이 열광적으로 따랐다.
그들의 눈빛은 승리에 대한 탐욕으로 이글거렸고, 다부진 근육은 전투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평범한 몬스터와는 궤를 달리했다.
오크들은 유피테르를 발견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진군했다.
‘핵심은 보이지도 않는군.’
오크 나이트와 오크의 조합만 계속 보고 있자니, 지겨워졌다.
상대하기 귀찮은 오크 메이지나 다른 돌연변이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중요 전력을 숨긴다는 건 애초에 몬스터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강자 독식
이게 몬스터와 마족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였으니.
이번 한 번만 참자. 다음 한 번만 더 보자.
이렇게 되뇌던 유피테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히히힝―
“고작 말 주제에 감히 내 말을 무시하려는 거냐!”
흰말은 고삐를 잡은 오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거세게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위에 있는 건 범상치 않은 오크였다.
등 뒤에는 무시무시한 느낌의 도끼가 걸려 있었고, 착용한 갑옷도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상등품이었다.
오크는 두 다리로 말의 배 부분을 강하게 쥐어짜고서 기운을 쏘아냈다.
히히히히히힝!
말은 포기하지 않았다.
몸을 압박하는 기운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혔지만, 미친 듯이 계속 몸을 털었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생각보다 제어가 잘되지 않자 오크는 윽박지르며 더 강한 기운을 뿜었다.
“이, 이게! 내가 누군지를 아느냐? 바로 지라르 산맥의 패왕인 휴톤이다.”
평범한 말에게 필요 이상의 마나는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말은 저항하는 걸 포기하고 고분고분해졌다.
“그래. 이 휴톤 님에게 선택받은 걸 축복으로 여기란 말이다. 이 미물아.”
휴톤은 만족했지만, 그가 사용한 마나는 오크 군대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잠시 정지! 취익.”
“취익―.”
“그대로 멈춰서 대기하라. 취익.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오겠다. 취익.”
“취익―.”
갑작스레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오크 나이트들은 행군을 멈췄다.
그 말을 들은 오크들은 단 하나의 의문도 가지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멈추었다.
놀라운 나이트조차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취익. 휴톤 님. 취익.”
“이상한 점이라도 취익. 발견하신 겁니까? 취익.”
휴톤의 상황을 보러온 오크 두 명이었다.
말이 오크지 오우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몸집이 컸고, 그에 맞는 대검까지 장비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돌연변이였다.
‘어째서 마족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설마 이것도 마족의 작품이라는 말인가.“’
특이한 두 오크에게서 마족의 마나가 여실히 느껴졌다.
제아무리 유피테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누구의 짓인지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너희들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 쓰지 말고 다시 진군시켜라.”
“알겠습니다. 취익.”
“곧 인간들의 땅이니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취익.”
말과 기 싸움을 벌였던 게 부끄러웠던 휴톤은 그들을 돌려보냈다. 돌연변이 오크들은 은근한 부탁을 하고 나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다시 진군하기 시작한 오크의 대군은 어느새인가 저 멀리 사라졌다.
“직접 와봐서 다행이야.”
유피테르는 결계를 해제하며 중얼거렸다.
돌연변이의 존재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맞춤 전술을 짤 수 있었으니.
“일단 돌아가서 세이라 공주와 말을 해봐야겠네.”
* * *
똑똑
황실의 집무실에서 다과를 즐긴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도 좋다.”
세이라 공주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 오흐트를 바라보며 입실을 허가했다.
“다들 모여있었나. 다행이네.”
“유피테르!”
“어서 와 마스터!”
“자네가 말로만 듣던 그 유피테르인가? 확실히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
세이라 공주, 오흐트 그리고 하토르는 유피테르의 귀환을 반겼다.
차라라라락!
유피테르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대기하던 메이드들은 곧바로 자리를 만들었다.
“고마워요.”
유피테르는 감사함을 표하고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즐겨 마시는 차가 바로 준비되어 테이블에 올라왔다.
“마스터 어디 갔다 온 거야?”
“그것보다는 내 말 좀 먼저 들어줘. 네가 이분을 데리고 온 거야? 하토르의 말은 조금 다르던데.”
잠시 고민하던 유피테르는 세이라 공주의 질문에 먼저 대답했다.
“내가 부른 건 천칭의 마도사야. 그분에게 부탁해서 가장 적합한 조디악을 보내 달라고 했어.”
“아, 일이 그렇게 된 거구나.”
세이라 공주는 쉽게 넘어갔으나, 하토르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단순하다고 해도 천칭은 일개 마법사가 가까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천칭님과 친분이 있다고? 같은 조디악도 그분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헛소리하지 마라.”
“우리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잊었어?”
유피테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카르멘 비제
전 아르테미스 가주인 그는 물병자리의 마도사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꽤 천칭과 친하게 지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에 숨겨진 비밀이 많다는 건 리투아 제국에서는 유명한 일이었다. 하토르 역시 헤라클레스 가문 출신이었기에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이런 작은 조각들이 합쳐져 유피테르의 말을 그럴듯하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천칭 님을 본 것만으로도 좋으니 그건 넘어가고.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건가?”
“맞아. 연락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면 안 돼!”
“넌 나의 호위라고 유피테르.”
세 사람은 합심해서 공격했다. 그러나 유피테르에게 이 정도는 가뿐했다.
“오크들을 확인하러 갔어. 정보는 많을수록 좋잖아?”
“국경에서 황성까지는 꽤 멀다고 들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그건 내게도 힘든 일이다.”
그 말에 가장 놀란 건 하토르였다.
오흐트야 유피테르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세이라 공주는 유피테르가 상식을 부수는 마법사라고 이해했다.
해답을 준 건 오흐트였다.
“마스터는 고대 아티팩트 몇 개를 가지고 있어. 그중에 하나가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거야. 마나를 엄청 먹어서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고대 아티팩트의 소유자라면 가능한 이야기로군.”
하토르는 이번에도 큰 의심 없이 넘어갔다.
고대 아티팩트를 구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는 공작 가문의 자제였다.
신분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네가 그렇게 우리 제국을 생각해주는지는 몰랐는걸?”
“네가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았는지를 들으려면 우선 너와 제국을 살려줘야 하지 않겠어?”
“맞는 말이네.”
유피테르는 약속을 들먹였다.
아직까지도 비밀을 이야기해주지 않은 세이라 공주에 대한 작은 복수였다.
그러나 세이라 공주 역시 발톱을 숨긴 맹수였다.
“제국의 상황이 안정되면 그때 알려줄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이번에는 확실한 거지? 이러려고 시에라 제국에 온 게 아니라고.”
“걱정 마. 나는 한 번 한 약속은 확실하게 지켜. 네가 원하는 아카데미생을 찾는 것도 도와줄게.”
“약속한 거다?”
유피테르와 세이라 공주 사이의 약속을 모르는 하토르는 멍하니 이야기를 들었다. 유피테르는 괜한 오해를 받기 전에 하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오크 말인데.”
“뭔가 좋은 정보는 건졌나?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하토르의 눈빛이 밝아졌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말인데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조디악이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되었으니까.
“네 부하의 정보가 잘못되었어. 경비대를 새로 바꾸는 걸 추천할게.”
“마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걸 빼면 그리 나쁘지 않은데. 아무리 유피테르 너라도 그런 식의 모욕은 참기 힘들어.”
아끼던 부하들의 능력을 의심받은 세이라 공주의 언성이 높아졌으나, 유피테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모욕? 난 사실만을 말했어. 수만의 오크가 오는 건 맞아.”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돌연변이 개체가 껴있었어. 내가 확인한 것만 해도 적어도 두 채 이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