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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95화 (195/265)
  • 아직 한 발 남았다(7)

    * * *

    훅! 훅! 후훅! 훅! 훅!

    마법사의 주먹은 매서웠다.

    헤라클레스 특유의 리듬은 유피테르의 빈틈을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공격에 익숙해질 즈음, 갑자기 엇박자로 치고 나가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헷갈렸다.

    단 1초.

    유피테르가 고민한 시간은 정말로 짧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그러나 이 무투파 마법사는 무언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주어진 시간을 비정상적으로 쪼개서 사용했다.

    어떤 공격을 사용할지, 어디를 노릴지, 상대의 반격은 어떠할지.

    이 모든 걸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

    “거기냐!”

    마법사는 오른손 주먹을 동그랗게 말았다. 고작 그것뿐인데도 제련한 쇠를 연상시켰다.

    불끈 솟아오른 육체에 어울리는 단단한 주먹은 유피테르 얼굴 왼쪽으로 나아갔다.

    “너무 뻔하잖아요?”

    유피테르는 몸을 틀어서 주먹을 피해냈다.

    이 모든 건 세바스 덕이었다.

    능력 있는 집사는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어린 대공자에게 말도 안 되는 훈련을 시켰다.

    그중에는 검사의 기술을 배우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그걸 비웃었지만, 지금 그 효과가 여실히 발휘되는 중이었다.

    “뻔하다라….”

    공격이 실패하자 마법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건 유피테르의 착각이었다.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샤샥!

    마법사는 순간적으로 유피테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슨 속도가…!”

    유피테르는 습관적으로 마나 감지를 퍼트리려다가 생각을 고쳤다.

    그 대신 최대한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근육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했으니 다른 수가 없었다.

    ‘마나를 감지하지 못하니 불편해 죽겠네. 그 방법을 써서 일단 상황을 바꿔야겠어.’

    전투 경험은 쌓으면 쌓을수록 도움이 되었다.

    마나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자와 싸우는 건 흔하지 않았다. 검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니 뜻깊은 경험이었다.

    다만, 그게 하필 지금이라서 골치가 아플 뿐.

    “전투 중에 다른 생각을 하면 쓰나! 그런 거로 타오를 리가 없잖나!”

    유피테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마법사는 유피테르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강력한 발차기를 날렸다.

    ‘이걸로 끝이다!’

    마법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은발의 마법사가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지는 운명이 보였으니까.

    다른 공격들은 용케 피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사각을 잡았다.

    최강의 마도사라고 불리는 천칭이 와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신속하고, 강력한 한 방이었다.

    퍼어억!

    마법사의 예상대로였다.

    유피테르는 별다른 반격을 하지 못하고 땅으로 쓰러졌다.

    생각보다 충격이 더 컸는지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바닥에 널부러져 꿈틀거리지조차 않았다. 공격을 맞자마자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내 발차기를 맞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지. 하하하하!”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 무엇을 숨기랴. 내가 바로 헤라클레스 가문의 마법사단 단장인….”

    “하토르 헤라클레스지?”

    무언가가 이상했다.

    이곳에 있던 건 그와 수상한 침입자, 둘뿐이었다. 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침입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있어야만 했다.

    그럼 자신과 대화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마법사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있던 것은….

    “너, 너, 네가 어떻게 두 발로 서있지?”

    …쓰러져 있어야만 하는 수상한 침입자였다.

    “공격을 그렇게 봤는데 눈에 안 보일 리가 있겠어요?”

    “웃기지 마라! 형님도 육체 강화법에선 나를 이기지 못한단 말이다.”

    하토르 헤라클레스는 현 가주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머리가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모든 재능이 마법에 몰려 있었다. 그 덕에 마법사단 단장의 자리를 맡았다.

    초월자 중에서도 초월자인 조디악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가주의 자리에 전혀 욕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육체 강화라는 비기의 끝을 보는 거였다.

    이 덕에 그는 헤라클레스 가문의 수호자라고 불렸다.

    “후우.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해요.”

    “그게 무슨 헛소리….”

    한숨을 쉬며 마나를 모으는 유피테르의 행동에 하토르는 긴장했다.

    무슨 소리인지는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상대는 결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머리는 멍했지만, 단련된 육체는 배신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서 움직였다.

    두려워하는 것보다 먼저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마나가 무섭다면, 마법을 완성하기 전에 박살을 내면 되는 거잖아?’

    해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아직 완성을 시키지 못한 침입자를 향해 최고의 주먹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피테르의 예상대로였다.

    “이, 이게 무슨….”

    하토르는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 제대로 배를 가격했는데도 손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허공에다 칼질하는 것처럼.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직도 환상 마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시네요. 사자.”

    기억이 있는 말투에 하토르 설마 하는 기분으로 물었다.

    “그 말투는… 천칭이십니까?”

    “이제야 기억을 해냈나요?”

    하토르가 공격하는 걸 포기하자, 유피테르도 모아두었던 마나를 원상태로 되돌렸다.

    마나를 모은 것 자체가 속임수였다.

    사자자리의 마도사 하토르는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하여 있었다. 이 점이 시트시거와 다른 부분이었다. 시트시거는 필요하다면 계략을 뽑아낼 수 있는 마족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다른 마법을 탐구하기보다는 육체 강화법에만 몰두했다.

    장점을 극대화해 다른 단점을 모두 묻어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천칭 님 어째서 저를 찾으셨습니까? 조디악 회의가 열린 것도 아닌데….”

    조디악은 정기적으로 만나지는 않았다.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고, 마법에만 빠져있어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요청을 하면 모이기는 했다. 그마저도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천칭의 마도사가 직접 소집할 때는 달랐다. 조디악 내에서도 특별한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나요?”

    “천칭 님께서 이렇게 몸소 와주셨는데 거절할 놈들은 없을 겁니다.”

    “고마워요.”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으신 겁니까? 성국의 일을 제외하면 평온한 하루가 계속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게 말이죠….”

    천칭의 모습을 한 유피테르는 시에라 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빠르게 설명했다.

    유피테르의 말솜씨는 탁월해서 하토르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족! 그 더러운 놈들이 여기저기서 설치고 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하토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칭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마족이 나타났다는 것도 사실일 게 분명했다. 인류의 최강자로서 마족이 날뛰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피가 끓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실 겁니까?”

    “다른 준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연합니다. 오크들 정도로는 몸풀기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시에라 검사들의 실력까지 볼 수 있다면 제가 감사하죠.”

    “알겠어요. 그럼 이동할게요.”

    하토르의 의지를 확인한 유피테르는 마나를 이용해 공간 이동 마법을 발동했다.

    “천칭 님이 사용하신 이 마법은 언제 보아도 대단합니다. 너무 복잡해서 저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과찬이에요.”

    그렇게 두 조디악들은 리투아에서 시에라 제국의 황성으로 이동했다.

    * * *

    시무르크와의 이야기를 끝낸 세이라 공주는 지친 표정으로 침실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유피테르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공주는 오흐트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따졌다.

    호위가 이런 식으로 자리를 비우는 건 상식을 벗어나다 못해 부순 행동이었다.

    “조디악을 부르러 갔어. 어차피 당장 마족이 오지는 않을 거잖아?”

    오흐트의 대답을 들은 세이라 공주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마족보다 오크의 대군이야.’

    세이라 공주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마족은 숨어 있는 위험이었으나, 오크는 모습을 드러낸 위협이었다.

    황제의 죽음으로 흔들리는 시에라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회의에서도 두 파벌로 나뉘어 싸우기만 했다. 조디악을 데려온다는 유피테르의 말이 없었으면, 여전히 싸우고만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시무르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둘만 있을 때도 예의 시에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오흐트.”

    “응? 무슨 일이야 언니.”

    “내가 이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는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세이라 공주가 뛰어난 능력을 지닌 건 맞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벅찬 일이 연속해서 일어났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했다.

    힘과 능력이 있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는 건 착각에 불과했다.

    “세이라 언니.”

    “응. 네 생각을 들려줘.”

    “언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잖아? 이 힘든 일을 잘 해결하면 그 이상의 행복이 오지 않을까?”

    “분명 그럴 거야.”

    초대 성녀였던 오흐트는 상담에도 능했다.

    애초에 레아교의 사제들은 고해성사를 주관하는 일도 많았다.

    마법사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창조신의 말씀을 널리 퍼트리는 게 그들의 일이었으니.

    “아, 그러면 유피테르가 데려올 조디악에 대해서 아는 건 있니?”

    오흐트의 말로 한결 마음이 편해진 세이라 공주가 화제를 돌렸다.

    조디악 중 가장 유명한 자는 천칭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부르는 건 아무리 유피테르라도 힘들어 보였다. 세계의 조율자는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서만 나타났으니까.

    다음 후보는 카르멘 아르테미스였다.

    가장 그럴듯한 후보였으나 그럴 데려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인간을 배신했다는 소문은 시에라 제국에도 퍼져 있었으니.

    오히려 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만 했다.

    ‘사수자리라도 데려오려나?’

    가장 유명한 자들을 제외하고 나니 남은 이들에 대한 정보는 적었다.

    그래도 꼭 필요한 정보였다.

    어떤 조디악이 오냐에 따라 오크의 대군을 막아낼 확률이 달라졌으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마스터의 연줄이니까. 그래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

    “응. 마스터의 성격이라면 도움이 될 사람을 딱 맞춰서 데려올 테니까.

    “확실히 그렇네.”

    세이라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테르를 알게 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카리스마 같은 게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에 부닥쳐도 반드시 해결해줄 것만 같은 믿음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이어나가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설마, 유피테르도 조디악의 일원인가? 에이 아니겠지. 거긴 이상한 사람들 천지라던데. 유피테르는 그래도 말도 잘 통하고 인간적이었잖아?’

    세이라 공주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지나친 추측이었다. 만약, 유피테르가 조디악이라면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 명성만으로도 공주인 자신과 맞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유피테르가 조디악이라면 다른 조디악을 부르는 게 이치에 맞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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