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 대혈전(10)
* * *
늑대를 연상시키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닌 마족의 기세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저 말을 건 것뿐인데도 황제의 손은 덜덜 떨렸다.
팅!
기세 싸움에서 밀린 황제는 꽉 쥐고 있던 검을 떨어트렸다.
땅으로 떨어진 검은 청아한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나버렸다. 황제의 힘이 부족하거나 검이 잘못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드워프가 고심해서 만든 검이 허술할 리는 없었다. 그건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단지, 오흐트의 방어막이 생각보다 더 단단해서 검의 수명을 급격히 단축시켰을 뿐이었다.
“간악한 마족 녀석 황제 폐하께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재상 키마라가 마족이라는 확신이 서자 호위 검사가 소리쳤다. 평소 재상이 나불거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실려있었다.
“시끄럽네?”
“나는 네 주인인 황제와 대화하고 있다. 그게 신하 된 자로서 해야 할 도리인가?”
마족은 그런 검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리 가라고 손을 살짝 휘둘렀을 뿐이었는데, 검사의 운명이 결정되어버렸다.
“마, 말도 안….”
용감하게 나섰던 검사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황제의 호위를 맡을 정도로 품격있는 강자로 소문난 검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조차 해보지 못했다.
마족이란 인간의 이치를 초월한 존재였으니까.
“허, 헉….”
“무슨 마법을 쓴 것 같지도 않았는데!”
너무 간단하게 한 생명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숨을 삼켰다.
괜히 마족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호위 검사의 뒤를 따르게 될 게 뻔했으니까.
“좋아. 역시 인간은 바닥을 박박 기어야 제맛이지!”
“자, 황제 폐하! 이야기를 계속해볼까. 당신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듣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각각의 머리는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쏟아내었다.
그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공포의 잠식된 분위기 속에서 그런 건 불가능했다.
‘한쪽은 전형적인 마족이고, 다른 쪽은 조금 애매하군. 재상의 의지가 남아있기로 한 건가? 아직 정보가 더 필요해.’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굳어있는 상황인데도 유피테르는 홀로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공격을 통해 마족의 격을 파악한 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마족은 유피테르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는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저 정도의 마족은 마차를 가득 채워서 등장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재, 재상? 자네인가? 어째서 나를 배신했는가! 제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애타게 재상을 찾는 황제의 목소리에서 위엄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겁에 질린 눈동자는 떨렸고, 재상이었던 마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위엄있게 유피테르의 말을 들어주던 모습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하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폐하. 마족이 제 몸을 집어삼켰사옵니다. 부디 구해주시옵소서!”
한쪽 머리는 미친 듯이 웃었지만, 다른 쪽 머리는 달랐다.
유난히 이성적이었던 그는 재상을 떠오르게 하는 얼굴을 하고서 황제에게 부탁했다.
“재, 재상!”
울먹임에 황제의 가슴이 요동쳤다.
도저히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고, 당장이라도 나서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황제는 참지 못하고 호위무사에게 다가가 검을 뺏었다.
딱히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가장 가까이에 보인 게 호위를 맡았던 자의 검이었을 뿐.
“폐하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동료의 죽음에도 호위 검사는 의연하게 직언했다.
황제의 얼굴에는 표정이 전혀 없었다. 이대로라면 마족의 노림수에 넘어갈 게 분명했다.
알면서도 나서지 않는 건 검사의 정신에 맞지 않았다.
“폐하!”
“무엄하다!”
검사는 뺏긴 검을 되찾으려 몸부림쳤으나 무위에 그쳤다.
황제의 일갈과 함께 마족의 마나가 그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시에라 최강의 검사도 마족의 앞에서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조금만 기다리게 재상. 내 빨리 편하게 해줄 테니.”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재상에게로 다가가는 황제.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던 신하들과 호위 검사들 그리고 그림자들은 그걸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마족이라는 절대적인 ‘적’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자, 재상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는가.”
“오오오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재상의 얼굴을 한 마족은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더니,
“그러면 이제 죽어주시옵소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황제의 배를 뚫었다.
“뭐, 라고?”
“폐하가 알고 있는 재상은 없는 사람이옵니다. 황제 폐하가 그렇게 역할을 잘해주셔서 자식분들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 이 자식이! 키마라! 그게 무슨 소리냐!”
배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도 황제는 주먹을 쥐고서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역시, 황제라도 부모라는 겁니까? 어차피 곧 만나실 텐데.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맞아 맞아. 네 심장도 잘 쓸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한 황제는 이를 갈며 분노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마족의 손에 꿰뚫린 몸은 더는 무리라며 소리쳤고,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저 멀리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와 손짓했다.
“빌, 어먹을. 시에라 제국의 검들인 네놈들을 살려 보내지 않을….”
“너무 길다. 빨리 죽어라.”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폐하.”
마족은 황제가 유언을 말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꿰뚫은 손을 빼자, 황제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마족의 손에는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놓여 있었다.
“황제 폐하!”
그림자의 수장이었던 노파가 울부짖었다.
황제의 상태가 이상할 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직접 눈으로 보니 충격이 너무나도 컸다.
“멍청한 인간들아. 이제는 너희의 피가 필요하다.”
“너희들이 피로 우리 마족들에게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거다!”
마족은 입맛을 다시며 집무실에 남은 자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소름 끼치는 시선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희망의 빛은 사라졌고, 밤바다 같은 절망만이 황성을 장악했다.
마족이 정한 첫 목표물은 그림자의 수장이었던 노파였다.
재상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기에 누굴 공격해야 효과적인지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천천히 노파에게 다가간 마족은 황제에게 했던 것처럼 심장을 뺏으려고 손을 뻗었다.
“황제 폐하. 이 늙은이도 따라가겠습니다.”
노파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고 마족의 손에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설령, 그게 황제의 유언을 거스르는 일이라도 말이다.
황제가 죽는 걸 막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자 몸에서 힘이 탁 풀렸다.
황제의 복수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도저히 차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잠깐.”
유피테르가 마족을 멈춰 세웠다.
“감히 마족의 대업을 방해하려는 것이냐?”
“유피테르라고 했나. 용기는 가상하지만, 너도 곧 죽여줄 테니 가만히 있거라.”
유피테르라는 이름을 들었어도 마족은 큰 감흥이 없었다. 마법을 좀 쓸 줄 아는 것 같았으나 그건 의미 없는 발버둥이었다.
문제는 신성 마법을 쓰는 꼬맹이였는데, 가만히 있으니 상관이 없어졌다.
열심히 물을 주며 키웠던 나무의 열매를 수확하는 게 더 중요했다. 내려진 명령을 우선시하는 게 올바른 마족의 도리였다.
“대업인지는 모르겠고. 덤벼.”
“제 분수를 모르고 까부는군. 인간 주제에 감히 마족님에게 덤비는 거냐?”
“자기 자신을 그렇게 부르면 부끄럽지 않아? 마족의 감성은 좀 다른가?”
“이 자식이!”
명백한 도발에 마족은 참지 않았다.
우웅!
마족은 강력한 마나를 모아 구체 하나를 만들어냈다.
검은 기운이 압축된 그것은 마법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불길했다. 그야말로 작은 재앙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렸다.
“그거 알아?”
“…?”
마족은 슬며시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유피테르는 여유를 부리며 어떠한 마법도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마나를 숨기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격할지 몰라 사방을 확인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은발의 마법사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다.
‘허세인가. 입만 산 놈이군. 그래. 네 놈부터 시작해주마.’
어차피 심장은 어떤 인간의 것이라도 상관이 없다고 했었다.
황제의 심장을 얻은 이상 나머지는 그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강한 말을 쓰는 건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라던데?”
유피테르의 그 말에 마족은 순간적으로 휘청였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는 마법사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고작, 인간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모든 생각이 날아갔다. 분노라는 감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며 활활 타올랐다.
마족은 흉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노파에게서 유피테르로 표적을 바꾸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네놈부터 해주마!”
처음으로 두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 같아졌다.
분노라는 감정에 지배되어 달려드는 마족을 보며 유피테르는 쾌재를 불렀다.
‘더 정보를 줘봐. 고작 네가 이 모든 일을 했을 리는 없잖아? 네가 어느 파벌에 있는지 보여보라고.’
유피테르는 일부러 방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야만 마족이 지닌 패를 볼 수 있었기에.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시에라 제국의 황제를 노린 이유도, 심장이 있어야 하는 이유도.
예상 답안 몇 개 정도 이미 머릿속에 있었으나, 그들의 입에서 나온 정보가 아니면 쓸모가 없었다.
어중간한 추측은 없는 것보다 못했으니까.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움직이다가는 ‘바실리’의 비극을 한 번 더 재현할 뿐이었다. 그런 슬픈 일은 유피테르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죽어라!”
단 한걸음에 유피테르에게 닿은 마족은 구체를 날렸다.
마족의 마나를 그대로 삼킨 구체는 주변을 장악하며 유피테르의 심장을 노렸다.
어떠한 영창도, 시동어도 없었다.
그저 마족이 원하면 마나가 그것을 따라 움직였다.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푸르른 마나가 유피테르 주변에 나타나 결계를 만들었다. 나비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이건 그가 제일 좋아하는 마법이었다.
“결계 마법을 이렇게 빨리 만들다니. 쓸모 있는 놈이었군.”
인간 같지 않은 실력에 마족은 감탄했다. 마나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건 마족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으니까.
마족의 마법은 인간들과는 격이 달랐다.
인간들의 마법이 지식을 배우는 과정이라면, 마족의 마법은 알고 있는 지식을 시험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마족은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웃었다.
‘그게 네놈이 가진 비장의 무기였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