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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84화 (184/265)
  • 샤르 대혈전(7)

    * * *

    “마왕 오르토스? 이런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읽은 오흐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아교의 초대 성녀이자 칼리스토의 일원이었기에 마족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적은 그녀였다. 그런데도 마왕과 오르토스라는 이름에서 끝내 연결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오흐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피테르의 도움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마스터. 이 편지는 뭐야? 마왕은 티폰이고. 티폰은 마스터가 죽였잖아.”

    우당탕탕!

    마왕을 죽인 게 유피테르라는 말에 놀란 미스틸이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마왕 티폰

    그건 절대로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평범한 마족들도 막강한 힘을 지녀 공포의 대상이었다. 공작들보다 더 위에 있는 마왕은 언급하기조차 꺼리는 게 당연했다.

    그런 존재를 유피테르가 죽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무슨 일인데.”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놀라서 그런 것뿐입니다.”

    오흐트가 치유 마법을 써주면서 묻자, 미스틸은 두 손을 흔들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흐응, 그렇구나. 아픈 데는 없지?”

    “예. 말끔합니다.”

    미스틸이 멀쩡한 걸 확인한 오흐트는 그대로 유피테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막힘없이 명령을 내리던 마스터라면 해답을 줄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오르토스는 티폰과 에키드나 슬하의 자식이다. 케르베로스는 알고 있겠지?”

    “그 머리 셋 달린 귀염둥이? 걔는 알아. 그럼 오르토스도 강아지야?”

    역시 유피테르는 척척박사였다. 오흐트가 궁금해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그래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남았다.

    오르토스의 정체는 알게 되었지만, 마왕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서로 먼 거리였다.

    태초의 세 마족이라 불렸던 에키드나도 마왕 ‘대리’에 불과했고 시트시거는 공작이란 자리에 만족하는 듯 행동했다.

    즉, 자식이라고 해도 ‘마왕’의 이름을 함부로 칭할 수는 없었다.

    유피테르와 오흐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미스틸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이 이상은 제가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으니. 나가 보고 싶습니다만….”

    마족과 마왕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오가자 미스틸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남은 목숨인데 괜히 나섰다가 죽고 싶지 않았다. 숨을 쉬며 유피테르를 보는 것조차 환상인 것만 같았다.

    이 이상 마족과 연관되는 것은 역시 사양하고 싶었다.

    슈바인의 복수는 하고 싶지만, 그건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나 드워프에게는 걸맞은 능력이 없었다.

    “상관없다. 황성의 비밀통로는?”

    “이곳에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미스틸은 품속에서 돌돌 말은 종이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제가 그린 설계도입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100%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못하지만?”

    “90% 이상은 이 구조일 겁니다.”

    나가고 싶다고 했을 때와 다른 확신에 찬 목소리.

    그걸 들은 유피테르는 올려놓은 종이를 펼쳐 훑었다.

    ‘나쁘지 않은 완성도군.’

    확실히 드워프의 눈은 믿을 만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족의 습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할 일을 제대로 해냈다.

    미스틸이 그린 설계도면은 군사 기밀로 취급될 정도로 세세했다. 어디로 가면 이목을 피할 수 있는지 누가 봐도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으나 거짓으로 작성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유피테르는 마족 스트레스 속에서도 부탁한 일을 해낸 미스틸의 노고를 높이 샀다.

    “좋아. 수고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혹시라도 필요한 일이 있으시다면 마을로 와주십시오.”

    허가가 나자 미스틸은 헐레벌떡 방 밖으로 나갔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그 저런 식으로 보내도 돼? 함정일지도 모르잖아.”

    “네가 그런 생각도 할 줄 아나?”

    “무시하는 거야! 내가 이래 봬도!”

    “우는 마족도 박살 내 버리는 초대 성녀님이시지.”

    유피테르가 대놓고 놀리자 오흐트의 뺨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정말 걱정해서 물었는데 장난스러운 대답이 돌아왔기에.

    그렇다고 해서 유피테르의 말이 장난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마족들은 초대 성녀로 활동하던 시기의 오흐트를 보기만 해도 벌벌 떨었으니까.

    그녀의 덕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감사함을 담아 직접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오흐트는 무력에만 치중한 그 별명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오흐트는 어디까지나 ‘치유사’였으니까.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잖아. 정말 어떻게 할 거야? 라플라스가 상대가 아니라면 일이 귀찮아지는데.”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어.”

    “그게 뭔데?”

    유피테르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서는 오흐트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응? 뭐 하는 건데 이게.”

    “공간이동.”

    그 말만을 남기고 두 사람은 드워프가 친 임시 거점에서 사라졌다.

    * * *

    시원한 강물이 오후의 더위를 말끔히 날려버리는 황성의 앞에 작은 빛이 나타났다.

    반짝!

    공간이동의 빛이 빠르게 사라지며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은발을 지닌 남자와 귀여움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녀.

    바로, 유피테르와 오흐트였다.

    황성의 앞에는 경비병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경계 중이었다. 그러나 사용된 마나가 극히 적었고, 시야의 사각지대였기에 발각되지 않았다.

    “여긴… 황성이잖아. 뭐가 하고 싶어서 이리로 온 거야 마스터?”

    도착한 위치를 확인한 오흐트는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공간이동 직후에는 머리가 띵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게 태반이었다.

    그러나 유피테르의 마법은 다른 이들과는 질적으로 달랐고 오흐트도 평범한 마법사는 아니었다.

    “일단 받았으니 들어가 보자고. 황제의 상태를 눈으로 봐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네.”

    설득력이 있는 유피테르의 말에 오흐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편지의 내용이 뭐였기에 저런 태도인 거지?’

    오흐트는 유피테르가 조급하게 굴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원인이 편지에 있다고 추측했다.

    오르토스라는 자가 드워프들을 구해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실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피테르는 라플라스가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렇다면 그걸 증명할만한 내용이 그곳에 있었다는 거였다. 게다가 자신에게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평소의 유피테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으니까.

    이건 심리전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사에서 느껴지는 ‘감’이었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투명한 얼음

    오흐트가 고민하는 사이 유피테르는 투명 마법을 사용했다. 얼음 마법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그였기에 가능한 마법이었다.

    꼼꼼히 마법의 상태를 확인한 유피테르는 오흐트에게 말을 걸었다.

    “들어가자. 오흐트.”

    “알겠어, 마스터.”

    그렇게 두 사람은 모습을 숨기고 황성의 안으로 잠입했다.

    유피테르는 메르카르트라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오흐트 역시 신성 마나를 몸에 두르고 싸우는 게 특기였다.

    육체를 강화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었기에 높디높은 황성도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유피테르와 달리 오흐트는 미스틸이 만든 설계도의 정확도를 의심했다. 마족의 습격을 받아 놀란 상황에서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설계도면을 따라가기만 해도 검사들의 눈을 완전히 피하며 이동할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문제는 다른 쪽에 있었다.

    “황제의 방까지 너무 쉽게 들어가는 거 아닐까. 마법적인 처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데.”

    오흐트는 허무하게 침입을 허용한 황성의 경비를 걱정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비밀통로 같은 곳이었는데 황제의 방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뻥 하니 뚫려 있는 공간인데도 마법적인 결계는커녕 함정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제국에서 가장 많은 호위를 지닐 황제에게 이런 지름길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의문을 해소해준 건 이번에도 유피테르였다.

    “여기 함정이 있으면 안 되지.”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긴 아마 위기 시에 황제나 황족들이 탈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일 거야.”

    “아, 비상용 탈출구 같은 곳이구나?”

    “맞아.”

    유피테르가 살았던 얼음성도 비슷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카르멘이 알려준 건 아니었고, 그저 우연히 겹치고 겹쳐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얼음성이 자랑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통로를 발견했고, 거기에서 ‘세계의 진실’을 보게 되었으니까.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그걸 떠올리자 유피테르의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왜 웃어?”

    “조금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작전 중일 때에는 항상 긴장을 풀면 안 된다고 했던 게 어디의 누구였더라.”

    “쉿. 도착했어.”

    이런 식으로 잡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인가 황제의 방에 다다랐다.

    황제의 집무실에 도착한 걸 깨달은 유피테르가 눈짓을 주자 오흐트도 조용히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파악하기 위해.

    “황제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방음이 좋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구조인지 밖의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폐하! 이대로면 백성들이 모두 굶어죽사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저 재상의 목을 쳐야만 하옵니다.”

    “다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의외로 황제의 목소리는 강직했다. 세이라 공주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부분을 하나도 모르겠을 정도로.

    오흐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목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레 물었다.

    “마스터. 황제는 멀쩡해 보이는데?”

    “내 생각도 비슷해.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겠군.”

    “좋아. 계속 들어보자.”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힘으로 이들을 제압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으나, 완벽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적었다.

    ‘디오 언니가 있었으면 든든했을 텐데 말이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디오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녀가 있었으면 한층 일 처리가 쉬웠을 테니까. 아쉽게도 그녀는 다른 임무에 투입되어 바빴다.

    “그렇사옵니다!”

    “재상이 온 후 온 나라가 어지럽습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야기로 판단할 때, 대신들은 재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시에라 제국의 현 황제는 성군이었어. 자, 어떻게 대답할 거지?’

    그러나 유피테르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봐라! 저놈들의 목을 모두 쳐라. 그리고서 성밖에 버려버려라.”

    충언을 들은 황제는 눈에 그려질 정도로 분노한 목소리로 그들을 죽이라 명령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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