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82화 (182/265)

샤르 대혈전(5)

* * *

황성에 들어갈 비밀 통로를 찾아라.

확실한 목표가 생긴 드워프들은 기세 좋게 산에서 내려갔다.

샤르를 둘러싼 산은 험준하기로 이름이 높은 산이었으나, 기세 좋게 달려나가는 드워프들을 막지는 못했다.

애초에 드워프들은 일생을 대장간에서 보내는 장인의 종족이었다. 거기다 광산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필요한 광석을 캐내는 집요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미스틸을 필두로 한 드워프 일행은 몇십 분 뒤에 황성의 뒤편에 도착했다.

“이게 시에라의 황성인가? 인간의 기술력으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운데.”

미스틸은 황성을 보며 감탄했다.

산 위에서 황성을 볼 때도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떨림이 한층 더 강해졌다.

이성(理性)이 황성의 설계도를 제멋대로 그려내는 걸 방해할 정도로.

‘이런 걸 점령하려고 했으니 당연히 실패했지. 인간들은 드워프의 생각만큼 멍청한 종족이 아니라고.’

앞쪽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강이 흘렀고, 뒤쪽은 쳐다보려면 고개가 아픈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였다.

이 성이 참혹한 대륙 전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한눈에 이해했다, 이 정도의 환경이라면 전력이 열세라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듯 보였다.

“비켜! 비키라고! 할 말이 있으니까!”

그때, 드워프의 무리가 소란스러워졌다.

성을 감상하던 미스틸은 동족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누군가가 뒤에서부터 길을 만들어내며 앞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결국, 소란의 주인공은 맨 앞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파즈.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오나. 편하게 와도 이야기는 충분히 들어줄 텐데.”

“너 미쳤어, 미스틸? 지금 이 꼬락서니를 슈바인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미스틸에게 쏘아붙이듯이 말한 건 몸집이 큰 드워프, 파즈였다. 그의 말투에는 잔뜩 벼린 칼날이 숨어 있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았다.

하지만 유피테르라는 괴물을 본 미스틸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세컨드 서클의 마법을 본 자들이 퍼스트 서클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슈바인이?”

“그래! 슈바인은 우리를 위해서 그 무서운 마족과도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넌 뭐지?”

미스틸이 이야기를 들어주자, 파즈는 흥분해서 목소리를 키웠다.

‘이곳이 황성 앞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건가. 멍청하긴. 너 같은 놈들이 있어서 슈바인이 죽은 거다.’

겁을 상실한 파즈의 행동에 미스틸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나 멍청해서 상대해주고 싶지 않았으나, 그는 꽤 인망이 있는 드워프였다.

애초에 젊은 드워프들은 슈바인을 따라 마을을 뒤로한 거였다. 당연히 그보다는 슈바인의 오른팔이었던 파즈가 더 발언력이 높았다.

마을에서조차 외면받았던 미스틸은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그가 드워프 무리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유피테르와 오흐트의 덕이었다.

“목소리를 낮춰.”

이곳은 드워프의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드워프들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마족의 술수로 드워프와 인간 사이의 신뢰가 깨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족이 아직까지도 이 황성에 남아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드워프들을 뒤처리하러 올 수 있었으니까.

먹이가 몸소 집 앞까지 나왔는데 가만히 있다면 맹수의 위엄이 울었다.

“하! 네가 뭔데 명령을 해. 정말로 슈바인의 의지를 이은 리더라도 된 것 같아?”

“여기가 어디인지 잊은 거야? 죽고 싶다면 너 혼자 죽으라고. 난 오래오래 살고 싶으니까.”

미스틸의 말에 파즈는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그랬다.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그것도 인간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있는 성이었다.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슈바인이 마족과 어떤 계약을 했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인간이 드워프를 미워하게 만든다는 대략적인 큰 그림 정도야 알려진 사실이었다.

“슈바인이 살아있었다면 그 은발의 마도사에게 무릎을 내주지 않았을 거야.”

“죽은 사람 이야기는 그만하지 그래? 재수 없어진다고.”

“너 정말 죽고 싶구나. 인간들의 손이 아니라 내 손에 너를 죽여줄게. 그러는 게 슈바인도 기뻐할 것 같다.’

위험성을 깨달은 파즈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확연히 작아졌다. 그것도 잠시, 미스틸이 살살 약을 올리자 파즈는 도저히 참아내지 못했다.

잘난 척하며 자신을 비웃는 미스틸의 모습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서부터 이어진 감정은 슈바인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불타올랐다.

“네가 무슨 현자라도 돼? 드워프에게 중요한 건….”

“머리와 재능이지. 너 같은 놈들이 있으니 슈바인이 개죽음을 당한 거야.”

우지끈!

그 말에 파즈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너, 넌…. 그 말만은 하지 않았어야 했어!”

파즈는 몸을 풀며 미스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냥 몸 이곳저곳을 스트레칭하는 것만으로도 우드득―하는 소리가 났다.

원래는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드워프들에게서 주로 나는 소리였으나, 이번만은 달랐다. 슈바인을 추종하는 파즈는 마을에서도 소문난 운동광이었으니까.

당장이라도 붙을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위험함을 감지한 다른 드워프들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해! 파즈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슈바인도 원하지 않을 거라고.”

“음음. 맞아 맞아.”

“미스틸 너도 문제야!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까 늘 혼자인 거 아니야.”

드워프들이 모두 달려들어 상황이 진정되려는 찰나, 미스틸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너희들도 대책 없이 마을을 떠나온 걸 후회하고 있지? 정말로 슈바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건 맞아?”

잔인한 말은 비수가 되어 모든 드워프들의 심장을 찔렀다.

미스틸의 말에 가장 크게 반응한 건 역시 파즈였다.

그는 만류하는 드워프들을 힘으로 밀어내고서는 성큼성큼 미스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서는―.

퍼억!

망설이지 않고 미스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탄탄한 근육은 파즈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움직였다. 곡괭이질을 할 때처럼 한껏 부푼 근육은 엄청난 파괴력으로 돌아왔다.

“원래 할 말이 없으면 폭력을 쓰지? 아, 슈바인이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런 거였나?”

한 방 얻어맞은 미스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얼굴 한쪽이 실시간으로 부어오르는데도 거침없었다.

한 대 얻어맞았는데도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이자 파즈는 주먹을 한 번 더 날렸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았으니까.

퍼억! 퍼억! 퍼억!

파즈의 몸은 머리와 따로 움직였다.

한 번만 더 때리려던 마음이 무차별적인 구타로 변했다.

‘이놈은 맞아도 싸. 장로의 아들을 그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파즈는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짐이 덜어지며 아프던 마음이 희미해졌다.

“꺄아아악!”

“그, 그만둬 파즈! 이러다가는 죽겠어.”

“왜 반격을 안 하는 거야 미스틸. 아무리 너라도!”

“맞서 싸우라고!”

비명을 지르며 어찌할 줄을 모르는 자들, 여러 명이 합세해 파즈의 주먹을 어떻게든 멈춰보려는 자들, 미스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고 물어보는 자들까지.

일방적인 폭력을 지켜보던 드워프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이대로 흘러가게 둘 수 없다는 건 같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미스틸의 도발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 이거바께 아해?(이것밖에 안 돼?)”

얼굴이 퉁퉁 부어버려 어눌한 발음에 표정조차 일그러졌지만, 그 의도만큼은 파즈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이, 이 이 자식이!”

파즈가 마치 성난 오우거처럼 가슴팍을 두드리며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고 하는 찰나.

탕!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파즈가 고꾸라졌다.

“무, 무슨 일이야?’

“어이. 파즈 정신 차려! 왜 그래?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파즈를 보며 드워프들은 패닉에 빠졌다.

드워프들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이런 공격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미스틸이 수상한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광경이 머릿속에 있던 것과 완전히 같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 이 상황은 마치….”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슈바인의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상황에 몇몇 드워프들은 기절할 정도였다.

‘계획대로야. 역시 우리 사이에 있었군.’

미스틸은 엉망진창이 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황성에 가겠다고 유피테르에게 약속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슈바인의 죽음.

미스틸이 독선적인 성격에 남들을 깔봤던 건 사실이었다. 당연히 협력과 술자리가 잦은 드워프 사회에서 배척당했다.

하지만, 그러나 슈바인이 죽자, 의외로 눈물이 찔끔 났다.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자부했었지만, 정작 죽음을 겪고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드워프 나부랭이였다는 거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슈바인이었으나 드워프의 죽음은 큰 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복수를 해주고 싶어졌다.

드워프답지 않게 명석한 미스틸의 두뇌는 무리 안에 마족이 숨어 있다는 가설을 완성했다.

마족이 아니라면 그런 방법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미스틸은 고독한 싸움을 시작했다.

* * *

“그래서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오흐트는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미스틸을 독촉했다. 가장 좋은 순간에서 멈춰버리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미스틸이 해준 이야기는 실감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다.

얻어맞았다는 부분에서는 안타까웠고, 마족을 찾아내기 위해 희생하려는 정신은 듣고는 감동했다.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는 영웅의 일대기 같았다.

하지만, 유피테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잠깐.”

“예? 무슨 일이십니까 유피테르 님.”

유피테르가 이야기를 멈추자 미스틸은 자연스레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오흐트 역시 유피테르를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잘 들어맞아.’

미스틸의 이야기 속에는 거대한 울림이 있었다. 마치, 음유시인들의 노래처럼. 심지어 앞뒤 내용까지 딱딱 들어맞았다.

유피테르가 보유한 아티팩트도 그 말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듯 진동했다.

그러나 마음속 한구석에서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유피테르의 직감이 저 말이 거짓인 것 같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유피테르는 아티팩트보다는 자신의 직감을 믿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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