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80화 (180/265)

샤르 대혈전(3)

* * *

쌔애애액!

두 검사가 한 번씩 부딪칠 때마다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검이 충돌하며 만들어진 기운.

그건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찻집이 견디기에는 아플 정도로 날카로웠다.

채앵! 채앵! 채앵! 채앵!

노파와 사내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서로의 검을 휘둘렀다.

푸른 종달새의 실내가 넓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확실했다.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문의 파편들 때문에 발 디딜 곳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두 사람에게 이런 건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공격을 계속하던 사내는 갑자기 멈추고서 입을 열었다.

“역시 황실에 있던 자는 다르네. 할멈. 할 수 있으면 처음부터 이랬어야지. 그랬으면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거잖아.”

명백한 도발에도 노파는 흔들리지 않고 빠르게 검을 찔러왔다.

‘검에 힘이 들어갔어. 저자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은 아닌 건가?’

유피테르는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되었을 당시부터 보이지 않는 결계를 쳐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손님들은 사내가 내뿜는 흉흉한 기색과 검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굉음에 겁을 먹었다. 당연히 지켜볼 생각도 없었고, 싸움을 평가할 능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아니었다.

그와 오흐트는 초월자의 영역에 있는 자들이었다. 게다가 정보를 얻을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자들도 아니었다.

티이이이잉!

유피테르의 추측이 정확했다.

몇십 합을 나누었음에도 막힌 적 없던 노파의 공격이 처음으로 대검에 막혔다.

사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검의 유리함을 제대로 활용해서 롱소드를 땅으로 처박았다. 다시는 얼굴을 들지 못하도록.

“자, 이제 어쩔 거지?”

유리함을 직감한 사내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노파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으나, 무기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장인은 무기의 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말은 반만 옳았다.

장인에게 최정상급 장비를 맞춰주면 그 이상의 효율이 나올 것이 분명하니까.

“니 증말로 미칬나?”

“할멈. 그림자면 그림자답게 조용히 살아야지. 뭘 보여주려고 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잖아.”

그림자.

유피테르는 그 단어에 바실리와의 교육을 떠올렸다.

“시에라 제국은 역사가 많이 복잡한데. 잘 따라와야 해?”

“검사들은 마법사들과 다르다는 것 정도야 알지? 그래. 맞아 잘 알고 있네.”

“그런 검사들 중에서 최고들이 바로 황실의 그림자들이야. 그들은 그야말로 살인검(殺人劍)의 대가들이니까.”

“너라면 만날 일이 없…. 아니다, 있을 수도 있겠네.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이렇게 말해봐.”

바실리와의 추억은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녀의 말, 표정, 분위기 그 모든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유피테르의 뛰어난 두뇌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바실리와의 대화를 돌이켜본 유피테르는 그 말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낮의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따사로운 햇살이다.”

“… 밤의 그림자는 누구보다 냉혹한 어둠의 친구이다.”

정답이었다.

노파는 유피테르가 기억하는 구절의 뒷부분을 정확하게 읊었다.

그리고서는 놀란 얼굴로 유피테르를 쳐다보았다. 검이 막혔을 때도 묵묵부답하던 표정이 처음으로 풀린 순간이었다.

‘그림자라면 황실의 정보를 알 수 있겠군. 일단 살려볼까.’

전에 없는 혼란에 빠진 노파를 뒤로하고서 유피테르는 천천히 두 검사들에게 다가갔다.

“뭐야. 이 샌님은.”

갑자기 앞으로 나선 유피테르를 보고선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낯선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유피테르를 위아래로 훑어본 사내의 입가에는 어느새인가 비웃음이 서렸다.

검사의 입장에서 볼 때 유피테르의 몸은 여리여리한 샌님과 다를 바 없었다. 탄탄한 근육이 하나 없다면 강한 자가 아니었다.

숙련된 검사였던 사내는 그 사실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유피테르가 아무리 초월자라고 하더라도 아직 대륙의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시에라 제국은 기본적으로 마법을 경시했기에 소문에도 느렸다.

“아하하, 맞아요. 꼴에 기사라도 되나 보네요?”

“기사들의 제국은 옛날옛적에 끝났다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면 이만 들어가라고. 죽을 수도 있으니까.”

“휘유! 나는 반해버리겠는걸? 혼자서 우리 모두를 상대하려는 용기를 높게 쳐주자고.”

사내의 주변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부하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대부분 사내에게 맞선 유피테르를 놀렸으나 휘파람을 불며 멋지다고 해주는 자도 있었다.

“기사님은 가서 공주님이나 구하라고!”

상대방이 가진 힘을 적당히 체크한 사내가 대검을 휘둘렀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선 용기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앞이라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부우우우웅!

땅에 꽂혔던 대검이 위로 솟아오르며 어마어마한 기운을 쏘아냈다.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롱소드는 박살이 났다. 오히려 장식품인데 여태까지 버틴 게 놀라웠다.

노파는 부서지는 롱소드를 놓아버리고서 뒤로 물러섰다.

“어딜 도망가!”

사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자세를 잡았지만, 유피테르가 사내의 공격을 마법으로 막아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창 & 얼음 화살

“쳇! 마법사였냐!”

사내는 혀를 차며 검으로 마법을 막아냈다.

마법을 경시한다고 해도 마법 자체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아카데미 교류전은 시에라 제국에서도 꽤나 인기를 끌었으니까.

그러나 유피테르의 마법은 평범한 마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막아냈다고 생각을 한 순간부터 검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이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든 얼음을 몰아내려 기운을 끌어 올렸으나,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사내가 얼음과 씨름할 때, 유피테르는 노파의 곁으로 다가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계약 하나를 하죠. 알았으면 뒤에서 가만히 계세요.”

“자네는….”

“그건 저자를 쓰러트리고 나서 해도 충분할 겁니다.”

“알겠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유피테르는 노파와 손님들을 보호할 결계를 만들었다.

“이, 이게 뭐야!”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이 이상은 사양이라고. 심장이 견디지를 못해.”

“아냐, 이건 마법이야. 저 은발의 잘생긴 사람이 우리를 도와주려나 봐!”

“마법사였다고? 그럼 우리 살 수 있어?”

손님들은 유피테르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보여줬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마법사의 실력을 구분할만한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끝낼 수도 있을 구원자를 애타게 기다렸을 뿐.

“이 자식이!”

때마침 얼음을 모두 털어낸 사내가 유피테르에게 달려들었다.

방금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사내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그었다.

단순한 베기였으나 경지 높은 검사에게는 산도 가를 수 있는 일격이었다.

‘끝났군.’

사내는 승리를 확신했다.

마법사라는 걸 알고 꽤 긴장하긴 했으나 그들은 접근전에 약하다고 들었으니까.

애초에 저렇게 가는 팔로 대검을 막아낼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힘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난 거야? 이거 원 몸만 커버린 어린애잖아.”

유피테르는 한 수 위였다.

묵직한 대검을 고작 두 개의 손가락만을 써서 막아냈다. 그리고서는 한쪽 입꼬리만을 올리며 사내를 도발했다.

“얘들아 한꺼번에 붙어! 이놈을 죽여버린 뒤에는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마법사에게 자신의 검이 밀린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은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원을 그리며 유피테르를 포위했다.

다양한 형태의 검을 들고서는 유피테르를 위협했다.

“너희 마법사들이 좋아하는 말이 있다지?”

“…?”

상황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말에 유피테르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무슨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내는 유피테르의 시선을 느끼며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말 하나를 내뱉었다.

“수에는 장사가 없다고 말이야!”

사내의 말이 끝나자 부하들이 득달같이 달라붙어 검을 휘둘렀다.

휘잉! 슈웅! 쌔앵!

다양한 검의 형태에 맞는 다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치웠군.”

“마법사의 말을 들었다니 좀 놀랍네. 하지만,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뭐라고?”

“마법사든 검사든 시간을 주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이야!”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니플헤임

유피테르가 직접 고안한 최강의 빙결 마법이 푸른 종달새의 안을 한 번에 뒤덮었다.

어디서부터라고 말할 수도 없이 사방에서 차가운 기운이 사내와 부하들을 공격했다.

“하, 하지 마!”

“저리 가라고! 고작 마법사 주제에.”

기세등등하게 있던 부하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두려움의 그늘이 얼굴을 빠르게 잠식해나갔다.

시트시거조차 마주치지 않고 피하려고 했던 특제 마법을 고작 검사들이 막아낼 리 없었다.

그들이 있던 공간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시간마저 사라졌다.

“마, 말도 안 돼. 검사는 최강이라고!”

부하들이 한 번의 공격으로 전부 죽은 걸 보고 사내가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마치, 이 뒤에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 듯이.

그게 사내의 마지막 말이었다.

* * *

유피테르가 펼친 마법 때문에 푸른 종달새의 실내에는 냉기가 풀풀 풍겼다.

하지만, 결계 안에서 벌벌 떨던 다른 손님들은 전원 무사한 듯 보였다. 노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무사한가요?”

확실히 하기 위해 유피테르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살았어요. 제가 이 나라의 귀족이니 꼭 대접할게요.”

“감사합니다.”

“혹시… 마블링에 출전하지 않으셨나요?”

유피테르의 생각대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철문의 파편이나 사내가 뿌려댔던 기운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조금 있었다.

그런 자들은 오흐트의 힘으로 빠르게 치유했다.

“오늘 장사는 끝났슈! 내일 다시 오면 무료로 해줄 텐게, 또 보슈.”

노파의 말에 손님들은 훈훈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렇게 모두가 돌아가고 난 후.

푸른 종달새에는 전투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곳곳에는 검으로 베어낸 자국이 가득했고, 장식품들은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깨져있었다. 게다가 얼어붙은 ‘적’들도 유피테르를 기다렸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그림자의 암호를 아는 거지? 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노파는 연기하던 모든 것들을 집어 던지고 물었다.

시에라 황실의 그림자들의 암호는 어디로도 흘러가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실을 포함해 주요 인사들을 호위하는 자들의 정체가 탄로 나서 좋을 것 하나 없었다.

그건 ‘그림자’의 가치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었으니.

“세계를 조율하는 자라고 해두죠. 저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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