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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79화 (179/265)

샤르 대혈전(2)

* * *

푸른 종달새의 내부는 외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외부는 허름하지만 숨겨진 진짜 맛집을 연상시켰다면, 내부는 최신 유행을 따르고 있었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다.

푸른 종달새는 손님들로 꽉 차 있었는데, 오묘한 배치 덕에 붐비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역시, 유명세를 떨치는 맛집이라며 추천할 만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걸?”

“밖에서 보던 것보다도 넓네. 오흐트 네 선택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두 사람은 이 선택이 옳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오흐트가 디저트에 목숨을 걸었다면 유피테르는 차에 굉장히 민감했다.

그렇기에 풍겨오는 차의 향기만으로도 대충 맛을 짐작하는 게 가능했다.

‘나쁘지 않군.’

세이라 공주가 준비해줬던 차와 비교하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수준이었다.

물론, 지독한 시골인 국경에서 얼마나 보급을 받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일단은 공주였으니 최소한의 품위 유지는 가능한 듯 보였다.

이 정도는 황실에서 지원해줄 거라는 게 유피테르의 추측이었다.

실제로, 그녀가 입은 의복이나 주변은 깔끔했다. 필요 이상으로 돈 낭비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두 사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자, 노파가 천천히 다가왔다.

“뭘로 하실겨?”

“할머니. 메뉴판 한번 보고 나서 결정해도 되요?”

“그러엄.”

오흐트는 능숙하게 노파와의 대화를 마치고서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자. 뭘 먹으면 좋을까?”

오흐트는 메뉴판을 테이블에다 내려놓은 뒤, 활짝 펼쳤다.

그러나 생기발랄하게 빛나던 오흐트의 눈동자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생각보다 메뉴가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메뉴가 적어야 맛집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유피테르는 오흐트의 분위기가 내려간 걸 눈치채고는 조용히 혼잣말했다.

“그게 정말이야?”

“내가 알기로는 그래. 델포이의 맛집들도 그런 느낌이었잖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유피테르의 말이 맞았다.

오흐트는 한 학기 정도 델포이 아카데미에 있으면서 맛집을 모두 주파했다.

그 기억 하나하나를 돌이켜보니 다양성보다는 독창적인 한 가지 메뉴에 충실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마스터는 다양한 디저트를 뚝딱뚝딱 만들어내잖아? 전부 맛있고.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오흐트는 완벽한 반례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건 바로,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라는 존재였다.

“그건….”

순간적인 공격에 유피테르를 말문이 막혔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

유피테르는 그 말을 실감하며 시선을 살짝 위로 올렸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오흐트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에.

“응? 거기에 뭐가 있는 거야? 이게 아니지. 빨리 대답을 해줘 마스터.”

그러자 오흐트도 유피테르를 따라 고개를 위로 들었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유피테르가 대답 대신 고개를 올린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스터는 가끔 이런 식으로 힌트를 주고는 했었다. 성장을 위해서는 스스로 답을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이면서.

“뭐야. 장식들뿐이잖아.”

오흐트의 기대와는 다르게 벽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천장까지 훑어봤으나 마찬가지였다.

시에라 제국의 향취가 물씬 피어나는 등과 검과 방패와 같은 기묘한 장식품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오흐트가 만족할까.’

유피테르는 시선을 피하며 고민했다.

오흐트는 아직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러니 지금이 답을 찾을 유일한 기회였다.

말싸움에서 밀렸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 건설적이지는 않았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걸 쓸데없는 자존심이라고 하는 거야.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나도 안 기뻐.”

바실리는 그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마스터로서의 긍지가 패배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 못해 나온 대답은 생각보다 치졸했다.

“나니까. 칼리스토의 주인이 되려면 평범해서는 안 되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오흐트는 어떻게 해서든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다양한 예시를 찾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을 그대로 입에 담은 거였다.

왜 저 마법이 더 강한지 궁금해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오흐트 먹고 싶은 건 찾았어?”

“응응. 근데 여러 개 시켜도 돼? 조금 배가 고픈데. 어차피 메뉴도 적어서 다 시켜도 얼마 안 나올 거 같은데.”

“어제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더 들어가는 거야?”

“원래 디저트 배는 따로라고. 그리고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 사람은 세끼를 먹어야 해. 제대로 알고 있어 마스터?”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메뉴를 정했다.

시에라 제국의 물가는 아주 싸서 전부 시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과의 의미도 있었기에 유피테르는 오흐트가 원하는 모든 메뉴를 시켜주었다. 결정을 하자마자 바로 노파를 불러 주문까지 빠르게 마쳤다.

이 카페의 음식을 맛보는 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일이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정보를 수집하는 게 우선이었다.

드르륵.

몇 분 뒤, 노파는 손수레에 디저트를 가지고 왔다.

세이라 공주의 방에 왔던 것보다는 더 화려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음식과 차를 조심스럽게 옮기던 노파는 정말 다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응!”

오흐트는 충분하다고 해맑게 웃었다.

누가 보아도 할 말을 없게 만드는 완벽한 미소에 노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서는 손수레를 끌며 돌아갔다.

“잘 먹겠습니다.”

음식 앞에서 오흐트는 더할 나위 없는 폭군이었다.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하나씩 잡고서 다양한 디저트들을 한입 크기로 잘라냈다.

그 후, 쉴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입에 넣었다.

야무지다 못해 존경스러운 속도에 점점 주변 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경탄의 시선에도 오흐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 있는 음식들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음식을 거의 다 해치워나갈 무렵,

“마스터. 조금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한데. 음식이?”

유피테르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서 대답했다.

“여기 이렇게 크고 사람이 많은데 시중드는 사람이 노파 한 사람인 게 말이 돼?”

“그러네.”

그 말에 유피테르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지금껏 신경을 쓰지 않았던 사실이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왔다.

50명 넘게 들어와 있는 상황인데도 다른 종업원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건 딱 하나 뿐이었다.

“정신을 유도하는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건가?”

“아마도.”

정신을 지배하는 마법은 분명히 티가 났다. 그러나 은근슬쩍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추적마저 어려웠다.

“그렇다면….”

유피테르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그 순간.

“거 할머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오!”

쾅!

푸른 종달새의 정문이 산산조각이 났다.

철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종잇장 구겨지듯 부서지더니 여기저기로 파편이 튀었다.

그것만 보아도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놈들이야, 놈들이 와버렸어!”

“뭐 하고 있어 빨리 도망가!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손님들은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한 듯 소리를 지르며 뒷문으로 모여들었다.

너무 많은 손님이 모이자 한 곳으로 푸른 종달새는 패닉에 빠졌다.

편안한 오후를 보내던 손님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갇혀버렸다.

오직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다였다.

처벅처벅.

문을 부수고 들어온 건 험상궂은 외모를 지닌 사내였다.

사내는 2m가 넘는 거대한 몸집과 걸맞은 거대한 검을 뒤로 매고 있었다.

오죽하면 뒤에 따라오던 부하들이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돈을 빌렸으면 제대로 갚아야지. 그게 올바른 사람의 태도라고.”

사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가볍게 말하는 것인데도 협박하는 것처럼 보였다.

뒷문을 향해 달려가던 손님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더욱 겁에 질렸다.

두려움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손님들은 이런 일이 익숙한지 구석으로 흩어져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외부인인 유피테르와 오흐트만 테이블에서 편안히 앉아 상황을 지켜보았다.

“뭐여. 시방. 돈 안 갚은 것 때문에 이 난리를 또 치는겨?”

주방으로 들어갔던 노파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걸음걸이에는 공포나 두려움 따위는 한 점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동네 마실을 나온 것처럼 편안했다.

“흐흐…. 역시 할멈이야. 이 정도로는 소용도 없지?”

“이게 돌았나 시방. 얻다 대고 눈을 부라려!”

사내와 노파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파직!

그사이에서 엄청난 불꽃이 튀었다.

보는 이들의 숨까지 막혀버릴 정도의 기세 싸움이었다.

꼬리를 내린 건….

“하하하하. 말로 해서는 들을 리가 없구만!”

의외로 침입자인 사내 쪽이었다.

그는 등 뒤에 수평으로 매단 검을 오른손으로 뽑아냈다.그의 키와 맞먹을 만큼 거대했기에 무게가 어마했다.

부웅! 부웅!

대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세가 만들어졌다.

그저 기세를 맞은 것뿐인데도 푸른 종달새의 곳곳이 움푹 패버렸다.

샹들리에보다도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던 등들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고, 벽을 장식하던 검과 방패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꺄아아아아아악!”

손님 중 하나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나,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서는 무릎까지 꿇고서 눈높이를 맞춘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거, 조용히 하면 살려줄 테니까 그만하지?”

“….”

여자 손님은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정신을 놓고서 쓰러져버렸다. 사내는 그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보며 노파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지, 아니지 말고. 방법을 바꿔볼까? 할멈이 당장 돈을 내놓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으름장을 놓자, 손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칼 같은 눈빛을 받은 것만으로도 온몸이 베여나갈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노파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요즘 것들은 모두 이러누? 도저히 예의를 찾아볼 수가 없구먼.”

노파는 그렇게 말한 후, 바닥에서 내 뒹구는 검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 후, 몇 번 검을 휘두르며 상태를 확인하더니 사내을 쳐다보며 말했다.

“드디어 싸울 마음이 생긴 거야 할멈? 이거 영광인데.”

“후회하지 말그래이.”

노파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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