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 대혈전(1)
* * *
유피테르의 공간 이동은 한 치의 오차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버려진 성에서 샤르까지 마차로 이틀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꽤나 먼 거리임에도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피테르 일행이 도착한 곳은 시야가 탁 트인 정상이었는데 샤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이, 이게 공간 이동 마법? 들었던 것과 너무 다른데.”
“이것 봐 한 번에 샤르에 왔어. 엄청나서 닭살 돋은 거 보여?”
유피테르의 마법을 경험한 드워프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고대의 마법사보다 높은 수준의 마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드워프 마을의 어른들은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을 알아야만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운 기억을 전부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나온 타협점이 필요한 부분만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는 것이었다.
드워프들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유피테르는 마법의 흔적을 지웠다.
샤르에 왔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미스틸의 말대로 이곳에 라플라스나 마족들이 있다면 자그마한 잔향도 위험했다. 마족들은 생사가 걸린 문제에 누구보다 민감해졌으니까.
“그래서 마족이 어디 있다는 거지?”
마나의 힘으로 잔향을 모두 지운 유피테르는 미스틸을 쳐다보며 물었다.
“예?”
난생처음 겪는 마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미스틸이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입을 다물고 상황을 지켜보던 오흐트가 나섰다. 유피테르의 꿀밤에 꽁해있었으나 답답한 마음은 더 참아줄 수 없었다.
“하아? 지도상으로는 여기가 맞잖아. 마족이 있는 곳이 어디냐고 마스터는 묻는 거야.”
오흐트의 말에 미스틸은 아―하는 탄성을 내지르다가 표정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서는 짧은 팔을 쭈욱 뻗어서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족들은 저 멀리 보이는 성에 숨어 있습니다.”
유피테르의 시선은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손끝 너머로 우뚝 솟은 성 하나가 눈에 꽂혔다.
성 뒤편에는 울창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산이 있었고, 앞에는 커다란 강이 흘렀다. 그야말로 쉽게 공략하지 못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저건 시에라 제국의 황성이잖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거대한 성은 바로, 시에라 제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시에라 제국은 곳곳에 왕국의 티를 벗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황성만큼은 아니었다. 시에라가 왕국 같은 구조에도 제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황제와 황성의 존재 덕분이었다.
‘아바마마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했었지.’
황성을 보자 세이라 공주가 했던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녀는 마족의 존재를 의심하며, 슈타이거 황제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 이상해졌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으나, 그녀가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황성 밖으로 탈출해 국경 검문소의 대장으로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황제를 제정신으로 돌려놓고 싶었으니까.
“너희는 황성에 들어간 적이 있나?”
“그건 아닙니다.”
미스틸은 고개를 젓고는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일의 사태를 우려했던 슈바인이 얻어낸 정보입니다. 라플라스가 황제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생각보다는 드워프의 미래를 생각하던 자로군.”
“맞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멍청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미스틸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걸 본 유피테르는 이 드워프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이곳으로 데려온 건 믿어도 될 것 같았다. 성국의 아티팩트 역시 그의 말은 진심이라고 알려왔다.
“그러면,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할까.”
“바로 왕성으로 쳐들어가지는 않으실 겁니까? 유피테르 님의 실력이라면 충분할 텐데요.”
유피테르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미스틸을 쳐다보았다.
‘무슨 꿍꿍이냐. 드워프.’
아티팩트는 여전히 미스틸의 말이 진실이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유피테르의 직감은 정반대였다. 저 드워프를 절대로 믿지 말라고 말해왔다.
지금까지 직감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아무리 유피테르가 강하다고 해도 한 제국의 성에 침입하는 건 어려웠다. 실력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그럴만한 명분이 없었으니까.
드워프들이 인간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건 말이 되지가 않았다. 이 부족은 세이라 공주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으니 더욱 이상했다.
유피테르는 속마음을 모두 숨기고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저곳에 마족이 있다면 함정이 가득하겠지. 그걸 알면서도 들어가는 건 미친 짓 아닌가.”
“확실히 그렇군요. 피해를 줄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
유피테르가 강하게 나가자 미스틸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마치, 의심받고 싶지는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서는 마족 공략에서 정보 수집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보를 모으실 예정입니까?”
“이런 수도는 의외로 소문에 민감하지, 그런 것들 몇 개를 들어서 단서를 조합하면 충분하겠지.”
“마치, 수도에 대해서 잘 아시는 듯 이야기하시는군요. 혹시 귀족이나 황족이십니까?”
“글쎄다.”
유피테르는 정체를 캐려는 질문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나 미스틸은 전혀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저희 드워프들은 더는 이곳에서 몸을 할 수는 없습니다. 마족이 벌인 짓 때문이지요.”
“그 정도야 알아. 그래서 너희들에게는 다른 걸 부탁하고 싶다.”
검문대를 지나왔기에 유피테르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드워프들에게 손짓해 한곳으로 모은 후 말했다.
“너희들은 저 성에 몰래 들어갈 방법을 알아봐 줘. 건축도 하는 드워프들이라면 가능하지?”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드워프들은 대략적인 설계도를 쓱쓱 그려냈다.
이게 장인 종족 드워프만의 천부적인 감각이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은 듯했으나 인간들의 눈에는 완벽한 도면이었다.
“그 정도야 쉽습니다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야 무립니다. 인간들의 황성은 경비가 삼엄하다고 들었습니다.”
미스틸의 대답은 기대에서 엇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피테르는 당황하지 않고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
미스틸과 주변에 있는 드워프들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공간에 집중했다.
장인으로 소문난 드워프들은 아티팩트 제작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건 밉살스러운 귀쟁이 놈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기술이 나오자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받아.”
“이건…?”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아티팩트야. 이걸 사용해.”
미스틸은 손에 들어온 반지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이걸 분해해서 구조를 알고 싶었다.
저만한 강자가 준 아티팩트라면 분명 상상치도 못할 기술이 들어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무슨 일 있어? 사용법을 알려줘야 하나? 드워프라도 마나는 가지고 있지 않나.”
“아,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유피테르가 조용히 묻자 찔린 구석이 있던 미스틸은 곧바로 드워프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서는 유피테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일행들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갔다.
드워프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유피테르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분 나쁘다는 분위기를 숨기지 않는 오흐트가 보였다.
‘역시 그 방법을 써야 하나.’
드워프가 사라지고 둘만 남자, 오흐트는 고개를 돌리고 뺨을 부풀렸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으므로 유피테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는 오흐트의 귀에도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행선지를 말했다.
“시에라 제국에는 맛있는 찻집이 있다던데. 거기에는 특이할 정도로 단 케이크가 있다네?”
“뭐… 그게 정말이야 마스터?”
걸려들었다.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오흐트를 보며 유피테르는 미소를 지었다.
오흐트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이 방법이 잘 먹혀들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찻집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제일 좋겠지?”
“당연하지.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그럼 아무 카페나 가도 될까?”
“설마! 그것만은 싫어. 부탁해 마스터.”
유피테르는 탁월한 차 실력뿐만 아니라 디저트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바실리 역시 다양한 디저트를 좋아해서 연습하다 보니 어느샌가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버렸다. 입맛이 까다로운 칼리스토들 조차 포로가 될 정도로.
천상의 맛에 중독되어버린 오흐트에게 맛없는 디저트는 독약보다도 더 싫은 음식이었다.
“그럼. 다음부터는 그 정도로 삐지지 않을 거지?”
“당연하지! 그러니 제발 제일 맛있는 집으로 부탁해 마스터.”
“그래.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
“역시 마스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오늘 마음껏 먹을 거니까 말리면 안 돼!”
* * *
유피테르에게는 확실한 신분에 있었기에 샤르에 들어오는 게 어렵지 않았다. 델포이의 교수인 데다가 서류마저 완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유명한 찻집을 찾아냈다.
외모가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웠기에 시선이 집중되었으나, 두 사람은 끝내 알아채지 못한 채로 찻집에 도착했다.
찻집의 앞에는 한 노파가 빗자루로 가게 앞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건지 노파는 유피테르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쿠. 젊은 양반 어서 와요. 여자들을 많이 울릴 것 같이 생겼구먼?”
“여기가 푸른 종달새라는 이름의 찻집이 맞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아하, 관광객이었구려. 그럼 이 간판을 읽지 못할 수도 있지.”
푸른 종달새.
샤르에 사는 자들은 모두 이곳을 최고의 찻집으로 추천했다.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기억날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라고도 덧붙였다.
정작 도착한 찻집은 그리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작은 집이었다. 게다가 간판에는 시에라 제국의 언어로만 적혀 있었다.
“들어오슈. 한잔하고 나면 포로가 될 테니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노파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가게로 초대했다. 당당한 발걸음에서는 왠지 모를 카리스마마저 느껴졌다.
“왜 그래 마스터?”
문 앞에 선 유피테르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자 오흐트가 물었다.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맛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 목소리에 배여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걸.’
수도 샤르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고 하기에는 찻집이 너무 작았다.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이미 오흐트에게 약속을 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간단한 것이라도 약속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유피테르는 하는 수 없이 푸른 종달새의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마스터도 기대하고 있던 거구나. 같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