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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76화 (176/265)
  • 드워프의 제국(4)

    * * *

    오흐트와 슈바인

    두 사람이 만들어 낸 기운은 맹렬하게 맞섰다.

    오흐트의 성스러운 마나와 슈바인의 끈적끈적한 검은색 마나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약점을 노렸다.

    우드득!

    충돌에서 퍼져나오는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얼음 나비의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계에 균열이 생기다니.”

    그걸 본 유피테르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진정한 힘이 봉인된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조디악의 마도사들을 아득히 상회했고, 마족들도 두려워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만든 결계가 흔들린다는 건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정말, 이 정도로 화가 나는 건 오랜만이네!”

    용솟음치는 마나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오흐트가 소리쳤다.

    후대에도 칭송받는 초대 성녀가 고작 반마족이 된 드워프를 이기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도 분했다.

    드워프는 장인이었지 전사가 아니었으니까.

    마치 고무줄 같은 팽팽함이 유지되던 바로 그 순간.

    우우우우우우웅!

    슈바인이 뿜어내는 어두운 마나의 농도가 확실히 짙어졌다.

    제대로 된 전투를 해본 적 없는 어린아이들도 한눈에 차이를 알아차릴 정도였다.

    갑자기 슈바인의 마나 출력이 급격히 올라가자, 오흐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전력이 아니었단 말이야? 어디서 저런 마나를 끌어모으는 건데.’

    슈바인은 그저 괴성을 지를 뿐 다른 행동은 하지도 않았다.

    기합을 넣는 것만으로 마나가 짙어지고 마법의 위력이 강해질 리는 없었다. 그런 게 가능하면 마법사들 간의 우열이 목소리 크기로 정해졌을 테니까.

    “마스터!”

    오흐트는 본능적으로 천칭이 빠르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유피테르를 불렀다.

    “설마, 봉인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건 아니겠지? 네가 저까짓 드워프 하나를 제압하지 못할 리는 없을 테고.”

    유피테르는 초대 성녀의 힘을 믿었다.

    다양한 전장을 경험했고, 칼리스토가 되어 새로운 경지까지 엿본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반마족 같은 불완전한 존재에게 패배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흐트는 그런 기대를 산산이 조각내버렸다.

    “마스터 내 봉인을 해제해줘!”

    “뭐라고?”

    “칼리스토가 가지고 있는 힘의 제한을 해제해달라고!”

    유피테르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오흐트는 지금 상태로 마족과도 싸워서 이겼었다.

    ‘설마 라플라스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건가.’

    유피테르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라플라스가 슈바인에게 무언가 수작을 부렸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나태의 마족 공작은 인과율에 개입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이 판을 짠 거라면 오흐트가 밀리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알았어. 하지만, 5분 만이다.”

    “그 정도면 충분해!”

    유피테르는 오흐트의 대답을 들은 후, 손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우우우웅!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마나가 물결쳤다.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계가 깨질 정도였다.

    “크르르르르!”

    유피테르가 무언가 수상한 짓을 한다고 생각한 슈바인이 입을 벌렸다.

    화르륵!

    슈바인의 입에서 뜨거운 검은 불꽃이 쏘아져 나갔다.

    “지가 드래곤이라도 된 줄 알아!”

    오흐트는 정신을 집중해서 방어막을 쳤다.

    신의 궤적이 발동한 상태였으나 듀얼 캐스팅 정도야 옛날 옛적에 배워놓았기에 문제없었다.

    오히려 유피테르가 방해받는 게 더욱 위험했다.

    콰아아아앙!

    방해하는 모든 걸 잿더미로 만들 것만 같은 불꽃은 끝내 방어막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유피테르는 그 찰나의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질질 끌지 말고 끝을 내버려!”

    봉인 해제 마법진을 완성한 유피테르가 오흐트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오흐트의 표정에 미소가 차올랐다.

    ‘맞아, 세계는 이런 느낌이었지.’

    몸이 가벼웠다.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평상시와 같이 호흡하는 것뿐인데도 공기가 달았다. 몸속에 있던 노폐물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게 새로웠다.

    “크르르르륵?”

    오흐트의 기세가 완전히 변하자 이상함을 눈치챈 슈바인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늦었어.”

    오흐트는 슈바인의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더블 캐스팅이라는 드워프의 한계를 뛰어넘은 공격도 지금의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 고통 이제 끝내줄게.”

    그녀는 기세만으로 슈바인을 멈춰 세우더니 곧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오흐트 식 특제 마법 – 롱기누스의 창

    오흐트는 왼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신성 마나가 그녀의 위로 속속 모여들었다.

    마나는 거대한 한 자루의 창을 완성했다.

    방금 전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마나의 질이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제로 서클과 마족이 사용하는 마나 정도로 큰 간극이었다.

    “크르르르르르!”

    위험하다.

    그렇게 판단한 슈바인은 마법을 해제하고서는 망치를 땅에 꽂았다.

    쿠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망치는 슈바인의 앞에 우뚝 섰다.

    슈바인은 망치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 목소리에 망치가 응답하며 몇 겹의 방벽을 구성했다.

    “소용없어!”

    오흐트는 슈바인을 노려보며 거대한 창을 그대로 내리꽂았다.

    콰콰콰쾅!

    오흐트의 창은 결계를 하나하나 짓눌러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100% 힘을 내는 오흐트의 공격을 반마족화된 슈바인은 막아내지 못했다.

    “크, 헉.”

    파괴적인 기운을 그대로 담은 창에 심장이 꿰뚫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한 주먹도 안 되는 게 어디서 까불어. 그러니까 죽는 거라고.”

    슈바인에게 다가가 죽음을 확인한 오흐트는 유피테르의 곁으로 돌아왔다.

    슈바인의 눈동자에서 생명의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오흐트의 봉인이 다시 기동했다.

    “조금 더 길게 유지해줄 수도 있었잖아.”

    마나가 제한되면서 감각이 둔해지자 오흐트가 칭얼거렸다.

    2대 마스터라고 해도 봉인을 풀 수 있는 권한은 온전히 유피테르에게 있었다. 잠시 마스터의 직위를 맡은 거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말이다.

    “슈바인을 상대하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잖아? 예전 같았으면 봉인을 깨지 않고도 이겼을 거야.”

    “그건 그렇지만….”

    정곡을 찌르는 유피테르의 말에 오흐트는 그럴듯한 반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마스터의 말이 맞아.’

    델포이 아카데미에 있는 기간 오흐트는 칼리스토의 훈련을 면제받았다.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유피테르의 말 때문이었다. 또, 마족들이 활개를 치는 상황에서 성녀이자 치유사인 그녀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결국, 훈련 부족이 그녀의 감각을 둔하게 한 주범이었다.

    오흐트는 혼이 날까 봐 바로 화제를 돌렸다.

    “거기 드워프들.”

    리더가 허무하게 쓰러진 뒤, 살금살금 도망가려던 드워프들은 오흐트의 시선에 몸이 굳어버렸다.

    “동작 그만. 거기 맨 앞의 너 이리 좀 와볼래?”

    운이 없었던 가장 앞서있던 드워프 하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예? 저 말씀이십니까?”

    오흐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걸 본 드워프는 체념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자,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해봐.”

    “제, 제가요?”

    “그럼 이곳에 너 말고 다른 이가 또 있어?”

    “드워프들이라면 이렇게 많은데요?”

    사로잡힌 드워프는 어떻게든 살려고 몸부림을 쳤다.

    “네가 적임자야.”

    하지만, 오흐트는 벌써 마음을 굳힌 듯 고개를 저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그렇네요. 라플라스. 그자를 만난 게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드워프는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 * *

    “라플라스는 뭘 하고 싶은 거래?”

    이야기를 전부들은 오흐트가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라플라스의 노림수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륙 전쟁… 인가.”

    그러나 유피테르는 달랐다.

    “마스터!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대륙 전쟁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오는 건데.”

    “그 자의 진정한 목적을 알고 계시다면 저도 꼭 듣고 싶습니다.”

    유피테르가 짚이는 부분이 있다는 듯 읊조리자 오흐트가 대답해달라고 졸랐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던 드워프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거기 있는 드워프. 대륙 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알지?”

    “전혀 모르는데요.”

    유피테르의 물음에 드워프는 고개를 저었다.

    젊은 드워프들은 대륙 전쟁 이후에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야기로만 슬픈 역사를 배웠을 뿐, 체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가. 잘 알아둬라. 라플라스는 너희 드워프들을 전쟁의 불씨로 만들려고 했던 거다.”

    “불씨요?”

    불씨라는 말에도 드워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뒤에 있던 다른 드워프들이나 오흐트도 마찬가지였다. 유피테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은 표정이었다.

    “후우….”

    유피테르는 답답함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대륙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아나?”

    “나! 내가 알아.”

    “말해봐 오흐트.”

    “인간 왕족 한 명이 엘프의 손에 죽었다고 들었어. 그걸 본 인간들이 분노해서 전쟁을 일으킨 거지?”

    오흐트가 막힘 없이 술술 말하자 근처에 있던 드워프들이 존경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반쯤 정답이네.”

    “에에…?”

    “그 왕족을 죽인 것부터가 음모의 시작이었다. 마족과 일부의 인간들이 짜고 판을 만든 거지.”

    유피테르는 오흐트와 드워프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한 걸 확인한 후, 말을 이었다.

    “대륙 전쟁 전까지만 해도 인간과 엘프, 드워프 등의 종족들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 그건 아나?”

    “맞아요. 할아버지께 그렇다고 들었어요!”

    “예전에는 교류가 활발했다고 주장하시는 거 봤어요!”

    유피테르가 물어보자 드워프들은 너도 나도 손을 들고 대답했다.

    슈바인이 죽은 건 슬프긴 했으나 자업자득이었다.

    “맞아. 당시에는 마족이 공공의 적이었고 다른 종족들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라고 교황 아저씨가 그랬어.”

    이에 질세라 오흐트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 모든 평화가 마족의 계략으로 부서졌어.”

    유피테르의 말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 고요함을 깬 건 역시나 오흐트였다.

    “마스터. 그래서 드워프들은 어떻게 이용하려고 했다는 건데?”

    “우선, 인간을 납치해서 드워프와의 골을 만들어. 화가 난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드워프와의 전면전을 벌일 거야.”

    “하지만, 드워프와 시에라 제국은 서로 친했던 거 아니었어?”

    “거기서 마족의 역할이 나오는 거지. 단순히 인간을 납치하는 게 아니라 기억을 지운 스파이를 심는 거야.”

    “아…!”

    오흐트는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이 정도로 설명해주었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그녀는 대륙 전쟁 이후 다양한 사건들을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그러면 곳곳에 숨어있는 드워프들이 들고 일어나겠구나?”

    “그래, 이종족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모습을 보이지 않을 뿐이니까. 게다가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았지. 자그마한 불씨만 있다면 마족에 대한 증오는 금방이라도 인간에게로 향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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