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프의 제국(3)
* * *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슈바인의 심장 정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리자, 드워프들은 정적에 빠졌다.
슈바인이 만들어 낸 이 상황이 달갑지는 않은 건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대장장이 일은커녕, 한 끼 식사하기조차 쉽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슈바인은 이곳을 이끄는 자였다.
리더가 공격당하는 건 결코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마족과 거래한 건 슈바인 혼자였다. 다른 젊은 드워프들은 마족이 두려워 가까이조차 못 했으니까. 용기가 없었기에 슈바인의 선동에 홀리듯 넘어간 거였다.
이대로라면 마족과 드워프 양쪽에서 버려질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자 숨 막히는 침묵이 산산이 깨졌다.
“슈바이이이이이인!”
“다들 뭐해 가서 치유 포션을 가져와! 몇 개냐고? 그냥 있는 대로 일단 다 가져와!”
슈바인에게 한걸음에 달아가 그의 상태를 걱정하는 드워프들이 있는가 하면.
“저 방향이야. 저쪽에서 무언가가 날아왔어!”
“어떤 놈인진 몰라도 이 도끼로 두 동강을 내주겠어!”
슈바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범인을 찾아내려는 드워프들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션을 찾아 떠난 드워프 무리가 돌아왔다.
“슈바인은 아직 살아있어?”
“정신을 잃었지만…. 아직 약하게 숨을 쉬고는 있어.”
“하, 할머니가 안 계셔!”
“이 포션을 심장 쪽에 들이부어? 아니면 마시게 해야 해?”
일단 포션을 찾아왔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을에 있을 때 치료를 담당하던 자들은 이곳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봤자 헛수고였다.
늘 상냥하게 웃으며 치료해주던 할머니가 없자 드워프들은 패닉에 빠졌다.
바로 그때, 드워프들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내려왔다.
“아잇! 답답해 죽겠네! 비켜봐!”
잠자코 지켜보던 오흐트가 드워프들에게 소리치며 드워프들 무리 속으로 뛰어갔다.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그녀를 본 드워프들은 길을 터줘야 할지 망설였다.
조금 전까지 싸우던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다, 당신은 적이잖아!”
그중 한 드워프가 용기 있게 말을 걸어보았다.
“난 치유사라고. 이놈을 살리고 싶으면 당장 비켜!”
“아, 알았어요.”
대륙 전쟁을 겪지 않은 어린 드워프들은 초대 성녀의 박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오싹오싹한 기세에 그들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덕분에 일직선의 길이 만들어졌다.
“꼭 힘을 보여줘야 말을 알아듣는 멍청이들이 있다니까.”
오흐트는 그렇게 말하며 만들어진 길을 당당히 걸었다.
유피테르 일행과 드워프들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아서 오흐트는 금방 슈바인에게 도달했다.
“어디 보자….”
오흐트는 드워프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진찰을 시작했다.
우우웅!
그녀의 몸이 은은히 빛나면서 성스러운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 오오…. 신의 화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아?”
“진짜 치유사인가 봐!”
초대 성녀의 위엄은 말로 하지 않아도 드워프에게 전해졌다. 창조신 레아가 직접 선물해준 드워프의 화로와 유사한 기운이 났기 때문이었다.
대장간과 관련되지 않은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는 드워프들이라도 마나는 느낄 수 있었다.
“조용히 좀 해줄래?”
신성 마나를 확인한 드워프들이 호들갑을 떨자, 오흐트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노려보았다.
“네, 넵!”
“알겠습니닷”
진지한 눈빛을 마주한 드워프들은 최대한 예의를 차려 대답하고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결 낫네. 어디 한번 볼까? 미약하지만 호흡도 있고, 심장도 뛰고 있네.’
오흐트는 치유뿐만 아니라 진단도 일류였다.
초대 성녀였던 시절부터 감히 그녀의 실력을 의심하는 자들은 없었다.
어떤 질병도 그녀의 손에 걸리면 어렵지 않게 나았다. 심지어, 현재 사용하는 치유 마법이나 절차는 대부분 그녀가 고안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니까.
또, 교황을 제외하면 신의 목소리를 들은 유일한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상처부터 해결할까?’
슈바인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한 오흐트는 심장에 난 구멍부터 메우기로 했다.
다른 이들은 손을 대보지도 못할 치명상이었으나, 그녀의 앞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흐트 식 치료 마법 – 원상 복귀
오흐트의 몸에서 빛을 발하던 신성 마나들이 슈바인의 몸에 깃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던 슈바인의 몸은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게… 치유 마법?”
“마을의 어른들과는 차원이 다른데? 포션은 쓰지도 않았어!”
리더가 회복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드워프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치료에 풍선처럼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잠시 후면, 리더가 훌훌 털고 일어나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마스터 잠깐 이리로 와줄 수 있어? 이 드워프 상태가 이상해!”
치료에 열중이던 오흐트가 유피테르를 호출했다.
저 멀리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유피테르는 한걸음으로 오흐트에게 도달했다.
“무슨 일이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어?”
“마스터, 이것 좀 봐봐.”
유피테르는 고개를 돌려 오흐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슈바인이 쓰러진 이유라고 예상되는 구멍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다.
“네 마법으로도 복귀가 되지를 않은 건가? 칼리스토가 되면서 한층 더 높은 경지에 왔을 텐데 이상하군.”
유피테르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빠르게 눈치챘다.
심장에 텅 하니 뚫려있는 구멍이 오흐트의 마나에 저항하는 중이었다.
오흐트가 압도하려고 기운을 높이면 구멍에 똬리를 튼 그 힘도 똑같이 강해졌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으니 더 강한 마나로 덤벼보라는 듯했다.
“흐읍!”
이대로 질 수 없었던 오흐트는 구멍을 메꾸기 위해 마나를 더 많이 뿜어냈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땅으로 떨어져도 눈치채지 못했다.
성국 크레이타를 호령하는 현재의 성녀는 따라 하지도 못할 높은 차원의 치유 마법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팽팽한 대치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오흐트가 먼저 지치겠군.’
슈바인을 잠식한 기운은 결코 오흐트보다 약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보다 못한 유피테르가 나섰다.
“잠시 비켜봐.”
“마스터, 대체 뭘…!”
유피테르는 오흐트를 슈바인에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예고도 없이 벌어진 일에 오흐트가 뭐라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했으나, 유피테르가 더 빨랐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푸르른 마나가 곧바로 슈바인의 몸을 에워쌌다.
나비들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환상적인 결계는 오흐트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마법이었다. 유피테르가 자주 사용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결계에는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신비한 힘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환자에게 이런 건…!”
“잘 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유피테르는 잠시 밀려났다가 돌아온 오흐트를 멈춰 세웠다.
그녀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삐죽였지만, 상황을 지켜보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이변이 발생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정신을 잃은 줄로만 알았던 슈바인이 일어나 괴성을 질렀다.
심장에는 구멍이 나 있었지만, 멀쩡하게 두 발로 서서 유피테르와 오흐트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반마족…?”
포효하는 슈바인을 본 오흐트는 작게 중얼거렸다.
믿기지는 않지만, 슈바인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번들거렸다.
그건, 반마족의 증거였다.
“방금 그 기운. 라플라스의 힘이야.”
“라플라스라면 우리가 찾던 그 마족 공작이잖아!”
“설명하기가 복잡한데 강한 사람일수록 라플라스와 싸우기 힘들어진다. 그놈의 힘은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
“미리 말해줘야지!”
그러나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 때, 슈바인이 달려들었다.
“쿠오오오오오오!”
슈바인은 꾸물꾸물한 검은색의 마나로 거대한 망치를 만들었다. 유피테르의 것처럼 양쪽 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형태였다.
부웅ㅡ
육중한 망치는 충분히 파괴적인 기운을 담고 있었다. 한 방 한 방이 땅을 짓뭉갤 정도로 무거웠다.
“이런 걸 휘두르다니 위험하잖아!”
오흐트는 뒤로 몸을 빼서 망치를 피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고 싶지는 않았다.
칼리스토의 일원이 되며 예전의 성격을 버렸다고 생각했으나, 당시의 불타는 마음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불씨가 남아 있었다.
마음을 굳힌 그녀는 신성 마나를 뿜어내며 반격의 봉화를 올렸다.
오흐트 식 신성 마법 – 성스러운 검
신성 마나가 오흐트의 손 근처로 모여들더니 검 한 자루로 변했다. 성녀 프레이야 무기로 유명한 오를레앙과 유난히도 닮은 형태였다.
쌔애애앵!
그녀는 검을 쥐고서 가볍게 휘두르자 공기가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확인한 오흐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땅을 박찼다.
지이이이잉!
오흐트의 신성 검과 슈바인의 암흑의 망치가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르르르르르….”
“귀가 아프잖아, 이 자식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에도 오흐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공격이 쉴새 없이 이어졌다.
슈바인은 느릿느릿 망치를 휘두르며 오흐트의 공격을 막거나 흘렸다.
“마스터 얘 그냥 드워프 맞아? 거무기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라고.”
오흐트가 앓는 소리를 내도 유피테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슬쩍 본 오흐트는 욕지기를 하며 새로운 기술을 준비했다.
이대로는 승부가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이것도 막나 보자.”
오흐트 식 신성 마법 – 신의 궤적
오흐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청난 기운이 그녀의 검에 스며들었다. 거대한 마나가 검에 더해지자 오히려 빛이 약해졌다.
그러나 검은 더욱 지고지순한 빛을 발했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
오흐트가 공격을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슈바인이 달려들었다. 검의 기운이 더 짙어졌는데도 거침없었다.
“죽어버렷!”
치유사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단어를 내뱉으며 오흐트도 자세를 잡았다. 검을 하늘 높이 들어 그대로 베어버릴 기세였다.
그건,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슈바인은 수평으로 망치를 휘둘렀고, 오흐트는 검을 수직으로 베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두 무기가 직접 부딪친 것도 아닌데도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충격파가 결계를 때렸다.
파멸적인 기운을 담은 두 기운이 충돌하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폭풍이 결계 안에서 발생했다. 유피테르가 대응하지 않았다면 폭풍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겼을 정도로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