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프의 제국(2)
* * *
오흐트의 그 말이 타오르는 불꽃을 위한 장작이 되기라도 한 걸까?
슉슉슉슉!
유피테르와 오흐트에게 날아오는 화살의 기세가 한층 더 강해졌다.
이번에는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불꽃의 기운이나 얼음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물론, 속성이 담겼다고 해서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화살들은 여전히 오흐트의 방어막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으니까.
“마법 부여(인챈트)를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원소 마법이 추가된 화살들을 바라보며 오흐트가 중얼거렸다. 적이 사용한 마법을 확인한 유피테르의 반응도 비슷했다.
“없어진 마법들을 이런 식으로 볼 줄이야. 왠지 드워프의 땅은 고대에서 시간이 멈춘 것만 같네,”
마법 부여는 없어진 마법들 중 하나였다.
대륙 전쟁 시기에 이 마법은 그 어떤 것보다 자주 사용되었다. 이 마법을 이용하면 훈련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건 물론, 농민들도 언제든지 전쟁에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고 있는 무기에 속성만 넣어주면 일반 병사가 바로 강군으로 변모했다. 이렇게 편한 방법을 거절할 장수는 없었다.
게다가 불꽃과 얼음 계열의 마법은 현재 두 개의 공작 가문만 사용할 수 있었다. 혈계 마법의 일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화살 쏘는 법…. 슈발츠 할아버지랑 완전히 같은데?”
“저 성을 지키고 있는 건 역시 드워프겠지. 마족이 이런 귀찮은 걸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
“그래도 저 부여 마법 정도는 마족의 작품이겠네. 마법식에서 더러운 냄새가 풀풀 난다구.”
“네가 그렇게 말하면 확실하겠지. 게다가 드워프가 이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유피테르는 그렇게 말하며 화살이 날아왔다고 짐작되는 곳을 노려보며 마법을 만들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화살
아름다운 색을 지닌 마나가 요동쳤다. 마나는 유피테르의 인도에 따라 푸른 화살들로 변했다.
예술작품 같은 화살들은 시린 냉기를 내뿜으며 곧바로 그의 적에게로 날아갔다.
“으아아악! 이, 이게 뭐야!”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맞서 싸우라니까.”
강 건너 불구경하던 유피테르의 적들은 혼비백산했다.
공격이 먹힌 줄 알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오히려 반격당했으니까.
“아니, 앞선 애들 뭐해!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으라고! 막으라는 말 안 들려?”
앞에 있던 이들이 고함을 듣고서 그제야 방패를 들어 올렸으나, 상황은 더 최악으로 흘러갔다.
“대체 뭐야 이 얼음! 불로도 녹을 생각을 안 하잖아!”
“단순한 얼음이 아닌 것 같아. 빨리 어떻게든 해야 해. 아니면 다 얼어붙어 버릴 거야.”
“불보다 더 뜨거운 건 없어? 그래 화로! 화로의 쇳물을 가져와!”
유피테르의 화살이 닿은 곳이 얼어붙기 시작했으니까.
속성 화살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주변에 있던 횃불로 지져봤으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독한 냉기는 오히려 여러 불꽃을 잡아먹고 영역을 넓혀버렸다.
그걸 본 드워프들은 놀라 팔팔 끓는 쇳물을 가져와 부어보았다. 그러나 상황은 딱히 바뀌지 않았다.
“제압할 거지?”
오흐트는 혼란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적들을 보며 물었다.
유피테르는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촤르르륵!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마나가 한발 먼저 나아가 길을 만들었다.
“적이 온다!”
“쇳물을 뿌려서라도 막아내! 저놈들이 이곳으로 오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드워프들은 어떻게든 길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얼음 화살의 위력을 본 순간부터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도저히 저걸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이런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면 당연히 성격도 나쁠 게 분명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 반복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드워프들의 생각은 터무니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유피테르는 푸르디푸른 얼음길을 유유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화살, 속성 화살 횃불, 쇳물 그리고 망치까지.
다양한 무기들이 쉴 새 없이 날아왔으나 유피테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왜냐! 왜 저자의 방어막을 뚫지 못한 것이냐.’
번번이 무위로 돌아가는 공격들을 보며 한 드워프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드워프 장로 슈발츠의 아들인 슈바인이었다.
‘아버지는 틀렸어. 그런 케케묵은 사고방식으로는 다시 인간의 노예가 될 뿐이라고!’
그가 반란을 일으킨 건 모두 드워프족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드워프의 인구는 수월하게… 아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지금까지의 방식대로는 분명 불만이 나올 거다.’
지금의 세아니아 대륙은 과거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평화로운 상태였다. 작은 규모의 교전은 있었으나 대륙 수준의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다.
이 덕에 문화생활이나 편의성만큼은 고대 시절보다 더 앞서 있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마도 열차마저 준비 중이었으니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시에라 제국 근방 광산 도시에 터를 잡은 드워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화에 찌들어서 엄청난 속도로 인구수가 늘어났다.
그 결과, 자원이 부족해졌다.
망할 아버지는 드워프의 배신자라고 했으나 자신이야말로 다크 나이트(Dark Knight)였다.
드워프들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마족과 손을 잡은 것이다.
탁!
슈바인이 다가오는 얼음길을 보며 상념에 젖었을 때, 유피테르는 이미 성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눈을 번득이며 주변을 돌아봤지만, 드워프의 외모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유피테르는 장로의 아들을 찾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 슈바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있나?”
“너, 넌 대체 누구지!”
그러자 뒤에서 동료들을 독려하던 한 드워프가 반응했다. 그걸 본 유피테르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건 딱히 알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그것보다는 자네가 망치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한 손재주 없는 드워프라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뭐, 뭐, 뭐라고!”
유피테르의 도발에 슈바인은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어냈다. 멋들어진 콧수염이 연처럼 휘날렸다.
무기가 될 게 없나 두리번거리던 슈바인은 근처에서 뒹굴던 망치 하나를 주워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가 누군지나 알고 하는 소리인가! 나는 위대한 검은 망치 부족 장로의 아들….”
“장로의 아들이 아니라 배신자겠지?”
“네놈 정말로 죽고 싶은 거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유피테르 때문에 슈바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끊임없이 장작을 넣어주었다.
“아니? 별로 죽고 싶지 않은데. 혹시 넌 죽고 싶어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그렇게 화를 많이 내면 건강이 좋지 않다고! 치료사로서 하는 이야기니까 잘 들으라구! 그렇게 쓰러지면 소원대로 죽을 수 있겠네!”
부웅!
그 말에 슈바인이 폭발했다.
그는 거대한 망치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이미 분노가 눈 앞을 가렸기에 망치는 아군도 적도 가리지 않았다.
“어이! 슈바인!”
“장난 그만하고 멈춰!”
동료가 눈먼 망치에 맞아버리자 그곳에 있던 드워프들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슈바인을 만류했다.
정작 적으로 여겨졌던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가볍게 망치를 피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비켜! 비키지 않으면 다 적으로 여기고 죽여버리겠어!”
그러나 무아지경에 빠져 망치를 휘두르는 슈바인에게는 어떠한 목소리도 닿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말리려고 달려들었던 드워프 동료들이 날아가 버렸다.
“동료들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못해!”
그 참상을 보다 못한 오흐트가 나섰다.
슈바인과 그의 동료들이 적인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치유사로서의 본분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레아교는 원래 지치고 배고픈 자들의 편이었으니까.
쾅!
오흐트는 다리에 힘을 모아서 앞으로 튀어 나갔다. 후방에서 동료들을 지원하는 치유사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죽어라!”
슈바인은 다가오는 오흐트를 보며 망치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부우우웅!
공기를 가르는 묵직한 소리가 났으나, 헛방이었다.
오흐트는 예측했다는 듯이 몸을 숙여 망치를 피해냈다.
그 후, 반동을 이용해 앞으로 점프하며 드워프의 짧은 다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빠각!
가녀린 소녀가 만든 소리라고는 믿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 지축을 울렸다.
엄청난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시선이 슈바인과 오흐트에게로 향했다.
“마, 말도 안 돼! 어찌 인간족 소녀가 저런 파괴력을!”
“사람의 힘으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는 거야? 망치로 때리는 것보다 더 큰 소리던데.”
“에이 설마 마법이겠지.”
오흐트의 정체를 몰랐던 드워프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인간 주제에!!!”
다리를 얻어맞은 슈바인이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었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오흐트를 노려보았다.
살기 어린 시선에 오흐트가 물었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고 하는 말이 딱 지금 상황에 걸맞았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잖아! 동료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게 말이 돼?”
“드워프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이해해줄 거다.”
“웃기지 마! 저기서 울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지도 않아?”
오흐트는 손을 뻗어 신음하는 드워프들을 가리켰다.
“맞은 데는 괜찮아? 이 포션 좀 마셔봐.”
“으으…. 목이 너무 아파. 마실 수가 없어.”
“왜 포션을 사왔는데 먹지를 못하니!”
“아니아니아니, 사 온 건 아니잖아? 그거 그냥 마을에 있던 거 슬쩍한 거지?”
다른 드워프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슈바인이 이끌고 나온 이들은 대부분 어린 드워프들이었다. 전쟁은커녕 전투조차 제대로 치러보지 않은 자들이 태반이었다.
평화로운 세상에 싫증이 나긴 했으나, 이런 혹독한 삶이 기다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마을을 떠나온 순간부터 제대로 된 음식과 맥주조차 마시지 못할 정도였다.
슬슬 이런 멍청한 짓은 그만두고 돌아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드워프의 제국은커녕 이곳에서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마족이 도와줬다고 하기에는 허술한데? 처음 보여줬던 마법식을 제외하고는 딱히 집히는 곳이 없군.’
유피테르는 드워프들을 공격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상황을 분석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마족의 향이 풍기지 않았다.
마족이 도와줬다면 그 흔한 몬스터라도 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성국을 뒤흔들었던 마인들이라도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마나 감지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인간의 반응이 느껴지지는 않는 게 의문이었으나 그건 다른 문제였다. 애초에 이곳에 인간이 있을 거라고 100% 확신한 건 아니었으니까.
이 상황은 슈바인이라는 드워프가 제멋대로 폭주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아직이다! 나는 아직 지지 않았다. 드워프의 찬란한 미래가 바로 이 앞에….”
슈바인이 웅변 같은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고 하는 그 순간.
탕!
가슴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며 땅으로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