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73화 (173/265)

드워프의 제국(1)

* * *

“테세라와 연락이 되지 않는 다라…. 패스에도 반응이 없나?”

유피테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패스는 마스터와 칼리스토 사이뿐만 아니라 자매들끼리도 연결되어 있었다.

칼리스토로 거듭나면 강력한 힘을 얻기에 악용하는 걸 막기 위한 고삐였다. 바실리는 그녀들을 믿었지만, 칼리스토 자매들이 직접 요구했기에 서로 감시가 가능하도록 수정해주었다.

그녀가 직접 고안한 이 마법은 유피테르의 진정한 힘으로도 해제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굉장히 복잡한 마법식인데도 막히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패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었다.

“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자매들도 시도해봤지만, 전혀 대답이 없었습니다.”

트리아의 말에 유피테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손으로 마사지했다.

‘테세라는 다른 이들과 척을 지는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유피테르는 여전히 칼리스토 자매들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의 앞에서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트리아나 오흐트뿐이었으니 당연했다.

바실리와는 다르게 유피테르는 신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뛰어난 혜안과 압도적인 마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건 ‘인간’의 기준에 불과했다.

칼리스토 자매들 중에서는 ‘인간’과 비교과 되지 않을 종족 출신도 많았다.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피테르가 눈에 차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유피테르는 문득 테세라에 대한 기억이 흐려졌다는 걸 알아챘다.

‘테세라가 뭘 했었지? 어떤 임무를 하던 칼리스토였지? 아니, 설마….’

칼리스토 자매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에게 내린 명령을 기억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피테르는 영특하기로 소문난 인재였으니까.

엄하고 냉혹한 카르멘조차 유피테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정도였다. 해도 해도 안 되니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은 거였다.

이런 가운데 임무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건 단 한 가지 사실만을 의미했다.

“트리아!”

“무슨 일이십니까. 신이시여.”

“테세라가 맡고 있던 임무가 혹시 뭔지 기억하고 있나?”

“신이시여. 설마 제가 그걸 잊어버리겠습니까. 테세라는 라플라스를 쫓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런가….”

예상이 적중했다.

유피테르는 이미 라플라스 손에 잡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물론, 봉인된 힘을 사용하면 힘의 역학관계를 역전할 수야 있었다. 실제로 마왕 티폰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힘 덕분이었다.

그러나 바실리와의 약속이 먼저였다.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봉인을 깨고 싶지 않았다.

‘라플라스를 만난 적도 없을 텐데 어떻게 지배를 받은 거지?’

함정에 빠졌다는 걸 인정하자 곧바로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라플라스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성국의 일을 해결하다 우연히 흑막이 나태의 마족 공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4명의 대사제들과 사도 역시 마족의 기운을 받은 것에 불과했다.

유피테르는 마족의 ‘마’자도 보지 못했다.

라플라스가 사용하는 마법이 마족 중에서도 사기적인 위력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만능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전지전능한 존재는 창조신 레아뿐이었으니까.

유피테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멈추자 트리아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역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입니까? 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라플라스의 계략에 당한 거 같다.”

유피테르의 말에 트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과 같은 마스터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라플라스가 신께 무슨 짓이라도 한 겁니까? 제 눈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안 보이는 게 정상이야. 나태의 마법은 그런 종류이니까.”

유피테르는 라플라스의 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나태의 마법에 걸린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섣불리 언급하다 트리아마저 덫에 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조금 기운 천칭을 어떻게든 되돌리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머리 회전이 빠른 트리아는 유피테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눈치채고서 화제를 돌렸다.

존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힘을 얻는 경우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드워프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라플라스가 여기서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건 확실하니까.”

“알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시길.”

용건을 다 마친 트리아는 공간 이동을 사용해 사라졌다.

‘네가 남긴 짐들은 나에게는 너무 무거워. 빨리 돌아와 줘, 바실리.’

유피테르는 환한 빛을 보며 잠깐 동안 여자친구를 떠올렸다.

그녀가 사라진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졌다. 옆에서만 볼 때는 힘들지 않아 보였던 것들이 직접 해결하려니 너무나 벅찼다.

부시럭―

유피테르가 생각에 잠긴 그때, 수풀이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그 바람에 자연스레 그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대체 누군가 싶어 자세히 보니―

“자네 벌써 일어난 건가? 어제 그렇게 마시고도 멀쩡하다니. 이게 젊음이라는 겐가? 정말이지 100년만 젊었으면 자네보다 더 마셨을 텐데.”

―드워프 장로 슈발츠가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중이었다.

“슈발츠. 잘 잤나?”

“지금 이 몰골이 잘 잔 거로 보이나? 자네 혹시, 숙취 해소 마법 같은 것 사용할 수 있나?”

“뭐라고?”

“아닐세. 그냥 잊게. 늙은이의 헛소리였네.”

슈발츠는 유피테르에게 마법 하나를 걸어달라고 하려다 그만두었다.

숙취 해소 마법은 이미 실전된 마법이었으니까.

고대 마법사들에게는 기본이었으나 현재 마법사들은 그런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인간들을 찾아내라는 어려운 부탁을 한 상태에서 부담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드워프식 의리였다.

“그런 상태여서 드워프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어? 네 아들이 그 무리를 이끌고 있다며.”

유피테르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물었다.

“하! 그 이야기까지 하다니 다시 술을 먹으면 드워프가 아니라 엘프다!”

슈발츠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했다.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 마족의 꾀에 넘어가 아버지와 적대한다는 건 끝내 가슴 속에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오르고 유피테르가 전설의 명주를 꺼내자 긴장이 풀어졌다.

거나하게 마셔 취기가 잔뜩 오른 슈발츠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신세 풀이를 했다.

유피테르의 잘못은 전설의 술을 꺼낸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술을 끊은 사람 한 명도 못 봤는데.”

“뭐라 말했나?”

“아니? 아무 말도.”

슈발츠를 놀리려 했던 유피테르는 날카로운 반응에 다른 곳을 쳐다보며 모른 척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 무언가를 알아본다고 했지? 그러면 내일부터 움직일 건가?”

“아니, 바로 지금부터야. 대충 위치를 알 것 같거든.”

“그게 정말인가!”

그 말에 잔뜩 남아 있던 술기운이 완벽하게 날아갔다. 슈발츠는 잔뜩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인질이 없는 상태에서 젊은 드워프놈들은 별거 아니지. 그럼 부탁하겠네.”

“그래. 구해내면 신호를 보내도록 하지. 뭐가 좋나?”

유피테르의 물음에 드워프는 품을 뒤져 작은 구슬을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구슬 모양의 아티팩트라곤 영상 보주만 보았던 유피테르가 물었다.

“그건 신호탄이네. 땅에다 강하게 던지면 드워프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날게야.”

“불꽃이 아니라 소리라. 독특하군. 쉽게 터지지는 않지?”

“그건 드워프 기술력의 결정체 중 하나네. 사용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아마추어가 아닐세!”

기술력을 무시한다고 느꼈는지 슈발츠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커졌다.

“마스터 싸워? 전쟁이야?”

우렁찬 목소리에 잠에서 깬 오흐트가 눈을 비비며 합류했다.

“오흐트 마침 잘 왔다. 트리아가 정보를 전해줬어. 바로 출발하자.”

“에에에에? 나 아직 배고픈데.”

오흐트는 칭얼거리며 조금만 더 쉬자고 말했지만, 상대는 유피테르였다.

그녀의 약점을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말을 들으면 이 일이 끝난 뒤 내가 직접 만든 특제 케이크를 선물로 주지.”

“그것뿐이야?”

“지금이라면 데메테르가 특제 퍼스트 플래쉬 홍차가 추가된다고!”

“역시 마스터! 어디야? 지금 당장 가자.”

180도 변해버린 오흐트의 모습을 보자 슈발츠의 화가 스르륵 풀어졌다.

결국,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아낸 게 없었다. 그래도 귀여운 외모에 어울리는 모습에, 손녀딸을 바라보는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그렇게 되었으니까. 드워프의 일을 잘 해결해보고 있어. 우리가 다녀올 때까지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유피테르는 오흐트르 데리고 드워프의 마을을 떠났다.

* * *

드워프 마을에서 나온 지 약 30분 정도 뒤.

“마스터 그래서 시에라 제국의 사람들이 어디에 잡혀 있는 거야?”

잠자코 유피테르의 뒤를 따르던 오흐트가 물었다. 작전에 참여한 이상 목적지 정도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정보전에 약하다고 하더라도 작전 설명을 아예 듣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시에라 제국에 대해서는 잘 알겠지? 성녀니까.”

“뭐, 남들이 아는 정도는 알아.”

겸손하게 대답했으나, 초대 성녀인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도 많이 알았다.

드워프의 시련에 대한 것도 그중 하나였다.

“대륙 전쟁 시기에 인간들이 드워프를 부려서 만든 성이 하나 있어. 일단 이곳으로 향할 거다.”

“근데 너무 딱 들어맞는 거 같은데. 착각인가?”

오흐트는 무의식중에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 말을 들은 유피테르는 설명을 요구했다.

“아니 별 건 아니구. 드워프들을 괴롭힌 장소가 근처에 있다는 게 좀 신기해서. 대부분 이런 건 오랜 시간 동안 걸려서 찾아내는 거잖아? 내가 성녀였을 때도 그랬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 순간.

슈슈슈슉!

오흐트의 생각이 맞기라도 하다는 것처럼 엄청난 수의 화실이 날아왔다.

“오흐트!”

“걱정하지 마! 이 정도야 가뿐해.”

오흐트 식 신성 마법 – 성스러운 방어막

오흐트는 유피테르가 소리치기도 전에 먼저 마법을 펼쳤다. 보기만 해도 경건해지는 오흐트의 마나가 얇게 펴지더니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팅! 팅! 팅!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화살비였으나 오흐트의 방어막은 끄떡없었다. 슈발츠와의 첫 만남을 연상시키는 장면에 오흐트의 콧대가 높아졌다.

“헤헹. 그런 식의 화살은 백날 날려봐도 소용이 없다구. 더 쏴봐! 더 해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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