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72화 (172/265)
  • 드워프의 마을, 슈레겔(6)

    * * *

    “저런 바보들은 신경 쓰지 말고 자네가 만든 망치를 보여주게나.”

    그 말에 유피테르는 구현한 망치를 슈발츠의 손에 건네주었다. 어차피 시험의 일환이었으니 딱히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슈발츠는 유피테르가 만든 망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보통 망치의 한 면만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건….’

    그 망치는 드워프가 생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물론,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망치도 추가 양쪽에 달려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적인 문제였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 망치는 초보자가 만든 결점투성이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자신의 작품을 폄훼하는 말에도 유피테르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보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와 봐라.”

    슈발츠는 한마디 툭 던지고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그의 뒤로 재빨리 따라붙었다.

    ‘작업대잖아?’

    드워프 장로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작업대였다. 화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세월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졌다.

    “우와, 엄청 낡았네.”

    “이 멍청아!”

    작업대를 발견한 오흐트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리자, 슈발츠가 불같이 화를 냈다.

    “이게 드워프만의 중후한 멋이란 말이다. 이걸 알아보지 못하다니, 이래서 인간들은 쯧!”

    슈발츠는 다른 화로에 가서 달군 쇠를 가지고 오더니 유피테르의 망치로 그걸 내려쳤다.

    쿵! 쿵! 쿵! 쿵!

    유피테르의 망치는 단 하나의 휘어짐도 없이 제 역할을 해냈다. 슈발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달궈진 쇠를 두드렸다.

    불과 쇠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드워프답게 처음 보는 모양의 망치도 잘 다루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망치를 휘두르던 슈발츠는 대뜸 유피테르에게 말을 걸었다.

    “네놈 이름이 뭐냐.”

    “유피테르, 유피테르 아르테미스입니다.”

    “아르테미스라…. 져버린 달의 가문인가. 그래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군.”

    “그게 무슨…!”

    드워프의 문제를 알기 위해 계속 참았던 유피테르는 결국 한계에 도달했다.

    합격·불합격 여부를 떠나 슈발츠는 완전히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래서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슈발츠가 더 빨랐다.

    “합격이다.”

    그 말에 유피테르는 어안이 벙벙해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흐트가 허리를 툭 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럼 드워프의 문제를 알려줄 건가?”

    “그렇다. 너는 시련을 통과했으니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슈발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유피테르의 망치를 돌려주었다.

    휘리리릭!

    망치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았다.

    유피테르는 그 망치를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이미 한 번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무게를 확실히 알아 어렵지 않았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 망치를 왜 돌려주는 거야?”

    시련을 통과했다고 해도 유피테르는 마을에 들린 손님일 뿐이었다.

    이걸 가질만한 명분도, 시간도 확실히 부족했다.

    “네가 만든 거니 당연히 내 것이다. 모두 알고 있겠지!”

    슈발츠가 강하게 소리치자, 어느새 깨어난 드워프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장로가 인정한 망치라면 난 불만 없어! 오히려 저걸 한번 빌려보고 싶은데.”

    “인간이 드워프보다 신의 무구에 더 가까워지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군.”

    “새로운 모양이지만, 그럴듯하네. 나도 이따가 저런 모양으로 하나 만들어 봐야겠어.”

    “드디어 우리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드워프는 그야말로 불같은 종족이었다.

    한 번 달궈지면 기세 좋게 맹렬히 타오르지만, 동시에 꺼지는 것도 빨랐다.

    시련을 통과하고 장로의 인정을 받았다면 침입자는 더는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궁한 창작의 모티브가 되어줄 은인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드워프의 문제란 걸 알려 줘.”

    “응응! 그렇게 해줘 할아버지.”

    유피테르와 오흐트의 독촉에 슈발츠는 빠르게 작업대를 정리했다. 그리고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네들이 알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드워프들은 욕심이 없고 단순하네. 하지만 그 일이 시작되고 난 이후에 우리는 반으로 갈라져 버렸네.”

    “그 일이 대체 뭐에요?”

    오흐트가 묻자 슈발츠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화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신을 라플라스라고 밝힌 자가 우리 마을에 손님으로 왔네. 그러나 그는….”

    “마족이었겠지.”

    “맞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지. 그가 어린 드워프를 선동해 한 계획을 세웠네.”

    “계획이라는 건?”

    “시에라를 드워프의 제국으로 만드려는 거네.”

    슈발츠가 밝힌 드워프의 문제는 마족과 엮여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바로, 드워프들만의 제국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건 지금껏 세아니아 대륙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었다.

    게다가 슈발츠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 난 게 아니네. 그들은 과거 대륙 전쟁 시기의 복수를 원하게 되었네.”

    “설마 인간들을 죽이려고 하는 거야?”

    생글생글 웃던 오흐트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도저히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끝난다면 다행이겠지. 그들은….”

    “몇몇 인간들을 빼돌려 노예로 부리고 있는 거겠지?”

    “자네 그걸 어떻게…! 설마, 마족의 스파이였나?”

    유피테르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세이라 공주가 주었던 서류에 적힌 자료들과 드워프의 말을 합치면 무언가 그림이 그려질 것만 같았다.

    단서들은 때로는 합쳐지고, 때로는 찢어지며 한 가지의 길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드워프가 단순한 피의 복수가 아닌 기억의 복수를 하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난 마족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라고. 단지 세이라 공주가 주었던 자료로 분석한 거야.”

    “그게 정말인가?”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하는 취미는 없어.”

    “그것도 그렇군.”

    이미 시련을 통과해서인지 슈발츠는 시원하게 넘어갔다. 그걸 본 유피테르는 안심하며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래서 내게 부탁할 건 뭐야? 세이라 공주가 알려준 건 이게 다거든.”

    “자네가 아무리 강해도 마족을 이길 수는 없을 테지. 그러니 붙잡힌 인간들을 찾아주게.”

    “젊은 드워프들은? 그쪽은 당신들이 해결할 거야?”

    “종족의 문제는 종족 안에서 해결하는 게 당연하네.”

    “좋아. 그러면 일단 뭐 좀 먹고 시작하자. 배가 고프거든.”

    * * *

    드워프의 시련을 마치고 성대한 환영 파티까지 마친 다음 날.

    모두가 술기운에 곯아떨어져 있는데도 유피테르는 새벽같이 일어났다. 같이 술을 마신 드워프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유피테르의 모습은 반듯했다.

    술을 한 잔도 먹지 않은 오흐트보다 더 깔끔해 마시지 않고 어디다 버렸나 착각할 정도로.

    그 후, 유피테르는 드워프의 마을을 뛰면서 곳곳을 눈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이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신이시여. 오랜만에 뵙습니다.”

    간단하게 운동과 샤워까지 마친 그의 앞에 트리아가 나타났다.

    “트리아. 말한 정보는 찾아봤어? 드워프가 인간을 어디다 숨겼을지 감도 안 온다고.”

    인간을 초월해 칼리스토들의 주인이 된 유피테르라도 만능은 아니었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드워프들의 작전을 전부 읽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라플라스가 지원해주면 어쭙잖은 예측은 전부 방향이 뒤틀려 버릴 게 분명했다.

    티폰을 포함한 3명의 마족을 제외하면, 라플라스가 가장 강했으니까.

    그래서 떠올린 게 트리아의 도움을 받는 거였다.

    “말씀하신 대로 이 주변 지도를 챙겨왔습니다. 대륙 전쟁 시기부터 전부 다 말입니다.”

    트리아는 아공간에서 서류 다발을 꺼내 유피테르에게 넘겨주었다. 정말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예의를 보여주었다.

    “고마워. 역시 믿음이 가네.”

    유피테르는 그녀를 칭찬하며 가장 첫 장을 살펴보았다.

    ‘마족이 껴있다고 해도 이 주변에서 완전히 떠나진 않았을 거야.’

    시에라 제국을 점령한다는 말이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도 엄연한 복수의 일종이었으니까.

    물론, 이 정도로 대륙 전쟁 시기에 인간들이 저지른 만행을 갚아 줄 수 있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인간들은 시에라 제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딘가에 잡혀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쯤이면 라플라스도 내가 참전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나태의 공작 라플라스.

    그는 누구보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자였다. 실제로, 그냥 놀고먹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면 온 세상이 그를 도와줄 거라고 바실리는 덧붙였다.

    “그런데 신이시여….”

    트리아가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유피테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라플라스와 드워프의 생각을 읽기 위해 서류와 씨름하던 유피테르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두 번째 열쇠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뭐라고?”

    바실리의 봉인을 풀기 위한 두 번째 열쇠.

    오랜만의 희소식에 유피테르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 있는 건가?”

    “그게 바로 이곳입니다.”

    “여기라면?”

    “시에라 제국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건 굉장히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시에라 제국이 변방에 위치한 곳이라고 해도, 그 크기는 적지 않았다. 이곳을 하나하나 뒤져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단서를 잡은 거로도 충분해.’

    그러나 유피테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바실리를 봉인한 열쇠 중 하나밖에 찾지 못했다. 기대했던 옴팔로스는 그저 고대 아티팩트였을 뿐이었다. 에키드나가 보여주었던 게 열쇠일지도 모르지만, 손에는 들려있지 않았으니 의미가 없었다.

    “그럼 트리아 너는 에냐와 함께 봉인의 열쇠를 찾는 데 집중해줘.”

    “알겠습니다. 신이시여.”

    “다른 자매들은 잘 있나?”

    “그것이….”

    타르타로스의 결계가 뚫린 이후로 칼리스토 자매들은 전에 없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았다. 오죽하면, 유피테르를 따라다니는 오흐트의 손을 빌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칼리스토들은 책임을 저버리지 않고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일에 힘썼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일이 한꺼번에 터져서 쉬는 시간을 주지 못하는 건 미안하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뭐라 할 너희들이 아닐 텐데.”

    유피테르의 그 말에 주저하던 트리아의 입이 열렸다.

    “그게…. 테세라와 연락이 되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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