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67화 (167/265)
  • 드워프의 마을, 슈레겔(1)

    * * *

    말도 많고 사건도 넘쳤던 1학기가 무사히 끝났다.

    유피테르의 제자들은 무사히 진급 시험에 통과했다. 강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잘 설명해준 덕분이었다.

    “교수님 친절한 강의 감사했습니다.”

    “다음 학기 때는 안 계신다고 들었어요. 정말이에요? 델포이를 떠나시는 건가요.”

    “유피테르 교수님 꼭 다음, 아니 내년에도 같이 공부해요!”

    어디서 소문이라도 퍼졌는지 유피테르가 자주 가는 카페에 아카데미생들이 몰려왔다.

    제자들은 그가 델포이를 떠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겁니다.”

    유피테르는 빙그레 웃어주고는 자신을 찾아온 제자들에게 커피를 사주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이나 델포이에서 주는 급여와 상관없이 그가 부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실리 컬렉션에 들어있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티팩트들과 세상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보(財寶)였으니까.

    “다음 학기에 꼭 다시 만나요. 약속이에요 유피테르 교수님!”

    한 시간 정도 유피테르와 떠들던 아카데미생들은 방학을 만끽하기 위해 모두 떠났다.

    모여든 인파가 떠나자 카페에는 유피테르와 오흐트만이 남았다.

    원래는 부학생회장인 클리오나도 오기로 되어 있었다. 옴팔로스 토벌전의 관련자이자, 성국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테리나가 부재중인 지금 그녀에게 숨을 돌릴 시간은 없었다.

    학생회장의 일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마스터. 인기 많네?”

    오흐트가 유피테르의 바로 옆에서 차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바실리가 가르쳐줬던 걸 따라 했을 뿐이야, 이건 내 실력이 아니지.”

    “또, 또. 또 그런다.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건 본인의 실력이라고 바실리 언니도 그랬잖아?”

    오흐트는 자기혐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유피테르를 끌어냈다.

    ‘마스터는 다 좋은데 이게 참 문제라니까.’

    늘 말했지만, 유피테르는 칼리스토의 2대 마스터라는 책무를 잘 해냈다. 가끔, 헤매기도 하고 멀리 있는 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택하는 때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세계의 섭리에 다가가려고 하면 불현듯 반작용이 나타났으니까.

    결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 위의 언니들이 그 정도로 반발할 줄이야.’

    물론, 모든 자매가 유피테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게 전대 마스터 바실리의 유일한 실수였다.

    칼리스토들에게 있어 바실리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선택을 거부하는 자가 없을 거로 생각했었다.

    모두가 불평불만 없이 유피테르를 따를 거라고.

    그러나 에나스·디오·트리아라는 삼두마차를 시작으로 꽤 많은 자가 유피테르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의견 충돌과 싸움 끝에 유피테르는 2대 마스터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명은 아직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제 드워프의 나라로 갈 거야?”

    “그래. 필요한 수속들은 다 끝내놨으니. 강의를 맡길 대체자도 구해놨고.”

    “우와… 그새 그런 일까지 해놓은 거야?”

    유피테르의 말에 오흐트는 진심으로 놀랐다. 마치, 혼자만 48시간을 사는 것 같았으니까.

    학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델포이 아카데미는 부산스러워졌다.

    바로 진급 시험 때문이었다.

    아카데미생은 퇴학당하지 않기 위해 잠을 최대한 줄이고 공부에 열중했다.

    필기와 실기를 모두 놓칠 수 없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카데미생보다 교수의 수가 훨씬 적었기에 힘들었다. 심지어, 옴팔로스의 지원도 사라졌기에 평소보다 업무량이 늘어난 상태였다.

    유피테르는 바쁜 와중에 후임자까지 찾은 후, 계약까지 완료해놓은 것이었다.

    “그럼 갈까?”

    오흐트가 리필한 홍차까지 깨끗이 비우는 걸 본 유피테르가 물었다.

    그와 오흐트 모두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몸만 움직이면 충분했다. 따로, 여행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잠깐만, 케이크 하나만 더 먹고 가자.”

    “그렇게 먹어놓고 더 먹겠다고?”

    오흐트는 간절한 눈빛이 효과를 보기라도 한 걸까?

    “알았어. 그 정도야 기다려줄 수 있으니. 늦지 않게 빨리 시켜.”

    유피테르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겠다고 말했다.

    진심인가 싶어 마스터의 눈을 쳐다보자, 유피테르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이 카페는 사실 유피테르보다는 오흐트가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었다. 메뉴표 정도야 전부 외워버린 지 오래였다. 뭐가 맛있는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오흐트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카페 풀코스 하나를 빠르게 시켰다.

    ‘아. 설마 혼나나?’

    유피테르가 허락한 건 케이크 하나.

    그러나 그녀는 케이크를 포함해 다양한 디저트와 홍차까지 있는 오후의 티세트를 시켰다.

    유피테르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쳐다봐. 그냥 먹어도 괜찮다니까. 어차피 애들 때문에 실컷 먹지도 못했잖아?”

    칼리스토의 마스터는 자매들의 성향을 꿰뚫고 있었다.

    유피테르는 그 정도야 이미 예상했다는 표정을 짓고는, 커피를 하나 주문했다.

    달콤한 맛이 나는 헤이즐넛 라떼였다.

    “고, 고마워 마스터.”

    오흐트는 험악해지지 않은 분위기에 안도하고서 때마침 나온 케이크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유피테르와 오흐트가 델포이 아카데미의 정문을 벗어난 건, 그로부터 2시간이나 후였다.

    * * *

    두 사람이 향한 건 검을 숭배하는 나라 시에라 제국이었다.

    공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었으나, 그들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했다.

    시에라 제국이 여타 다른 나라보다 예의를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허가도 받지 않고 들어가면, 드워프의 ㄷ도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다.

    게다가 유피테르가 여전히 특별 교수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시에라 제국행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며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러면. 마스터는 그 아리아라는 아카데미생을 만나러 간다는 이유구나?”

    유피테르의 이야기를 듣던 오흐트가 물었다.

    “맞아. 선발전에서 보여주었던 검마법은 잠재력이 있어 보였으니까.”

    “확실히 오러와 마나를 합치는 건 생각보다 대단했어.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지?”

    “아무나 못 하니까 델포이에서 다시 영입하려고 하는 거지. 그게 희소성의 힘이야.”

    델포이 아카데미에 도움이 될 마법사를 스카우트해오는 것.

    그게 유피테르의 특별 교수직을 유지해주는 조건이었다. 때마침, 아리아라는 좋은 케이스가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

    본래, 아카데미 간 스카우트는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델포이 진급 시험에 떨어져 퇴학당한 이들은 대부분 다른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졸업하곤 했다.

    델포이 아카데미에 한 번이라도 소속되었다는 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그래도 걔가 마스터의 말을 들어줄까? 걔, 이미 천검 학원 소속이잖아?”

    “그렇게 말해도 돼? 일단은 너보다 선밴데.”

    오흐트는 특별 유학생이어서 학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지만, 아리아는 분명한 상급생이었다.

    유피테르는 바로 이 점을 꼬집었다.

    “걔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

    유피테르의 가벼운 장난은 오흐트의 역공에 막혀버리고야 말았다.

    “그,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대륙에 없을걸? 할머니. 정신 차리세요.”

    그러나 유피테르는 오흐트보다 몇 수 위에 있었다.

    오흐트가 신경 쓰는 ‘나이’를 무기로 해서 강력한 한 방을 날렸다. 차마 피할 수 없는 공격에 그녀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아. 마스터! 할머니라고 하지 마. 내가 어디를 봐서 할머니야.”

    그런 식으로 잡담을 주고받으며 길을 따라 걷자, 시에라 제국의 검문소가 보였다.

    검과 무(武)를 숭상하는 제국답게 검문소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언제 전쟁이 터져도 대처할 수 있는 장비들이 돋보였다.

    “역시, 사람이 많구나.”

    검문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며 오흐트가 중얼거렸다.

    “맞아. 시에라는 관광으로도 꽤 유명한 곳이니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어.”

    유피테르는 오흐트의 말에 대답을 해주며 다섯 갈래로 나뉜 줄을 쳐다보았다.

    어느 줄이 제일 빠를까 고민을 하던 그는 오흐트를 데리고 왼쪽에서 두 번째 줄에 섰다.

    “마스터. 저쪽이 더 짧은 줄인데 왜 여기에 서는 거야? 설마, 기다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

    “그냥 기다려봐.”

    오흐트는 유피테르의 선택이 의문인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스터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거라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할 뿐이었다.

    유피테르의 말이 현실이 되는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다.

    “이 자식이!”

    “잡아라!”

    오흐트가 가리켰던 그 줄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웅성거림은 점점 커졌고, 그건 다른 줄의 검문마저 멈출 수준이 되었다.

    “무슨 일이래?‘

    “글쎄다? 여긴 검문소니 수상한 사람이라도 잡은 거 아닐까?”

    오흐트는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까치발까지 들었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워낙 사람도 많았고, 오흐트의 작은 키도 한몫했다.

    “궁금하시유?”

    두 사람 앞에 있는 한 푸근한 느낌의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응. 할아버지 너무 궁금해요!”

    오흐트는 외모에 맞는 귀여움을 한껏 뽐냈다. 노인은 마치, 손녀딸을 바라보듯 눈빛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말이유…. 저 사람은 자신이 드워프의 후예라고 주장해유. 근데 그게 말이나 되유? 요즘 세상에 드워프니 엘프니 하는 건 사기잖아유.”

    “에…?”

    “그게 정말인가?”

    노인의 말을 듣던 오흐트는 너무나도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유피테르 역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되물었다.

    “맞아유. 옛날에는 시에라 제국에도 드워프들이 있다곤 했지만유. 요새 검은 다 인간 대장장이들이 만든다구유. 뭐어. 질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쓸만하다구유.”

    노인은 잠깐 숨을 돌리고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자, 검문소 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검문을 시작하겠습니다! 필요한 서류들을 미리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구야. 이 정도면 됬쥬? 그럼 가볼게유.”

    노인이 그렇게 떠난 뒤, 유피테르와 오흐트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스터 이게 무슨 소리야? 시에라 제국에서는 그냥 드워프를 볼 수 있다고 트리아 언니가 그랬잖아.”

    “이번에도 뭔가 문제가 있나 보군, 하아, 하루라도 편히 보내는 날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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