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해방(1)
* * *
디오 식 특제 마법 – 사자의 서 : 제1장
우우웅!
디오의 순수하고 강력한 마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마나는 그녀의 인도에 따라 사도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죽은 이들에게 그녀의 마나는 꿀과도 같았다. 달콤한 향기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향기로운 꽃에 끌리는 벌처럼, 사도는 이승으로 끌려왔다.
“누가 나의 잠을 깨웠는가?”
“나야. 오랜만이라고는 못 하겠네.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 불렀어.”
반투명한 영혼의 상태로 불려온 사도는 위엄있는 신관의 모습을 연기했다.
그러나 자신을 부른 것이 유피테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표정이 구겨졌다.
전투에서 진 걸 승복하기는 했으나,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네가 협력했다는 자들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말이지. 라플라스. 그는 지금 어디 있지? 너도 나랑 오래 보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유피테르는 사도와 다르게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섰다.
마족들은 바실리의 적이었다. 그들의 계획을 부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내게 원하는 게 결국 그거였는가….”
이스캐리엇은 말끝을 흐리며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영혼째로 불려와도 있었던 눈치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잠시의 시간 동안 유피테르가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해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유피테르와 디오를 쳐다보며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후, 말을 이었다.
“왜 적에게 정보를 알려줘야만 하지? 너는 나를 죽인 자가 아니더냐. 게다가 네 힘이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터.”
“물론이지. 네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해. 그저….”
“…그저?”
이스캐리엇의 말을 받은 건 놀랍게도 디오였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것뿐. 괜한 착각하지 마.”
딱히,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한 유피테르 대신 나선 그녀의 말투는 날이 서 있었다.
디오가 갑자기 끼어들자 이스캐리엇은 심기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몇 번이나 했다.
“흠흠. 흠흠.”
“야단났네, 야단났어. 근데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될까?”
탁!
디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스캐리엇 주변의 마나가 일렁거렸다.
“…?”
이스캐리엇은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긴 했으나, 이미 그는 죽은 상태였다. 어떠한 상대가 나타나도 겁먹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만만함은 곧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이미 육체와 떨어진 정신체 상태였기에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서서히 몸을 지배했다.
“설, 설마. 자네가 날 이곳으로 부른….”
“맞아. 이제 좀 상황이 이해가 돼? 널 부른 건 다름 아닌 나야. 지금의 넌 거부권 따위 없다고.”
디오는 마치 여왕이라도 된 듯. 도도하게 설명했다. 이스캐리엇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절망했다.
‘어찌하여 죽어서까지 편해지지 못하는가.’
레아를 만나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레아를 배신했다.
정말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그것 말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었다.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
레아교의 기록 속에서 사라지고, 여신의 적들과도 손을 잡았다.
그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한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자, 잡소리는 그만하고. 라플라스는? 네가 그의 도움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어. 걘 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래?”
다시 유피테르가 나서 이야기를 이끌었다. 이스캐리엇이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디오가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요. 빨리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이미 그녀의 손은 마법을 발동하는 중이었다. 입을 열지 않으면 고문하겠다는 기세였다.
그걸 본 이스캐리엇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육체가 아닌 정신체가 받는 아픔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템플 기사로서 받았던 영광의 상처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스캐리엇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라플라스… 그는 드워프의 마을에 있네.”
이스캐리엇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그는 레아교가 봉인했던 금서 하나를 가지고 탈출했다. 어떻게든 창조신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떠돌다 한 마을에 정착했다.
오랜 연구 끝에 금서에 적혀있던 마법식을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 간신히 재료들을 모아 마법을 사용하자, 그곳에 나타난 건….
…마족이었다.
평범한 마족도 아니고 공작급 마족 라플라스가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이스캐리엇은 라플라스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서 마족과 계약을 하고야 말았다.
계약의 힘으로 이스캐리엇은 영생을 보장받았고, 원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외에는 가끔 라플라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다였다.
“그래서 라플라스가 뭘 꾸미고 있는지는 몰라?”
“정말로 모른다네. 나는 어디까지나 계약자에 불과했으니.”
유피테르의 질문에 이스캐리엇은 고개를 떨구었다.
“뭐 남기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어차피 낙원교는 오늘로써 세상에서 지워질 테니.”
“사람들의 기억들도 전부 없앨 건가?”
“아니.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어. 어차피 마족들이 곧 나타날 거다. 그에 대비한 훈련으로 이만한 건 없지.”
“뭐라고?”
유피테르와 대화하던 사도는 공포심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넌 정말로 인간인가?’
저건 도저히 인간이 보여줄 태도가 아니었다.
물론, 자신도 낙원교를 세우기 위해 두 손을 피로 물들였다. 그러면서도 죄책감 하나 가지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약하다는 건 그 무엇보다 큰 죄였으니까.
하지만, 유피테르는 뭔가 달랐다.
자신처럼 미쳐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점점 두려움으로 변했다.
“이제 돌아가.”
디오는 가차 없이 이스캐리엇에게 끝을 고했다.
필요한 이야기는 거의 다 들었다. 게다가 이 마법은 마나 소모량이 어마어마했다. 칼리스토였기에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팅ㅡ.
디오가 손가락을 튕기자, 이스캐리엇의 영혼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끝이야. 네가 원하는 여신의 품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니. 그냥 조용히 사라져.”
이승에서의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한 이스캐리엇이 뭐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디오가 칼같이 잘라냈다. 그리고서는 유피테르에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마스터. 바로 드워프의 왕국으로 떠날 거야?”
그 말을 들은 유피테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건 꽤 귀찮은 일이군.’
유피테르는 현재 델포이 아카데미 소속이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특별교수이긴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만 했다.
“마스터. 빨리 이것 좀 해결해줘. 나 이런 게 싫어서 성녀를 그만둔 거잖아.”
이런 상황에서 오흐트는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달라고 성화였다.
또, 일어났다는 카테리나의 상태도 봐야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쉬운 게 하나 없군.’
성국 해방 전선과 성녀 프레이야의 일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가 사라지면 성국이 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애초에 그들만으로 성국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교황도 죽었고, 대부분의 추기경이 배신했으니까.
애초에 이들이 하나로 뭉칠 만든 기회를 준 게 유피테르였다.
“디오. 트리아에게 말해서 라플라스의 정보를 찾아내라고 해. 드워프의 도시가 하나만 있을 리는 없으니까.”
유피테르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디오에게 지시했다.
“알았어. 그대로 전해줄게.”
디오는 그렇게 말하고서 공간 이동을 사용해 사라졌다. 유피테르 역시 무너져버린 교황청을 잠시 바라보다 자리를 떠났다.
* * *
성국 해방 전선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낙원교의 무리와 끝없는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여신의 빛은 우리에게 있다! 저 거짓된 신앙심을 물리쳐라!”
“공격해! 더 밀어붙여!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낙원교는 성국 해방 전선의 공격을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싸움도 하지 못할 정도로 수의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몰아붙여라! 가서 레아교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자!”
“가자아아아아아!”
“우오아아아아아! 레아 님의 적에게 철퇴를!”
레아교 사제의 말에 레아교도들은 기세를 살려 낙원교의 진영을 휘몰아쳤다.
살아남은 사제의 지휘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격할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잠들어있던 천부적인 감각이 이곳에서 발휘되었다.
게다가 성국 해방 전선의 평신도들은 이미 ‘전사’가 된 지 오래였다.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적에게로 돌격했다.
이미 이 전쟁은 배교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성전’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우리 같은 선택받은 자가 지다니!”
“저, 저들은 언데드라도 되는 건가? 저 정도 상처라면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니야?”
기세등등하게 전장에 나타났던 낙원교도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레아교도들은 꽤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흔드는 천을 향해 달려드는 황소처럼 포기하지를 않았다.
“후, 후퇴해!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낙원교 사제는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라고 지시했다.
이 정도로 손해를 보고서 물러나면 대사제들에게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전멸할지도 몰랐다.
기세 꺾인 군대만큼 좋은 먹잇감은 없었으니까.
“우와아아아. 여신님의 적을 죽여라!”
반면, 레아교도들의 사기는 드높이 솟았다.
여전히 수에서 밀리긴 했으나, 연전연승 중이었고, 세도 충분히 불렸다. 곳곳에서 숨어 살던 레아교도들이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서부 전선 끝에서 시작한 격돌은 점점 중앙에 가까워졌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드디어 교황청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만, 그렇게 깊이까지 뒤쫓을 필요는 없다. 성녀님과 조력자님께서 오신다고 하니 일단 여기서 잠시 쉬어가도록 하자.”
크레이타의 수도 바로 앞에서 벌어진 싸움에서도 승리하자 레아교의 사제는 휴식 시간을 주었다.
계속 이겼다고 해도 소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적으로도 밀렸기에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었다.
성국 해방 전선은 오랜만의 평화를 만끽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새인가 그들 사이에는 끈끈한 전우애가 생겨났다.
바로 얼마 전까지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렇게 쉬고 있자, 한 레아교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