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62화 (162/265)

사도 이스캐리엇(9)

* * *

척!

이스캐리엇은 양손에 쥔 아티팩트로 유피테르를 겨누었다.

‘지팡이…?’

유피테르는 이스캐리엇보다 그가 만든 지팡이에 더 집중했다.

이스캐리엇이 만들어 낸 아티팩트는 특이한 모양이었다.

머리 부분에는 보주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성배로 만들어진 건지 은은하게 기운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몸체 부분은 꽤 길었다. 2m가 넘는 이스캐리엇의 키와 비슷해 잘 어울렸다.

굳이 따지자면, 검보다는 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쉽지 않겠네.’

유피테르는 사도의 자신 있는 표정을 보고서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두 신성 아티팩트를 어떻게 합쳐냈는지 몰랐다. 하지만, 마나 폭풍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시간을 정지하지 않았다면, 교황청은 물론이고 성국 전체가 날아갔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다른 수가 없었다.

사도를 쓰러트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유피테르뿐이었다.

성녀는 회복 중이고, 교황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칼리스토들 역시 주어진 일을 하는 중이었다.

유피테르는 다시 시선을 이스캐리엇에게로 옮겼다.

사도의 시선과 숨소리 그리고 마나를 보고서 다음 행동을 예측해야만 했다.

초월자들의 세계에서는 몇 수 앞을 읽느냐가 승패를 갈랐다. 예측을 예측해야만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건 타락한 신의 지팡이.]

‘타락한 신의 지팡이?’

유피테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무슨 의미인진 몰라도 타락이라는 단어가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그렇게 넋 놓고 구경할 시간이 있을까?”

이스캐리엇은 유피테르가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마법을 완성했다.

이스캐리엇 식 혼돈 마법 – 혼돈과 비명

그는 혼돈의 마나를 타락한 지팡이에 불어넣었다. 주먹만 한 마나를 불어넣었는데도, 지팡이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마나를 토해냈다.

캬아아아아아아!

만드라고라처럼 날카로운 비명이 대기도실에 울려 퍼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법은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갔다.

타락한 지팡이가 구축한 마법은 거대하면서도 구멍 난 곳 없이 촘촘했다.

우당탕탕!

두 번의 행운은 없었다.

유피테르 덕에 간신히 형태를 유지했던 대기도실은 그대로 마법에 휩쓸렸다.

대기도실에 즐비하던 기다란 의자들과 촛불들, 곳곳에 걸려있던 벽화들 모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애써 만들어두었던 사도 전용 의자마저 같은 결말을 피하지 못했다.

마법 한 방으로 성국의 자랑이었던 교황청의 반 이상이 날아갔다.

“혼돈 마법 앞에서 신성 결계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스캐리엇의 말대로였다.

교황청은 신성 마법으로 보호받았다. 마치, 아르테미스의 얼음성처럼. 중요한 자리에 마법처리를 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혼돈 마법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고작 한다는 게 고유 결계였어?”

유피테르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스캐리엇이 펼쳐낸 혼돈 마법은 고유 결계와 비슷했다. 세컨드 서클의 마도사들이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강력했지만.

“그렇게 여유 부릴 시간은 없을 텐데?”

“뭐라고…?”

“네 몸을 봐라!”

이스캐리엇의 말에 유피테르는 황급히 몸 상태를 확인했다.

혼돈의 기운이 스멀스멀 몸을 잠식하는 중이었다. 유피테르는 황급히 마나를 끌어 올려 떨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혼돈의 마나는 문어의 빨판처럼 착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강한 힘을 사용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는 없을 거다.”

이스캐리엇은 자신의 힘으로 만든 작품을 만족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떨쳐내지 못하자 유피테르는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모아둔 얼음 마나의 ‘정지’ 성질을 이용해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다.

“…!”

하지만, 이스캐리엇의 마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왜, 놀랐나? 한 번 본 방법은 두 번째에 통하지 않는다는 건 자네가 알려준 방법이지 않나?”

“칫….”

유피테르는 혀를 차며 다음 수단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적의 고유 결계 속에 들어와 있었고, 정지를 통해 파훼하는 것도 실패했다.

‘모습만은 그럴듯하군.’

타락한 지팡이를 들고 있는 이스캐리엇의 모습은 정말로 신의 ‘사도’처럼 보였다.

[이제는 포기할 거야?]

[포기할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피테르에게 또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비슷하지만 구별이 가는 두 목소리가 직접 울렸다.

‘지금 중요한 시기니까 방해…. 아니, 너희들은 대체 누구야.’

이번에도 목소리를 적당히 무시하려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가까운 거리에 인기척은커녕 마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의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

[궁금해?]

[우리가 궁금해?]

제대로 관심을 주자 목소리들의 톤이 올라갔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져 유피테르는 말투를 바꿨다,

‘장난은 그만 치고 모습을 드러내 줄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는 참아냈다.

인내의 보상은 바로 찾아왔다.

[이리 와. 초대해줄게.]

[우리들의 세계로.]

두근!

유피테르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피와 함께 몸속을 돌아다니던 마나가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더니 의식이 저 멀리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 * *

“여긴…?”

분명히 기억에 있는 곳이었다.

[또 만났네?]

[응. 또 만났어.]

주변을 둘러보던 유피테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바로 뒤를 돌았다.

“너, 너희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유피테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가주 선정식에서 보았던 흑과 백의 소녀들이었으니까.

“계속 말을 걸던 게 너희들이야? 왜 하필 지금 타이밍에 방해하는 거야. 방심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유피테르는 은연중에 사도의 힘을 인정해버렸다. 사실, 혼돈 마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본래의 힘을 봉인했기에 정말로 질 수도 있었다. 이 싸움에서 패배하는 건 사신의 품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했다.

[방해?]

[우리가 방해야?]

흑과 백의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분명 그녀들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다. 입은 옷도 프릴로 가득해 한층 더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모순적인 태도는 본능적인 공포를 유발했다.

“방해는… 아니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들은 딱히 문제가 생길 일을 하지 않았다. 말을 걸어온 것들도 전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였다. 정신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조용했다.

마치, 배려라도 해주는 듯이.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유피테르의 말에 기쁜 듯 소녀들이 오도도 다가왔다. 그 후,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여서 어지럽지는 않았다.

잠깐 기다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녀들은 멈추지 않았다.

유피테르는 하는 수 없이 마나를 사용했다. 자연스레 소녀들은 발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곳으로 날 다시 데려온 이유가 뭐야?”

[힘을.]

[우리의 힘을 빌려줄까?]

힘.

달콤한 제안에 유피테르는 흔들렸다.

그가 숨기고 있는 힘을 사용하면 사도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바실리와의 약속을 어기는 게 되었다.

“너희들이 내게 힘을 빌려준다고? 아무리 고대의 정령들이라고 해도 저놈을 상대로는 소용없을걸.”

유피테르는 기대를 접었다.

고대의 정령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그의 어머니가 말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와의 상성이 너무 나빴다.

정령은 세계의 흐름을 지키는 존재였고, 사도 이스캐리엇은 그걸 부수는 자였다.

혼돈 마법의 불완전함은 무기였다.

말 그대로 어디로 튈지 몰랐기에 방어할 방법을 그때그때 찾아내야만 했다. 저런 적을 상대로 정령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을 거라고 보는 게 맞았다.

[유피, 우리 무시?]

[우리 무시하면 싫어. 미워.]

정령들은 유피테르에게로 다가와서 가슴팍을 앙증맞은 손으로 두드렸다.

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사표시였다.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이었으나 말투와 행동이 그럴듯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너희들의 힘을 빌려줄래?”

결국, 유피테르가 항복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녀들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러면 사도 이스캐리엇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라린 패배의 잔을 받아야만 했다.

[좋아. 불러줘.]

[우리의 이름. 유피는 알 수 있어.]

수수께끼 같은 정령 소녀들의 말.

유피테르는 소녀들의 마음에 응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골머리를 썩였다.

사도 이스캐리엇의 모습이 머릿속에 일렁거려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유피. 그럼 안 돼.]

[그러면 우리의 이름 떠올리지 못해.]

그런 유피테르를 보며 정령 소녀들이 타박했다.

저런 식으로는 몇십 년이 지나도 자신들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돌아오지 않을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뿐이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헤매고 있는 유피테르에게는 가장 필요한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마음에 들었던 정령들은 조금 더 직접적인 힌트를 주었다.

[우리는 아르테미스를 지키는 정령.]

[진정으로 아르테미스의 피를 잇는 자라면 알 수 있어.]

촤르르륵―.

유피테르는 그 말을 듣고는 기억의 도서관을 열었다.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의심할 여지 따위 없었다. 기억 속 어딘가에 그녀들의 이름이 있으리라 강하게 믿었다.

그는 많은 양을 자랑하는 아르테미스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었으니까. 마법이 불가능한 그에게 취미 생활이라곤 책밖에 남지 않았었다.

‘키워드는 아르테미스. 그리고 초대 가주 나이아드.’

잠시 시간이 지나자, 유피테르는 단서를 찾아냈다.

초대 가주를 모티브로 한 소설 속에 그녀들의 이름이 있었다. 모두가 거짓말이라며 우스갯소리 취급했던 전설집이었다.

유피테르는 평범한 사람은 믿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그 책의 구절을 따라 했다.

“내게로 오라 달의 축복을 받은 정령들이여. 그대의 이름은 살육을 담당하는 르타모스 그리고 짐승의 어머니인 아크토스일지어니!”

우우우우우웅.

유피테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소녀들이 엄청난 기운을 보여주며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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