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61화 (161/265)

사도 이스캐리엇(8)

* * *

‘혼돈 마법이라니 저런 건 제대로 된 마법이 아니야. 있을 수 없어!’

유피테르는 이를 악물었다.

그 바람에 피가 고여서 밖으로 새 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설령 윗니와 아랫니가 바뀌어버리더라도 치유 마법을 쓰면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그것보다는 혼돈 마법이 더 문제였다.

고작 이 정도 출력으로 아티팩트가 부서질 리 없었다. 이 반지는 바실리 컬렉션 중 일부였으니까.

게다가, 마족의 마나를 저런 식으로 다루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족의 마나는 공격적이고 파멸적이었다. 그걸 다른 마나와 융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오직 신뿐이었다. 마왕이나 공작들 중에서도 혼돈 마법을 쓰는 존재는 없었다.

카테리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계속 주도권 싸움이 이루어졌다. 주도권이 바뀔 때마다 마나의 색 역시 완전히 뒤바뀌었다.

언제 주도권이 뒤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아, 유피테르는 여전히 델포이 아카데미에 남아 있던 거였다.

“생각보다 놀란 표정이로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네.”

사도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유피테르에게 더 다가갔다.

유피테르와 이스캐리엇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대기도실은 수백 명을 수용할 정도로 거대하긴 했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 공방을 끝낸 상황이었다.

사도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두 사람은 너무나 가까워졌다.

“허어…. 이게 그렇게 충격받은 일인가? 세상에는 자네가 모르는 마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유피테르가 대답하지 않자, 이스캐리엇은 그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질 줄이야.’

사도는 유피테르에게 깊이 실망했다.

신의 대행자가 혼돈 마법 정도에 의지를 잃을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유피테르를 보면 볼수록 신에 대한 애증이 조금씩 묘한 방향으로 변질되었다.

왜 내가 아니라 저런 놈이 선택받은 것인가.

한때 누구보다 신의 목소리를 갈구하던 이스캐리엇은 지금, 신을 완전히 증오하게 되었다.

강한 애정일수록 강한 증오가 되는 법이었다.

“그래. 인정하도록 하지. 내가 세상 전부를 안다는 건 오만한 감정에 불과했다.”

유피테르는 의문점과 상관없이 혼돈 마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머릿속을 뒤덮은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모든 건….”

유피테르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세계가 어둠의 품에 안겼다.

방금까지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사도의 얼굴이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서는 마나를 오른손에 집중했다.

“…널 죽이면 해결될 문제니까.”

번쩍ㅡ.

유피테르는 눈을 뜨며 사도를 노려보았다.

환하게 열린 은색 눈동자에는 농도 짙은 살기(殺氣)가 가득했다.

카테리나를 포함한 가족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건 유피테르가 숨겨왔던 가면 중의 하나였다.

‘이 무슨….’

유피테르의 손에 모이는 마나를 살펴보던 이스캐리엇은 흠칫했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마나와는 완전히 성질이 달랐다. 아니, 저건 절대로 마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마치, 혼돈 마법처럼 세계의 법칙을 벗어난 힘이었다.

저 괴물 같은 힘에 대항하기 위해 이스캐리엇도 혼돈 마법을 준비했다.

그렇게 서로가 경쟁하듯 마나를 모은 몇 초 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니플헤임

이스캐리엇 식 혼돈 마법 – 혼돈의 불꽃

쪄저저저적!

시간마저 얼어 붙이는 차가운 푸른 마나는 교황청의 대기도실을 빠르게 장악하기 시작했다.

니플헤임이 만들어내는 냉기는 마치 죽음의 숨결과도 같았다.

화르르르륵!

이에 질세라, 혼돈의 불꽃도 영혼마저 태울 기세로 앞을 향했다. 세계가 얼어붙어도 불길한 색의 불꽃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의 마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ㅡ.

이스캐리엇의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하던 불안감이 적중했다.

유피테르의 마법은 혼돈 마법을 가볍게 능가했다. 그리고서는 곧바로 사도에게 들이닥쳤다. 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크, 크헉…. 어떻게 혼돈 마법을!”

이스캐리엇은 내상을 입어 피를 토하면서도 악을 썼다.

“혼돈 마법이 이루어지는 시간 자체를 얼렸다. 그것뿐이야.”

유피테르는 대륙의 마법사들이 들으면 혼절할 정보를 담담하게 말했다.

“웃기지 마라! 시간을 멈추다니. 그런 건 신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네가 직접 말했잖아. 신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사도가 악을 써도 이미 그의 몸은 빠르게 얼어붙고 있었다.

발에서 무릎을 지나 다리를.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그대로 위를 향했다. 이대로면 심장이 얼어붙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어쩔 수 없나.’

단숨에 죽음의 위기까지 몰린 이스캐리엇은 결단을 내렸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심장은 목숨만큼 소중한 거였다. 마나를 모으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그는 숨겨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와라! 타락한 자들이여!”

사도의 말에 봉인 마법진 속에 있던 교황의 지팡이와 성배가 반응했다.

신이 내린 두 개의 아티팩트는 사도의 말을 따라 그의 앞에 모였다.

그리고서는 어두운 마나를 뿜어내며 유피테르의 마나를 걷어냈다.

“교황의 지팡이와 성배가? 말도 안 돼.”

신이 선물한 아티팩트가 사도의 편을 드는 걸 보고 유피테르가 경악했다.

성국에 존재하는 세 개의 아티팩트는 인간의 경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존재했다.

교황이나 성녀 역시 아티팩트의 주인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티팩트가 위에 있었으니까. 그저 ‘계약’을 맺고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혼돈 마법에 불가능이란 없다! 자, 봐라! 이게 내가 널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다.”

이스캐리엇의 말에 두 아티팩트가 하나로 뭉쳐졌다.

휘이이이이이이익!

지팡이와 성배는 엄청난 마나 폭풍을 일으켰다. 본래의 신성한 빛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신기는 신기였다.

교황의 지팡이는 이미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성배는 결계를 영구적으로 펼쳐냈다.

강대한 힘을 보유한 두 아티팩트가 합쳐지는 중이었다. 자연스레 평범한 마법사들은 쳐다보지조차 못 할 마나 폭풍이 휘몰아쳤다.

‘신성 아티팩트의 자아를 죽인 것 정도가 아니잖아?’

유피테르는 마나 폭풍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방어막을 쳤다.

투드드드득!

그러나 방어막을 만드는 족족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서졌다. 몇 겹으로 쌓아 단단하게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젠장! 난 바실리의 후계자라고.”

계속된 실패에도 유피테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단순히 죽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스캐리엇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선택해 준 바실리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다.

유피테르는 분명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이미 잊혀 버린 고대 마법에 정통했다. 그뿐만 아니라, 혈계 마법을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이 모든 게 그가 지니고 있던 유일무이한 특성 덕이었다.

그래도,

핑계 대지 않고 힘으로 사도를 압도하고 싶었다.

그래야 정말로 과거와 달라졌다는 걸 인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힘을 원해?]

그 순간,

유피테르의 귀에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작 저런 놈에게 겁을 먹고, 환청까지 듣나. 나도 많이 나약해졌네. 네가 있었다면 엄하게 한소리 했겠네. 미안해, 바실리.’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건 몇 번이나 마나 감지를 이용해 확인한 사실이었다. 케팔로스가 감지에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상한 물체 덕에 감지 자체가 불가능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상황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저자를 쓰러트릴 힘이 필요해?]

‘힘을 원하느냐고? 아니. 그런 건 필요 없어. 내게는 바실리가 알려준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유피테르는 속삭이는 목소리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다른 힘을 빌려서 이겨봤자 기쁘지 않았으니까.

[그래…?]

속삭이는 목소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서는 이내 사라졌다.

알 수 없는 목소리 덕에 유피테르는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다.

아티팩트가 만든 마나 폭풍이 위협적이라면 자신의 시간을 멈춰 세계의 섭리에서 벗어나면 되는 거였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의 노래

유피테르는 출력을 한 단계 올렸다.

그러자 이전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짙은 마나가 주변에 모였다.

한 번의 실패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그는 망설이지 않고 마나를 차근차근 배치했다. 바실리의 교육과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천재적인 발상이 합쳐져 새로운 마법을 낳았다.

그렇게 유피테르의 시간이 잠시 멈췄다.

잠시 후, 마나 폭풍이 멎었다.

“생각보다는 제어가 잘되었군.”

사도는 완성된 아티팩트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신벌과도 같은 마나 폭풍 속에서 대기도실이 무사한 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게 더 중요했다.

“그것참 축하할 일이네. 박수라도 쳐줄까?”

“어,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유피테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스캐리엇은 당황해서 아티팩트를 떨어트렸다.

“소중한 아티팩트를 그런 식으로 다뤄서야 쓰나?”

유피테르의 지적에 이스캐리엇은 황급히 아티팩트를 주워들었다.

그리고서는 품 안에 소중하게 숨겼다.

‘도박에 성공했네.”

유피테르는 표정을 관리하며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간 동결.

유피테르는 초대 아르테미스가 사용했던 전설의 기술을 응용해서 사용했다.

자신의 시계를 느리게 만들어 세계의 법칙에서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모든 걸을 분쇄하는 마나 폭풍 속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지팡이만 있다면 너 같은 건 쉽게 이길 수 있다!”

이스캐리엇은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양손으로 꽈악 쥐었다.

유피테르가 어떤 힘을 더 숨기고 있는지는 이제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무기만 있다면 신이 상대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진정한 혼돈 마법의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자신 있다면, 해봐. 받아줄게.”

유피테르도 완전히 망설임을 벗어나 언제라도 마법을 쓸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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