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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60화 (160/265)
  • 사도 이스캐리엇(7)

    * * *

    교황청의 거대한 문에는 레아교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처음 보는 벽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흥미가 생긴 유피테르는 벽화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기억에 있는 얼굴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건…. 티폰과 에키드나인가?’

    많이 미화시키긴 했으나, 그건 분명히 마왕과 마왕비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유피테르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끼이이익ㅡ.

    구경을 끝낸 유피테르는 피식 웃으며 교황청의 문을 열었다. 밖에 즐비하던 몬스터들이 안에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성배를 훔쳐 간 사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조용하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웅장함을 자랑하는 교황청 내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몬스터들의 숨소리와 괴성으로 귀가 아팠던 밖과는 대조적이었다.

    “자. 어디서 날 기다리는지 한번 볼까?”

    유피테르는 케팔로스를 발동해 마나를 넓게 퍼트렸다.

    휘이이익.

    그의 마나는 교황청 곳곳으로 나아가며 정보들을 수집했다.

    인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지만, 유피테르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이 정도로 그의 마나가 바닥날 리 없었다.

    잠시 후, 유피테르는 마나가 보내온 정보를 확인했다.

    ‘정말로 아무도 없잖아? 그 흔한 방어 결계 조차 없다니 날 물로 보는 건가.’

    교황청은 말 그대로 텅 비어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적의 침입을 방어할 어떠한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도는 분명 분신체를 통해 자신의 힘을 확인했다. 서로가 가진 패를 전부 보여준 건 아니었다. 그래도 힘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전투였다.

    그런데도 이런 태도를 보이자 헛웃음이 나왔다.

    유피테르는 혹시 함정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케팔로스의 감지는 정확했다.

    교황청은 정적 속에 갇혀 어떠한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세계에 퍼져 있는 마나가 더욱 쉽게 느껴질 정도로.

    “참 대담하네 이스캐리엇.”

    유피테르는 사도가 기다리는 대기도실로 망설임 없이 이동했다.

    * * *

    “어서 오게나 신의 대행자여. 아니, 아르테미스의 대공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대기도실의 문을 열기도 전에 사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유피테르는 그 소리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그는 자세를 잡고서 왼발로 문을 강하게 후려쳤다.

    콰앙!

    대기도실의 문은 굉음과 함께 뒤로 넘어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 후, 대기도실 끝에 앉아있는 사도와 눈이 마주쳤다.

    사도는 교황의 의자에 앉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서는, 박수를 쳤다.

    “귀족답게 화려한 인사법이로군?”

    “이제 거지 같은 존댓말은 쓰지 않는 거야? 그거 들어주는 건 꽤 고역이었다고.”

    유피테르는 천천히 사도에게로 다가갔다.

    교황청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특별한 방어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사도가 자신의 실력에 꽤 큰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건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분신체들에게도 자아가 있어서 말이지.”

    사도는 박수를 멈추고서 유피테르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서는 다리를 다른 방향으로 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왜 이곳에 온 건가? 자네는 할 일이 따로 있는 사람이지?”

    “마치, 나에 대해 잘 아는 말투로군? 내 기억 속에 너 같은 존재는 없다만.”

    유피테르는 걸음을 멈추고서 사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핏빛 눈동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마족과 관련이 있다는 가장 큰 증거였다. 마족의 마나를 사용하는 자들은 제일먼저 본연의 눈동자를 잃었다.

    아폴론 가문의 사람들도 비슷한 색이었으나, 저렇게 기분 나쁜 빛은 아니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할 줄이야. 꽤 서글프군.”

    사도는 슬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피테르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유명한 건 네가 아니라 나일 텐데. 왜 너를 알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야, 한 번 얼굴을 봤으니까.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천칭에게는 이 정도도 과분한 것 아닌가?”

    유피테르는 천칭이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뻔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설마 했지만…. 내가 천칭이라는 사실까지 아는 건가?’

    유피테르는 케팔로스를 유지하며 생각에 잠겼다.

    만일, 사도가 허튼짓을 하려고 해도 언제든지 반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천칭이라는 걸 아는 자는 바실리와 칼리스토들뿐이야. 교황이나 성녀도 몰랐어.’

    자신은 2대 천칭이 되었긴 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활동한 적은 없었다.

    그럴 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시간도 부족했으니까.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사실을 사도가 알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았으니.

    “뭘 그리 생각하지. 성배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지 않나?”

    유피테르가 가만히 있는 게 신기했는지, 사도가 말을 걸었다.

    “성배가 어디 있긴 네 몸속에 있겠지.”

    “그렇게 상대방을 무시할 줄이야. 역시 초대 성녀의 주인인가. 아니, 신의 사랑을 받은 아이라고 부르도록 하지.”

    유피테르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자, 사도가 이야기의 소재를 바꾸었다.

    “뭐…?”

    그리고 그건 유피테르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대사제 사우스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가 정말로 요한 크레이프라면 오흐트가 초대 성녀라는 것쯤은 알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붙인 말이 문제였다.

    “대체 넌 누구지?”

    유피테르의 목소리에 자그마한 두려움이 겹쳐졌다.

    ‘그녀’에 관한 건 이미 사람들에게서 잊혔어야 정상이었으니까. 교황 역시 어렴풋이 ‘그녀’의 존재를 추측할 뿐이었다.

    바실리를 기억한다는 건 그 자가 절대 평범하지 않은 자라는 걸 의미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소개는 아직이었나.”

    이스캐리엇은 잠깐 뜸을 들인 뒤 충격적인 사실을 내뱉었다.

    “나는 이스캐리엇. 창조신 레아를 모셨던 초대 템플 기사들 중 한 명일세.”

    “인간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해!”

    유피테르는 사도의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저 입은 화약고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 열릴 때마다, 진실이 흘러나왔으니까.

    그래서 이야기를 끊기 위해 마법을 날렸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창

    푸르른 창이 대기를 얼리며 이스캐리엇에게 날아갔다.

    “한 번 봤던 마법은 쓸모가 없어진다는 건 상식 아닌가.”

    이스캐리엇 식 신성 마법 – 방어막

    이스캐리엇은 방어막을 펼쳐서 얼음창들을 가볍게 막아냈다.

    “3중으로 방어벽을 치다니 능력이 있긴 한가 보군.”

    “내 말을 믿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겠지.”

    이스캐리엇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서 또 한 번 마법을 준비했다.

    이스캐리엇 식 신성 마법 – 신성한 분노

    사도가 마법을 완성하자마자 대기도실에 신성한 마나가 충만했다.

    평신도들이라면 그걸 보고 레아가 강림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진짜로 신성 마법을…?”

    “이제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드는가.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사도 이스캐리엇이 사용한 신성한 분노.

    이건 템플 기사들이라면 누구나 습득하는 기본적인 마법이었다. 게다가 템플 기사들이 신분을 증명하는 마법이기도 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넌 지금 레아교의 머나먼 후예인 현 교황을 죽였어.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일세. 창조신 레아를 뵙는 것.”

    “뭐…?”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대답에 유피테르는 말문이 막혔다.

    레아교도에게 창조신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마족과 손을 잡아가면서 벌일 일은 아니었다.

    “자, 그럼 이 모든 일의 피날레를 완성하도록 하지.”

    사도는 작게 중얼거린 후, 마법을 펼쳐냈다.

    이스캐리엇 식 혼돈 마법 – 혼돈의 화살

    이스캐리엇이 혼돈 마법을 꺼내 들자, 유피테르도 바로 대응할 준비를 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결계는 곧바로 완성되었다.

    그 순간,

    “방어부터 하다니 그런 건 자네답지 않네.”

    이스캐리엇이 얼음 나비의 결계에 참견했다.

    혼돈의 마나가 마법식에 추가되어 제멋대로 날뛰었다.

    마족보다 뛰어난 마나 제어력을 지닌 유피테르라도 이건 무리였다. 혼돈의 마나는 그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그건 기존의 마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혼돈의 마나라니 어떻게 이런 힘이 존재할 수 있는 거지?”

    유피테르는 의문 속에서도 어떻게든 마법을 제어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나 혼돈의 마나는 완전히 유피테르와 상극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이건 그야말로 유피테르를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마법인 것만 같았다.

    “너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같다고 생각하나?”

    “그걸 어떻게….”

    속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린 유피테르는 당황했다.

    마왕을 상대할 때도 유피테르는 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쪽이었다. 애초에 그가 가진 힘 중 일부만으로도 세계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선택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뜻을 이어받아 역사를 바로 세울 힘. 그걸 가진 게 바로 나였지.’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는 운명을 타고난 아이였다.

    어린 시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것도. 그녀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도 꼬인 운명의 일부였다.

    그리고 이걸 아는 자는 창조신을 제외한다면 단 두 사람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자네는 이 마법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죽게 되겠지!”

    이스캐리엇은 만들어두었던 화살을 한꺼번에 날렸다. 마치, 공성전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수였다.

    ‘이대로라면 당한다.’

    얼음 나비의 결계가 말을 듣지 않아 애를 먹던 유피테르. 그는 기존의 선택지를 버리고서 다른 선택지를 꺼내들었다.

    “이거라면 어때!”

    유피테르는 가지고 있던 반지 중 하나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다섯 장의 결계가 펼쳐지며 그를 보호했다.

    마법식를 만드는 게 힘들다면, 이미 만들어진 아티팩트를 이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콰아아아앙!

    혼돈의 화살이 오중 결계를 부술 듯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결계를 부섰을 뿐 유피테르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먹히지는 않았다.

    ‘일단 막아내긴 했…?’

    빠직.

    유피테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할 때, 아티팩트가 갑자기 부서졌다.

    “아무리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라고 해도 혼돈 마법은 이해가 가지 않는가 보군.”

    당황한 유피테르의 얼굴을 보며 이스캐리엇이 환히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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