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59화 (159/265)
  • 사도 이스캐리엇(6)

    * * *

    “네가 마지막으로 남은 대사제로군.”

    유피테르는 사우스가 등장하자마자 그의 정체를 눈치챘다.

    사실 모를 수가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해 개선하는 장군 같은 걸음걸이와 화려한 복장. 그리고 뒤에 맨 거대한 검과 방패까지.

    그야말로 기사의 귀감이 될 법한 모습이었으니까.

    유피테르와 사우스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너를 사도의 앞으로 보내지 않겠다. 날 쓰러트려야만 뒤로 향할 수 있을거다.”

    “글쎄다. 그건 내가 정할 일이지. 네 동료들이 모두 내 손에 죽었는데. 용케 나타났네? 사도가 내 정체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공기에 몬스터들마저 침묵했다. 자칫 잘못하면 피를 보는 건 자신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몬스터도 죽기 싫은 건 사람과 똑같았다.

    거대한 트롤이 쓰러진 뒤, 몬스터들은 은연중에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사도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생각보다 사도를 잘 따르나 봐? 그 검과 방패 레아교 성기사들만 얻을 수 있는 거로 아는데. 누굴 죽이고 빼앗기라도 한 건가?”

    유피테르는 사우스의 검과 무기를 흘끗 보며 도발했다.

    레아교의 신관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졌다.

    사제계열과 기사계열.

    사제계열은 신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치유와 축복 마법을 중심으로 사용했다.

    이 길을 걷다가 운이 좋으면 추기경의 자리까지 오를 수도 있었다.

    기사 계열은 여신의 뜻을 더 직접적으로 이루려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신성 마법 중 공격 마법을 주로 이용했다.

    이단 심문관들 역시 기사 계열의 아종이었다.

    “아르테미스답게 잘도 지껄이는군”

    사우스는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피식 웃으며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번쩍ㅡ.

    흰색 검과 방패는 빛이 날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었다. 깐깐한 드워프들 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그것보다 놀라운 건 레아교의 문양이 박힌 방패였다.

    “배신했으면서 레아교의 무기를 들고 있는 거 부끄럽지 않아? 창조신이 이 모습을 본다면 아마 목놓아 울 거 같은데.”

    “여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적어도 내가 너보다는 신의 말을 잘 따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여러 모욕적인 말에도 꾹 참던 사우스가 드디어 폭발했다. 그는 왼손에 든 검에 힘을 주고 미끄러지듯 앞으로 튕겨 나갔다.

    “성질도 급하시네!”

    유피테르는 쏜살같이 달려드는 사우스를 보며 방어막을 펼쳐냈다.

    콰앙!

    검과 마법이 부딪쳤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워어어어!”

    “로로로로로로오오오롤!”

    주변에서 원을 만들던 몬스터들이 그 소리에 귀를 막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중 몇몇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고서는 자리에서 도망쳤다. 이곳에 싸우는 두 사람은 어떻게 보아도 몬스터들보다 위였으니까.

    “생각보다 마법을 짜내는 게 빠르군.”

    “그러는 네 검에는 신성 마나가 남아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두 사람은 단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았다.

    기세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 끝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여기서 진 자는 몬스터의 밥으로 전락하게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마인이 된 게 아닌가?’

    유피테르는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우스의 눈은 정갈한 빛을 뿜어냈다. 신의 뜻을 따르는 자들만 보일 수 있는 색이었다. 교황 아스라엘과 감히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제 출신이었던 이스트와 웨스트 모두 욕망에 자신을 내준 상태였다. 반면에 사우스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애매한 상황에서 유피테르가 도출한 답은 간단했다.

    어차피 사도를 잡아 기억을 읽으면 모두 해결될 이라는 것이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파편

    거대한 트롤에게 악몽을 선사했던 그 마법이 또 세상에 나타났다.

    투투둑!

    얼음 파편들이 유피테르의 적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우워어어어어어!”

    “트로로로로로로올.”

    이번에도 포위망을 만든 몬스터들이 먼저 공격당했다. 녹지 않는 얼음에 당한 몬스터들은 서글프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걸 알아주는 인간은 이곳에 없었다.

    “같은 마법을 두 번 보여주다니 무르군!”

    요한 식 신성 마법 – 여신의 축복

    사우스는 기합과 함께 방패를 높였다. 그리고서는 신성 마법을 사용해 방패를 강화했다.

    신성 마나가 깃들은 방패는 얼음 마법을 적당히 흘려냈다. 신에게 전수받은 신성 마법이라고 해도 유피테르의 얼음은 위험했다.

    “생각보다 대단한데?”

    그걸 본 유피테르는 감탄했다.

    얼음 파편은 대단한 마법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처리하기 귀찮았다.

    이 파편 중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이게 이 마법의 숨겨진 비장의 무기였다.

    마법은 몬스터들 주변을 휩쓴 후, 천천히 사라졌다.

    “후우….”

    그걸 본 사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없이 막아내긴 했지만, 상상 이상의 위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힘들게 마법을 쓴 것 같지도 않았다.

    가벼운 주먹 한 방이 이 정도 타격을 준다면, 발차기는 대체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요한이라고…?’

    사우스가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유피테르는 그가 사용한 마법에서 힌트를 발견했다.

    마법사들은 퍼스트 서클을 달성할 때 자신의 마나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 후, 마법을 쓰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신에게 인정받은 마나의 주인이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을 무시하면 절대로 ‘마법사’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사제 사우스의 본명이 요한이라는 걸로 귀결되었다.

    “설마 너. 템플 기사단 단장 요한이냐?”

    유피테르는 생각을 그대로 입으로 옮겼다.

    맞아도 좋았고, 만일 틀리더라도 가설 중 하나를 지울 뿐이었으니까.

    “요한? 그게 누구지.”

    그 물음에 사우스의 태도가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표정은 딱딱해지고 목소리는 떨렸다.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온몸의 모든 신호가 유피테르의 말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요한 크레이프

    크레이타에 거주하지 않는 유피테르라도 그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세아니아 대륙의 사람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성국이 자랑하는 세 개의 기둥 중 하나인 템플 기사단의 단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당신이 낙원교로 간 거지? 당신은 언제나 교황의 편을 들던 자였을 텐데.’

    유피테르는 요한의 생각을 읽는 걸 포기했다.

    신의 대행자라고 불리는 유피테르도 성국의 모든 사정을 알지는 못했다. 오흐트가 있었으나 그녀와 굳이 성국의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과거를 탓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했기에.

    “이게 끝인가 아르테미스?”

    “설마.”

    유피테르는 잠깐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걸 잘못 말한 거겠지? 그게 본심이라면 실망할지도 몰라. 요한 크레이프.”

    “난 그런 사람 모른다니까!”

    유피테르의 정신 공격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사우스는 처음으로 벌컥 화를 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검에 신성 마나를 모았다.

    우우웅ㅡ.

    이스트, 웨스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신성 마나가 검에 깃들었다.

    그 바람에 몬스터들이 한 발자국 뒤로 불러냈다. 강한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신성 마나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는 감정은 같았으니까.

    “정말로 마인이 되지 않은 건가? 그렇다면 어째서 낙원교에 협력을 한 거냐!”

    “마인? 낙원교? 그런 건 모른다. 난 처음부터 나였을 뿐!”

    요한 식 신성 마법 –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

    공격형 신성 마법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이 사우스의 검을 통해 펼쳐졌다.

    휘이이이익!

    사우스의 마법이 교황청 주변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신성 마나가 휘몰아치며 땅에 거대한 십자가를 그렸다. 십자가는 환하게 빛나며 여신에게 반기를 든 존재들을 그대로 소멸시켰다.

    잠시 후.

    그랜드 크로스가 직격한 교황청 주변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심심치 않게 보이던 몬스터들은 씨가 말랐고, 낙원교의 불길한 마나 역시 소멸했다.

    “결국 …하는 걸 서, 성공했군.”

    신벌이 내린 것만 같은 자리에서 사우스는 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유피테르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째서 다른 마법이 아니었던 거지? 그랜드 크로스로는 내게 해를 입힐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랜드 크로스

    이 마법이 신성 마법 중 가장 최강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신의 적을 배제하는 마법이었다. 신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마족이나 몬스터를 공격할 때 신성 마나가 도움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게다가 이 마법을 사용한 걸 볼 때, 저자는 분명 요한이 맞았다. 그랜드 크로스는 창조신 레아를 진실로 믿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랜드 크로스를 혼자서 펼쳐내려면 템플 기사단 단장 정도는 되어야만 했다. 웬만한 추기경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빛이… 있기를.”

    사우스는 유피테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레아교의 인사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끝까지 그의 무릎은 땅에 닿지 않았다.

    “이게 대체…?”

    승리하긴 했다.

    그러나 유피테르는 여전히 찜찜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다른 낙원교 대사제들과 다르게 사우스의 행동은 의문점투성이였다.

    ‘왜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 거지?’

    이스트와 웨스트는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노스라고 불렸던 에이프릴 역시 죽일 마음으로 달려들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사우스는 무언가가 달랐다.

    그리고 이게 이 사건을 해결할 열쇠라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의 감각이 틀린 적은 없었다. 상식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하더라도,

    마지막에 웃는 건 늘 자신이었다.

    “어차피 사도를 사신의 품으로 보내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테지.”

    유피테르는 정신을 잃은 사우스를 내버려 두었다.

    사우스가 요한 크레이프인지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굳이 마무리를 짓고 싶지 않았다. 그랜드 크로스를 사용할 수 있는 인재를 여기서 잃는 건 분명한 손해였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만약, 이 모든 게 사도가 꾸민 연극이라면 뒤통수를 맞을지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유피테르는 사우스를 결계 속에 가둬 놓기로 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확인을 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유피테르는 마나를 모아서 푸른 나비의 결계를 펼쳤다. 자주 펼치는 마법답게 결계는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완성되었다.

    그 후, 결계의 상태를 확인하고서는 곧바로 교황청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