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58화 (158/265)
  • 사도 이스캐리엇(5)

    * * *

    이스캐리엇의 분신을 잡아낸 유피테르. 그는 성국 해방 전선의 거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성국 해방 전선에는 이제 유피테르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가 없더라도 성전은 계획대로 진행될 게 분명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유피테르는 어디까지나 조력자에 불과했으니까. 결코, 상황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레아교의 일은 레아교도들의 손으로 이루어내야 의미가 있었다. 가뜩이나, 교황이 살해당해 혼란한 상황이 연속되는 중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성국에게 미래는 없었다. 제국들의 올가미에 걸려 고생만 잔뜩 하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게 될 뿐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한 유피테르의 다음 목적지는 교황청이었다.

    “마스터 들려?”

    메르카르트를 사용해 빠르게 이동하는 그에게 연락이 들어왔다.

    “에냐인가. 무슨 일이지?”

    “마스터. 오흐트에게서 연락이 왔었어.”

    유피테르에게 메시지를 보낸 건 델포이 사건 때 같이 있었던 에냐였다.

    칼리스토들과 유피테르 사이에 이어진 패스.

    ‘바실리’가 직접 고안한 이 계약 마법 덕에 생사 확인은 물론,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오흐트는 델포이에서 상황을 수습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유피테르가 에냐에게 물었다.

    델포이 아카데미는 지금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로즈가 구조선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누군가 강제로 유피테르를 명단에서 빼버렸다.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은 낙원교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그 자리에 대사제 중 한 명이 와있다는 것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유피테르만 구조선에 없었으니 패닉에 빠질 만도 했다.

    유피테르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이 부분을 도와줬던 게 바로 오흐트였다.

    그녀는 패스를 통해 델포이 아카데미의 상황과 카테리나의 상태를 보고해주었다.

    “맞아. 마스터의 여동생이 잠깐 의식을 회복했었다고 했어.”

    “카테리나가?”

    카테리나는 교류전 휴일에 갑작스레 쓰러진 이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신관들은 물론, 오흐트에게까지 진찰을 받아봤다. 그러나 쓰러진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뭐야 바로 전이었다는데. 짚이는 부분 있어? 그런 게 있다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

    “바로 전이라고…?”

    유피테르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사도를 때려잡는 것만큼 카테리나의 몸 상태도 중요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마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걸 가진 이상 마족의 눈에 띄게 될 것이고, 편안한 삶과는 멀어지게 될 게 눈에 선했다.

    애초에 저런 소중한 물건을 마족령 밖으로 빼온 것부터가 이상했다. 만약, 저 아티팩트가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차기 마왕을 선정하지 못할 테니까.

    마왕은 마족에게 있어서 신과 유사한 위치였고, 공작들은 그를 지지하는 사도나 마찬가지였다.

    ‘잠깐. 사도라고?’

    바로 그때, 유피테르의 머릿속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설마, 이스캐리엇이 쓴 혼돈 마법 때문인가?’

    혼돈 마법을 처음 보았을 때, 카테리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테리나의 몸속에 든 기운은 서로 상극은 아니었다.

    인간의 몸에 깃든 마족의 힘은 위험하고 제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신성 마법에 비한다면 별거 아니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에냐. 혼돈 마법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아니,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애초에 그런 건 첫째 언니에게 물어봐야지.”

    “그것도, 그런가. 일단 자매들에게 알려. 사도를 만났다.”

    “뭐? 정말이야?”

    사도라는 단어에 에냐가 격하게 반응했다.

    트리아를 주축으로 한 칼리스토 자매들의 정보력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전성기를 기준으로 모두 인간을 초월한 자들이었기에 당연했다.

    델포이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건 물론, 낙원교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전조를 포착했었다.

    그러나 사도에 대해서 알아낸 건 극히 적었다.

    낙원교 세력이 워낙 폐쇄적이기도 했고, 탈출한 마족을 쫓는 게 최고로 중요한 사항이었으니까.

    “라플라스는? 페르세포네의 구멍에 대해서는 물어봤어?”

    “그럴 시간은 없었어. 나도 속아 넘어갔으니.”

    그 말을 들은 에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속아 넘어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마스터의 감지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이 있긴 해?”

    “그걸 인간이라고 보긴 힘들어.”

    유피테르는 이스캐리엇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분신체이긴 했으나 본체와 완전히 다를 리는 없었다. 어떤 마법도 완전히 새로운 걸 창조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건 오로지 ‘신’에게만 허락된 영역이었다.

    “마스터니까 그 자식의 마나라도 가지고 있겠지?”

    “아니, 이번에는 없다.”

    유피테르는 평소 처음 본 상대와 전투하며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이것이야말로 ‘바실리’의 교육의 핵심이었으니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상대를 분석할 거리를 챙기곤 했다. 엑시와 오흐트가 분석하지 못할 마나는 없었기에.

    “대체 뭘 한 거야 마스터? 상대방이 마족도 아니었다며.”

    “평범한 인간도 아닌 듯했다. 어차피 교황청으로 가서 바로 마나를 보낼 테니 엑시에게 대기해달라고 전해줘.”

    “알았어. 특별한 일이 있다면 바로 연락할게.”

    * * *

    에냐와 대화를 끝낸 유피테르는 결국 교황청 인근에 도착했다.

    “우워어어….”

    “크르르륵….”

    “로로오오오오!”

    사도의 새로운 명령이라도 떨어졌는지, 교황청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즐비했다.

    좀비.

    오우거

    트롤.

    아르테미스 영지 주변의 숲에서나 볼법한 다양한 괴물들이 삼삼오오 모여 주변을 경계했다.

    보통 몬스터들은 서로의 세력권을 침범하지 않았다. 마나를 원해서 인간의 영토에 쳐들어오긴 했으나, 필요 이상의 강자에게 덤비지 않았다.

    그게 몬스터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는 곳이 다른 여러 몬스터들이 한 무리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결계에 문제에 생긴 게 분명하군.’

    성국과 몬스터는 원래 제일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몬스터들이 저렇게 활발하게 거리를 쏘다니는 걸 보면, 성배를 가져간 게 사도인 건 확실해 보였다.

    “끼에에에에에에엑!”

    건물 뒤에 숨어 있던 유피테르. 그가 건물 뒤에서 몬스터의 구성을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하자, 하늘을 찢는 괴성이 들렸다.

    유피테르가 귀를 막으며 고개를 돌리자, 와이번이 얼굴을 들이밀며 인사했다.

    “하하. 안녕?”

    “꿰에에에에에에엑!”

    유피테르의 얼굴을 확인한 와이번이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마치, 범인이 이곳에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쿵. 쿵. 쿵.

    교황청을 보호하던 몬스터들이 그 소리에 반응했다.

    험악한 외형을 자랑하는 그들은 벌떼처럼 모여들며 유피테르를 압박했다.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진작에 기절했을 정도였다.

    “운도 없군. 이럴 줄 알았으면 교황청 내부로 이동할 걸 그랬어.”

    유피테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가 교황청이 아니라 수도로 이동한 건 큰 흐름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도는 훔쳐 간 성배로 무언가를 할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굳이 함정에 걸려줄 필요는 없었다. 또, 혼돈 마법에 대처할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한 상태였다.

    교황청 주변의 상황을 본 후에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이 생각이 도리어 악수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탁!

    지면을 박차며 와이번에게서 멀어진 유피테르는 재빠르게 마법을 사용했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창, 얼음 화살

    푸르른 색을 지닌 창과 화살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쿠워?”

    “트로로로로롤?”

    흙먼지를 내며 달려오던 오우거와 트롤들은 갑작스러운 기운에 멈춰 섰다.

    유피테르의 마법은 무자비하게 적들을 공격했다. 날카로운 날을 몬스터들의 두꺼운 외피를 그대로 베어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까드드드드득.

    만약, 몬스터들이 마법을 막아내기라도 한다면 더 큰 일이 벌어졌다.

    막아낸 부분부터 빙결되어 그대로 얼음 동상이 되어버렸으니까.

    이건 스켈레톤 메이지가 있었어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였다. 그 윗단계인 리치가 나타났어도 똑같은 상황에 처할 뿐이었다.

    유피테르의 얼음은 시간마저 동결시키는 강력한 힘이었으니까.

    고작 몬스터 수준으로는 이 마법을 피해낼 수 없었다.

    “우우우우우워어어어!”

    학살의 현장에서 한 마리의 트롤이 목청이 찢어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그 트롤은 다른 개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산처럼 거대한 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난폭했다.

    “귀청 떨어지겠다. 이 자식아!”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파편

    유피테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나를 넓게 퍼트렸다.

    그의 마법에 압도당한 몬스터들은 그걸 그저 지켜볼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우우웅.

    푸른 마나는 빠르게 모습을 바꿨다.

    그건 마치 돌멩이 같아 보이기도 했고, 무언가 깨진 조각 같기도 했다.

    파바바바밧!

    주변을 가득 메운 파편은 집요하게 거대한 트롤만을 노렸다.

    “쿼어어어어어엉!”

    얼음 공격을 맞은 거대 트롤은 분노했다.

    감히 일개 인간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다니!

    트롤은 강인한 육체와 뛰어난 치유력을 지닌 몬스터였다. 한때, 치유제로 연구가 되었을 정도로.

    부웅ㅡ

    거대한 트롤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를 담아 철제 몽둥이를 사방으로 휘둘렀다.

    목적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몽둥이에 아군들도 어쩔 줄 몰랐다. 피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저 좌측담장까지 빠르게 날아갈 뿐이었다.

    아군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줬지만, 이미 돌아버린 트롤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넌 무언가 좀 다른가 보네.”

    유피테르는 트롤을 보며 새로운 마법을 준비했다. 거대한 트롤이 쓰러질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쓸모없는 소모전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폭풍

    유피테르의 마나가 사방으로 흐트러져 엄청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이 마법 하나에 이곳에 있던 모든 몬스터의 마나보다 더 많은 양이 들어갔다.

    크루르르릉!

    얼음의 폭푹은 기세를 살려 그대로 트롤에게 직격했다. 간단한 마법은 버텨내던 트롤이라고 해도 이건 무리였다. 안에 들어가 있는 마나부터 차원이 달랐다.

    쿠웅ㅡ.

    결국 거대한 트롤은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육중한 몸이 뒤로 넘어지는 데도 꽤 시간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엄청난 소리를 내며 사방의 건물을 부쉈다.

    그 뒤로 한 기사가 천천히 걸어왔다.

    “역시, 초대 성녀의 주인인가. 싸울만한 가치가 있겠군.”

    낙원교에 남은 마지막 대사제.

    사우스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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