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57화 (157/265)

사도 이스캐리엇(4)

* * *

유피테르는 깊게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어차피 사도 이스캐리엇과 한 번쯤은 싸워야만 했다. 그를 꺾어야만 낙원교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처박을 수 있었으니까.

낙원교는 현재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교황청과 여러 기관들을 장악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았다.

어중이떠중이들에게 마구잡이로 직책을 주었으니 당연했다. 누가봐도 어수선한 분위기로 가득해 나날이 충돌의 크기가 커졌다.

‘사제’라는 중간 관리직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제대로 기름칠을 하지 않은 무기에 녹이 스며드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제가 죽는다니. 굉장히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날이 잔뜩 선 유피테르의 말에도 이스캐리엇은 여전히 웃는 체였다.

사도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본 유피테르는 생각을 바꿔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웅ㅡ.

주변을 압도하는 파괴적인 기운.

넘실거리는 마나에 화려한 은발이 휘날렸다.

푸른 마나는 유피테르의 주변으로 쭉 뻗어 나갔다. 그리고서는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 창들을 만들어냈다.

열 개의 창들은 유피테르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 처리가 굉장히 깔끔하군요. 신의 대리자다운 실력이에요.”

“그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유피테르는 여유만만한 사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창들을 날렸다.

슈웅ㅡ.

얼음창들은 공기를 가르고 힘차게 나아갔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사도 이스캐리엇이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의 얼음창은 간단하면서도 파괴적인 위력을 자랑했다.

유피테르가 사용하는 혈계 마법은 한 수, 아니 세 수는 위였다.

“이것 참. 얕보였나 보군요.”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창들을 보면서 사도는 손을 휘익 내저었다.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얼음창들은 천천히 속력을 잃었다. 힘을 잃은 얼음창들은 사도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중간쯤에서 땅으로 추락했다.

“뭐…?”

유피테르의 눈동자가 유례없을 정도로 커졌다.

‘마나 제어권을 뺏겼다?’

서클의 한계를 초월한 자신이 고작 저런 상대에게 질 리 없었다. 바실리와 함께 훈련한 이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을 봉인하고 있긴 했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왜. 믿기지 않으신가요? 고작 인간에게 제어권 싸움에서 진 게 부끄러우신가 보군요.”

“닥쳐.”

“그런 나쁜 말을 쓰면 그분이 싫어하실 텐데요. 갇혀 있다고 해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건 아니시잖아요?”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분.

명확하게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언급하는 건 유피테르의 역린(逆鱗)을 건드는 것과 다름없었다.

“정말로 죽고 싶은가 보네. 소원대로 해줄게.”

유피테르는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 올렸다.

낙원교의 1인자라던지, 마족과 연관이 있는 자라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날아갔다.

‘고작 저런 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봉인을 당한 건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회의감이 용솟음쳤다.

분노의 감정은 이내 피할 수 없는 얼음의 세계를 만들었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니플헤임

유피테르가 직접 고안한 세계를 정지시키는 마법이 작렬했다.

파드드드득ㅡ.

주변 풍경들의 시간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유피테르의 시선을 따라 마나가 자유롭게 춤을 췄다. 마나가 지나간 곳들은 그대로 멈춰서 생기마저 잃어버렸다.

“대단해. 역시 당신은 최초이자 최후의 인간이 될 자격이 있어!”

강력한 공격 마법이 거리를 좁혀오는데도, 이스캐리엇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래요. 바로 이겁니다. 이 정도의 강자가 있어야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해 볼 수 있죠.’

이스캐리엇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돌아가며 얼음 마법의 위력과 범위를 확인했다.

그가 기다리던 건 바로 이런 싸움이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굳이 힘을 숨겨둘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둘 중 한 명밖에 살아나갈 수 운명이었으니까.

이스캐리엇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마나를 내뿜으며 마법을 완성했다.

이스캐리엇 식 혼돈 마법 – 절망의 불꽃

사도의 마나는 검은색도 그렇다고 해서 흰색도 아니었다. 그저 두 색이 어중간하게 섞여 있었을 뿐.

마왕의 심장과 완벽하게 융화한 카테리나와 비슷했다. 그녀도 폭주했을 때 종종 검푸른 마나를 보여주었으니까.

화르륵ㅡ.

이스캐리엇이 만든 불꽃은 음습하게 타오르며 얼어붙어 가는 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불꽃은 놀라운 일을 해냈다.

작은 오크가 더 용맹하다는 말처럼, 꿋꿋하게 이스캐리엇이 서 있던 작은 공간을 지켜냈다.

그 결과

아무도 파훼할 수 없었던 유피테르의 마법을 멈추는 데 성공했다.

유피테르는 자신의 마법을 막아낸 이스캐리엇을 흘끗 쳐다보았다.

놀라웠다.

카테리나가 펼치는 불완전한 니플헤임조차 마법사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가 대단하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인정해줄 수는 없었다.

지금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은 적이었다.

게다가 혼돈 마법의 감흥이 식자, 도발했던 내용이 귓가를 맴돌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건 불가능했다.

유피테르는 놀라움을 훌훌 털어버리고서 물었다.

“혼돈 마법이라니, 그런 마법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데?”

“그렇습니다. 아주 놀랍죠? 당신이 얼음 마법을 한 단계 진화시켜 독자적인 체계를 만든 걸 참고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감사는 되돌려 드리죠.”

“신성 마나는 신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표지. 너 설마….”

세아니아 대륙의 사람들은 모두 마나를 갖은 채로 태어났다.

이 마나가 고유한 속성을 갖게 될 때 그 사람은 ‘마법사’로 거듭나게 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법칙을 적용받지 않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성국 크레이타였다.

크레이타에서 신성 마법사, 아니 신관이 될 수 있는 길을 딱 하나였다.

교황이나 고위 사제인 추기경들에게 인정을 받고, 백일기도를 끝마쳐야만 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신성 마법은 물론, 체내의 마나를 신성 마나로 바꿔낼 수도 없었다.

“정말로 저를 기억하시지 못하나 보네요?”

“허튼소리 집어치우고 묻는 말에 대답해. 어떻게 네가 신성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은근히 화제를 돌리며 빠져나가려는 이스캐리엇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유피테르.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글쎄요. 저는 과거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해서요. 남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 한두 개는 있는 게 정상이죠.”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세계의 진실을 알고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당신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대체 어떻게 그 나락에서 웃을 수 있는 거죠?”

“네가 알고 있는 세계의 진실이란 게 뭔지 관심 없어. 이제 그만 사라져라.”

말로 해서 들어먹을 상대가 아니었다.

혼돈 마법이 마음에 걸렸지만, 유피테르는 다시 한번 마법을 쏘아냈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검

유피테르는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붙잡았다.

“무슨 짓을…?”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은 유피테르의 행동에 이스캐리엇이 의문을 표했다.

‘혼돈 마법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요?’

혼돈 마법은 기존의 마법 체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대단한 물건이긴 했다.

하지만, 고대 마법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였다.

고대 시절을 호령했던 대마법사들은 정말로 반쯤 미쳐있었으니까. 제정신이 아니라면 마족과 손을 잡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마족은 존재 자체가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고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마족은 인간을 장난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으니.

왜 인간과 마족은 함께할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창조신 레아뿐이었다.

‘물론, 나도 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이론적으로 생각했던 혼돈 마법을 실제로 사용해보기 위해서 그는 모든 걸 버렸다.

과거 자신을 따르던 이들이 이 광경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미쳤다고 할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나왔다고 할지.

파드드드드드득.

이스캐리엇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유피테르의 마법은 완성되어 가는 중이었다.

유피테르의 오른손에는 푸른색의 마나가 끝없이 몰려들었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흉포한 기운이었다.

위험하다.

유피테르가 보여주는 게 허세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스캐리엇도 곧바로 대항책을 준비했다.

이스캐리엇 식 혼돈 마법 – 절망의 방패

검은색과 흰색으로 뒤덮인 마나가 거대한 방패로 순식간에 변했다.

보기만 해도 든든한 기분이 드는 훌륭한 마법이었다.

이스캐리엇의 방패가 완성되는 그 순간, 유피테르의 검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푸르른 느낌을 주는 검 주변에는 푸른 나비들이 날아다녔다.

그가 사용하는 결계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

“그럼. 잘 가.”

검을 완성한 유피테르는 검을 쥐고서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마치, 검이란 무기를 처음 들어본 어린아이처럼.

“아무리 당신이라도 해도 그런 공격으로는….”

이스캐리엇은 어이없을 정도로 무식한 움직임을 보이는 유피테르를 비웃었다.

강력한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맞지 않으면 무의미했다.

현재의 마법사들이 고대 마법사들에 비교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거였다.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려는 바로 그 순간.

“아, 아니?”

유피테르가 베어낸 공간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어떠한 신호조차 없었다.

그저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어느새 세계는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냐!”

움직임을 구속당한 이스캐리엇이 소리쳤다.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는 거야?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으면 더 편했는데 말이지.”

유피테르는 웃으며 대답했다.

변해버린 이스캐리엇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말끝마다 요를 붙어가며 존댓말을 쓰는 건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유피테르.”

이를 악물고서 유피테르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이스캐리엇.

그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걱정하지 마 바로 죽여줄게.”

터벅터벅.

유피테르는 망설임 없이 이스캐리엇에게 다가갔다. 그리고서는 얼음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뎅강ㅡ.

그리고서는 기세 그대로 사도의 목을 베어버렸다.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깔끔한 검술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유피테르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걸 내버려 두지 않았다.

목이 떨어진 이스캐리엇의 시체가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 남은 건 가라앉은 서리들뿐이었다.

“이상하다 싶더니, 본체가 아니었던 건가.”

아무 소득도 건지지 못한 유피테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마지막 순간에 베는 느낌이 묘했다. 마치, 연기를 베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성배를 찾으면 그곳에 있을 거니까.

유피테르는 마법을 해제하고서 미련없이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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