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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56화 (156/265)
  • 사도 이스캐리엇(3)

    * * *

    “결계에 구멍이 났다니. 제대로 체크한 거 맞아?”

    오스티안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어 되물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았던 결계 중에서 성국의 결계가 단연 으뜸이었다. 헤카테는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완벽했다. 그래서인지 단 한 번도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결계를 만든 성배의 존재 자체부터 비밀이었다. 교황들만이 성배가 있는 위치를 알 뿐, 다른 이들은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

    가끔, 성배를 찾아내겠다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긴 했다,

    성배를 찾아내는 자가 영생을 얻고 교황이 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탐색을 해도 성배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신도들은 탐색자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성국에 사는 자들이 몬스터와 던전의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헤카테 덕분이었다. 성국의 결계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성배를 찾는 자들은 결계를 더럽히는 자들로 보일 뿐이었다.

    결국, 성배의 영광을 취하려던 자들은 모두 포기해버리고야 말았다.

    “지금 당장 관측실로 움직여야 합니다. 어디 계십니까 리더?”

    성국 해방 전선의 동료는 애타게 오스티안을 찾았다.

    ‘믿어도 되는 건가.’

    그러나 오스티안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동료가 자신을 찾아 훈련실을 이리저리 헤매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인기척을 확실히 내는 걸 보니 적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것마저도 연기일 가능성이 존재했다,

    신성 기관에서 탈출할 때, 그는 수없이 많은 시련을 겪었다. 믿어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어느새인가 등 뒤에 칼을 꽂으려 했다. 오스티안은 그런 배교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했었다.

    그건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오스티안 리더! 한시가 급한 일입니다. 이건 레아교의 문제가 아니라 마족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구요! 사제님께서 그렇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더 본격적인 말에 오스티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움직였다.

    “네 이름은?”

    “마데크입니다!”

    마데크.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족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유피테르가 말했었다. 그래서 오스티안은 마데크를 한 번 더 검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걸 통과하면 일단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마데크가 정말로 본인이라면 걷잡을 수 없는 비상사태가 닥쳤다는 말이었으니까.

    “성녀의 빛은….”

    “…우리의 품속에서 영원히 빛난다.”

    마데크는 막힘없이 성국 해방 전선의 암구호를 대답했다.

    틀림없었다.

    저기서 애타게 그를 찾고 있는 마데크는 본인이었다. 이 암구호는 유피테르가 있을 때 모두의 마나를 확인하고 알려준 것이었다.

    그래서 오스티안은 생각을 바꿔 모습을 드러냈다. 리더를 발견한 마데크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환히 웃었다. 드디어 맡겨진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으니까.

    “구멍이 왜 뚫린 건지 설명을 해봐.”

    “그게…. 직접 눈으로 보셔야 빠를 것 같습니다.”

    마데크의 태도에 오스티안은 답답함을 감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성국의 시작과 함께한 결계에 문제가 생겼다며. 그런데 네 말을 책임지지도 못하나?”

    결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었다.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자신을 찾았는지는 관계없었다. 마데크가 평신도라고 해도 그 정도의 상식은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창조신을 티끌만큼이라도 의심하면 곧바로 이단 심문관들이 출동했으니까.

    “아닙니다. 책임질 수 있습니다! 관측관님께서 자세한 설명은 와서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마데크는 오스티안의 호통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겁을 먹을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는 성국 본토를 관측하는 사제의 업무를 지원하는 중이었다. 예를 들어, 성국의 결계를 감시하거나 낙원교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도왔다.

    이 일은 생각보다 더 중요했다. 성전을 시작한 동료들의 목숨과도 직결되어 있었으니까.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이런 표정을 짓는 게 가능했다.

    “후우…. 좋아. 일단 네 말을 믿고 관측소로 가자. 거기 있는 사제라면 대화가 좀 통하겠지.”

    마데크와 이야기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걸 오스티안은 눈치챘다. 그래서 마데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이다음으로 가볼 곳이 관측소였다.

    그곳은 연구시설일 때부터 최고로 중요한 보안등급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당연히 이 정도의 흔들림으로 대피했을 리 없었다.

    또, 관측관을 맡은 사제라면 이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성국을 지켜주는 결계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예상됨.]

    오스티안은 마데크를 따라가며 유피테르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이 간략한 정보로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그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오스티안의 예상은 정확했다.

    유피테르는 이미 성국 해방 전선의 거점을 떠나 성국 본토로 이동해있었다.

    어차피 성녀 자매는 바로 깨어날 수 없었고, 그의 결계 속은 충분히 안전했다. 유피테르의 마법을 힘으로 부수려면 칼리스토급은 데리고 와야만 했다.

    “성국의 결계에 구멍이 뚫렸다고?”

    오스티안의 말을 듣고 유피테르는 강한 데자뷰를 느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었다.

    마족의 땅 타르타로스를 감옥으로 만든 신의 결계.

    페르세포네에도 작은 틈이 있다는 걸 발견했었다. 마나 감지만으로는 놓칠 만큼 미세한 크기였다. 그곳을 감시하던 칼리스토들의 눈을 속이기에 충분했다.

    결계의 상처를 유심히 조사하던 엑시는 이 상처가 인공적인 거라고 확신했다. 오흐트의 도움을 받아 얻은 샘플에 마족의 마나가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서는 앞으로 각오하라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공작급 마족들이 가진 힘을 생각해봐. 이 정도 크기라면 환호성을 지르면서 나올걸? 앞으로 더 많이 부딪칠 거야. 명심해 마스터.”

    성배가 묻혀 있을 거로 예상되는 지점은 이미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후였다. 이미 낙원교가 선수를 친 듯 보였다.

    “성배를 먼저 찾아냈어야 했나.”

    교황에게 단서를 들은 후, 유피테르는 성배의 비밀을 바로 풀어냈다.

    꽤 넓은 범위를 가리켰지만, 유피테르에게 걸리면 그런 것쯤은 간단했다. 애초에 교황도 유피테르를 믿었기에 금제에 걸리지 않는 방식으로 위치를 알려준 거였다.

    어린 시절부터 유피테르는 뛰어난 지능을 선보였다,

    하나를 알면, 최소 스무 개를 깨달을 정도여서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차기 후계자로 주목을 받았었다. 열병과 함께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버림받았을 뿐.

    오죽하면 유피테르를 버려둔 자식처럼 취급했던 카르멘조차 가끔 이렇게 말했다.

    “네 오라비가 마나만 있었다면, 네가 이렇게 고통받지 않았을 거다 카테리나.”

    유피테르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성배가 숨겨져 있을 거 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성국의 동쪽은 중심지를 제외하면 가장 큰 번화가였으니까.

    다른 국가와의 무역이 이루어지는 중심지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제국의 사람들도 정착해서 살았다.

    어찌 보면 성국에서 신앙심이 제일 낮은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유피테르의 마나 감지에 한 사람의 기척이 잡혔다.

    “빨리 나오시지. 내게 볼 일이 있는 거 아닌가?”

    그 말에 유피테르의 정면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공간 이동과 같은 마법은 아니었다.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환한 빛이 나와야만 했으니까.

    “역시 신의 대리자답군요! 피날레를 장식할 상대로 완벽해요.”

    마법을 해제한 자는 로브를 입고 있어 정체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목소리로 저 자의 성별이 남자라는 것 정도를 파악할 뿐이었다.

    ‘투명화를 사용한 건가? 아니,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저 남자가 사용한 마법은 마치 고대 마법 같았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마나의 배열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투명 마법 전문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퍼스트 서클 특유의 향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성배가 없어진 곳에서 나타난 수상한 남자.

    그는 자신을 자극하고 알 수 없는 마법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마족의 것과 가까운 마나를 은은하게 내뿜었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답은 딱 하나였다.

    “네가 사도 이스라는 놈인가.”

    “놀랍군요. 당신은 저와 처음 만난 걸 텐데. 맞아요. 제가 바로 낙원교의 사도에요.”

    유피테르가 정체를 알아맞히자 사도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은 유피테르에게 꽂혀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열렬한 짝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정식으로 소개를 하는 게 예의겠죠. 낙원교의 1대 교황이자. 신의 목소리를 들은 사도. 이스캐리엇입니다.”

    “네가 어떻게 레아교의 예법을 알고 있지? 너도 전직 사제이기라도 한 건가.”

    사도의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고서 유피테르가 물었다.

    이스캐리엇의 예법은 몸에 밴 것처럼 흠잡을 곳 없이 자연스러웠다. 대사제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낙원교의 사도가 보여준 예법은 분명 레아교의 것이었으니까. 그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적어도 레아교와의 연결고리를 찾지는 못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대사제들의 기억을 뒤져볼 수 있었다. 오흐트를 제외한 다른 칼리스토들은 시간을 낼 수 있었으니까.

    “글쎄요…. 그 질문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서요. 기왕이면 다른 건 어떨까요?”

    유피테르가 아닌 사도가 주도권을 잡은 상황이었다.

    어떤 마법을 사용한 건지 성배의 위치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케팔로스를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성녀를 가뒀던 이상한 캡슐처럼.

    이런 상황에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유피테르는 어쩔 수 없이 이스캐리엇이 준비한 함정에 뛰어들었다.

    “질문이라니, 예를 들어줘야지. 네가 묻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니까.”

    “그렇네요. 일리가 있어요. 뭐가 좋을까. 흐으으으음….”

    생각해보니 유피테르의 말이 맞았다.

    사도는 유피테르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으나, 유피테르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 적절한 질문을 찾기 시작했다.

    “없나?”

    의외로 말을 잘 듣자 유피테르가 사도를 압박했다.

    “성배를 과연 어디로 숨겼을까 같은 것은 어떨까요?”

    갑자기 이야기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역시 성배는 네가 가져간 건가?”

    “그런 오해는 좋지 않아요. 성배를 가지고 있는 건 저지만, 제가 훔친 건 아니랍니다.”

    유피테르는 사도가 원하는 게 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스캐리엇의 말은 명백하게 모순되어 있었으니까.

    가지고 있는데 훔친 게 아니라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말을 인정해버리면 이 세상의 도둑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될 게 뻔했다.

    “그냥 덤벼. 네가 죽어도 성배가 어딨는지 찾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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