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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49화 (149/265)
  • 성국 해방 전선(4)

    * * *

    레아교의 신도들과 낙원교의 신도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을 이어갔다.

    낙원교도의 전략이 바뀌었으나, 전선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쓰는 법을 익힌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4, 5명이서 한 사람을 둘러싸는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합은 잘 맞지 않았으나, 난전 상황에서 알기 쉬운 지시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훈련되지 않은 신도들의 눈높이에 적절했다.

    “저런 패배자들에게 절대로 밀리지 마라! 너희는 자랑스러운 낙원교의 신인들이다!”

    낙원교의 사제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신도들을 독려했다. 터진 둑 같았던 상황은 막았으나, 이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기라도 한다면 본전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버텨!”

    “우리가 훈련에서 배운 걸 떠올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야!”

    기습 공격이 더는 소용이 없어졌어도 레아교도들은 기세를 잃지 않았다.

    수세에 몰릴 거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수적으로도 불리할 거라는 건 물론이고, 마족을 상대하는 데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였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

    레아교도들은 대륙 전쟁 시기 위대한 장수가 남긴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익…! 대체 왜 쓸어버리지 못하는 거냐! 무기가 거슬린다면 그것부터 부숴버려!”

    뒤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기에 전세는 기울었다. 어찌어찌 잘 버티던 레아교들은 방패를 들어 올리고서는 점차 뒤로 물러났다.

    승패를 가리기 위한 마지막 한 방이 부족했다.

    그렇게 몇십 분 동안 처절한 전투가 이어졌다.

    “뒤로 물러서! 굳이 상대하려고 하지 마!”

    “앞으로 돌격해! 고지가 코앞이다! 선택받은 자들의 힘을 보여주자!”

    레아교도들은 피해를 최소화하며 공격을 잘 받아냈다. 낙원교도 역시 기세를 올리며 밀려났던 전선을 거의 복구했다.

    무리하게 전선을 지키려고 하지 않으니, 점점 뒤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번쩍ㅡ.

    거대한 창에 단단한 방패에 금이 가려는 순간, 공간 이동의 빛이 다시 한번 나타났다. 레아교의 결사대가 튀어나왔던 바로 그 자리였다.

    “사제님이시다!”

    슬금슬금 물러나며 최대한 전선을 유지하던 레아교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기습 공격은 바로 이걸 숨기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잘 버텨주어서 고맙습니다. 레아교 신도 여러분.”

    빛 속에서 빠르게 튀어나온 건 레아교의 마테시오 사제였다. 그는 레아교의 문장이 새겨진 흰색 신관복을 두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레아교의 사제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선언한다! 신의 뜻은 레아교에게 있다는 것을!”

    마테시오 사제의 손에는 거대한 스태프가 들려 있었다. 그는 거대한 스태프를 양손으로 머리까지 들어 올리고서는 땅으로 내리쳤다.

    쿵.

    스태프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박혔다. 거대한 소리와 눈에 띄는 행동 덕에 싸우던 모든 이의 눈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왜 저 자식들에게 있는 거지?’

    낙원교도들을 지휘하던 사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레아교 사제가 빛 속에서 모습을 보였을 때도 걱정하지 않았다. 비장의 패는 아직 이쪽에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스태프를 보자마자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교황의 지팡이 바쿨루스.

    저 스태프는 대대로 교황들에게만 주어진 고대 아티팩트였다. 성검 오를레앙이나 성배처럼 창조신 레아가 초대 교황에게 내려준 세 개의 신물이었다.

    교황 사후, 아티팩트는 누구에게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사제 놈들은 그걸 만지지도 못했다고 들었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마나가 뿜어나왔기에. 어쩔 수 없이 사도께서 기운을 막아내며 교황청에 보관했다는 소문이었다.

    당연히 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될뿐더러, 레아교도의 손에 들어가서도 안 되었다.

    “어째서 네놈이 그걸 가지고 있느냐?!”

    “글쎄다. 적에게 알려줄 리가 없잖아?”

    마테시오 사제는 적당히 대답하고는 스태프에 신성 마나를 불어 넣었다.

    ‘정말로 진짜라고 믿잖아? 뭐. 나도 이걸 처음 봤을 때는 눈을 의심했지만 말이지.’

    조력자는 성전이 시작하기 바로 전날 셩녀님과 사제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서는 이 아티팩트를 보여주었다.

    “이 스태프를 사용하도록 해. 아마 마인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을 테니까.”

    그걸 본 사제들이 입이 하마처럼 벌어져 닫히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교황에게 직위를 인정받은 사제들이었다. 교황의 지팡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는 기억하는 게 당연했다.

    낙원교의 사도가 교황 아스라엘 님을 살해하고 아티팩트마저 빼앗은 상황이었다. 사도의 눈을 피해 저걸 빼돌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거 진짜가 아니네. 하지만, 엄청 비슷한 느낌이야. 대체 어떻게 구한 거야?”

    교황의 지팡이를 살펴보던 성녀님은 그게 가짜라는 걸 한눈에 알아내셨다. 역시, 세 개의 기둥 중 한 사람이셨다.

    “네 말이 맞아. 프레이야. 이건 진짜가 아니라 레플리카지.”

    “조력자. 당신의 정체는 이미 의심하지 않소. 그래도 이런 건 신성 모독이요!”

    “창조신 레아를 그렇게 좋아했으면 평소에 잘했어야지. 너희들의 지금 상황을 봐.”

    유피테르의 말에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바쿨루스의 60% 정도 출력밖에 쓰지 못할 거고, 많이 써야 두 번이야. 그래도 공격 마법을 쓸 수 없는 사제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지.”

    우우웅.

    아티팩트가 보내는 신호에 마테시오가 현실로 돌아왔다. 그건 신성 마나가 가득 찼다는 신호였다.

    원래라면 혼자만의 힘으로 아티팩트를 발동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태프가 레플리카였기도 했고, 미리 다른 이들의 신성 마나도 충전한 상태였다. 지금 그의 마나를 불어넣는 건 제어력을 올리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빛이 있기를!”

    마테시오 사제의 큰 목소리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스태프에서 엄청난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스태프에서 나온 마나는 그대로 하늘로 향하더니 레아교의 문장을 그려냈다.

    “뭐, 뭐하고들 있어 저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쓸어버려! 그리고 대기하는 너희들은 나를 지켜내라. 네 몸뚱이보다는 내가 더 도움이….”

    위기를 감지한 낙원교의 사제가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했다.

    “고작 한 주먹 주제에. 뒤지게 잘난 척하네.”

    “우리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 어딜 참견질이야. 고작 사제 주제에 말도 많아.”

    대기하던 두 명의 마인들이 사제를 찢어발겨 버렸다. 이 때문에 사제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욕심으로 가득 차서 대사제를 노리던 자의 허무한 말로였다.

    “그래도 저건 좀 위험해 보이는군. 도망갈까?”

    “전략적 후퇴. 나쁘지 않은 제안이야.”

    마인을 초월한 그들이 보아도 교황의 스태프는 위험한 기운이 솔솔 풍겼다. 두 마인은 사제의 시체를 내버려 두고서 전장을 이탈했다.

    그들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털썩.

    몸 안에 축적되어 있던 모든 신성 마나를 쏟아낸 마테시오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곁으로 레아교도들의 하나둘 모여들어 방패를 세웠다.

    ‘신의 분노를 맛보아라 배신자들아.’

    레아교 내에는 여러 가지 계파가 있었는데, 마테시오는 강경한 레아론자였다. 레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교리를 전파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레아의 대가 없는 사랑을 배신한 자들이 가증스러웠다.

    “도, 도망가자. 저 마법은 경전 속에 나오는….”

    “…신의 심판이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완성된 레아교의 문장을 본 낙원교도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레아교를 배신하고 낙원교도가 되었다고 해도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늘 공부하며 배웠었던 레아교 경전의 내용이 한순간에 사라질 리 없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경전 속에 있던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았다.

    우우우웅ㅡ.

    하늘을 가로지르며 완성된 레아교의 문장은 그대로 빛을 쏘아내었다.

    신기하게도 눈을 뜨고 빛을 보는 데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한 빛에 몸이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

    아군에게는 치유를 적에게는 독을

    신성 마법의 극의가 지금 이곳에서 펼쳐진 것이다.

    “사, 살려줘….”

    빛에 그대로 노출된 낙원교도들은 하나둘 쓰러져갔다. 마인으로 변한 신체 덕에 엄청난 속도로 도망쳤으나, 빛의 속도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낙원교도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드디어, 드디어 저 빌어먹을 낙원교에게 한 방을 먹인 건가.’

    이겼다는 걸 실감하자 마테시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레아교가 전투에서 제대로 승리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마테시오 사제는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잠이 쏟아졌지만, 앞으로를 위해서는 사기를 끌어모아야 했다.

    “우리가 이겼다! 레아교의 승리다. 창조신께서는 우리에게 웃어주신다!”

    “빛의 있기를!”

    마테시오의 말에 그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던 레아교도들의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성녀님, 그리고 조력자 당신들의 앞날에도 빛이 있기를.’

    마테시오는 다른 작전을 수행 중인 두 사람의 행운을 빌며 몰려오는 잠에 눈을 감았다.

    * * *

    성국 해방 전선이 크레이타의 서쪽에서 반란의 봉화를 올렸을 때, 유피테르와 성녀 프레이야는 교황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낙원교의 정점인 사도를 처리하지 못하면 레아교의 해방은 물 건너간 거나 다름없었다. 또, 사도의 뒤에 있을 마족 공작 라플라스를 끌어내야만 했다.

    “여긴 신성 기관이 있었던 곳이잖아. 왜 교황청으로 가지 않는 거야?”

    성녀 프레이야가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피테르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교황청에서 최후의 결전을 하겠다는 말과는 다르게 시라쿠사 섬으로 왔으니까.

    “굳이 교황청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 이곳으로 유인하는 거야.”

    “어차피 전투틑 피할 수 없다는 건 알아! 난 교황 할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다고!”

    유피테르는 프레이야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사실, 그가 성국 해방 전선을 만들고 도운 건 교황과 성녀 그리고 오흐트 때문이었으니까.

    격한 슬픔은 늘 타오르는 분노로 바뀌었다.

    진실을 들은 프레이야는 혼자 날뛸 게 분명했다. 그래서 유피테르는 그녀가 사고를 치기 전에 미리 판을 완성해놓았다.

    그에게는 복수를 막을 생각도 권리도 없었다.

    “성검도 사용하지 못하는 네가 대사제를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어.”

    “길고 짧은 건 싸워봐야 안다고!”

    프레이야는 유피테르의 뼈아픈 지적에 입을 다물었다.

    불만을 토해냈지만, 그녀도 유피테르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검을 뺏긴 성녀는 더는 성국의 검으로 불릴 수 없었다.

    성녀의 강력함은 성검 오를레앙에서 나왔다. 오를레앙에 깃든 자아는 스승처럼 성녀를 이끌었다. 고대 신성 마법은 물론 스타일에 만든 전투법도 가르쳤다.

    든든한 원군을 잃었으니 약해지는 게 순리였다.

    사기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사제들과 신도들에게는 그 사실을 숨겼으나, 기다리고 있는 적들은 아니었다.

    오를레앙을 뺏어간 자들은 아마 낙원도일 테니까.

    “그래서 그걸 전해줬잖아. 익숙해졌어?”

    “일단은.”

    프레이야의 이야기를 들은 유피테르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원래라면 교황의 지팡이의 레플리카만 구했을 테지만, 성녀의 무기도 찾았다.

    그리고 바실리가 남긴 물건 중에서 성녀에게 딱 맞는 것 하나를 찾아냈다.

    “이제 곧 손님이 올 시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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