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48화 (148/265)
  • 성국 해방 전선(3)

    * * *

    낙원교 사도 이스

    그는 남은 3명의 대사제를 성국 본토 중앙에 위치한 교황청으로 소집했다. 성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레아교의 잔당을 소탕하던 대사제들은 허겁지겁 복귀했다.

    사도는 자신의 말을 어기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그걸 알고 있었던 대사제들에게 다른 선택지란 처음부터 없었다.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대사제라고 해도 사도 앞에서는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스트는 적에게 당했고, 성녀는 빼앗겼다.”

    사도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는 대사제들에게 물었다.

    “이스트는 저희 중에서 최약체였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이 며칠간 낙원교는 레아교의 90% 이상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고작 그 정도로 낙원의 꿈을 부술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성검을 뺏긴 성녀는 이제 쓸모가 없지 않아요?”

    웨스트와 사우스 그리고 노스가 각각 대답했다. 엎드려 있어 말하기 힘들었지만, 이 정도는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대사제들은 모두 출신이 달랐기에 관심 있는 부분이 서로 달랐다. 그래도 이 정도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같았다.

    “적이 누구든 혼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겁니다. 다른 제국의 도움 없이 낙원교를 상대할 방법은 없습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을 자랑하는 웨스트의 말처럼 다른 제국들은 이미 손을 뗀 상태였다.

    여러 제국들은 갇혀있던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을 구출해간 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성국과 꽤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시에라 제국마저 등을 돌렸다.

    이 바람에 크레이타 곳곳에 남아있던 평신도들은 저항하는 걸 포기했다. 버려진 자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 정도는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레아교의 평신도들은 마인약을 반강제로 마시고서 ‘선택받은 자’가 되어 낙원교에 귀의했다. 일부는 약의 효과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으나, 이미 퇴로 따위 없었다.

    그 후, 어제의 동료였던 자들에게 칼을 겨누었다.

    “당분간 다른 제국들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손을 써두었다.”

    사도가 웨스트의 말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대사제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노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감탄의 말을 쏟아냈다.

    “역시 사도님은 너무 멋지다니까.”

    낙원교가 아니라 사도 이스에 심취한 그녀에게 그런 건 사소했다. 오히려 이 모든 일들이 사도의 손아귀에 있다는 게 존경스러웠다.

    항상 말로만 약속하고, 결국 아무것도 지켜주지 않던 ‘그 사람’과는 달랐다.

    “사도님 앞에서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노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던 웨스트는 몸을 일으키고는 소리쳤다.

    대사제가 사제나 신도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인 건 맞았다. 하지만, 사도 앞에서 대사제란 직위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사도 이스는 신을 만나 계시를 받은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너 역시 이미 일어서 있다. 웨스트.”

    조용히 지켜보던 사우스 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웨스트를 지적했다. 그걸 들은 웨스트는 평소에 생각을 입에 담았다.

    “웃기지 마. 사우스. 네 놈이 그렇게 기세등등한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래서 사제 출신과는 같이 지내지 않는다. 기사들과 다르게 예의가 없군.”

    “쳇. 남자들이란 정말 바보 같다니까.”

    낙원교의 규칙을 어기고 멋대로 일어선 대사제들은 자기들끼리 말싸움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사제 출신이 두 명이 늘 분위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스트가 죽은 지금 무력이 제일 강한 사우스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그만.”

    사도가 입을 열자 언제 싸움이 있었냐는 듯 대사제들 모두 숨을 죽였다. 사도에게 밉보여서 낙원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성국 해방 전선보다 빨리 성배를 찾아내야 한다. 결계를 부수지 못한다면 낙원은 오지 않을 것이다.”

    사도의 계획 중 유일하게 엇나간 게 바로 결계였다.

    교황을 죽이고서 숨겨둔 아티팩트를 빼앗으면 결계가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 식의 시스템이라고 듣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황을 죽이고 레아교를 낙원교의 색으로 덧칠했지만, 결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계는 여전히 작동했고, 어떤 게 매개체인지 감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이래서야 마족들의 낙원을 만들 수가 없었다.

    “성국 해방 전선. 이 쥐새끼들이 어디 숨었는지 다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한때 사제였으니 빨리 찾아내겠습니다.”

    “사도님이 주신 성배를 찾는 임무 지속하겠습니다.”

    “만약 성녀가 복수하러 온다면, 내가 상대할 거예요. 다른 두 사람 절대로 손대지 말라구요.”

    웨스트와 사우스 그리고 노스는 모두 무릎을 꿇고 사도의 대답을 기다렸다.

    처음부터 사도를 따른 낙원교의 대사제들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원하는 만큼 권력을 누릴 수도 있었고,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도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건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사도의 말을 무시하고서 폭주한 이스트의 최후는 끔찍했다. 사도는 끝내 대사제 이스트에게서 손을 거두었다. 언제라도 구해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계획을 벗어난 순간 이스트는 더는 낙원교의 일원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좋다. 가서 낙원을 손에 넣어라.”

    사도의 말에 세 명의 대사제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교황청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성녀 프레이야가 성국 해방 전선의 거점에 찾아오고 나서 일주일이 지났다.

    성녀라는 희망의 빛을 되찾은 레아교의 신도들은 활발하게 일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에게 부여된 일에 열중했다. 그 누구도 겁에 질려 도망가지 않았다.

    그렇게 반격의 시간이 찾아왔다.

    “낙원교에게 당한 것들 다들 기억하지?”

    본토로 향하는 게이트의 앞에서 프레이야가 해방 전선의 동료들에게 물었다.

    “당연합니다. 성녀님. 이건 성전입니다. 마족 놈들이 신성한 땅에서 설치는 걸 두고 볼 수야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신도 여러분?”

    로폴 사제가 그 말을 받아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옳소. 옳소”

    “가자! 가서 낙원교의 마인 놈들을 죽여버리자!”

    로폴 사제의 은근한 자극 덕에 분위기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낙원교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된 신도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마족과 마인이라는 단어는 평생 생각지도 못할 것들이었으니까.

    책에서만 보던 공포의 존재에 신도들은 몸을 떨었지만, 공포는 이내 흥분으로 바뀌었다.

    성녀와 사제 그리고 조력자 유피테르의 힘으로 그들은 강해졌다. 간단한 공격 마법을 배우고 다양한 무기들로 부족함을 채웠다.

    어차피 평신도들이 마주칠 적들은 기사들이나 대사제들이 아니었다. 낙원교의 평신도를 상대키 위해서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로폴 사제의 말처럼 이 성전을 승리로 장식하자고!”

    “빛이 있기를!”

    프레이야의 말에 사제와 신도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를 높였다.

    ‘그럼 이제 움직여 볼까.’

    성국 해방 전선에 힘을 실어주느라 유피테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구속도 오늘로 끝이었다.

    성국 해방 전선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땅을 빼앗긴 분노를 새겨줄 것이니까.

    애초에 성국을 되찾는 건 그가 할 일이 아니었다. 교황의 유언에 따라 성배를 찾는 게 더 중요했다.

    성배를 찾는 도중에 마족을 만난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라플라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이 아닌 성국을 침략했다면 목표가 너무 뻔했다.

    * * *

    성국 크레이타의 서부

    레아교의 마지막 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낙원교의 신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공을 세우면 사제로 올라갈 수 있었기에 눈에 불을 켜고 수색 중이었다.

    “야, 저기서 뭔가 불빛이 번쩍이지 않았어?”

    “잠 안 잤냐?”

    “아니, 저거 보라니까?”

    “그런 장난은 한 번만 속는….”

    처음 말한 신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한 번만 속아주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빛이 보였다.

    번쩍ㅡ.

    “우오아아아아아아! 낙원교 자식들을 성국에서 몰아내자!”

    “레아 님을 위하여!”

    이날을 위해 칼을 갈았던 평신도들이 마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철퇴나 메이스가 들려 있었다.

    전투부대에 지원한 평신도들에게 처음에는 검을 주려고 했다. 성녀가 가장 자신 있는 무기가 검이었으니까 당연했다. 하지만, 검은 단기간에 숙련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찾아낸 차선책이 바로 이것들이었다.

    농사를 짓던 그들에게 철퇴나 메이스는 손에 딱 맞았다. 적을 향해 냅다 휘두르기만 해도 충분한 위력을 자랑했으니까.

    성녀의 지도와 유피테르의 도움으로 완성된 성국 해방 전선의 전사들은 용맹했다. 옆을 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돌진했다.

    퍼억. 퍼억. 퍼억.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철퇴로 부수며 나아갔다.

    “뭐, 뭐야. 쟤네 포기한 거 아니었어?”

    “뭘, 고민해 죽어버려. 우린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황한 건 오히려 낙원교의 평신도들이었다.

    마인약을 먹고 강해진 건 맞았으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아니었다. 그저 인간을 초월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일 뿐.

    “대체 어떻게 저렇게 강해진 거지?”

    항상 승리를 가져다주었던 강력한 육체가 지금은 하나도 힘을 쓰지 못했다. 오히려 철퇴 한 방에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이게 신의 축복이라는 거다!”

    “네놈들이 신에게 선택받은 자들이라면. 우린 신을 선택한 자들이다.”

    훨씬 열세임에도 일당백, 아니 일당천 이상으로 싸울 수 있던 이유는 축복 때문이었다. 유피테르가 성녀 프레이야의 기운을 빌려 만든 신성 무기들은 어마어마했다.

    신성 마나를 기반으로 했기에 마족의 마나를 받아들인 마인들에게 효과적이었다.

    “낙원교의 배신자들이 당황했다. 지금이야 밀어붙여!”

    성녀와 조력자가 말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레아교의 전사들은 더욱 힘을 냈다. 이곳에서 낙원교를 몰아낸다면 동료들을 더 늘릴 수 있었다.

    레아교의 신도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욱 힘을 냈다.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싸우라니까!”

    “나는, 나는 선택받았다!”

    낙원교의 마인들은 언제까지고 밀리지 않았다. 기세 싸움에서 한발 뒤로 물러났으나, 아직도 유리한 건 자신들이었다.

    “성국 해방 전선 놈들은 수가 적다. 여러 명이 함께 쓰러트려! 뚫린 곳이라면 더 뭉쳐서 이겨내라!”

    전투의 소리에 일어난 낙원교의 사제가 헐레벌떡 밖으로 나와 지휘했다.

    확실히 지휘관의 존재는 든든했다. 속수무책으로 돌파당하던 낙원교의 마인들은 그 말에 힘을 내기 시작했다.

    강한 힘에 의존해 홀로 싸우는 전투법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자들과 협력했다.

    그러자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애초에 두 쪽 다 급조된 전사들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낙원교 쪽이 조금 더 실전 경험이 많았다.

    그게 무의미한 학살이었다고 하더라도.

    “제, 젠장 뒤로 물러나! 방패를 들고 버텨! 죽지 마라!”

    “지금이다! 레아교 놈들을 밀어내! 비어버린 대사제 직에 내가 갈 수 있게 힘을 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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