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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46화 (146/265)

성국 해방 전선(1)

* * *

세아니아 대륙 남부에 위치한 성국 크레이타는 몇 개의 섬을 보유했다.

사과 모양의 본토에는 교황청과 레아교의 신전들로 가득했다. 성국이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이 이곳이었다.

성국을 지탱하는 평신도들 역시 본토에서 살았다.

농사를 짓기에 가장 적합한 날씨였기도 했고, 대부분의 시설들이 본토에 지어졌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평신도들의 희망이 창조신 레아였던 만큼 굳이 섬으로 이주하지 않았다. 섬에 간다면 이렇게 매일 기도할 수 없었으니까.

이 덕분에 성국은 눈치 보지 않고 구미에 맞게 섬들을 개발했다.

어떤 섬은 휴양지로, 어떤 섬은 교육의 장으로, 어떤 섬은 비밀 연구실로.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레아교가 황혼의 시간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족 놈들의 눈을 피하려면 대체 어디에 숨어야 할까?”

오스티안을 필두로 한 4명의 사제들은 어디에 거점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했다. 낙원교의 반란 뒤에서 마족의 존재가 느껴졌다. 들키는 순간 목숨을 잃을 게 뻔했다.

최악의 경우, 선택받은 자들처럼 변해 동료들을 공격할지도 몰랐다. 사제들은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마인들의 힘이 무시무시한 건 오스티안 사제도 보았지 않소.”

“일단 다른 제국에 몸을 의탁하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은 한 걸음 물러서야 할 땝니다.”

“맞습니다. 동료들이라고 해도 대부분 평신도뿐입니다. 신성 마법도 쓰지 못해 마인 놈들에게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오스티안의 질문에 그를 따라왔던 사제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들은 뼈아픈 현실을 가감 없이 입에 올렸다. 성국을 해방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여기에 모인 자들은 결국 패잔병들을 모아둔 것에 불과했다.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꼬리를 말고 도망간 쥐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사르데냐 섬으로 간다.”

오스티안이 사제들에게 선언했다.

어차피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유피테르와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게 최선이었다.

낙원교의 추적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유피테르 덕분이었다. 은발의 마법사가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임시 거점에 모이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유피테르가 선물해 준 아티팩트들은 궁지에 몰릴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뭐요? 어디라고요? 오리치 섬?”

“오스티안 부기관장. 당신 미쳤습니까? 그런 곳에 숨으면 마족들이 곧바로 눈치를 챌 텐데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오스티안이 귓등으로 흘려버리자 다른 사제들이 폭발했다.

오스티안이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지위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거점을 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기관장은 뒷말도 꽤 나오는 사람이었다.

교황님이나 성녀님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섬에 들어가 낙원교에 대항하는 건 얼핏 들으면 좋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문제점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렸다.

본토와 섬을 오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본토에서 섬으로 움직이려면 게이트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게이트의 권한은 낙원교가 빼앗아갔다. 더구나 게이트가 가동하면 엄청난 마나가 물결칠 게 뻔했다.

먹음직스러운 기회를 마족이 놓칠 리는 없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이 가장 좋다는 속담을 모르시오?”

이곳에서 가장 연로한 사제가 조용히 물었다.

부기관장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볼 때, 무언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건 화를 돋울 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노사제의 말에 오스티안은 고민했다.

‘이 사람들을 믿어도 될까?’

자신이 유피테르의 정체를 알았던 건 우연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체를 알리지 말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제시해주었을 뿐.

부기관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왠지 모르게 음흉해 보인다.

마족과 내통한 게 오스티안이 아니냐.

늘 실눈을 감고 생활하는 그는 온갖 오해에 시달렸다. 신앙심 높은 사제라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모욕을 받았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늘 수군거림이 따라다녔다.

오스티안은 이 모든 걸 참아내고 여기까지 도달했다. 이곳에 남은 자들 중에서도 그에게 손가락질했던 이들이 태반이었다. 오죽했으면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부기관장 오스티안은 그들을 용서했다.

너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해라.

그게 창조신 레아 님의 말씀이었다. 신성 기관에서 혹독한 훈련을 기획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신을 믿는 사제였다.

신의 말이 곧 오스티안이 가야 할 길이었다.

‘어차피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은 말해야만 했어.’

낙원교에게서 성국을 되찾으려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야만 했다.

이들을 뭉치게 하기 위해서는 리더를 정해야 했고, 성녀님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레아교의 사람들은 자신을 믿지 않았다. 어두운 의심의 눈초리를 더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력자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꼭 여러분들만 알아야 하는 이야깁니다. 이게 제가 사제님들을 믿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이건 필요한 일이었기에 이 정도는 유피테르가 용서해줄 거라고 믿었다.

처음에는 미덥지 못한 표정을 짓던 사제들의 표정이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환희로 뒤바뀌었다.

* * *

번쩍ㅡ.

사르데냐 섬에 위치한 성국 해방 전선의 비밀 거점의 한 방. 그곳에 공간 이동의 빛이 나타났다. 거대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평신도들은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의견을 나눴다.

“적습인가?”

“여기 마족들의 감지에서 벗어난 거 아니었어?”

비밀 기지를 청소하던 평신도들은 걸레를 집어 던지고서 전투 자세를 취했다. 며칠 전과는 달랐다. 평신도들은 이미 몸을 지킬 간단한 전투법 정도는 익힌 상태였다.

“좋아 와라! 마족. 레아교의 불꽃 주먹 에이드가 상대해주마!”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마족을 상대해. 거기 뒤에 젊은 친구들 사제님들을 모셔와!

키가 작은 한 신도가 주먹을 맞부딪치며 몸을 풀었다. 옆에 있던 다른 신도는 뒤에서 청소하던 아이들에게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적이 정말로 마족이라면 저들이라도 사는 게 이득이었다.

“뭐냐 올드 게이트. 푸른 수염이라는 위명에 맞지 않게 겁이라도 먹은 거냐?”

작은 신도가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누가 겁을 먹었다고 그래?”

“바로 그거야. 그 당당함이야말로 우리의 특별함이지.”

두 신도 모두 젊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전성기 때를 추억하며 앞을 주시했다.

신성 마법도 제대로 쓰지 못하지만, 왕년에 주먹을 좀 휘둘렀었다. 사제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정도는 가능할 듯싶었다.

“잠깐만.”

푸른 수염이 인상적인 신도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이 비밀 거점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티팩트들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는 마족의 마나를 쫓는 것도 존재했다. 이 거점에 있는 모두가 테스트를 받았기에 성능은 확실했다.

침입자가 정말 마족이라면 알람이 미친 듯이 울려야만 했다.

“왜? 뭐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 그러니까 물 좀 적당히….”

“아니,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봐. 왜 알람이 작동을 안 하지? 아주 미세한 마족의 마나에도 반응했었잖아.”

“잠깐 쉬는 거 아냐?. 기계도 늘 일하기만 하면 열이 나서 아프다고.”

“좀 생각이라는 걸 해보라고.”

“거, 그건 네가 하는 거지. 골치 아프게 그런 걸 왜 해.”

푸른 수염을 자랑하는 올드 게이트는 속으로 화를 삼켰다. 평생을 살아왔지만, 에이드는 늘 이랬다. 깊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직감대로 움직였다.

그 뒤처리는 늘 올드 게이트의 몫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두 명이 비밀 거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긴 로브를 걸쳐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로브를 입은 마법사의 품에는 한 여성이 쏘옥 안겨 있었다.

“그 여기까지 데려다준 건 정말 고마운데. 이제 그만 내려주면 안 될까?”

여성의 말에 로브를 입은 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몸을 굽혀서 자세를 낮추자 여성은 어렵지 않게 땅으로 내려왔다.

“저, 저, 저, 저, 저, 저건!”

“빛이 있기를.”

여성의 얼굴을 확인한 에이드와 올드 게이트는 전투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서는 빠르게 엎드려 레아교의 방식대로 인사했다. 엄청나게 놀라 심장이 쿵쿵 뛰었으나, 예의를 차리는 게 먼저였다.

사실, 이 정도로도 부족했다. 저분은 레아교의 성녀 프레이야였으니까.

“여기 담당자를 좀 만나 보고 싶은데.”

“아이들이 갔으니 곧바로 사제들이 올 겁니다.”

“귀환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성녀님.”

프레이야의 말에 두 사람이 칼 같은 박자로 대답했다.

‘아무도 없었으면, 유피의 품에 더 안겨 있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얜 뭔데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니.’

겉으로는 위엄 있는 성녀의 모습을 한 프레이야.

그녀는 완전히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유피테르가 왜 자신을 이리로 데려온지는 몰랐다. 사실, 아무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유피테르의 품은 따듯하고 안락했다.

꾸욱.

행복한 상상을 이어가던 그녀의 등을 유피테르가 살짝 찔렀다.

‘서, 설마 들켰나? 유피테르라도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순 없다고.’

프레이야는 뜨끔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성녀로 생활하려면 이 정도의 연기는 기본이었다.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건 오직 두 곳뿐이었다.

“큼흠.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니 이제 일어서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겠습니다.”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프레이야가 평신도들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정보였다. 교류전에서 배신자 바니토에게 심장을 찌른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유피테르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오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라고만 말했다.

“감사합니다.”

에이드와 올드 게이트는 성녀의 자비에 눈물을 흘리며 일어났다. 썩어빠진 사제들과 다르게 교황님과 성녀님은 평신도에게도 상냥했다.

성녀가 직접 치료해줬던 기억도 있어서 낙원교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 순간, 아이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예요, 여기!”

“왜 이렇게 느리게 걸어요. 빨리요, 빨리!”

처음에는 작게만 들리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이곳으로 오고 있는 무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애들아 정말로 적이 침입한 게 맞니? 마족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데. 오히려 이건….”

아이들의 손에 끌려 따라가던 사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은 건 둘째치고, 마족이 벌써 이곳을 찾아냈을 리 없었다.

비밀 거점을 숨기고 있는 결계는 마족이라도 쉽게 깨트릴 수 없었으니까.

성국 해방 전선을 도와주고 있는 사람은 특별했다. 초월자 중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자였다. 마족들도 두려워하는 자라고 들었다.

“이곳이에요!”

“도착했어요. 사제님. 얼른 해치워주세요.”

“아, 알았단다 애들아. 일단 진정하렴.”

정말 적이 온 거라면 아이들을 이곳에서 멀리 떨어트려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계속해서 신관복을 잡아당겨 정신이 없었다.

성화를 이기지 못한 사제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지 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덕분에 편하게 들어간 사제의 눈에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서, 성녀님?”

여성이 성녀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사제의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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