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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42화 (142/265)
  • 낙원교(7)

    * * *

    “너 제정신이니?”

    유피테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루웰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

    단신으로 국가를 부수겠다는 선언을 이렇게 쉽게 하다니.

    그는 천칭과 연이 있는 마법사인 듯했으나, 조디악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숨겨둔 한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아무리 달걀을 많이 던져도 바위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저 노랗게 물들 뿐이었다.

    상대는 평범한 제국이 아니라 성국 크레이타였다.

    심지어 마족까지 연관되어 있었다. 레아교의 신관들이 묘한 마법을 사용했던 것처럼, 낙원교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했다. 저격을 위해 상황을 살필 때, 낙원교의 마법사는 정말로 묘한 기운을 사용했었다.

    이런 문제는 조디악에 적을 두고 있는 자신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세아니아 대륙에서 세컨드 서클에 도달한 자는 소수였다. 조디악의 일원이 되어 칭호를 받은 마도사는 그보다도 적었다. 마법사들의 밤을 돌파하는 건 평범한 사람에겐 불가능했다.

    12명

    조디악이 처음 결성되었을 때부터 그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천칭이 부탁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스스로 지옥에 발을 들이는 사람이 어디 있니?”

    루웰라는 은발의 마법사가 뭘 꾸미는지 알고 싶지조차 않았다.

    천칭의 말을 거스르는 게 걸렸으나,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당장 이곳에서 도망가지 않으면 내일의 해를 보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유피테르의 시야에서 빠져나가려고 발을 돌렸다.

    ‘네게는 미안하지만,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아. 바이바이.’

    은밀한 행동은 암살자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델포이 아카데미에서 랭킹전과 퀘스트를 진행하며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패배의 이유를 분석하자 부족한 게 뭔지 훤히 보였다.

    역시,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었다.

    은밀함과 집중력

    저격수에게 필요한 건 오직 그 두 개뿐이었다.

    담당 교수는 꿈에서조차 상상해본 적 없던 훈련을 계속해서 생각해주었다.

    뱀을 손에 올려놓고 스태프로 저격하기, 몸에 피를 묻히고 몬스터들에게서 숨기, 일부러 바람이나 지진 등의 상황을 연출하기 등.

    정신이 제대로 박힌 마법사라면 훈련들을 시도하기도 전에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최고가 될 것이기에 눈물도 흘리지 않고 참아냈다. 점점 심해지는 훈련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자신은 대륙의 마법사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스나이퍼로 거듭났다.

    덥석.

    유피테르는 뒤를 돌아 도망치려는 루웰라의 손을 잡았다. 조금 치사한 방법이지만 헤라클레스 가문의 비기인 신체 강화까지 사용했다.

    낙원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꼭 필요했다.

    칼리스토들을 부르면 이 정도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그녀들의 화려한 과거를 생각하면 이건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모두의 기억을 지울 수는 있었으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그녀’와의 약속을 깨는 거였으니까.

    ‘말도 안 돼. 내가 고작 퍼스트 서클 마법사를 따돌리지 못한다고?’

    루웰라는 몇 번이고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건지 유피테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산과 힘을 겨루는 것 같았다.

    여기서 잡히면 끝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루웰라는 덜컥 겁이 났다.

    조디악이 된 이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천칭의 마도사는 자신을 협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티팩트를 선물로 하며 부탁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섬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어쩔 수 없지. 이야기뿐이야. 이야기만 들어보고 나는 돌아갈 거야. 너에게 절대로 협력하지 않아. 그건 확실히 해줘.”

    루웰라는 한숨을 푹 쉬며 손에서 힘을 빼고 유피테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민 끝에 노선을 바꿨다.

    이야기를 듣는 척을 하다가 방심한 틈을 타 도망가기로.

    고작 퍼스트 서클 마법사에게 항복하는 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숨이 먼저였다.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유피테르의 계획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러면 예약해둔 휴양지에서 놀고먹는 계획이 박살이 날 게 분명했다. 아르메 제국 절경에 있는 휴양지는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조디악이나 귀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신히 얻어낸 기회를 이렇게 날리는 건 죽어도 싫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성녀만 구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테니. 내 이야기에 집중해봐. 그리 나쁘게 들리지는 않을걸?”

    유피테르는 그가 세운 계획을 찬찬히 들려주었다.

    그는 루웰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 읽고 있었다. 루웰라가 유피테르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르테미스의 피와 ‘그녀’의 교육은 초월자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 * *

    성국을 점령한 낙원교는 레아의 동상은 건드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광신도들이 의문을 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인들이 마인이었고, 낙원교의 신이 레아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직 베일 속에 감쳐줘 있었다.

    그 대신, 기존의 건물들을 헐어버리고 다양한 건물들을 세웠다.

    여기서도 사도는 초월자의 힘을 발휘했다. 호위를 데리고 나오지 않은 그는 엄청난 힘으로 건물들을 부수고 새로이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건 교황청이 유일했다.

    창조적 파괴

    경전에 적혀있는 창조신 레아의 기적과 유사했다.

    “지금까지 인간은 신의 진정한 뜻에서 눈을 돌렸습니다. 진실은 너무나 쓰라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걸음마를 뗄 때입니다.”

    사도는 경전에 있었던 구원자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 모습에 광신도들은 열광하며 낙원교에 흠뻑 빠져들었다. 낙원교는 레아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프레이야가 있다는 말이지?”

    유피테르는 어렵지 않게 낙원교의 한 지부에 숨어들었다.

    완벽하게 마나를 지우고 투명 아티팩트까지 사용한 그를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사도조차 그를 눈치채지 못했었다.

    유피테르는 한 기둥 뒤에서 낙원교 지부를 구석구석 살폈다.

    지부의 모습은 레아교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전형적인 신전 양식으로 지어져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경건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모든 문양이 낙원교의 문양으로 바뀌어 있었고, 레아 상도 최소한으로 줄인 듯했다.

    “빨리빨리 청소해! 내일 중요한 손님이 오신다는 거 모두 잊지 않았지?”

    “낙원에서 사노라.”

    낙원교의 사제복을 입은 사제는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곳곳에 청소 상황을 확인했다. 신도들은 명령을 받으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즐거운 웃음만이 가득했다.

    “이거 내가 몰래 들은 정보인데, 이 지부에 사도님과 대사제 중 한 분이 오신데.”

    바로 그때, 유피테르의 귀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렸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 두 여성 신도였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쪽이 조금 더 키가 컸다.

    “뭐! 이스 님이?.”

    “쉬잇. 쉬잇!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어떡해! 사제님께 혼나고 싶은 거야?”

    키가 큰 여성의 행동은 재빨랐다. 큰소리로 사도의 이름을 부르려는 친구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사도 님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는 건 금기였다.

    “아랐으니까 나 줘. 수미 마켜서 주글꺼가타.”

    작은 신도의 얼굴은 이미 새파래졌다. 큰 신도의 힘이 얼마나 센지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었다. 시야가 점점 더 좁아졌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큰 신도의 머리를 탁하고 쳤다. 그제야 정신이 든 키 큰 신도가 손을 풀어주었다.

    “캑케켁켁. 너 진짜 힘 세구나.”

    “이게 다 레아 님과 사도 님의 은혜 덕분이야. 나 원래 감기를 달고 살았던 거 알지?”

    “당연히 알지. 내가 누구의 딸인데.”

    “쉿. 너 오늘 좀 위험해. 알고 있어?”

    키 큰 신도의 지적에 작은 신도가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서는 겁먹은 토끼처럼 트윈 테일을 휙휙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두 사람 주변에는 유피테르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미안, 역시 너밖에 없어. 다음 치료는 언제야?”

    작은 신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큰 신도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곧 시간이네. 치료를 받고 나면 뭔가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데 조금 이상한 기분도 들어.”

    “이상한 기분?”

    “응. 누군가가 나를 찾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 구해줘. 살려줘. 그 뒤에도 뭐라고 말하는 데 기억이 잘 안 나네.”

    “아직 낙원교의 품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의 한이 아닐까?”

    쓰담쓰담.

    키 큰 신도는 피식 웃으며 작은 신도의 머리를 헝클었다. 큰 신도의 손은 트윈 테일을 고정하는 두 개의 방울에까지 닿았다.

    “그만해!”

    예고도 하지 않고 머리를 건들자 작은 소녀가 소리를 질렀다. 이 지부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으나 방울은 만지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이건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마지막 선물이었다.

    “거기! 장난은 그만치고 마저 할 일을 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두 여신도들의 자체 휴식이 끝나버렸다. 이제 각자 정해진 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키 큰 신도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치료를 받으러 떠났다.

    작은 신도 역시 걸레를 들고서 다시 청소하려고 했다.

    “네가 오델리니?”

    “꺄아악!”

    숨어서 이야기를 듣던 유피테르가 갑자기 말을 걸자 작은 신도는 비명을 질렀다.

    작은 신도의 태도는 여전했다. 큰 신도가 한 번 주의를 주고 갔으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돼. 나는 네 편이야. 레아교에서 왔어.”

    “거짓말. 제 편을 들어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어요. 레아교는 이단이 되었으니까요. 역시 저를 처분하려고 온 거죠?”

    “그랬으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겠지?”

    오델리는 유피테르의 말에 저항하는 걸 멈췄다.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니 이건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지금껏 자신을 협박했던 낙원교의 사제들은 모두 강압적이었다. 자신을 설득시키기 보단 폭력과 힘만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걸어온 건 처음이었다.

    “어째서. 아무도 당신이 온 걸 모르는 거죠?”

    이상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큰 소리를 냈는데도 아무도 이곳을 쳐다보지 않았다. 신도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청소에 열중했다. 자신을 꾸짖었던 사제조차 다른 곳에서 신도를 혼내는 중이었다.

    “네가 알고 있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 그런가요…. 그래서 왜 저를 찾으신 거죠?”

    오델리는 유피테르의 말이 그럴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른 궁금증이 생겨났다.

    왜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춘 그가 적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뭔가 전부 다 그쪽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이상하네요. 그래도 뭐 좋아요. 뭐가 알고 싶은데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유피테르의 얼굴이 훅하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 얼굴은 오델리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 덕에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친구가 받고 있다는 치료. 그거 어디서 행해지는지 알아?”

    “치료라면…. 아마 이 신전의 최상층에서 이루어질걸요?”

    성국 해방 전선이 말했던 단서 중 하나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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