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41화 (141/265)
  • 낙원교(6)

    * * *

    낙원 마법에 힘을 보탠 신도들은 천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광신도들을 신인으로 만들어준 마나가 이미 낙원 마법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이스트의 낙원 마법은 더욱 웅장해졌다.

    “이게 네가 그리는 낙원이라는 거야?”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낙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교류전이 펼쳐지던 시라쿠사 섬은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몇 대 전의 교황은 신성 기관의 훈련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희대의 라이벌인 델포이에 비하면 너무 이론적이었다. 신성 마법의 본질이 치유와 지원에 있다고 해도 약한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레아교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성 마법사들이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그는 반대를 무시하고 신성 기관을 시라쿠사 섬으로 옮겼다. 이 때문에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던 시라쿠사 섬은 황폐해졌다.

    그러나 낙원 마법이 기적을 이뤄냈다.

    이미 모습을 감춰버린 동물과 식물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그중에서는 희귀종으로 꼽히는 시라쿠사 토끼도 있었다. 눈처럼 하얀 토끼는 빼꼼히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곳은 냉혹한 교육의 장이 아니라 따뜻한 자연의 품이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는걸. 네가 그리는 낙원은 혼자만의 것인가 봐?”

    “그렇다!”

    정곡을 찌르는 유피테르의 말에도 이스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인간이야말로 세상의 원죄이다.’

    이스트는 인간을 증오했다.

    그도 처음부터 인간을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자신은 물론 낳아준 부모님도 인간이었다. 희귀한 유전병을 앓고 있었으나, 충분히 사랑받는 일상을 보냈었다.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건 가당치도 않았다.

    “너는 왜 우리랑 달라?”

    “미안해. 너랑 같이 다니지 말라고 엄마가 그래서.”

    “괜찮아? 저런 애랑은 놀지 말자. 네 기분 다 이해해.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독선적이고 오만하다.

    그게 이스트가 느꼈던 인간의 본성이었다.

    자신의 가문은 성국에서도 조금 유별났다. 원래 귀족이었으나 희귀병 때문에 작위를 포기하고 성국에 몸을 의탁했다.

    나이가 들을수록 몸이 불어나는 희귀병을 치료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더러운 사람 따위 나의 낙원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스트는 양팔을 넓게 벌렸다.

    그 바람에 도톰한 뱃살이 춤을 췄으나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가 강렬히 원하는 건 낙원을 모욕한 유피테르의 죽음뿐이었다.

    우우웅.

    이스트의 머리 위로 마법진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고대 마법과 완전히 같은 그 마법진들은 하나하나가 엄청난 마나를 머금고 있었다. 열 개는 가뿐히 넘어서는 마법진으로도 마나들을 전부 제어할 수 없었다.

    찌릿찌릿.

    제어를 벗어난 마나들은 서로 충돌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마나가 강제로 뭉쳐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도에게 받은 힘이었지만, 이제는 모두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신의 선물한 마나를 마법사들이 다른 형태의 마법들로 피워낸 것과 유사했다.

    “죽어라.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이스트는 이를 악물며 유피테르를 조준하고 마법을 쏘아냈다.

    대사제가 되었어도 이 정도의 마나를 쉽게 제어할 수는 없었다. 사도가 준 힘은 분명 대단했지만, 신을 넘어서는 수준은 아니었다.

    파바바박.

    눈의 실핏줄이 하나둘 터져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전신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아픔이었다.

    이스트는 피눈물을 흘리고 신음하면서도 낙원 마법을 포기하지 않았다.

    콰아아앙ㅡ.

    마법진들은 제각기 다른 마법을 토해냈다.

    저 위의 하늘에서는 유성우가 떨어져 내렸고, 그 밑에서는 벼락이 유피테르를 노렸다. 땅에서는 용암이 솟아오르며 퇴로를 막았다. 유피테르의 바로 옆에서는 마나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종말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해치웠나!”

    사도도 조심스러워하던 유피테르를 자신의 힘으로 해치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스트는 양손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질렀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지만, 용솟음치는 기쁨을 막을 순 없었다.

    “이거 불쌍해서 어쩌지.”

    유피테르는 멀쩡한 모습으로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가 입고 있던 델포이의 제복에는 군데군데 탄 흔적과 재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건 광신도와의 싸움에서 생긴 것들이었다.

    “어째서냐! 어째서 그 정도의 마법을 맞고도 살아있는 거야!”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유피테르의 모습을 보자 이스트의 눈동자가 레몬만 하게 커졌다.

    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 살아남은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교류전에서 마인 알바레스를 잡아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그보다 훨씬 위였다. 알바레스가 뛰어나다고 해봤자 대사제 급에는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마신 약은 초기 실험작이었다.

    “글쎄다. 너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진짜 신이 도와주기라도 한 거 아닐까? 아무리 봐도 내가 더 낫잖아?”

    “웃기지 마라! 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레아는 인간을 버렸어! 마족들을 끝내 없애지 못한 게 그 증거다.”

    “그럼 네가 믿는 신은 실존해?”

    유피테르의 신랄한 말에 이스트의 말문이 막혔다.

    낙원 프로젝트.

    이 계획을 주도한 건 확실히 마족이었다.

    이스트는 마족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으나, 그들의 기운을 모를 리 없었다. 그 역시 웨스트처럼 신관 출신이었다. 신관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마족을 구별하는 거였다.

    신의 결계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평화에 젖어 마족의 위협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역사서는 마족이 언젠가는 빈틈을 찾아낼 거라고 말했다. 마족들은 신에게 반기를 들어 올리는 계획을 몰래 세웠다. 그 후, 인간을 꼬드겨서 대륙 전쟁을 일으켰다.

    슬프게도 역사는 반복되는 중이었다.

    “자네는 혹시 신을 믿는 사람인가?”

    레아교에 회의를 느끼던 그를 유혹한 건 사도였다.

    마족과 인간의 기운을 모두 가지고 있던 사도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스트는 그게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끌렸다. 그리고 사도를 도와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그래서 낙원교의 신은 마왕을 가리킨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저쪽도 준비가 다 되었나 보네. 내가 갈 길이 바빠서 말이지. 멀리는 안 나간다?”

    피융ㅡ.

    바로 그때,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이곳에는 너와 나밖에 없다. 내 마나 감지도 그렇게 말한단 말이다.”

    유피테르의 말을 반박하던 이스트는 갑자기 공허함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몸을 쳐다보자 심장 쪽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 있는 게 보였다. 얼마나 놀랐으면 피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에서 벗어났다고 한들 몸에 구멍이 있는 게 정상일 리 없었다.

    ‘레아시여. 이게 당신을 저버린 죄란 말입니까.’

    상처를 눈으로 확인하자 그제야 아픔이 이스트를 지배했다.

    한계를 벗어난 마나를 움직였기 때문에 새롭게 난 상처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신관일 때 했던 수행 덕에 그나마 바닥을 구르지는 않았다.

    “대사제 이스트. 외롭지 않게 다른 대사제들도 곧 보내줄게.”

    그러나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스트에게 유피테르의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이스트는 몇 번이고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서 불가능했다. 이내, 죽음의 짙은 향기를 맡은 그는 조용히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이스트가 낙원교의 대사제라는 걸 생각하면 너무 보잘것없는 최후였다.

    * * *

    대사제가 죽자, 낙원 마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당신이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그러는 넌 이스트를 죽인 장본인이겠군.”

    그 대신 한 마법사가 유피테르의 앞에 나타났다.

    연한 금발과 녹색의 눈동자를 지닌 그녀는 특이한 차림새를 자랑했다. 움직이기 편한 복장과 등 뒤에 맨 기다란 스태프는 완벽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는 넌?”

    “난 루웰라. 아카데미 구조대의 일원이었지.”

    “일원이었다?”

    “맞아. 원래 내 목표는 고립된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을 구해내는 게 아니었거든.”

    루웰라라고 이름을 밝힌 마법사는 유피테르의 주변을 돌았다. 마치, 유피테르가 숨기고 있는 힘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라서 유피테르는 그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그가 가진 진짜 힘을 찾아낼 수는 없었기에.

    그건 ‘그녀’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궁수자리의 마도사가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지?”

    루웰라는 조디악의 마도사들 중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었다.

    아카데미의 교육을 받아 세컨드 서클을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델포이 아카데미의 전무후무한 자랑이 바로 그녀였다. 이런 배경을 가진 그녀가 아카데미 구조대의 일원이 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형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조디악의 마도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들이었다. 현재의 마법사들에게 세컨드 서클을 도달하는 건 평생의 소원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조디악의 울타리에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섣부르게 행동하면 공격당할 이유를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조율자의 역할을 맡은 천칭의 마도사를 적으로 돌리는 것 역시 너무 위험했다.

    “천칭이 내게 임무를 줬거든.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너를 도우라고.”

    루웰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왜 천칭이 이런 임무를 줬는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칭의 마도사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지닌 건 맞았으나, 일면식조차 없었으니까.

    유피테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천칭의 마도사가 언급되니 긴장이 되나 봐?’

    루웰라는 유피테르의 태도를 이해했다.

    저 표정은 자신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지금 깊은 생각에 빠져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천칭의 마도사란 이름은 평범한 마법사들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었다.

    처음부터 반말이어서 유피테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얼굴 정도는 봐줄 만했다. 게다가 천칭을 생각하면 여기선 참아야 했다.

    침묵을 깬 건 유피테르의 질문이었다.

    “내 목적은 성녀를 구하고 낙원교의 사도를 죽이는 거다. 함께할 거야?”

    유피테르는 계획에 동참할 거냐고 루웰라에게 물었다.

    천칭이 왜 지금 상황에서 움직였는지 몰랐다. 그래도 쓸만한 패가 있는데 버리는 건 아까웠다. 궁수자리의 이름에 걸맞게 루웰라는 초장거리 저격이 가능했다.

    그녀가 함께한다면 다양한 방법의 전술로 낙원교를 무너트리는 게 가능했다.

    “다시 말해봐. 뭘 할 거라고?”

    루웰라는 유피테르의 말에 귀를 덮었던 머리를 넘겼다. 아무래도 배를 오래 타서 헛것이 들린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충분히 쉬어서 괜찮아졌을 거라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그건 제정신을 가진 마법사라면 절대로 언급하지 않을 리스트 가장 상단에 올라와 있는 말이었다.

    “조디악의 일원도 별거 아니군. 다시 한번 말해줘야 하나?”

    “네가 성녀를 구하겠다는 건 이해했어. 대략적인 상황은 구조대의 배에서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랑 나 둘이서 낙원교를 제압하겠다는 거지.”

    “정확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