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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40화 (140/265)
  • 낙원교(5)

    * * *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마법사가 존재했다.

    벽에 막혀 포기하는 자와 벽이 부서질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자.

    “재미있는 마법을 사용하네?”

    유피테르 아르테미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후자에 속했다.

    “신의시여 저희가 갈 길을 보여주시옵소서.”

    “신의 적, 신의 적에게 내일의 해를 보여주지 말아라!”

    광신도들은 큰 원을 그리며 유피테르를 둘러쌓았다. 벌써 많은 동료들이 얼어버렸지만, 끊임없이 지원이 오고 있기에 문제없었다.

    이미 낙원교가 성국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수백 대 일.

    압도적인 수적 우위 덕에 광신도들의 기세가 끝도 보이지 않고 올랐다.

    유피테르 식 얼음 마법 ― 얼음 창 & 얼음 기둥

    시동어조차 필요 없었다.

    손만 뻗어도 유피테르가 원하는 대로 마법이 완성되었다. 조디악의 마도사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마나 제어가 압권이었다.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하늘에서는 얼음 창들이 날아다녔고, 땅에서는 얼음 기둥이 솟아났다.

    푸스스.

    압도적인 냉기를 지닌 얼음 마법은 무자비하게 광신도들을 노렸다.

    “사, 살려줘…!”

    얼음 마법을 피하지 못한 평신도들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이대로라면 앞에 있는 동료들처럼 얼음 동상이 되어버릴 게 뻔했다.

    그건 싫었다.

    인간을 벗어나 마인이 되었다고 해도 죽음은 무서웠다. 허무하게 죽기 위해 낙원교를 믿은 게 아니었다. 평신도들이 레아교를 버린 건 신관들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믿어도 믿어도 레아교가 말하는 구원은 끝내 오지 않았다.

    ‘평범한 마인이 아닌 건 확실하군.’

    유피테르는 마법을 쏘아내면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포션에 대한 분석은 끝난 지 오래였다. 칼리스토들의 도움만 있다면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오흐트와 엑시의 활약이 빛났다.

    “마스터. 이거 델포이 애들에게 부착되어 있던 거랑 완전 똑같은데. 마족의 마나가 들었어.”

    “마족의 마나가 들은 건 확실하나. 미치는 영향이 무언가 다른 것 같습니다. 마족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만들었는지 정말 흥미롭군요.”

    “마족이 뭔 생각이 있겠어. 더러운 놈들이 생각하는 게 뻔하지. 새로운 형태의 싸움 도구를 만드는 것. 안 그래 마스터?”

    “오흐트, 세상에 100%란 없답니다.”

    오흐트와 엑시.

    칼리스토 자매들의 후방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두 사람은 이번에도 옥신각신 싸웠다.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며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 둘의 의견이 팽팽하게 충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흐트는 치유 마법사였고, 엑시는 마도 공학자에 가까웠으니까.

    “대사제님께서 오셨다!”

    “이스트 님이시다!”

    유피테르를 현실로 이끈 건 광신도들의 환호성이었다.

    끊이지 않고 날아오는 얼음 마법 때문에 광신도들은 천천히 지쳐갔다. 보통 이쯤이 되면 모두가 항복했다. 레아교의 신관들도, 템플 기사들도 돌파구를 찾지 못해 낙원교로 전향했다.

    그러나 저 은발의 마법사는 달랐다.

    분명 이기고 있는 것 같은데도 가슴속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공포가 올라왔다. 정말로 이 전투를 승리로 매듭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때문에 포위망은 점점 느슨해졌고, 대열은 흐트러졌다.

    “누구인가, 누가 감히 신을 모욕하는가?”

    대사제는 단단한 풍채를 자랑하며 천천히 유피테르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스르르륵.

    광신도들은 자리를 비켜주며 원에 구멍을 뚫었다.

    유피테르에게 달려갔을 때만큼 재빠른 속도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이는 데도 호흡이 척척 맞았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신의 진정한 뜻을 받드는 사도와 대사제들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당연했다. 또, 대사제가 걸어갈 길을 막는 건 신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대사제가 느릿느릿 걸어오는데도 이미 길은 완성되어 있었다.

    “이스트 님 어찌하여 이곳에 오셨습니까.”

    광신도들을 이끌던 자가 고개를 숙이며 이스트에게 물었다.

    이 소탕 작전은 사제로 인정받은 그에게 일임되어 있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성격의 일을 해보았기에 이번에도 자원했다. 아카데미에는 강대한 마법사들이 있었으나, 어렵지 않은 임무였다.

    아카데미의 관련자들을 이곳에서 쫓아내는 게 목표였다.

    “사도님께서 신의 신탁을 받으셨다.”

    “낙원에서 사노라.”

    대사제는 간단하게 용건을 밝혔다. 그러자 현장을 지휘하던 사제는 인사를 올리며 뒤로 물러났다.

    사도와 신탁.

    이 두 단어는 그 어떠한 긴 문장보다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정말로 전면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군. 역시 사도 님의 말씀에는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빌어먹을 교황과는 다르시다.’

    출렁ㅡ.

    걸을 때마다 대사제의 배가 파도처럼 출렁였지만, 그걸 똑바로 바라보는 신도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불경을 저지르는 자라면 애초에 광신도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당신이 대사제?”

    “신에게 선택받지도 못한 자가 입에 올릴 말은 아니군.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지.”

    찌릿.

    유피테르와 대사제 이스트는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시작했다.

    대사제는 유피테르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처음이었다. 이스트보다 강한 힘을 지닌 사도조차 끝내 의심을 풀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던전에 잠입한 유피테르를 눈치채지 못했다.

    “마지막 경고다. 우리들의 낙원에서 나가라.”

    사도는 유피테르를 쉽사리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사도에게 감화된 이스트는 그 말을 철저히 따랐다.

    “라엘에게 부탁을 받아서 말이지. 그렇게는 못 하겠는걸?”

    유피테르는 씨익 웃으며 이스트에게 대답했다.

    광신도들을 이끌던 자는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다른 이들을 몰라도 자신의 마나 감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광신도들이 그 자리에 있던 교수들을 인질로 삼을 게 분명하기에 손을 좀 썼다.

    다른 이들은 문제없이 구조선으로 향하고, 자신만 섬에 남도록.

    “라엘…?”

    이스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라엘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안개가 낀 듯 떠오르지 않았다. 많이 들어본 게 분명했다. 라엘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게 사람의 이름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너희가 죽인. 교황 아스라엘 말이야.”

    유피테르는 주저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우스운 소리를 하는군. 교황 아스라엘을 죽인 건 낙원교가 아니라 템플 기사단의 반역자들이다.”

    이스트의 말이 맞았다.

    교황 아스라엘의 죽음이 발표된 이후, 두 종교 모두 독자적인 방법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국 크레이타의 주도권은 레아교가 쥐고 있었다. 낙원교는 시라쿠사 섬의 반란을 통해 성립된 신흥 교단이었을 뿐, 성국 자체를 뒤흔들지는 못했다.

    레아교의 추기경들은 교황 아스라엘을 죽인 것이 낙원교의 신인들이라고 발표했다. 교황의 방에 남겨진 것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낙원교의 선택받은 자들은 졸지에 범인으로 몰렸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레아교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이미 신의 뜻을 저버린 템플 기사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성국의 평신도들은 서로 다른 주장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낙원교 쪽의 증거가 더욱 확실해 보였다. 게다가 추기경들과 템플 기사들 중 일부가 타락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 후, 전세는 역전되어 낙원교는 크레이타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글쎄다. 진실은 교황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말하는군. 감히 사도 님의 말을 반박하다니.”

    “입은 원래 뚫려 있어, 그거 막히면 숨을 못 쉬는데? 아! 너희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신인류라 아가미라도 달려있나?”

    “네, 네놈이 감히….”

    유피테르의 도발에 이스트는 간단히 넘어갔다.

    냉소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그 기술은 마치 그의 아버지를 연상케 했다. 유피테르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많은 비난을 받았다. 자연스레 상대방을 자극할 만한 포인트를 찾는 데 익숙했다.

    ‘어쩔 수 없이 저자와 싸워야 하는가.’

    이스트는 겉으로는 화를 냈지만, 속으로는 고민했다.

    애초에 사도가 신탁을 내렸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저 사도가 조심스러워하는 유피테르라는 마법사가 어떤 자일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얼굴만 보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상해졌다.

    저 빌어먹을 은발의 마법사가 신인들을 대놓고 모욕했다. 이들을 이끄는 대사제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낙원교의 사도의 의견마저 가볍게 무시했다.

    여기서 그에게 따끔한 한 방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완벽한 외통수였다.

    “낙원에서 사노라.”

    고민은 짧았다.

    이스트는 사도가 준 약으로 이미 인간을 초월한 상태였다. 게다가 대사제 직에 올라 이름을 받으면서 한 번 더 탈피했다.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누가 상대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실제로, 템플 기사들을 상대로 화려하게 날뛰는 데도 성공했다.

    이스트 식 낙원 마법 – 동쪽의 언덕

    이스트가 사용하는 마법은 신성 마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레아교의 신관들이 성스러운 분위기의 마나를 사용했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건 끈적끈적하고 기분이 나쁜 마나였다. 낙원교의 신도들은 몰랐으나, 유피테르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인 신인이 아니라 마인의 일종이라는 걸.

    마족의 힘을 기반으로 사용하는 마법을 절대로 신성 마법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건 창조신 레아에 대한 모욕이었다. 유피테르는 열렬한 레아의 신도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대사제 님께서 낙원 마법을 사용하신다. 모두 힘을 보태드려라!”

    이스트가 마법을 사용하자 사제가 광신도들에게 소리쳤다.

    광신도에서 사제가 되자 얻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기존에는 생각할 수도 없던 특혜들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한 번, 달콤함을 느끼자,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두려워졌다.

    사제의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사람의 눈에 띄는 게 중요했다. 지금 판은 완성되어 있었다. 대사제 이스트 님의 마법을 완성하는 걸 도와주면 완벽했다.

    신도들이 기도하면 할수록 낙원 마법이 강력해진다는 걸 예전에 봐서 알고 있었다.

    “낙원에서 사노라.”

    수백에 달하는 광신도들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무릎을 꿇고서 손을 모았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털썩.

    광신도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쓰러졌다. 처음에는 한, 두 명만이었으나 이내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끝에는 현장을 이끌던 사제마저 정신을 잃었다.

    “신의 힘 아래에 머리를 조아려라!”

    이제 자리에 서 있는 건 두 사람뿐이었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신의 힘이라고 하는 거라면 많이 실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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