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33화 (133/265)
  • 흔들리는 성국(5)

    * * *

    기분 나쁜 던전에 들어갔다 온 다음 날.

    유피테르를 포함한 델포이 아카데미 선수단은 경기장으로 향했다. 어젯밤 성국으로부터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회의에서 정한 방침을 유지한다.

    그게 크레이타와 신성 기관의 뜻이었다.

    애초에 델포이는 휴식기를 갖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종합 1위로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데 굳이 끊어내고 싶지 않았다.

    또,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신성 기관에게 희망의 빛을 줄 수야 없었다.

    델포이가 최다 우승 아카데미라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년 간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교수와 아카데미생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다.

    “저게 뭐죠…?”

    델포이 선수단이 숙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아카데미생이 물었다.

    “마족이 성국에 들어오도록 방치한 교황은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물러나라!”

    “불쌍한 성녀님을 혹사시키지 말라! 혹사시키지 말라!”

    “혹사시키지 말라! 혹사시키지 말라!”

    꽤 많은 사람이 모인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었다.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기에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델포이 선수단뿐만이 아니었다. 천검 학원과 파르테논 아카데미 역시 길이 막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해산하지 않으면 무력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경고입니다. 창조신 레아를 욕되게 하는 행위는 이단 심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시위대를 막고 있는 건 템플 기사단의 신입들이었다. 그들에게서는 이 뒤로 보낼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성국은 레아의 이름 아래 어찌어찌 잘 유지되고 있었다.

    혜택이 적은 평신도들의 불만을 성녀가 어느 정도 해결해줬기에. 게다가 이번 대의 교황은 최대한 모두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대규모의 시위는 처음이었다.

    “보이십니까! 저들은 진정한 신의 종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귀를 막고 있습니다.”

    시위대의 맨 앞에는 주모자가 있었다.

    그는 큰 목소리로 평신도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했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가득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일 법했다.

    ‘어제 봤던 그놈이군.’

    시위의 주모자는 유피테르가 던전에서 봤던 사제였다. 약간 마르지만, 키가 큰 오른쪽에 있던 자였다.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일이 아마 이 시위인 듯싶었다.

    “저는 어제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성국이 마족의 손아귀에 놓일 위기에 처했으니 신도들을 구하라고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인 사제는 힘차게 선언했다.

    “믿습니다!”

    “전능하신 레아 님이시여 무지한 저희를 구해주소서!”

    템플 기사들의 만류에도 시위대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더욱 타올랐다.

    시위대는 무언가에 홀린 듯 행진을 이어갔다. 광기에 휩싸인 그들을 상처 없이 막기는 무리였다. 잇따른 경고에도 그들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단을 내려야만 할 순간이 다가왔다.

    ‘저런 말을 믿고 따라가다니 웃기는군. 위험한 약이라도 먹인 건가.’

    유피테르는 사제의 술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마른 사제는 교묘하게 레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열렬한 연기는 광신들도들 조차 쉽게 속아 넘길 정도로 완벽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크레이타의 평신도들은 당연히 신이라는 단어에 레아를 떠올릴 테니까. 그건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세아니아 대륙에는 오직 한 명의 신, 창조신 레아만이 존재했다.

    전쟁, 사랑, 돈, 힘, 명예

    창조신 레아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세계의 어느 곳에도 신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때문에 어떠한 국가라도 일단 레아를 믿었다.

    각 국가가 숭배하는 레아의 일면은 모두 달랐지 말이다.

    신성 마법 ― 사람 물리기

    평신도들의 시위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템플 기사 한 명이 마법을 사용했다.

    “어이, 갑자기 무슨 짓이야! 누가 마법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어?”

    다른 템플 기사가 놀라며 소리쳤다.

    아직 윗선에서 어떠한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처음 겪는 일에 교황청 역시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템플 기사의 독단적인 행동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았다. 평신도에게 해가 되는 결과를 낳는다면 더욱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건 신을 섬기는 기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우우웅ㅡ.

    신성한 마나가 서서히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어어?”

    “역시 말뿐이냐! 여신님은 너희가 아닌 우리와 함께하신다.”

    템플 기사의 마나가 느껴졌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시위대는 신이 났다. 레아가 시위대를 공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마법이 무력화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게 신성 마법이 특별한 이유였다. 다른 마법과 다르게 신의 힘을 그대로 사용하기에 정신계 마법도 가능했다. 물론, 엄청난 신앙심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었다.

    “아악!”

    “머리가, 머리가 아파요!”

    “어머님이 계시는 집으로 빠, 빨리 돌아가야 해.”

    시위대는 강제로 머리에 덧씌워지는 이미지에 고통스러워했다. 이게 감정을 증폭시키는 사람 물리기의 힘이었다. 공격적인 마법이 아니라 자리에서 흩어지게 하는 것뿐이었다.

    원래 신성 마법은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지원에 더 적합한 힘이었다.

    “보셨습니까! 크레이타의 신도님들 그리고 아카데미 관계자 여러분.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저희들에게 저들은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사제는 고통스러운 척하며 열변을 토해냈다.

    그러나 사람 물리기에 당한 시위대는 반응하지 못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고통을 참고 사제의 말을 따르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고통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인가? 교류전이 제대로 열릴 수 있는 게 맞는가?”

    그걸 보고 있던 제프리스가 근처에 있던 템플 기사에게 물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이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기에 궁금했다.

    “델포이 부학장님.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시위가 갑자기 일어나 아직 조사하는 중입니다.”

    최고위층 인사를 만난 템플 기사가 정식으로 경례하며 답했다.

    “허허… 성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인가.”

    “죄송합니다. 교황님의 허락이 떨어지는 대로 교류전을 재개할 것 같습니다.”

    제프리스는 현재 상황이 못마땅했지만, 일단은 웃으면서 넘겼다. 템플 기사는 크게 불만을 요구하지 않는 모습에 감사하며 원래의 임무로 돌아갔다.

    ‘학생회장이 회복할 시간을 번다면 충분히 이득이지.’

    델포이의 학생회장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는 현재 부상 중이었다. 이유는 몰랐으나, 유피테르 교수가 갑자기 쓰러져 신관이 치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고 전력을 잃은 건 뼈아팠으나, 성녀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른 아카데미는 이 사실을 몰랐으니 이런 식으로 시간이 늦춰지면 나쁠 건 없었다.

    ‘생각보다 쓸모가 없네! 더러운 평신도 자식들.’

    마른 사제는 혀를 차며 상황을 파악했다.

    평신도들은 평범한 생활 마법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신성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신성 기관에 스카웃되었다. 신앙심이 신성 마법을 쓸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자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평신도들이 고작 사람 물리기도 견뎌내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 마법은 신성 마법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마법이었다.

    이래서는 계획에 지장이 생겼다.

    ‘어쩔 수 없군. 그걸 쓰는 수밖에.’

    마른 사제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았다. 경건한 사제가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지이이이이잉ㅡ.

    그의 기도를 여신이 들어주기라도 했는지, 하늘에서 한 줄기의 빛이 쏟아졌다. 그 빛은 그대로 마른 사제에게로 향했다.

    정확히 한 사람 크기의 원 안에 들어간 사제의 모습은 교황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모습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마, 말도 안 돼… 고작 저런 놈이 교황님이나 성녀님만이 받는 레아 님의 은총을 얻다니?”

    “델포이에는 없는 힘이로군.”

    “이게 창조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인가?”

    “우와….”

    템플 기사들도, 아카데미의 관계자들도, 아카데미생들도 그리고 주변에서 시위를 지켜보던 다른 자들까지도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오…. 알겠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당신의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마른 사제는 로브를 펄럭거리며 일어났다. 그러자 모든 이들이 침묵을 지키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다.

    “신도들이여 신의 뜻을 받드는 나를 따르겠는가? 그렇다면 포션을 마셔라! 그것만이 신이 원하는 것일지니!”

    “믿습니다!”

    “그러면 그걸 마셔라!”

    선지자 같은 마른 사제의 말에 그를 따르는 평신도들이 모두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포션을 찾자 환희하며 신에게 기도했다. 약 500명이 넘는 그들이 하나가 되어 레아에게 기원하는 모습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딸깍ㅡ.

    짧은 기도를 마치고 평신도들은 과감하게 포션을 마셨다. 이 안에 든 게 무엇인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것을 마시는 게 신의 뜻이니 그걸 따를 뿐이었다.

    이래야만 사제가 약속한 낙원으로 향할 수 있을 테니.

    우드드득ㅡ.

    “어…?”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포션을 마신 이들의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온몸에서 피를 쏟아내는 자들도 있었고, 뼈가 튀어나오는 자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녹아버린 자들도 있었다.

    “레, 레아 님 구해주….”

    사제의 말과는 다르게 그들은 낙원으로 가지 못했다. 오히려 세상에서 존재가 지워지고 있었다. 평신도들은 몸이 부서지는 격통을 참으며 신을 찾았으나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비규환 속에서 그들을 구원해줄 신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꺄아아아악!”

    “도, 도망쳐 괴물이야!”

    약을 마신 평신도들은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몬스터처럼 흉흉한 기운을 내뿜자,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구경을 하던 그들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로즈 교수. 다른 이들을 데리고 이탈하라.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비상 상황이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라.”

    제프리스 부학장의 판단은 빨랐다. 그는 교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눈에 보이는 아카데미생들을 직접 챙겼다. 델포이 주변에서 이변을 지켜보던 다른 아카데미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아카데미생들을 구해 일단 자리에서 벗어나는 걸 택했다.

    제프리스를 비롯한 델포이 아카데미는 누구보다 빠르게 이탈했다. 교류전을 위해 착실히 준비한 게 연관이 없는 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모두 이곳에 있나?”

    “예. 카테리나 아르테미스를 제외한 모든 아카데미생 모두 무사합니다.”

    델포이 아카데미에게 지급된 숙소 앞에서 제프리스는 교수들에게 물었다. 교수 대표 로즈는 제프리스가 묻기도 전에 인원 파악을 끝냈기에 빠르게 대답했다.

    피티아 학장이 괜히 로즈를 아끼는 게 아니었다.

    “저기, 부학장님?”

    로즈의 말에 안심하려는 제프리스에게 오흐트가 손을 들고 물었다.

    제프리스는 일개 아카데미생의 말 따위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특별 유학생이라는 걸 생각해내자 그럴 수도 없었다.

    피티아의 선택은 늘 틀리지 않았으니까. 그가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지닌 유망주를 저버릴 수야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또 한 번 피티아 학장과 비교당할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인가 오흐트 양?”

    “유피테르 교수님이 안 계시는데요.”

    오흐트가 던진 작은 한 마디는 델포이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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