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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32화 (132/265)
  • 흔들리는 성국(4)

    * * *

    “실험이라고? 반마족은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기술일 텐데.”

    반마족은 세계의 미움을 받는 생명체들이었다. 적어도 유피테르가 알기로는 그랬다.

    세계를 낳은 어머니, 창조신 레아는 마족들을 싫어했다. 마족들은 순진한 인간들을 꼬드겨 두 차례나 대륙 전쟁을 일으켰으니 좋아할 수가 없었다.

    반마족의 부모는 이러한 마족들이었다.

    인간들은 반마족을 미워했다. 그러나 마족의 힘을 받은 반마족들을 쉽게 물리칠 수는 없었다. 자연스레 성국의 깃발 아래 하나로 뭉쳐 반마족을 몰아냈다.

    “맞아 마스터. 마족들조차 반마족을 싫어했지.”

    마족들은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반마족을 불결하게 생각했다. 그들의 힘을 절반조차 따라오지 못하는 결합품들이었으니까.

    에냐는 마법진이 있는 벽으로 다가가 툭툭 치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 마왕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졌고, 페르세포네 때문에 마족들은 자유를 억압당했지. 그럼 어떻게 될지 뻔하지 않겠어?”

    “반발과 분열.”

    “정확해. 100점 만점이야 마스터.”

    에냐의 설명은 그럴듯했다.

    유피테르가 ‘그녀’와 함께 마족의 땅을 밟았을 때, 마족들은 큰 불만을 품고 있지 않았다.

    신의 결계 속에 갇혀있긴 했으나 타르타로스는 충분히 넓은 땅이었다. 거기에 뛰어난 태초의 세 마족의 지도력이 합쳐졌다.

    카리스마 넘치는 티폰, 강한 힘을 지닌 에키드나 그리고 동네 형 같은 느낌의 시트시거.

    이 세 마족을 지원하는 공작들까지 있었으니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바깥세계를 보고 싶어 하는 젊은 마족들도 있었으나, 극히 소수였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인을 만들 이유가 되지는 않아.”

    유피테르 역시 마족들이 돌발 행동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티폰을 죽이기 전에 몇 번이고 고민했었다. 결국, 다른 마족보다 티폰의 꿈이 훨씬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마왕을 처단했다.

    “그건 마족들을 얕본 거야 마스터. 마인들은 단순히 반마족을 진화시킨 게 아니었어.”

    에냐 역시 조사를 진행하기 전에는 유피테르처럼 생각했었다.

    마족과 실험이라니 그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대륙 전쟁 시기에서도 마족과 관련된 실험은 미치광이 인간 마법사들의 몫이었다. 마족은 결과를 조용히 가져갈 뿐이었다.

    ‘정말로 마족들이 실험을 진행했던 거라니 믿기지 않네. 델포이에서 벌어졌던 모든 게 정밀히 짜인 계획이었다면. 뭐가 목적이지?’

    용병 파론부터 시작해 티아나와 델포이의 아카데미생들 그리고 카테리나까지.

    마족들에게 피해를 본 마법사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처음에는 잠재력이 있는 마법사들을 노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파론이 설명되지 않았다.

    실험을 거듭하며 마인까지 만들어 낸 마족들의 생각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띠리링ㅡ.

    유피테르의 상념을 깬 건, 케팔로스였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마나 감지에 무언가가 걸렸다.

    공간 이동 마법이었다.

    “쉿.”

    그의 행동은 재빨랐다.

    알아낸 사실을 계속해서 말하려는 에냐의 입을 막고서는 벽에 붙었다. 그리고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투명화 마법을 펼쳤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와 에냐의 마나마저 완벽하게 지워냈다.

    시동어 따위는 필요 없었다.

    “준비는 다 끝났는가?”

    공간 이동으로 그 자리에 모습을 보인 건 세 명이었다. 모두가 칙칙한 검은색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로브에는 붉은 마크가 그려져 있었는데 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레아 교의 마크와는 다르다는 건 확실했다. 알 수 없는 느낌이 자꾸 신경을 거슬렀다.

    “그럼요. 언제든 사도 님의 명령을 받들 수 있사옵니다.”

    “제게 주신 명령 역시 확실히 수행했습니다. 성국 놈들은 이제 끝입니다.”

    한 발자국 뒤에선 두 명은 앞에선 자를 보고서 사도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신앙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고를 마친 뒤에는 서로를 쳐다보며 으르렁거렸다.

    마치,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강아지들을 보는 것 같았다.

    사도라고 불린 자는 조금 키가 크긴 했으나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다만, 로브로 얼굴을 가렸고 마법으로 변조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도라고?’

    유피테르는 귀를 의심했다.

    사도라는 말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륙 전쟁 시기에 신의 뜻을 받들었던 드래곤들조차 그때뿐이었다. 전쟁 후 그 말을 입에 올린 드래곤들은 모두 용의 계곡에 잠들었다.

    신의 길을 따라가는 건 누구에게나 허락된 영광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이야. 조금만 있으면 신께서 부활하신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바라던 영생을 얻게 될 것이야. 사제들아 우리의 신을 믿는가?”

    “오오…. 믿습니다.”

    “전능하신 신이시여 어서 빨리 깨어나 은총을 내려주소서.”

    사도의 말에 두 사람은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다. 저런 모습은 교황이나 성녀를 볼 때의 경건한 신도의 모습과 비슷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믿지 않으면 보일 수 없는 태도였다.

    “잠깐.”

    사도는 이제는 절까지 하려고 하는 두 사람을 멈췄다.

    “사도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혹여 신의 목소리라도 들으셨습니까?”

    두 사제는 사도의 말에 황급히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사도는 신의 대리인이었다. 감히, 인간에 불과한 그들이 거역할 수 없었다. 그건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었다. 사도는 신의 깊은 뜻을 풀어주는 선지자였다.

    미천한 자신들에게도 신의 은총을 받을 기회를 준 구원자이기도 했다.

    오른쪽에 있던 자는 왼쪽의 있는 자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도가 지금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 초대하지 않은 쥐새끼들이 숨어있는 것 같군?”

    사도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자 두 사제는 어쩔 줄을 몰랐다. 위대한 사도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도와 함께하자 그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걸 싫어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곳은 성국 놈들도 모르는 비밀 던전입니다.”

    “마, 맞습니다. 지금까지도 안전했고 앞으로 누구도 모를 겁니다.”

    투닥거렸던 두 사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겹쳤다.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는 사도를 보며 같은 마음으로 변명을 쏟아냈다.

    이곳에 누군가가 들어올 리 없었다.

    성국에서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는 위험한 던전이었다. 미노타우르스나 트롤과 같은 상위 몬스터들이 득실득실했다.

    이 던전에 오는 건 성기사들뿐이었다. 그들은 던전이 광폭화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청소했다. 일반 평신도들이 피해를 보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성기사들은 누가 시켜서 의로운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신의 뜻을 받든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사도를 따르는 두 사제는 타락한 성기사들을 매수해 이 던전을 찾아냈다. 그리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도록 요새화했다. 혹시라도 성기사들이 계약을 어길까 싶어 정신 지배의 마법까지 사용했다. 사도가 준 아티팩트가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했다.

    사도의 요구에 제대로 응할 수 있는 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분명 이질적인 마나가 느껴졌다.’

    사도는 직감대로 벽 쪽을 샅샅이 뒤졌다.

    뒤에 있는 저 사제 놈들은 쓸모가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처음부터 강한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진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마인약은 경지를 뛰어넘게 해주었으나, 0을 1로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딱, 기대한 대로만 일 처리를 해왔을 뿐,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여긴가?”

    분명히 이곳이다.

    사도는 스스로의 힘을 믿고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분이 준 힘이 있다면 이런 벽을 부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콰앙ㅡ.

    그 어떠한 마법도 쓰지 않았는데도 벽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트롤이 들고 다니는 거대한 몽둥이로 후려친 것 같은 파괴력이었다.

    사도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았던 두 사람은 던전 벽을 그대로 부숴버리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던전 벽은 조디악의 마도사들조차도 어려운 적이었다. 차라리, 던전 수호자를 상대하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슈웅ㅡ.

    사제들 역시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왼쪽에 있던 사제는 육중한 몸을 가지고도 파편을 쉽게 피했다. 오른쪽에 있던 마른 사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제 모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날카로운 파편에 겁을 먹지 않았다.

    “사도님께 불가능한 건 없으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왼편의 사제는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이렇게 급격히 몸을 움직인 건 참 오랜만이었다. 과거에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준 건 다름 아닌 사도였다.

    “내 착각이었나 보군. 결행일은 내일이다. 너희들이 데리고 있는 자들에게도 전해라.”

    사도는 벽 쪽에서 고개를 돌려 두 사제를 쳐다보았다. 사제들은 그의 말을 신의 계시로 생각하는지 무릎을 꿇고 절까지 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계획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들이었다.

    ‘지겨운 얼굴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군. 아주 기쁜 날이야.’

    이곳이 들킨 게 아니라면 계획을 미룰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죽기는 싫었기에 시킨 일 정도는 하는 편이었다.

    사도는 마지막으로 던전에 이상이 없나 확인하고는 공간 이동을 사용했다.

    “이놈아. 늦지 말고 잘 전해라. 예전처럼 굼뜨다가는 벌 받는다.”

    “너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고 잘난 체하지 마. 내가 너보다 훨씬 신께 도움이 되는 사제니까.”

    사도가 사라지자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잠시 대립을 이어가던 그들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아티팩트를 사용해 던전에서 사라졌다.

    두 사제마저 사라지자 유피테르는 마법을 해제했다.

    “사도라고 불린 자식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방금 들킬 뻔했다고.”

    “느껴지는 기운이 인간 같지는 않았어.”

    방금 전 상황을 생각하자, 에냐는 헛웃음이 나왔다.

    사도의 주먹이 조금만 오른쪽으로 향했으면 큰일이 났을 게 분명했다. 그곳에는 그녀와 유피테르가 숨어있었으니까. 물론, 벽처럼 허무하게 부서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도와 사제들이 한 정도는 칼리스토 자매들에게도 충분히 가능했으니.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네 조사가 큰 도움이 되었군. 잘했어 에냐.”

    유피테르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못한 일을 혼내는 것처럼 잘한 일에도 그만한 대가가 필요했다. 그래야만 동료들이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채찍과 당근은 누구나 아는 방법이었지만, 적절하게 사용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디까지 당근을 줘야 자만하지 않을 것인지 아무도 해답을 주지 못했기에.

    그 해답을 알고 있는 건 오로지 경험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유피테르의 모습에 전대 마스터의 모습이 겹쳐 보이자, 에냐는 눈을 비볐다.

    에냐는 처음부터 유피테르가 마스터가 되는 데 찬성이었다. 유피테르를 좋아한다거나, 그의 능력을 인정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전대 마스터의 혜안을 믿을 뿐이었다.

    그분이 잘못된 선택을 할 리가 없었다.

    “에냐 이곳에 있는 마법진들 조사한 자료들은 당연히 있겠지?”

    “그 정도도 않았으면 애초에 마스터를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어. 사도 놈들이 이 타이밍에 온 건 예상외였지만 말이야.”

    “칼리스토들에게 전해줘. 언제라도 부를 수 있다고.”

    유피테르와 에냐는 대화가 끝나자마자 가야 할 길을 향해 찢어졌다. 유피테르는 여동생이 기다리는 숙소로 향했고, 에냐는 자매들에게 소식을 전해주러 갔다.

    성국에서 무언가 벌어진다는 건 알았으니, 이제는 흑막을 찾아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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