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30화 (130/265)
  • 흔들리는 성국(2)

    * * *

    유피테르 일행이 교황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각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학장들과 교수 대표들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교류전은 그대로 진행합니다. 현재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신성 기관, 당신들 제정신이야? 마족이 또 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실력을 보여줘?”

    파르테논 아카데미의 학장이 양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는 이 상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 번은 봐줬지만, 두 번째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덜컹.

    테이블이 세게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가해진 강한 충격에 찻잔들도 덩달아 춤을 췄다.

    “거, 좀 점잖게 굴 수는 없소? 나이도 드신 분이 그렇게 하면 후배들이 뭐라고 하겠나.”

    보다 못한 델포이의 제프리스 부학장이 나섰다.

    그가 눈짓을 주자 한 발자국 뒤에 있던 교수 대표 로즈가 테이블을 멈췄다. 델포이의 교수들에게 그 정도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제프리스는 그걸 흡족하게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성국과 신성 기관이야말로 마족을 싫어하오. 그들의 실력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달라하리.”

    “제프리스. 나는 유서 깊은 대회를 이런 식으로 망치는 걸 용서하지 않네.”

    파르테논 아카데미 학장, 달라하리.

    그는 이 자리에 모인 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마법사였다. 또, 델포이 황가 방계 출신이었다. 제아무리 성국이라고 하더라도 델포이 황족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친한 제프리스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교류전을 멈출 정도는 아닙니다. 성녀님을 그렇게 만든 범인도 쫓고 있다고 하니까요. 성국을 한 번만 더 믿어보시죠.”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바자르의 대표가 나섰다. 웃는 얼굴로 맞닿은 양손을 비비는 모습이 그야말로 비굴해 보였다.

    이미 계산은 끝났다.

    마족의 위협은 돈을 끌어모을 기회였다. 불확실한 시장이야말로 바자르가 지향하는 시장이었다.

    혹시 몰라 준비해왔던 방어 아티팩트들이 불티나게 팔려가는 게 눈에 선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안전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을 자들이었다.

    절호의 거래 타이밍을 놓쳐서야 카토 연합회의 이름이 울었다.

    “어쨌든. 마지막 한 번일세. 한 번 더 그러면 난 아카데미생들을 데리고 그대로 파르테논에 돌아갈 거다. 이런 식이라면 교류전의 명성에 먹칠하는 것뿐이야.”

    달라하리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서는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화가 난 두 어깨와 대조적으로 그의 걸음걸이는 귀족다웠다. 흠을 잡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역시. 귀족들의 비위를 맞추는 건 힘이 든다니까요.”

    달리하리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자르 측의 태도가 바뀌었다.

    “말을 조심해라. 저분은….”

    “마나 엔진 기술의 기초 설계자이시죠.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하지만, 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제프리스.”

    제프리스가 선을 넘은 발언에 한마디 해주려고 했으나, 바자르의 대표가 더 빨랐다.

    바자르의 대표 트빌라는 더는 비굴하지 않았다. 바자르는 철저하게 이해관계에 의해서 움직였다. 이익이 나지 않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았다.

    ‘여기서 서로 부딪치게 만들어야. 애매하게 교류전이 유지되겠지.’

    달라하리의 뒷담화 역시 계산 끝에 나온 발언이었다.

    파르테논과 달라하리는 좋은 고객이었다. 귀족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물 흐르듯 돈을 썼으니까. VIP 고객에게 나쁜 태도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면 황금 어장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선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다.

    “천검 학원은 파르테논 아카데미에 동의한다. 이번 교류전은 무언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싸움으로 벌어질 대립을 막은 건 천검 학원 측이었다. 마법사가 더 강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아니었다. 검사의 근육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흥. 델포이 아카데미는 교류전 진행에 찬성한다.”

    천검 학원장의 말에 제프리스는 거칠게 손을 놓았다. 그 바람에 트빌라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울어졌다.

    기우뚱.

    젊은 여우라고 불리는 트빌라는 싸움에 약했다. 제프리스가 나이가 있다고 한들, 그녀보다는 강했다. 온갖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이런 일을 막아주는 건 없었다.

    바자르는 다른 아카데미와는 목적이 달랐다. 강해지는 게 아니라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었다. 당연히 교수들도 무력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무력조차 돈으로 사면 그만이었다.

    “조심하십쇼.”

    트빌라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준 건 의외로 델포이의 로즈 교수였다.

    “고마워요.”

    트빌라는 자신을 구해준 로즈에게 인사했다.

    생명의 은인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대로라면 웃긴 꼴을 보여줬을 뻔했다. 그녀의 뒤통수와 바닥이 입맞춤하는 걸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트빌라는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서는 냉정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바자르도 델포이와 뜻을 같이합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굳이 교류전을 그만둘 이유는 없습니다. 부학장님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요.”

    그 말에 천검 학원장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게 검사의 속도였다.

    “그러면. 일단 경기장 복구를 위해 하루를 쉬고 바로 교류전을 이어나가는 거로 합시다.”

    오스티안이 상황을 진정시키며, 회의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달라하리라는 거물이 빠져나갔기에 지지부진한 이야기만 오고갔을 뿐, 진전은 없었다.

    합의된 사항은 단 하나였다.

    실질적인 피해가 있을 때까지는 교류전을 멈추지 말자는 것.

    * * *

    유피테르는 카테리나, 오흐트와 함께 축제를 구경하고 있었다. 교류전이 잠시 중단해, 하루 일정이 통째로 날아갔기에 가능했다.

    “자자. 사격 한 번 해보고 가십쇼. 스트레스 풀이에 그만입니다. 인형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쏘면 뜬다!”

    축제에서는 솜사탕,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바자르의 학생들이 주목을 받기 위해 다양한 아이템들을 가져온 결과였다.

    펑ㅡ. 푸쉬시시. 펑ㅡ.

    그중, 사격장이 일행의 눈을 사로잡았다.

    요란한 가스 소리와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의 소리가 궁금증을 키웠다.

    “오라버니. 저거 봐요! 저 사격이라는 거 재미있다고 애들이 그러던데, 한 번 해요.”

    카테리나는 사격장을 발견하고는 들떴다.

    성녀를 상처 입힌 유력 용의자로 의심되는 건 바니토였다. 그러나, 카테리나 역시 그 자리에 있었기에 끊임없이 조사를 받았다. 아직, 아카데미생이었기에 유피테르처럼은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된 조사는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델포이의 학생회장이야.’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이 말만 되뇌었다.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여러 사람이 덩달아 힘들어졌다. 오라버니인 유피테르는 물론, 부회장인 클리오나와 선발 멤버들의 분위기도 처질 게 분명했다.

    결코,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카리나. 빨리 가자가자. 나 저 펭귄 인형 가지고 싶어.”

    오흐트는 사격보다는 경품으로 얻을 수 있는 인형에 마음을 빼앗겼다. 통통하게 생긴 몸이 안고 자면 딱 좋을 것 같아 보였다.

    “그래그래, 알았어. 구경이나 해보자.”

    유피테르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꾼 카테리나의 뒤를 따랐다. 여동생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은 부탁은 들어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여동생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어서오십쇼.”

    유피테르 일행을 발견하자, 사격장의 주인이 사람 좋은 미소로 반겼다.

    “얼마죠?”

    “10회에 15실버. 20회에 28실버입니다.”

    유피테르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공작 가문 출신이었고, 델포이로부터 급료도 받기에 돈이 모자라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평범한 스태프가 10실버에서 15실버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마, 아니 교수님. 그냥 해요. 응? 내가 인형 다 따줄게.”

    오흐트는 급격히 말을 바꿨다.

    셋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마스터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교수와 아카데미생의 사제관계여야만 했다.

    “델포이 분들이라면 이 정도 금액은 문제도 아닐 텐데. 그냥 내주시지. 지금 하시면 2실버씩 깎아드릴게!”

    델포이의 제복이라는 걸 눈치챈 사격장 주인이 거래를 시도했다. 선발대 멤버라면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본심이었다. 그렇지만, 손님을 잃을 수는 없었다.

    델포이 선발 멤버라면 가게를 홍보하기에는 최적이었다.

    “여기 30실버입니다. 이 친구들이 할 거예요.”

    “역시, 잘 생기신 분답게 화통하구만. 기분이다. 5발씩 더 쏘게 해드릴게. 팍팍 쏘고 가.”

    가격을 깎지도 않은 쿨 거래에 주인의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좋아. 홍보만 잘하면 나도 상위권이 될 수 있겠어.’

    다른 아카데미와 다르게 바자르는 스스로 경쟁했다. 한 달 동안의 총 매출이 높은 순위대로 평가가 나뉘었다. 순위가 높을수록 더 높은 상금을 타갈 수 있었다.

    “그럼 이 이쁜 아카데미생들분이 쏘시겠군요. 혹시 총을 쏴본 경험은 있나요?”

    주인은 바자르 소속답게 눈치가 빨랐다. 유피테르가 할 생각이 없어보이자, 빠르게 카테리나와 오흐트에게 다가가 총을 건네주었다.

    “음, 없네요.”

    “오흐트도 없어.”

    총은 세아니아 대륙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미흡한 속도 때문에 차라리 마법을 한 발 더 쏘는 게 나았다. 당연히 두 사람도 총을 다뤄본 적은 없었다.

    “간단합니다. 먼저 철탄환을 입구에 넣고서. 요렇게 자세를 잡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숨을 참고서는….”

    타앙ㅡ. 타앙ㅡ. 타앙ㅡ.

    사격장 주인의 자세는 완벽했다. 미동도 없는 손은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쏘는 족족 인형을 쓰러트렸다.

    철탄환이라 인형을 쏘면 뚫릴 것 같았으니, 무언가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탄환이 인형에 닿는 순간 방어벽이 만들어지는 게 유피테르의 눈에 보였다. 특별한 시스템이라도 있는지, 제대로 맞으면 방어벽 채로 뒤로 밀려 나갔다.

    “요런 식으로 원하는 인형을 쏴주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주인은 사격을 중지시킨 후, 자기가 쏘아트린 인형을 제자리로 올려놓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유피테르 일행을 안내해주었다.

    그리고서는 다른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럼 대결이야. 카테리나.”

    “이런 건 내가 더 잘할 거 같은데 오흐트.”

    카테리나와 오흐트는 서로 자신감이 넘쳤다.

    카테리나는 방금 주인이 한 대로 철탄환을 넣고서 자세를 잡았다. 처음 잡아본 게 맞냐고 물어볼 정도로 완벽했다.

    비교적 키가 작은 오흐트는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으나, 사격에는 문제가 없었다.

    타앙ㅡ. 타앙ㅡ.

    둘은 15발을 내리쏘았다.

    처음에는 한 발 한 발 신중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감을 잡은 듯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오라버니. 이 인형을 주면 클리오나가 좋아할까요?”

    주인장의 생각과는 다르게 3개의 인형을 획득한 카테리나가 유피테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그 애 나름대로 조사를 진행한다고 하니 믿어줘야지.”

    기분이 풀어진 듯한 카테리나의 모습에 유피테르도 안심했다. 여동생의 이야기대로라면 마왕의 심장은 카테리나의 기분에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힘을 원하자 마족의 마나로 바뀌어 버렸다고 했으니.

    원래라면 클리오나도 이곳에 왔어야 했지만,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유피테르의 부탁을 받고 신성 기관에 간 상태였다. 성국 출신인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하 호호 축제를 즐기고 있는 바로 그때, 카테리나의 몸에 이변이 일어났다.

    “허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