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26화 (126/265)
  • 크레이타의 마인(7)

    * * *

    영구동토(永久凍土)

    이 마법은 카테리나가 사용하는 빙결 지옥의 상위 호환 버전이었다.

    유피테르는 고심 끝에 영구동토를 만들었다. 이 마법은 아르테미스의 마나 속에 잠재된 ‘시간 동결’이라는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흔하디흔한 얼음 마법이 아니라 적의 시간을 자체를 멈춰버렸다. 어중간한 불꽃 마법으로는 녹일 수 없었다.

    당연히 마족들조차 영구동토를 두려워했다.

    카테리나가 마왕의 심장에 지배당할 때, 유피테르는 영구동토를 선보였다. 마왕의 마나에 취해있던 카테리나는 단 일격으로 격의 차이를 깨닫고 말았다.

    그 후, 이 마법에 매료된 카테리나는 조르고 조른 끝에 영구동토를 배웠다.

    [카테리나 선수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유피테르 교수, 여동생이 이번에 선보인 마법에 대해서 할 말은 있으십니까?]

    [그렇군요. 저 마법은 제 비기 중 하나인데, 이런 식으로 패를 하나 보여주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법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리 완벽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직 이미지가 불완전한 것 같군요.]

    유피테르의 말대로 카테리나가 펼친 영구동토는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법은 분명히 숲의 시간을 멈춰가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속도도 느렸고 마나 제어가 불안정했다.

    허드슨, 핸더슨 식 신성 마법 ― 성스러운 장벽

    신관 형제는 약간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카테리나만큼은 아니었으나 그들도 엘리트 마법사였다. 거점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방어막을 만들었다.

    한마음으로 같은 마법을 펼쳐냈기에 조화 마법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역시, 저는 젊은 신관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저게 형제가 숨기고 있던 패인 조화 마법입니다. 이게 바로 신성 기관이 지향하는 교육입니다!]

    신성 기관 측의 해설을 담당하는 리스 신관은 열변을 토했다.

    그도 그럴 게 조화 마법은 프로들도 어려워하는 마법이었다. 둘이서 마음을 합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나는 생각 이상으로 섬세해서 실패한다면 단순한 사고로 끝나지 않았다.

    [역시 신성 기관 믿고 있었다고! 델포이에 배팅한 바보들 이제 정신이 들어?]

    [저게 조화 마법…?]

    리스 신관의 설명에 관중들은 환호했다.

    일부는 서서히 보이는 승리의 기운에 취했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으나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다른 자들은 조화 마법 자체에 감탄했다. 돈을 걸지 않은 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마법을 구경했다. 저게 정말로 조화 마법이라면 입장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경기였다.

    심지어, 아직 성녀의 마법은 구경조차 못 했다.

    “잘 가.”

    카테리나도 신관 형제도 진실을 알고 있었다.

    쩌쩌쩍ㅡ.

    시작은 별 것 없었다.

    카테리나의 영구동토에 방어벽 일부가 조금씩 얼어붙었다.

    샤아아아아악ㅡ.

    한 번 기세를 타기 시작하자 얼음은 게걸스럽게 방어막을 먹어치웠다. 그러자 영구동토는 끝을 모를 정도로 넓어져 갔다. 신성한 흰 빛이 남색의 얼음으로 뒤덮였다. 처음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간신히 방어막을 유지하는 신관 형제의 얼굴에서도 점점 표정이 사라졌다. 이건 성녀가 이야기했던 수준과는 비교하는 게 실례였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쨍그랑ㅡ.

    결국, 방어막은 깨져버렸다.

    이건 유피테르가 보여줬던 환상의 기술과 비슷했다. 단순히 얼음 마법을 펼친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마법을 멈춘 것이다. 완전하지는 않았으나 가능성의 편린에 손이 닿은 카테리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제 오라버니의 발끝을 쳐다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금 리스 신관의 말을 믿은 사람은 없으시겠죠? 조화 마법은 아무나 펼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숙련된 프로들도 10번에 3, 4번은 실패하는 게 조화 마법입니다. 단순히 두 개의 마법을 합친다고 조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피테르의 해설에 관중석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분위기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말이었지만, 틀린 곳은 없었다.

    “말도 안 돼. 카테리나 당신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믿기지 않는 상황에 핸더슨이 소리쳤으나, 카테리나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영구동토에 마나를 넣어줄 뿐이었다.

    무한히 공급되는 마나에 결국, 핸더슨은 살아있는 얼음이 되어버렸다.

    “혀, 형…… 젠장 우리의 복수는 성녀님이 해주실 거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카테리나 아르테미스!”

    아드득.

    손 쓸 수 없이 다가오는 냉기에 허드슨은 이를 갈았다.

    카테리나를 꺾기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성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마나가 카테리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아이처럼 떼를 쓴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너희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음은 아마 레이야 언니일 거야. 그러니 거기서 지켜보도록 해.”

    카테리나는 형과 같은 모습이 된 허드슨을 바라보았다.

    형제는 놀라울 만큼 같은 모습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뼛속까지 신관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하는 모습에서는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그들이 어떤 마법을 더 준비했는지 관심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녀를 귀찮게 하는 데는 성공했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작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건 확실했다.

    카테리나는 거점을 점령을 완료한 뒤, 지급된 장비를 이용해 스코어를 확인했다.

    3:2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원래 작전대로라면 델포이가 점령한 거점은 3개여야만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지금 막 거점 하나를 점령했는데도 고작 두 개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이 지키고 있는 거점 중 하나가 박살이 났다는 뜻이었다.

    황급히 마나를 체크해보니 제레미의 마나가 사라진 상태였다. 신성 기관이 무슨 전략을 짜왔는지는 몰라도 완벽하게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질지도 몰랐다.

    “다들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카테리나는 투덜거리며 성녀의 마나를 추적했다.

    남은 시간이 적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한정된 공간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성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서는 망설임 없이 거점을 떠났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두 얼음 동상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 *

    한편, 성녀 프레이야는 적진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현재 스코어는 3 대 2.

    마음에 들지 않는 그 녀석도 나름대로 선방하는 중이었다. 신관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지만, 명령대로 최후방을 점령했다. 교황청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프레이야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델포이 선수들의 마나를 섬세하게 분석했다.

    성녀의 마나 감지는 급이 달랐다. 적의 위치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신성 기관의 동료들에게 간단한 작전을 알려주고서, 비워둔 거점을 빠르게 점령했다. 일절 방해가 없었기에 포션을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그 후, 망설임 없이 최후방을 노렸다.

    ‘최후방을 찌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나 보네.’

    프레이야의 생각대로였다.

    델포이에서 가장 약한 선수가 최후방 거점을 지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경기는 중간에 있는 3개의 거점을 어떻게 가로채냐가 포인트였다.

    적어도 2개의 거점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않으면 승리를 꿈꿀 수 없었다.

    애초에, 최후방을 노리는 전술은 성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카데미생의 경기는 언제나 마나 감지로부터 시작했다. 마나 감지를 통해 상대방의 노림수를 읽어내야 승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서로 엇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즉, 상대방 선수들의 마나 감지를 피해야만 전술을 실행할 수 있었다.

    “살살 좀 해주시지. 이건 뭐 상대가 되지를 않네요. 회장님, 뒤는 부탁할게요.”

    최후방을 지키고 있던 제레미는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성녀에게 압도당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성검 오를레앙을 뽑지도 않았는데 기세 싸움에서 밀렸다.

    단순히 질 것 같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당장 기권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성녀 프레이야에게서 느껴지는 마나는 가히 교수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제아무리 델포이 랭킹 상위권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할 수는 없었다. 델포이가 최강의 아카데미인 건 맞지만, 상대가 나빴다.

    성녀는 퍼스트 서클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마법사였다.

    “도망친 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어. 실전이었다면 바로 죽었을 테니까.”

    간단하게 제레미를 아웃시킨 프레이야는 거점 밖으로 나왔다.

    띠링ㅡ.

    그녀의 마나 감지에 한 명이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게 잡혔다. 그걸 눈치챈 프레이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야 제대로 된 싸움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전할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내게로 오는 게 보이네. 덤벼봐. 유피테르의 동생.”

    [경기 종료까지 15분 정도 남아 있는 가운데, 신성 기관이 3 대 2로 리드하고 있습니다. 델포이의 노림수가 완전히 엇나간 것 같은 상황인데요. 양 측 교수님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델포이 아카데미가 짠 전략은 카테리나의 힘을 이용해 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오히려 성녀 프레이야가 조커로서 확실한 결과물을 얻어냈습니다.]

    [그렇죠. 이게 바로 성녀 님의 힘입니다. 큼흠흠. 현재 경기 중인 선수는 델포이 측이 한 명 더 많지만, 이조차도 예상대로 인 듯 보입니다. 신성 기관 최후방을 지키고 있던 선수가 갑작스럽게 앞으로 뛰어나간다는 건 약속된 전술이 있다는 의미죠.]

    중계자가 운을 띄우자, 유피테르와 리스가 해설을 덧붙였다. 두 교수 모두 신성 기관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승리를 점칠 때, 성녀의 존재를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리스는 성녀가 기세로만 한 명을 기권시켜버리자, 그녀에 대한 예찬을 펼치려고 했다가 저지당했다. 쎄한 느낌을 받은 중계자가 빠르게 눈치를 준 결과였다.

    카테리나는 어렵지 않게 델포이 측 최후방 거점에 도착했다.

    “오랜만이에요 레이야 언니.”

    “그러게. 하지만, 너무 늦었어. 이 경기는 우리가 가져가도록 할게.”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저는 델포이의 동료들을 믿어요.”

    “미안하지만, 이 경기에는 네가 모르는 함정이 숨어 있거든. 우리도 말이야 생각보다 승리에 굶주렸단다.”

    오랜만에 만났고, 누구보다 친한 둘이었지만 이야기는 짧았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 기둥

    프레이야 식 신성 마법 – 성스러운 빛

    카테리나의 정면에서 남색의 얼음 기둥이 지면을 뚫고 솟아올랐다. 얼음 기둥은 어떠한 검보다 날카롭고 단단했다. 어떠한 방어막이라도 손쉽게 찢어버릴 기세였다.

    프레이야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손 앞에 마나들이 뭉쳐서 빛을 만들었다. 성녀의 마나는 핸더슨·허드슨 형제가 사용했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갈했다.

    작은 빛은 마치, 태양처럼 거대해지더니 얼음 기둥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ㅡ.

    거의 동시에 펼쳐진 두 개의 마법이 강렬하게 부딪쳤다.

    덜컹.

    순간적으로 환상 공간이 흔들렸다.

    공간 자체가 흔들렸다기보다는 시야가 어긋나 멀미하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마법이 너무 많은 마나를 품고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작 시동어로 완성한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위력이 너무 강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이번 아카데미 교류전 최고의 마법사들이 부딪치자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금껏 이 정도의 마법사들이 마주친 적은 없었다.

    이들이 무엇을 보여주든 상상 그 이상의 것이 펼쳐질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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