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타의 마인(6)
* * *
“그게… 전혀 없습니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도 마지막 한 사람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얻어낸 건 고작 이름뿐이었습니다. 바니토라고 하더군요.”
제레미의 말에 일행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델포이의 스카우터들이 보내 준 자료에 그런 이름은 없었던 거로 아는데. 내 기억에 문제라도 있는 걸까?”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런 건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서요.”
카테리나의 질문에 델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짚이는 곳이 없었다.
애초에 델피아는 친위대를 거느리며 으스대는 스타일이었다. 상위 랭킹권자이기에 자연스레 그녀의 곁에 사람이 모였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델포이에 입학한 이였기에 칭찬 세례 속에 오만해졌다.
친위대에게 요약된 설명을 들었을 뿐, 본격적으로 전략을 꾸리지는 않았다.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카테리나가 있다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제레미는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을 열려고 했다. 학생회장에게 잘 보여야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능력을 보여줄 때였다.
“아닙니다. 회장님의 기억이 맞습니다. 제가 받은 스카우터 자료에도 바니토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레미가 점수를 딸 기회를 가로챈 건 놀랍게도 세이드였다.
아폴론 공작 가문은 군부이자 호위에 특화된 마법사 가문이었다.
호위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여러 정보를 숙지해야만 했다. 의뢰자의 성향과 적을 상세히 파악하지 않으면 다음 의뢰는 들어오지 않았다. 세이드는 언제라도 발길이 끊어질 위험을 지닌 업계의 실정을 잘 알고 있었다.
카테리나는 짧은 시간 동안 전략을 짜냈다.
환상 결계가 보여주는 지도에는 5개의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서로의 시작 지점에 하나씩, 그리고 숲의 중간에 3개가 놓여있었다.
승리 조건은 최소 3개.
델피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줄 건 줘의 마인드가 먹히지 않는 전장이었다. 하나씩 포기하다 보면 전부 빼앗겨 버리는 구조였다.
언제 어디서 신성 기관과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레이야 언니를 상대로 어떤 전략을 생각해도 의미 없겠지. 혼자서 우리 4명을 압살할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성녀가 상대라면 어떤 전술도 큰 의미는 없었기에 고민은 짧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중앙을 차지할게. 세이드와 델피아는 왼쪽을 맡아서 점령해. 제레미는 가장 안전한 뒤를 맡아. 오른쪽은 버린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폴론 가문의 세이드는 두말할 필요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쳇. 둘이서 하나를 지키는 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회장님의 말에 따를게요. 성녀가 있다면 그게 당연한 방법이니까요.”
델피아는 세이드와 함께하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녀의 대응책으로 저것 말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아폴론 가문이라면 평민보다는 나았다.
“명령 확실히 따르겠습니다.”
학생회장에 눈에 드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제레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일행은 각기 맡은 곳으로 흩어졌다.
* * *
[자, 양 팀 모두 고민을 끝내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는 어떻게 보십니까?]
[델포이 아카데미는 성녀 프레이야를 어떻게 막는 지가 관건이겠네요. 카테리나 선수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성녀에게 비할 수는 없죠.]
[역시 그렇습니다! 유피테르 교수가 말했듯, 올해는 저희 신성 기관이 승리할 게 분명합니다. 성녀의 빛 앞에서는 설령 마족이라도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중계진이 한창 경기를 중계하고 있을 때, 카테리나가 중앙 거점에 도착했다.
“역시 이리로 왔군요. 성녀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희를 상대로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중앙 거점에 먼저 자리를 잡고 카테리나를 기다리던 건, 두 명의 신관이었다.
‘충분히 제 마나를 쫓을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다른 둘을 보내시다니 무슨 생각이시죠 언니?’
카테리나는 성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성녀가 아닌 다른 자가 자신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자신은 프레이야를 제외한다면 항상 파워 랭킹 1, 2위를 다투는 마법사였다.
누가 보더라도 이번 경기의 핵심은 자신과 프레이야였다.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저울은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서 모든 거점을 점령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거점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설마, 두 명이라면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꼴깍.
순간적으로 기세를 올리는 카테리나를 보고 두 신관은 긴장했다. 그들은 작년 교류전에서 카테리나의 힘을 똑똑히 보았다. 단체전이었음에도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눌렀었다.
지금 카테리나에게서 느껴지는 마나는 작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 형제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는 걸 보여주자, 허드슨.”
“난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어 형.”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크레이타와 신성 기관의 자랑인 성녀가 직접 형제들을 지도해주었다. 델포이를 꺾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특별히 그들만 봐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동경하는 강자에게 배움을 받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알차서 형제는 밤잠을 설쳤다.
당연히, 존경하는 성녀의 명성에 금을 가게 할 수는 없었다.
“형. 시작하자!”
허드슨 식 신성 마법 ― 빛의 가호
허드슨은 두 손을 앞으로 펼쳐 마나를 모았다. 신성 기관 출신답게 따스한 느낌을 주는 마나가 손에 모였다.
“오케이 동생아. 제대로 가보자고.”
핸더슨 식 신성 마법 ― 빛의 검
핸더슨은 신성 마법으로 빛나는 검을 만들었다. 빛이 일렁거리는 검을 든 핸더슨, 검사가 아닌 신관임에도 꽤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평소에 접근전을 선호한다는 제레미의 정보는 정확한 듯했다.
빛의 가호는 그대로 핸더슨에게로 향했다. 흰색의 마나가 핸더슨의 전신을 살포시 덮었다. 마치, 레아교 경전에 나오는 빛의 전사같이 늠름했다.
[바로 저겁니다. 아무리 카테리나 선수라도 저 기술을 받아치지는 못할 겁니다!]
신성 기관의 교수 리스는 형제의 모습에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는 델포이 아카데미를 입 안의 가시처럼 여기는 사람이었다. 연습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자 기분이 좋아졌다.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지던 카테리나를 정말로 공략할 수 있을까?
리스의 말에 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기대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핸더슨이 갑자기 거점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있던 평범한 관중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팅ㅡ.
그러나 핸더슨의 일격은 쉽게 막혀버렸다.
“어, 어째서!”
일격 필살의 공격이 카테리나에게 막히자, 핸더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뻔한 방법이지만, 형제는 이 방법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렇게 쉽게 막힐 리가 없었다.
이건 프레이야도 쓸모가 있다고 칭찬한 기술이었다.
“한 번 본 방법은 두 번은 안 통해. 델포이에는 신성 마법사들도 입학하거든? 너희들과는 급이 다르다고.”
카테리나의 목 뒤에는 방어막이 펼쳐져 있었다.
압축된 방어막은 단순한 벽보다 훨씬 단단했다. 그녀의 마나에는 마왕의 마나까지 섞여 있었다. 어중간한 신성 마법은 베어내기는커녕,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게다가 신성 기관 특유의 암살술을 본 적이 있다는 것도 유효했다. 마이야르가 세이드를 공격할 때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었다.
그 칼날은 친애하는 오라버니를 향했기에 기억이 한층 더 뚜렷했다.
“어째서, 작년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을 텐데!”
전투에 돌입한 이상 카테리나에게 자비란 없었다. 그녀는 울부짖는 핸더슨을 향해 거침없이 마법을 날렸다.
카테리나 식 얼음 마법 ― 얼음 창 & 얼음 화살
각각 스무 개의 창과 화살들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그것도 핸더슨의 바로 뒤에서였다. 더 빠르고, 정확해진 마법은 이미 아카데미생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형 뒤를 조심해! 예의 그거야.”
거점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던 허드슨이 소리쳤다. 동생의 외침에 핸더슨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말을 믿고 망설임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파바박. 파바박.
얼음 화살과 창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내렸다. 그 공격에 나무들과 돌, 풀 등은 한 번에 얼어붙어 버렸다. 눈을 감았다가 뜨자 아름다웠던 숲이 얼음 정원이 되어버렸다.
“고마워. 역시 허드슨 너밖에 없다.”
간발의 차이로 마법을 피한 핸더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게 두 명이 함께 움직이는 이유였다. 시야의 사각지대라도 둘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작년보다 더 끔찍해졌군.’
핸더슨은 얼어붙은 땅을 보고서 작년 교류전을 떠올렸다.
동료들은 창과 화살에 맞아 살아있는 동상으로 변했다. 일부로 위력을 줄였는지, 탈락도 되지 않았다. 얼음 속에서 경기의 결과를 끝까지 바라봐야만 했다. 그건 너무나도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저 얼음 마법이 전투력 측정을 위한 것이었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핸더슨, 허드슨 형제의 기술은 놀라운 속도였습니다만, 결국 카테리나 선수에게 막혔습니다. 역시, 폭군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성녀 님밖에 없는 걸까요?]
[아카데미생 수준에서 카테리나 선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 여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작년 교류전에서 카테리나는 그야말로 폭군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신관 형제의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중계진의 말이 많아졌다. 유피테르는 신관 형제를 아들처럼 자랑했던 리스 신관을 은근히 놀렸다.
[하, 하지만… 아카데미생은 성장 궤도는 언제든지 뒤집힙니다. 그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만, 뭐 지켜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리스 신관이 반격하려고 했지만, 유피테르의 잔잔한 말을 끝내 받아쳐 내지 못했다.
‘정공법으로는 뚫기가 힘든가. 그러면 끝까지 버텨주겠어.’
예상했던 상황과 다르게 흘러가자 허드슨은 방침을 바꿨다.
이미 정점을 찍은 카테리나였기에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자신들보다 더 강해져 이제는 손으로 바짓가랑이조차 붙잡을 수 없어 보였다.
그래도 최대한 시간을 벌어보라는 성녀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형! 플랜 B야.”
“OK.”
핸더슨은 망설임 없이 거점까지 물러났다. 그는 두뇌를 담당하는 동생의 말을 신뢰했다. 허드슨의 말을 들어서 손해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가 봐도 안에서 농성하겠다는 기세였다. 애초에 신관은 수성전에 어울리는 마법사였다. 파티를 짜도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을 정도였다. 신성 마법 자체로도 강하지만, 누군가를 지킬 때 더욱 빛을 발했다.
그것이야말로 창조신 레아의 뜻이었다.
째깍째깍.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카테리나보다 먼저 거점에 도착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앞으로 3분이면 첫 거점을 획득할 수 있었다. 거점 탈환에도 시간이 걸리니 이대로만 가면 신성 기관이 유리했다.
‘저기서 버티겠다 이거구나. 레이야 언니의 생각이 대충 보이네.’
카테리나는 추호도 질 생각이 없었다.
상대가 성녀라고 하더라도 승리하는 건 델포이 아카데미여야만 했다. 게다가 자신의 힘을 알면서도 세 명을 보내지 않은 게 놀리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났다.
신성 기관이 공격보다 수비력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작년에는 그들의 빗장 수비를 찢어버리기 위해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동료들을 얼리고, 반쯤 협박했다.
그야말로 ‘폭군’처럼.
그러나 지금은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었다. 마왕의 심장이 보내 주는 마나와 오라버니가 직접 알려준 마법들을 이용하면 힘으로 압도할 수 있었다.
카테리나 식 특제 마법 – 영구 동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