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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포기한 대공자-124화 (124/265)
  • 크레이타의 마인(5)

    * * *

    “마족 반응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유피테르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족들이 신의 결계 페르세포네를 파훼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마음속 어딘가에 그런 생각이 잠들어는 있었으나, 직접 들으니 훨씬 쇼크였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티폰도 하지 못했던 걸, 지금 해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우우웅.

    유피테르는 케팔로스의 범위를 가장 넓게 설정했다.

    그러자 신의 결계는 물론 넓디넓은 타르타로스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었다. 그는 한 구역도 빠트리지 않고 마족의 마나를 추적했다.

    트리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신의 결계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 뚫린 걸 찾아냈다. 유피테르 급의 존재가 아니면 눈치를 챌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작았다. 케팔로스가 없었다면 힘을 제한한 유피테르도 그냥 넘어갔을 뻔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트시거는 오히려 안에 있군. 에키드나를 포함해서 3명이나 사라졌다….’

    공작급 마족 중 세 명이나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티폰을 죽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떤 마족이 사라졌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비교하려고 하자 머리가 아파져 왔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기억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티폰을 죽인 것과 다른 공작들을 제압한 건 확실히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마나의 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마치, ‘그녀’가 해준 봉인이 강제로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뿐만 아니라 꽤 많은 마족들이 타르타로스에서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 모든 걸 누군가가 만든 더미 마나가 채우고 있었다.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똑같지는 않았다. 마치, 겉모습만 그대로 복사해놓은 것 같았다.

    주의 깊게 마나를 분석하지 않으면 이 사실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트리아라도 이 정도로 치밀한 함정이라면 헷갈릴 만도 했다. 유피테르조차 케팔로스가 없었다면 아무 문제도 찾지 못하고 넘어갔을 테니까.

    “트리아. 마족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조사해.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상관하지 않겠다. 너보다 아래 순위의 자매들이라면 얼마든지 데려와.”

    유피테르가 트리아에게 명령했다.

    그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었다. 인간이 가져서는 안 될 힘을 지닌 마법사에 불과했다.

    ‘그녀’ 역시 그 점을 잘 알았기에 칼리스토의 지휘권을 주었다. 그녀들이 가진 힘이라면 유피테르의 부족한 점을 확실히 채워줄 수 있었기에.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이시여.”

    트리아는 무릎을 꿇고서 유피테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과는 나중에 해도 돼. 지금은 저놈들이 대체 뭘 꾸미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먼저야.”

    * * *

    타르타로스에서 마족들이 탈출한 사실은 아직 세계에 퍼지지 않았다.

    결계를 해석해서 만든 작은 구멍이나 마족의 마나를 복사한 더미들은 고도의 마법이었다. 평범한 자가 생각하거나,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공작급의 마족이라도 신의 섭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도저히 누가 범인인지 예측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인이 굳이 유피테르를 노린 것도 의심스러웠다. 마족이 경계하는 그의 앞에서 수작을 부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게다가 교류전이 열리기에 성국의 방어 체계가 최고조인 상태였다. 굳이, 이곳을 노릴 필요는 없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유피테르는 마족이 세상에 풀려난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자. 이번 경기는 화제의 시작입니다. 신성 기관과 델포이 아카데미의 마법사들이 서로 맞붙습니다. 기대가 되시죠?]

    유피테르의 걱정이 무심하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일주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가 준비 중이었다. 1주 차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신성 기관과 델포이 아카데미가 드디어 맞붙었다. 아카데미생들의 경기임에도 관중들의 시선이 몰렸다.

    [두 아카데미의 라인업이 정말 짱짱합니다. 세아니아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기를 펼쳐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는 돌답게 배당도 팽팽하다고 들었습니다.]

    경기를 중계하는 신관은 텐션이 오른 상태였다. 그는 이번이 델포이 아카데미를 꺾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멤버라면 작년의 아쉬운 패배를 두 배로 갚아줄 거라고 기대했다.

    무려 성녀 프레이야가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는데 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번 경기를 위해 양쪽 아카데미 교수진을 모셨습니다. 신성 기관의 신관이신 리스 신관님과 델포이 아카데미의 교수인 유피테르 교수입니다.]

    중계를 맡은 신관이 해설을 도와줄 두 명을 소개했다.

    원래라면 신관들이 중계와 해설을 모두 해야 했다. 그러나 마인 사건으로 인해 인력이 부족해졌다. 표면적으로는 교류전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물밑에서는 어떻게 마인이 결계 속으로 들어왔는지 조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교황은 평화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가만히 있어서는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우우ㅡ.

    유피테르가 모습을 보이자 관중들이 야유를 보냈다. 마족의 협력자로 잡혀갔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교황이 직접 나서 무죄를 밝혔기에 사그라들고 있었으나,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유피테르 역시 마족과 뒤에서 손을 잡고 영웅인 척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카르멘 아르테미스의 행동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이단 심문관들처럼 갑자기 강력한 마법을 손에 넣은 유피테르를 의심하는 눈초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워워…. 유피테르 교수는 피해자로 최종 결과가 나왔습니다. 게다가 선수로 출전한 두 아카데미생을 직접 가르쳤다고 하니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신관은 죄가 없었다. 주어진 대본에 어느 정도의 애드리브를 섞을 뿐이었다. 그러나 관중성기 분위기가 묘해지자, 그는 빠르게 이야기를 돌렸다.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가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번 아카데미생 단체전은 놀랍게도 4대 4대결이었다. 어떤 종목과 몇 명이 출전하는지는 전날 뽑기로 결정되었기에 나름 공정한 편이었다.

    8명의 마법사들은 한층 더 강화된 몸수색을 받고서,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 * *

    “마왕의 심장은 프레이야에게 숨겨라. 성녀에게 그런 걸 알려줄 필요는 없어.”

    “설마, 비장의 패로 사용하려고 하는 건가요? 아무리 검은색이 많이 옅어졌다고 해도 무리에요.”

    “아니, 교류전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넌 프레이야와 한 번쯤은 싸우게 될 거야. 성녀는 오를레앙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어.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널 죽이려고 들 거다. 그러니 최대한 숨겨.”

    “알겠어요. 오라버니.”

    게이트 속으로 들어온 카테리나는 유피테르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강화 합숙을 통해 마왕의 심장이 만들어 낸 새로운 마나를 무기로 삼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강했던 검은색이 어느새인가 많이 줄어 남색으로 보였다. 투명한 푸른색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라면 속여넘길 수 있었다.

    그래도 성국이니까, 오라버니의 말대로 하는 게 나아보였다.

    [이번 종목은 숲에서의 점령전입니다. 아카데미생들은 5개의 고지를 점령해야만 합니다. 주어진 시간이 끝났을 때 5개의 고지 중 3개 이상을 점령하고 있으면 승리합니다. 특별 룰로 상대방 전원에게서 항복 의사를 받아내도 승리로 인정합니다.]

    중계진의 말이 끝나고 선수들의 시간이 찾아왔다.

    “어떻게 할 거예요 학생 회장?”

    붉은 머리의 2학년, 세이드 아폴론이 카테리나에게 물었다. 선발된 10명 중 카테리나가 가장 랭킹이 높았으니 리더로 세우는 건 당연했다. 카테리나의 이론 성적은 전부 만점이었다.

    “적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 있어?”

    카테리나는 이번 경기를 같이하게 될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학생회의 멤버들도 오흐트도 없었다.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을 일부러 배제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베일로 가려져 있는 신성 마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선발전 멤버들이라면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저는 적 중 한 명이요. 이름은 허드슨입니다. 주로 아군을 서포트하는 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학생회에 들어오고 싶어 노력하는 세이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5개 중 세 개만 얻으면 되니까. 그냥 랭킹대로 하나씩 정하고 버티죠?”

    갈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델피아는 합리적이었다. 그녀의 말에는 델포이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성녀가 상대라면 그녀를 버리고 나머지를 모두 취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전부 얻지 않아도 이길 수 있었다. 아직, 상위 라운드가 아니기에 준비된 카드를 모두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나 멍청한 짓이었다.

    “미네르바 가문의 자제다운 의견이네요. 합리적이에요.”

    가장 낮은 랭킹의 제레미가 의견을 냈다.

    “닥쳐 평민. 최저 랭킹인 네게 말할 권리는 없어. 카테리나 님의 의견을 따라가면 당연히 승리하니까.”

    지금껏 가만히 있던 제레미가 움직이자 바로 델피아가 반격했다.

    델피아 역시 리투아 제국의 미네르바 자작가문 출신이었다. 아르테미스나, 아폴론 가문 만큼 상위 귀족은 아니었으나, 일단 귀족이기는 했다. 오히려 하위 귀족이기에 평민들과의 격차를 더 벌리고 싶어했다.

    “아니. 선발전 멤버인 이상 모두가 동등해. 애초에 점령전에서 우위는 정보싸움이야.”

    “바로. 그겁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학생회장님이시죠.”

    카테리나가 두둔해주자 제레미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역시 리더는 저런 식으로 행동해야만 했다. 리더는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은 해주되, 필요한 부분에서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며 카리스마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녀가 있기에 통통 튀는 델포이 아카데미생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신성 기관의 출전 멤버들이라면 제가 좀 아는 편입니다. 한 번 들어보실래요?”

    “좋아. 계속해봐.”

    카테리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제레미는 신이 나서 알고 있는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성녀 프레이야의 경우는 모두 잘 아실테니, 제외하도록 하죠. 세이드 씨가 말한 허드슨은 서포트와 근접전을 자신 있어 한다고 들었습니다. 핸더슨은 허드슨의 형으로 기척을 숨겨 기습하는 스타일입니다.”

    제레미의 정보는 놀랄 정도로 방대했다. 처음에는 신분으로 꿇리려던 델피아조차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참모를 많이 배출한 델피아 가문다웠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감정 따위는 몇 번이라도 숨길 수 있었다.

    “연구 좀 했네?”

    정보전에는 영 자신이 없는 세이드가 제레미를 치켜세웠다. 그는 정보전에는 잘 맞지 않았다. 일대일 전투에서의 심리전이야 조기 교육으로 키울 수 있었으나, 상황을 보는 시야는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었다.

    “델포이에서 잘 배운 덕분입니다… 원래 전투의 시작은 나와 상대방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거라고 회장님께서도 늘 이야기하셨고요.”

    카테리나에 이어 세이드까지 칭찬을 아끼지 않자, 제레미는 공을 돌렸다.

    반쯤은 진심이었다. 델포이의 교육이 없었더라면 가지고 있던 재능을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사람을 극한으로 내미는 수업을 겪으며 정보를 다루는 데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블러핑과 공작을 통해 싸우지도 않고 승리한 후에는 짜릿함까지 느꼈다.

    “나머지 한 명에 대한 정보는?”

    제레미의 정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건, 학생회장 카테리나였다.

    승리의 최저 조건인 세 곳을 점령한다고 해도, 델포이의 선수들이 모든 전투에서 이길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배치된 인원이 상대방에게 패배해 점령에 실패할 수도 있었다.

    마법에는 분명한 상성이 있었다. 서로 비슷한 수준이라면 상성을 무시하는 건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아르테미스의 얼음 마법은 거의 무상성에 가까웠지만, 다른 이들도 같은 혜택을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저쪽의 리더가 성녀인 이상, 작년과 같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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