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도 포기한 대공자-119화 (119/265)
  • 유피테르의 데뷔전(4)

    * * *

    ‘대체 뭘 하자는 거지.’

    유피테르는 알피의 말과 행동을 따라갈 수 없었다. 동료들을 갑자기 공격하는가 싶더니, 아티팩트를 사용해 안전하게 보호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애매했다.

    하지만, 짚이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르망.

    그 이름이 분노의 원인인 건 틀림없었다. 알피는 꺼지지 않는 증오의 불꽃에 몸을 태우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미친 짓을 할 리 없었다. 진명이 아닌 가명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건 수명을 깎는 일이었다.

    이치를 벗어난 행동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했다.

    “하, 기억이 나지 않나 봐? 그럼 떠오르게 해주지!”

    유피테르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알피는 분노했다.

    악마와 계약한 후, 그는 형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해결사 일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형의 발자취를 좇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 형의 이름, 얼굴 그리고 마법까지 모조리 알고 있었다. 리투아 제국에서 살고 있다는 소중한 형의 편지도 간직했다. 이 정도 단서라면 찾지 못하는 게 더 어려웠다.

    결국, 그는 형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리투아 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귀족, 그것도 공작 가문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자신과 다른 성실한 성격이 도움이 된 게 분명했다.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형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가끔, 리투아 제국에 일을 하러가면 멀리서 형을 바라보고는 했다.

    알바레스 식 석화 마법 ― 돌무덤

    알피는 이전에 사용했던 돌무덤을 다시 한번 펼쳤다. 애초에 그에게는 형 같은 재능이 없었다. 그는 일류 ‘해결사’였을 뿐,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었다.

    “한 번 봤던 걸 또 보여주는 건….”

    유피테르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돌덩이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조금 전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모든 걸 포기한 자의 발버둥은 방어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건 아카데미 교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없었다. 상식이 있는 자라면 이미 파훼 된 방법을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러나 인간은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과거를 답습하지 않았다. 과거보다 단 하나라도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점이야말로 인간이 몬스터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반응조차 예상대로다. 이 자식아.”

    이 모든 게 알피의 계획이었다.

    이대로면 유피테르에게 한 방을 먹여줄 수 없었다. 집 나간 감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마나 역시 바닥을 보였다. 게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얼음 속성은 훨씬 귀찮았다.

    남을 속이기 위해선 자기 자신부터 속여야만 했다.

    마치, 복수를 포기한 듯한 느낌을 주고서 시간을 벌었다. 고작, 몇 초뿐이라도 좋았다.

    이 포션을 마실 시간만 있다면.

    ‘미안, 형님. 내게는 밝은 세상이 맞지 않나봐.’

    유피테르는 보기 좋게 함정에 걸려들었다. 찰나의 시간, 알피는 망설이지 않았다. 악마가 주었던 포션을 그대로 입에 들이부었다.

    “콜록, 콜록. 이거 대체 맛이 왜 이런…?”

    포션은 악마가 경고한 대로 씁쓸했다. 피를 먹는 것 같은 기분에 비위가 상한 알피는 끊임없이 기침했다.

    이변은 곧바로 찾아왔다.

    푸슈우욱ㅡ.

    알피의 전신에서 검은 마나가 솟구쳤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알피의 몸이 고장 난 마리오네트처럼 뒤틀렸다. 꾸물꾸물한 검은 마나는 이내 알을 만들었다.

    “또 마족들인가. 대체 얼마나 많이 빠져나온 거야?”

    유피테르는 알피가 포션을 마시는 걸 막지 못했다. 돌덩이는 생각보다 성가신 마법이었다. 마나를 쥐어짜서 마법을 완성한 건지, 반응이 약해서 피하기 어려웠다.

    신이 친 결계는 유피테르라도 쉽게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은 너나 할 것 없이 밖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는 다음에 트리아를 불러 결계의 상태를 확인하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승부는 난 상태였다.

    그의 동료들은 지금도 깃발을 빠르게 회수하고 있었다. 케팔로스는 깃발의 개수가 무섭게 줄어들고 있다고 속삭였다. 그의 동료들은 역시 탁월한 마법사들이었다.

    반면에 파르테논 아카데미의 깃발 개수는 오래전부터 멈춰있었다. 깃발과는 상관없는 행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간 결과였다.

    솔직히, 왜 아직도 승리 선언을 하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한 경기를 너무 오래 끄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깃발의 개수가 이렇게 차이나도 끝내지 않는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파르테논의 마지막 선수인 알피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유피테르는 마족의 마나로 보호되고 있는 알을 쳐다보았다. 범상치 않은 마나가 새어 나왔다. 어중간한 마법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교수들이었다면 일단 후퇴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니플헤임(Niflheim)

    유피테르는 빙결 지옥의 원리를 이용해 새로운 마법을 즉석에서 만들어 내었다. 이 경기에서만 두 번째였다.

    그의 마나가 세계를 삼켰다.

    휘몰아치던 눈보라도, 여기저기 내뒹굴던 돌덩이들도, 여기저기 남아있던 다른 이들의 마나까지.

    모든 것들이 침묵에 빠졌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ㅡ. 알피 교수가 무언가 새로운 마법을 준비하지만, 유피테르 교수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싶습니다! 이미, 승부가 난 상황인데 심판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중계를 하던 신관도 유피테르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미 스코어는 10배 차이가 났다. 평소라면, 이미 끝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렇게 압도적인 경기는 아카데미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니까.

    거기다 알피라는 교수가 사용한 건 분명 마족의 마나였다. 책에서만 봤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레아 님을 모시는 사제로서 남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왔던 성과였다.

    이곳은 성국 크레이타이었다.

    마를 물리는 결계 ‘헤카테’가 뚫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마족이 한 번도 침입한 적 없었던 청정 지역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따라갈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그저, 이 예감이 엇나가기만을 기도했다.

    그때였다.

    알바레스 식 석화 마법 ― 메두사의 눈

    알 속에 숨어있던 알피가 재빠르게 공격해왔다.

    이제는 검은빛을 띠는 마나가 한 여인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 여인은 분노하며 세상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얼어붙었던 세계가 굳어버렸다. 퍼스트 서클의 마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유피테르 식 특제 마법 ― 얼음 나비의 꿈

    생각 이상으로 위험해 보이는 마법에 유피테르는 결계를 펼쳤다. 푸른 나비들이 여유롭게 날아다니는 결계 속은 안전했다. 설령, 마왕이라도 이 결계를 뚫지는 못했다.

    얼어붙었던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후, 알피의 마나가 사라졌다. 유피테르는 안전을 확인한 후 결계를 해제했다.

    “이 마법은 아르망이 자주 사용하던…!”

    흙빛으로 변해버린 세계 덕에, 머릿속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석화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유피테르의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제 3 마법사단 단장 아르망. 그의 장기가 석화 마법이었다.

    알피가 사용했던 ‘메두사의 눈’은 시동어까지 똑같았다. 혈계 마법을 제외한다면 비슷한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시동어까지 같은 경우는 없었다.

    이게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이제 기억이 난 거냐. 유피테르 아르테미스.”

    알을 깨고 나온 알피의 모습은 기괴했다. 그의 얼굴에 가득하던 흉터들은 깨끗이 없어졌다. 대신, 피부의 색이 검게 변했다. 심지어, 키도 꽤 커져 2M를 가뿐히 넘었다. 어깨에는 기분 나쁜 검은 마나들로 날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의 그는 어지간한 마족보다, 더 마족 같은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묻지. 넌 누구지.”

    “그 아비에 그 자식이로군. 싹수가 노래. 내 이름은 알바레스.”

    “알바레스?”

    “그래, 네가 구하지 못했던 마법사단 단장 아르망의 동생이다.”

    사실, 아르망의 말은 억지였다.

    당시, 유피테르는 에키드나의 함정에 빠져 던전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칼리스토 자매들처럼 힘을 제한하고 있었다.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마족과 내통한 것 역시 유피테르가 아니라 카르멘이었다. 카르멘과 에키드나의 협공으로 마법사단이 궤멸당했으니까.

    오히려, 유피테르는 달의 몰락의 피해를 막은 구원자였다.

    “성국에서 반마족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어? 이단 심문관이 널 놓치지 않을걸?”

    “하, 역시 네 놈의 눈은 썩어 있군.”

    유피테르의 말에 알바레스는 코웃음을 쳤다.

    성국의 이단 심문관들 따위 더는 무섭지 않았다. 그들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지금의 그는 인간이나 마법사와 같은 저급한 단어로 규명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해결사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온몸에 힘이 넘쳐 흘렀다.

    지금이라면 저 증오스러운 은발의 마법사도 발아래에 둘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복수를 이루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지금의 내가 반마족 따위로 보이나? 난 마족과는 상관없다.”

    “뭐라고…?”

    아무리 봐도 알바레스의 상태는 반 마족과 다를 바 없었다. 이성은 남아있었으나 파괴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유피테르가 지금껏 보아왔던 마족의 마나를 주입받은 마법사들과 유사했다.

    “죽어라. 저주받은 대공자.”

    알바레스는 검은 마나로 만들어진 날개를 오므렸다.

    ‘대체 이단 심문관들은 뭘 하는 거야.’

    상황이 이렇게 되니 성국에 배신자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족을 숭배하는 티폰교 신자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고작 배신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촤르르륵ㅡ.

    알바레스는 오므렸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거무튀튀한 깃털들이 유피테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딱히, 마법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쉬이익ㅡ.

    깃털이 꽂힌 공간이 검은색으로 칠해졌다. 유피테르는 방어하기보다는 피하는 걸 선택했다. 날갯짓이 익숙하지 않은지 보고 피할 수 있었다.

    “그거, 마족의 마나와 똑같은데. 이래도 발뺌할 셈이야?”

    “역시 마족를 물리친 용사님의 말은 깊이 울리는걸. 그래봤자. 형을 구하지도 못한 쓰레기지.”

    마족의 마나를 흡수했어도 유피테르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타올랐다. 당장이라도 저 얼굴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싶었다.

    마법을 만드세요. 당신이라면 가능해요.

    알바레스는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었다. 그 말대로였다. 그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었다. 마법 따위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있었다.

    날개를 이용해 하늘 높이 날아오른 그는 강하게 소망했다.

    그것만으로도 알바레스의 주변으로 검은 마나들이 모여들었다. 검은 마나들은 거대한 마법진을 구축했다. 마치, 고대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광경이었다.

    알바레스 식 특제 마법 ― 스테노

    알바레스가 독자적으로 개발해낸 새로운 석화 마법이 세상의 빛을 꺼트렸다. 유피테르는 그 마법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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